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서울 어디메 있는 자장면 가게에
취직을 했던 친구 녀석이 월급 타서 때 빼고 광내
고향 금촌을 찾은 적이 있었다.
서울 물 먹은 녀석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코 찔찔이
우리완 다르게 반짝거리는 세련미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봐서 그런진 몰라도 몰라보게 변해버린 녀석의 언어 역시
도시스럽게 간단 간단하고 매끄럽게 구사하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 촌놈들의 스타로 등극한 그 녀석 주위에 둘러모여
찰랑거리는 머리도 건드려 보고 세련된 옷도 만져보고
반짝거리는 케이스 갈이 시계도 차보고 "별것 아니네" 하고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흠도 잡고 했었다.
침뱉는 것만 해도 그랬다.
그 녀석은 우리처럼 "퉤퉤" 가 아닌 뒷 주머니에
양손 반 쯤씩 꽂고 이빨 사이로 "찍찍" 날리는게
어쩌면 그렇게도 멋져 보이는지 그 녀석 행동 모두를 따라했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당시 나는 금촌역전에서 구두닦이를 했었는데
녀석을 보고 나를 보니 내 신세가 그렇게 망가져 보일수가 없었다.
나도 당장 그녀석 따라 서울 올라가 자장면 집 취직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피터지기 해서 어렵사리 얻은 구두닦이 터를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일 이었다.
하여튼간에...........
그 녀석이 자기는 매일 먹는다는 자장면을 한 그릇씩 사겠다고 해서
우리는 녀석을 따라 우르르 시내로 몰려나와
2대째 지금까지도 영업하는 '덕성원' 에 들어가
자장면을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게 꿀꺽 하고나서
일어서려는 우리완 다르게 그 녀석은
"아줌마 여기 냅프킨 좀 주세요." 하는게 아닌가?
냅프킨?(지금과 다르게 그 때는 냅프킨을 달라는 사람에게만 줬음.)
무슨 외국 사람 이름같은 그 이상한 소리를
우리는 뭐를 더 시키려는가 보다 하고 서로 얼굴 쳐다보며
다시들 자리에 앉았다.
조금 있으니 세모꼴로 생긴 나풀나풀 하고 부드러운 흰 종이를
종업원이 갔다놓고 돌아갔다.
녀석은 그 아까운걸로 입을 닦았는데 우리는 그게 너무
희고 깨끗해 그냥 호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냅프킨을 업소에서 무료로 준다는걸 알게 되었고
어디서 무슨 음식을 시켜 먹더라도 최대한 혀를 굴려
"아줌마 여기 냅프킨이요!" 를 주변이 다 듣도록 소리쳐 주문했다.
왜 있지 않은가?
별 뜻도 없는데 고상하게 들리는 단어나 한문의 어떤 자,
한글의 특정한 글씨 같은게 좋아 반복해서 낙서하는 심리,
그리고 남이 잘 이해 못하는 고상한 단어를 대화중에 슬쩍껴서 넘어가면
내 스스로가 품위있어 보이고 고급스러운 생각이 드는
얼치기 졸부의 고급 심리같은 것 말이다.
그런게 내 경우엔 러시아나 독일쯤 되는 곳에 사는
무슨 유명한 과학자나 문호 이름같은 냅프킨과 카리스마 였다.
카리스마...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들고 그 단어를 말하거나 들을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잠깐씩 머무르다 사라지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유명인은 아니고 지금은 돌아가신 어떤 분인데
카리스마 하면 그 분이 떠오르는 걸로 봐서
그 분이 바로 하늘이 준 초자연 어쩌구 하는 그게 있었던 것 같다.
옛날엔 그래도 책 꽤나 읽은 사람이나 뭣 좀 아는
식자층 사이에서 쓰던 그들의 언어였는데
요즘 안 흔한게 없는 것처럼 그런 단어들까지도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흔히 쓰는 싸구려 단어가 되어져 버렸다.
카리스마...
그 단어가 갖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린이나 블루, 화이트,
그런 단어처럼 어딘지 모르게 자주 쓰고 싶은
그런 분위기가 있는 단어다.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지 남들도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 기억 창고엔 냅프킨과 카리스마가
고급단어는 아닐지라도 입을 통해 음이 되어 나온다면
멋있게는 들릴거라고 기억되어져 있다.
요즘 테레비젼을 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카리스마와 엽기 단어가
너무 흔하게 넘쳐나고 있다.
내용과 무관한 상황에다 엽기니 카리스마니 하는걸
같다 붙이는 걸 볼때 가끔 보기 민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내용과 상황이 맞아 떨어지진 않더라도
윗글에서 쓴 그런 심리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다.
-금촌동에서 김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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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수] 냅프킨과 카리스마..
김목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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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2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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