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중학교 때였나, 아니면 초등 고학년 때였던가.
국어 시간에 이 시를 접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였을지도 모를 어느 유년의 밤, 화자는 몹시 앓았다. 열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눈 속을 헤치고 약을 구해왔다. 붉은 산수유 열매.
계절은 눈 내리는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인 것 같다. 그 시기에는 산수유 열매를 구하기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할지도.
그러나 화자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구해왔다. 열로 앓고 있는 자식을 위해.
눈 속을 해매며 서늘해진 옷자락, 그것에 열로 달아오른 얼굴을 부비는 소년.
어느덧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된 화자는 예전 모습이 사라진 도시에 서 있다. 예전과 똑같은 눈 내리는 거리에.
그날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다. 붉은 피를 따라 흐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가져온 아버지의 부정이.
🕊️ 내가 읽었던 시 가운데 부정을 진하고 애틋하게 나타낸 시였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눈, 미약하지만 온기를 가진 숯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서늘한 아버지의 옷자락, 하얀 눈과 붉은 산수유.
희고 붉은, 차고 온기 서린.
시에 나타난 촉각적, 시각적인 대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아버지가 집 근처에서 따온 산수유 열매, 나 보여준다고 가져온 그 열매를 만지작거리자니,
문득 이 시가 떠오른다.
👩🦯 그래서 산수유 열매로 점형을 만들어봤다. 마침 오늘이 11월 4일 점자의 날이기에.
<아빠> = 아 1-2-6점, 빠 6점에 4-5점
첫댓글 아빠의 점자는 잊지 못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