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마님, 애들이랑 마을 주변을 한번 돌아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썰렁해진 분위기도 바꿀 겸해서 부루는 갯가 나들이를 권했다.
그들이 어둥개 온지도 이미 달포가 넘었지만 아직 바다로 나가본 적은 없었다.
건강이 회복되면서 슬슬 갑갑증이 일던 옥환도 끄덕였다.
간식 바구니를 챙긴 시녀와 아이들이 옥환을 에워싸고 해변으로 나섰다.
망시리와 태왁을 멘 아이들은 이내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인 빌레와 언년이 날랜 물고기처럼 물속을 누비는 것이 옥환에게는 신기했다. 잠시 후 올라온 언년이 망시리의 소라와 해초들을 보여주며 물었다.
" 아즈망은 헤엄을 잘 치우꽈?"
부루의 통역에 옥환은 웃었다.
북방인들은 수영은커녕 물 자체를 겁낸다. 그녀 또한 북방인이다.
" 왜? 가르쳐 주련?"
" 그러문요. 가르쳐드리우다."
빌레의 눈이 반짝였다. 예쁜 아즈망과 물질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 그래, 언제 한번 해보자."
옥환이 웃었다.
그날 불 턱에서 몸을 녹이던 언년 어미는 잔잔한 어조로 잠녀 생활을 들려주었다.
" 이런 불 턱에서 몸을 달구고 가슴에 붙인 곽(테왁)에 망시리를 묶수다. 전복껍질을 주머니에 채우고 빗창(쇠꼬챙이)을 잡고 헤엄치다 물에 잠기지요.
물 밑에 이르면 손으로 바위를 쓸며 전복을 찾수다. 돌에 붙은 전복은 돌과 헷갈리기 쉬워 가져간 전복 껍데기(본 조갱이)로 표를 하우다.
숨이 급해져 물위로 솟아 곽을 안으면 '휘익' 숨비 소리가 절로 나우다. 겨우 생기를 찾으면 아까 표시해 둔 곳으로 가 쇠꼬챙이로 땁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도 바닷 속은 참기 어려울 만큼 추워 오돌오돌 떨리우다.
따뜻한 불턱에서 겨우 생기를 찾지요. 전복을 못 찾으면 물질을 거듭거듭 하는데 영영 못 따는 날도 있수다.
전복 하나 때문에 죽을 뻔한 경우도 허다하고 모질고 날카로운 바위를 밟거나 벌레와 뱀에 물리기도 하우다. 요행히 살아나도 병으로 고생하지요. 제 얼굴을 좀 보우다."
옥환보다 젊다는 언년 어미의 얼굴은 기미와 눈가 잔주름으로 가득했다. 하루하루의 삶이 처절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신세타령을 듣던 옥환은 차츰 잠녀들의 고통과 적개심이 이해되었다.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살아가는 자신이 그녀들의 눈에 산갈치 따위로 비친 것은 당연했다.
빌레는 일행을 당 오름 숲속으로 이끌었다.
갯가에 음식을 벌려놓으면 모래가 날아들고 아차 하는 순간 그릇 채 날아간다. 아늑한 샘터야말로 명당 간식터였다. 또한 하르방에게 예쁜 아줌마를 선보일 기회이기도 했다.
팽나무의 수명은 천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누가 그 긴세월을 지켜보았겠는가? 사실 여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비록 긴 세월이지만 여하튼 수명은 있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나무 정령 스스로도 제 나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둥개 마을이 생기기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물 길러 다니던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세월을 가늠할 뿐이었다.
열매를 몇 번이나 맺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걸 보면 엔간히 오래 산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서서히 생기가 쇠해가는 것도 느껴왔다. 아이들을 반겨온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생기란 충만한 데서 모자란 곳으로 흐른다. 아이들의 발랄한 생기는 정령의 엷어진 생기를 채워준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해롭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모자란 부분은 나무가 채워주기도 했기에 서로서로 이로운 일이었다.
나무 정령은 옥환을 흥미롭게 살폈다.
그리고 아이들과는 또 다른 원숙한 생기를 보았다. 그것은 화려한 기교를 마음껏 부리면서도 원초적 생명력이 흐르는 경지였다.
과도한 기교는 생기가 빠진 껍질이다.
그 대칭점은 볕에 탄 까무잡잡한 아이의 원천적 생명력이다. 원래 그 둘은 양립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단순해 보이는 내면에 깊은 기교가 함축되어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감흥을 느낀다.
그것은 곧 심간미 深簡美이며 고졸古拙, 졸박拙撲의 경지였다.
불도에 귀의한다지만 세상에 드문 그런 경지가 절간에 숨겨지는 것은 실로 아쉬운 일이었다. 그녀의 심간미는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래서 넌지시 일러주었다.
" 화광동진 和光同塵
대교약졸 大巧若拙"
광채를 감추고 남들과 대범하게 어울림이 화광동진이다. 기교가 극에 이르면 소박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대교약졸이다.
왜 그런 말을 하셨을까? 부루는 갸우뚱 했다. |
첫댓글 "기교가 극에 이르면 소박으로 돌아온다"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오늘 옥환의 매력에 푹빠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