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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3:1~6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2025.2.23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입니다.
‘구구팔팔이삼사’를 아십니까? 구십구 살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앓다가 죽자는 말입니다. 그리 되길 축복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구팔팔의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으로 잘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지키라’는 말은 마음으로 먼저 믿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에게 하나님은 장수와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평안과 장수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장수와 평안! 이 두 단어가 나란히 가야 진정한 복입니다. 장수는 하되 평안이 없다면? 평안하되 단명한다면? 장수와 평안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이리 봐도 걱정, 저리 봐도 근심, 앞을 보면 불안, 뒤를 보면 염려라면 인생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찬송가 가사에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라고 합니다.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죽을 일 쌓였다고 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후렴이 있습니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 참 죽을 일이 쌓인 인생이지만 그 속에서도 주 예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면 기쁨이 있고 즐거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고 살게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에 쉬지 않고 파도가 일어나지만 파도를 피하거나 숨지 말고 주님과 함께 파도타기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솔라 그레이스, 즉 오직 은혜입니다. 은혜란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선물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에게 구원 받을만한 자격이나 행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죽음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인하여 구원 받은 것입니다. 엡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때론 죄를 범하고 넘어져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영원토록 사랑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먼저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모두 우리의 의지와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관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의 역사나 우리의 구원과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인간은 단지 하나님 앞에 로봇이나 허수아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성경의 약속들이 우리에게 아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있고 우리의 의지와 행위에 따른 결과도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 힘으로 못하는 죄 사함과 구원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이후 행위에 따른 결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사3:10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의인의 삶에 복을 약속합니다. 그들은 행위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한 평생 선하고 의롭게 산 삶에 대하여 마땅히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을 말씀합니다. 반대로 악인도 악하고 불의한 행위에 따른 보응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 본문도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우리가 자녀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면 그것이 부모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좋은 것입니다. 부모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자식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하면 자녀 건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라는 것도 자기 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내가 밥 먹으면? 공부하면? 엄마가 나한테 뭐해줄 건데?’라고 하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그러합니다. 계명을 주신 것은 누구를 위함입니까? 우리가 잘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신10:12,13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네 행복을 위하여, 네가 행복하라고 주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또 신6:24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너 복 받고 살라고, 항상 복을 누리고 살라고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지만 말고 그 복을 제대로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사48:17에서도 말씀합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누구 유익하라고 가르치신 답니까. 네게 유익하도록! 누구 좋아라고 인도하신 답니까? 우리 좋아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너 살라고! 너 복 받으라고! 너 행복하라고! 너 유익하라고! 너 잘 되라고! 렘32:38에서도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너와 너의 자손에게도 복을 주려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책망한 것이 이것입니다. “왕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이렇게 하였나이까? 이는 곧 왕이 하나님을 업신여김이라.(삼하12:9,10)”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한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말하면 들은 척도 안하고 그 말을 무시하면 곧 부모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면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 지키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길 축복합니다. 이러한 자에게 평안과 장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말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말합니다. 인자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것은 항상 진리인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지 말고 순종하므로 늘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어디에서든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는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존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롬14:18).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세상에서 때로는 고난도, 핍박도 받습니다. 신앙 때문에 손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금세와 내세에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낮아지면 그만큼 또한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마침내 존귀한 자로 세워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부를 얻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한다면 하나님은 다시 그를 낮추시고 다듬으십니다. 진정한 복은 사람 앞에서 높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잘 된다 해도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 또 세상 일이 너무 안 되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럴 때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요셉, 사무엘,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께 은총을 크게 입으니 사람에게도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습니다. 어떤 유혹과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지 않기로 뜻을 정할 때 잠시 고난의 순간이 따랐으나 주변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돕습니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한결같습니다. 또한 신앙적 위기가 닥쳤을 때도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여전히 주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더 높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목에 매고 마음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아주 마음판에 하나님의 명령을 새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처럼 은총을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즉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인자와 진리를 목걸이처럼 항상 차고 다니고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사는 것입니다. 가끔은 살펴보십시오. 목걸이는 찼는데 은혜는 어디에 차고 있는지. 반지는 끼고 있는데 진리는 어디에 끼고 있는지. 거울은 보는데 성경은 보는지. 머리는 빗었는데 마음은 빗었는지, 옷은 입었는데 믿음의 행위는 벌거벗은 것은 아닌지를. 우리도 금속판에 송곳으로 글씨를 새기듯이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야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곧 우리의 생활이,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한 자가 되고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1
끝으로 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했습니다. 믿는 것도 그냥 믿지 말고 마음을 다해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시길 바랍니다. 내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네 길을 지도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도를 받으면 ‘신의 한 수’입니다. 신의 한 수!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명철을 신뢰하지 말고 자기 능력을 인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고후10:12). 칭찬도 타인이 하게 해야 합니다(잠 27:2).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잠27:1). 욕심에 눈이 멀면 뻔히 죽는 길인데도 모르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은 과학을 발달시켰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6천만의 인구가 죽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으로 세상을 밝게 만들었지만 방사능 누출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AI로봇이 나와 더 편리하게 될 것 같지만 갈수록 위험한 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명철로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명철과 지혜도, 경험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내 생각 내 뜻대로 안 될 때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음을 수긍하시고 믿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둘러가는 길인줄 알았는데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오르막길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내리막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길을 항해하면서 순풍을 만날 때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고 계획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은 믿음 있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잘 될 때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고, 안되면 하나님이 주무시는가,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잘 될 때만 아니라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이것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진정한 신앙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늘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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