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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후기 글 스크랩 버려진 듯 숨어 있는 묵방산-만대산-호덕봉-질매봉(‘15.9.24)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62 15.09.30 05:3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묵방산(墨坊山, 611.4m)-만대산(萬垈山, 680.1m)-호덕봉(虎德峰, 739.4m)-질매봉(603.4m)

 

산행일 : ‘15. 9. 24()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동면과 횡성군 공근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개운저수지주능선묵방산대산호덕봉분기봉질매봉월운리버스종점땀봉산후동리회관(산행시간 : 5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강송산악회

 

특징 : 호덕봉 오름길과 질매봉 근처에서 바윗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잠깐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늘 오른 네 개의 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고 보면 된다. 대신 등산로가 대부분 흙으로 이루어져 걷기는 편한 편이다. 다만 질매봉에서부터 시작되는 가파르면서도 거친 하산 길은 예외이지만 말이다. 좋은 산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 홍천과 횡성 땅에 걸친 탓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산은 완전히 버려진 느낌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은 것이 그 증거이다. 하긴 대간(大幹)이나 정맥(正脈) 등의 종주산행이 유행하면서 세간(世間)에 알려졌을 뿐 그 전까지만 해도 웬만큼 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 조차도 모르던 산이었다. 호덕봉 오름길을 제외하고는 볼거리도 없어 시간을 내어서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질매봉 구간은 찾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질매봉에서 시작되는 하산 길은 흔적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험하고 가팔라서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개운저수지(홍천군 동면 후동리)

중앙고속도로 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방면으로 달리다가 갈마곡리(홍천읍)에서 444번 지방도(공작산로)로 옮겨 동면소재지인 속초리까지 온다. 이어서 하나로마트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군도(郡道 : 월운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운리(동면)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인 개운저수지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1Km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곧장 직진하면 월운리에 이르니 주의할 일이다. 개운저수지 둑 아래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둑 아래를 지나는데 난데없는 삼각점(U홍천16)이 보인다. 삼각점은 산꼭대기에나 설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런 들녘에서까지 보게 된 것이다.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같이 걷던 청산수산악회의 김철규회장께서 수준점(水準點, benchmark)’이란다. 국토지리정보원의의 통합기준점은 그저 삼각점정도나 알고 있었던 나에겐 생소한 낱말이다. 측량의 기준이 되는 점으로 기준수준면(基準水準面)’에서의 높이를 정확히 구해 놓았다고 하니, 산에 설치된 삼각점과 대비되는 평야의 측량점인 모양이다. 생김새야 여느 삼각점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사진은 생략했다.

 

 

 

둑을 지나면 수로(水路) 옆으로 난 길을 따른다. 아래 사진을 보면 맞은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잘못 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수로가 끝나면 산양삼 연구단지라는 현수막이 걸린 컨테이너가 보이고, 이어서 마지막 농가(農家)가 나온다. ‘월간 산에서는 허수영씨 집으로 표시했다. 산행들머리는 농가의 맞은편 산자락으로 열린다. 집으로 다가가면 개 짖는 소리가 요란스러우나 개의치 말고 진행하고 볼 일이다. 개들을 가두어 놓아서 물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사면(斜面) 길로 2분 정도를 오르면 오른쪽 연두색 펜스(fence) 너머로 개운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1974년에 완공된 저수지로 만대산에서 발원한 15개가 넘는 계곡 물줄기가 모두 이 저수지로 흘러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물이 마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콘크리트 댐(dam)이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수면(水面)이 낮게 깔려있다. 이곳 홍천 땅도 가뭄이 심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칫 마르지 않는다.’는 전통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어서 빨리 비가 내려 애타는 농심(農心)을 달래주길 빌면서 발길을 돌린다.

 

 

능선에 일단 올라서면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여간다. 긴 오르막과 작은 내림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 사이사이에 잠깐이나마 완만한 구간이 나타남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런 곳마다 어김없이 묘역(墓域)들이 조성되어 있다. ‘전주 이씨경주 이씨’, 그리고 김해 허씨등 성씨들도 다양하다. 어쩌면 이 능선이 풍수(風水)에 뛰어난 곳인지도 모르겠다.

 

 

 

산행을 시작하고 20분 남짓 지나면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나무기둥에 뭔가가 매달려 있다. ‘위험물을 설치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이다. 그러나 귀중한 무엇이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아까 들머리의 컨테이너에 걸려있던 산양삼 연구단지라는 현수막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아무래도 산양삼을 심어놓았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것보다는 목숨에 위협을 받는 위험물을 들먹이는 게 더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415m봉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5분만이다. 한강기맥(漢江岐脈)의 만대산에서 북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묵방산을 지나 동면소재지인 속초리에서 그 여맥(餘脈)들을 개운천(開雲川)과 성수리천(城壽里川)에 모두 가라앉힌다. 그 능선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커다란 노송(老松)들이 보인다. 그런데 나무들이 껍질이 벗겨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강점기(日本强占期) 때 송진 채취로 인한 상처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415m봉으로 오르기 바로 전에 오른편으로 난 오솔길 하나가 보인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415m봉에 오르지 않고도 능선에 이를 수 있으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들머리에 인천우정산악회의 시그널이 붙어있다.

 

 

 

415m봉에서 내려선 다음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가끔은 완만한 구간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갑자기 시야(視野)가 트인다. 능선에 올라선지 18분 만이다. 양쪽 사면(斜面)이 모두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지도에 자주바위라고 표기된 지점인 모양이다. 먼저 동면 방향이 내다보이는데 들녘보다는 산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이 강원도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가야할 만대산과 호덕봉이 잘 조망(眺望)된다. 오늘 산행은 조망이 잘 트이지 않는 게 특징이다. 특히 묵방산을 거쳐 만대산까지 가는 구간에서는 유일한 전망대이니 서둘지 말고 조망을 즐겨볼 일이다.

 

 

 

자주바위에서 묵방산까지는 지루한 느낌이 강한 구간이다. 정상이겠거니 하고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이보다 높은 봉우리 하나가 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기대와 실망을 두어 번 치르고 난 뒤에야 묵방상 정상은 그 속살을 내보여 준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3분 만이다.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삼각점(홍천428,1988재설)을 빼고는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철저히 버려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육산(肉山)의 특징대로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조망도 터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군가가 삼지창(三枝槍)처럼 생긴 소나무에다 정상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도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만대산으로 향한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이어지는 능선이다. 능선은 보드라운 흙길인데다 낙엽까지 쌓여있어 폭신폭신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가끔 골이 제법 깊은 안부를 만나기도 하지만 힘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걸으면 만대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대여섯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만대산 정상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묵방산과 마찬가지이다. 조망이 트이지 않는 것 또한 같다. 아니 이번에는 삼각점까지 보이지 않으니 더 외롭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정상표지판이 두 개나 매달려있다. 산길은 이곳에서 한강기맥(漢江岐脈)을 만난다. 그리고 호덕봉을 지나 분기봉까지는 기맥을 따르게 된다. 한강기맥이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비로봉, 계방산, 용문산, 유명산을 지나 양평의 두물머리(양수리)까지 이어지는 161km의 산줄기이다. 우리나라 중부권(中部權)을 가로지르는 이 산줄기는 많은 명산(名山)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조금 후에는 울퉁불퉁한 바윗길도 만나게 된다. 참고로 만대산(萬垈山)은 산행을 시작했던 후동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1만 가구가 살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의 만대(萬垈)가 후동리 앞의 너른 들녘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만대산을 지나서도 산길의 형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흙으로 이루어진 능선은 참나무들 세상, 잡티 하나 섞이지 않았을 정도로 온통 참나무들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조망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걸으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거의가 오르막길이라고 보면 된다. 만대산보다 앞으로 가야할 호덕봉의 해발고도(海拔高度)60m정도가 더 높은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리막 구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짧게 내려섰다고 길게 올라서는 것을 반복하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가장 깊은 안부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바위 하나 구경하지 못할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렇다고 어찌 예외가 없을 리 있겠는가. 중간에 이런 바위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돌연변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호덕봉 아래의 깊은 안부를 지나면서 산길의 형편은 크게 변한다. 커다란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슬 시퍼런 바위벼랑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20m 정도나 되는 직벽(直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든든한 밧줄이 매어져 있다는 점이다. 초심자들이 올라서기에는 다소 벅차게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우회로(迂廻路)가 보이지 않으니 무리해서라도 올라설 수밖에 없다.

 

 

 

벼랑에 올라서면 날카롭게 선 바위 하나가 보인다. ‘월간 산에서 조망(眺望)이 잘 터진다는 것을 특징으로 들고 있는 말코바위가 아닐까 싶다. 양 옆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기 때문이다. 우선 오른편으로는 산행을 시작했던 개운저수지 방향이 잘 조망된다. 그 뒤에 보이는 산들은 구절산과 연엽산, 대룡산 등일 것이다. 그리고 반대방향에 보이는 산들은 횡성의 어답산과 병무산, 태기산, 발교산 등일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말코바위는 위로 치솟은 바위 끝머리가 말()의 코()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길을 가다보면 괴상하게 생긴 나무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탓에 원시림(原始林)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울퉁불퉁한 혹들은 오랜 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면서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온 훈장들일 테고 말이다.

 

 

말코바위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바나나 모양으로 생긴 어른 키보다 조금 더 큰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월간 산에서 할매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던 바위이다. 그 앞에 있는 바위는 할머니가 식사를 했다는 밥상바위란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개국 초기의 승려인 무학대사가 한 말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의미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저 바위가 할매로 보이려면 보다 더 많은 수양이 필요한 모양이다.

 

 

할매바위를 지나면 잠시 후 또 다른 바위벼랑이 길손을 맞는다. 이번에는 안전로프도 없는 바윗길이다. 그러나 조금만 조심하면 어렵지 않게 위로 오를 수가 있다. 덜 위험하니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벼랑의 위쪽에 틀어 앉은 거대한 소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바위 위에서 맨 몸을 드러내놓고 있는데 바위와 뿌리들이 한 몸인 양 뒤엉켜있는 것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아니 색깔까지도 같은 것이 오히려 경이롭기까지 하다.

 

 

두 번째 바위벼랑을 지나면 호덕봉 정상은 금방이다. 정상은 의외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언제 서슬 시퍼런 바윗길을 지나왔냐는 듯이 말이다. 당연히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거기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다. 그저 외로운 삼각점(홍천307,1988 재설) 하나만이 이곳이 호덕봉의 정상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긴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이정표나 정상표지석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은 더 한 편이다. 아까 지나온 만대산이나 묵방산은 일부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정상표지판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버려진 산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만대산에서 호덕봉까지는 45분이 걸렸다.

 

 

호덕봉 정상은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건너편에 오음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오른쪽으로 매화산이 조망된다.

 

 

호덕봉을 지나서도 산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능선은 다시 흙길로 되돌아왔고, 나무들도 여전히 참나무들 천지이다. 다만 이번에는 점차 고도(高度)를 떨어뜨리면서 이어진다는 점이 다를 따름이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섰다가 짧고 완만하게 올라서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 저만큼에서 빨강으로 물든 뭔가가 손짓을 하고 있다. 다가가보니 가을의 전령사라는 단풍나무이다. 빨갛게 물든 잎들을 보니 가을은 벌써부터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나 보다.

 

 

그렇게 얼마간 더 걸으면 산악회 시그널(signal)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봉우리(643.4m, 분기봉) 위에 올라서게 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다. 길매봉으로 가려면 곧바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하는데도 왼편에 보이는 한강기맥(漢江岐脈) 길이 더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길매봉 능선을 타는 사람들이 극소수(極少數)라는 증거일 것이다.

 

 

분기봉(分岐峰)에서 또 다신 산행을 이어간다. 내리막길의 경사는 아까보다 훨씬 더 심해졌다. 길매봉까지의 구간이 제법 길고, 봉우리 또한 몇 개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어떤 게 길매봉인지가 헷갈리는 구간이다. 이때는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바위를 좌표(座標)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다. 어른 키보다 조금 더 큰 바위에 작은 바위 하나가 얹힌 형상이다. 어쩌면 지도(地圖)얹힌바위라고 표기된 바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길매봉은 이 바위를 지나야 만이 만날 수 있다.

 

 

얹힌바위를 지났다싶으면 잠시 후 길매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밋밋한 봉우리로 이루어진 길매봉 정상도 호덕봉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정상표지석과 이정표가 없는 것 또한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매봉 618.4m’라고 쓰인 리본(ribbon)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도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망까지 트이지 않은 것은 호덕봉 정상보다 못한 점이다. 호덕봉에서 길매봉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질매봉에서 5~6분쯤 더 내려가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툭 터지는 멋진 전망대가 나타난다. ‘월간 산에서 게시용 사진으로 올렸을 정도로 조망이 시원스럽다. 왼편, 그리니까 북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벼랑 위에 서면 월운리 들녘이 발아래에 펼쳐지고, 그 뒤 왼편으로 약간 빗겨난 곳에는 인근에서 가장 높다는 오음산이 으스대듯이 우뚝 솟아있다. 이곳에서 길아 두 곳으로 나뉜다. 길의 흔적이 희미한데다, 경사(傾斜)까지 가파른 것은 두 길 모두 매한가지이지만 우린 왼편으로 진행한다. 길의 흔적이 조금 더 또렷하고 선두대장의 방향지시지도 그 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른편 길이 옳지 않았나 싶다. 왼편으로 진행한 결과 엉뚱한 곳(월운리)에 내려섰기 때문이다.

 

 

산악회 오회장님께 포스팅(posting) 사진용 포즈(pose)까지 잡아달라면서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고사목(枯死木)지대를 지난다. 빈 가지사이에 걸린 하늘에 하얀 구름 몇 점이 떠돈다. 그리고 건너편의 산들도 나도 있다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한마디로 괜찮은 풍광을 빚어낸다는 얘기이다. 죽은 나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이 또한 하나의 삶인 것을.

 

 

고사목지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광산(鑛山)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시멘트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삭도(索道) 시설의 상부 지주(支柱)였던 모양인데 오래전에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듯 와이어(wire)도 없이 빈 시멘트 구조물만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이곳 홍천은 함금은석영맥(含金銀石英脈)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어 일본강점기에는 금·은광이 여러 곳에서 문을 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도 그중의 하나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이곳 삭도까지는 15분 정도의 거리이다.

 

 

삭도시설 조금 못미처에서 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다. 비탈길의 경사(傾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팔랐기 때문이다. 물론 로프 등의 안전시설도 일절 없다. 그저 설설 기다시피 내려서는 수밖에 없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힘든 구간이라고 하면 보통 오르막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리막길을 두고 가장 힘들다는 표현을 썼으니 얼마니 험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탈길과 10분 정도의 힘겨운 겨루기가 끝나면 산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탄해진다. 그리고 3분 후에는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이제는 다 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그러나 그게 시기상조(時機尙早)였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금방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후부터는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잡목(雜木) 사이를 헤쳐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개울을 건너기도 했다. 물론 가시넝쿨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길을 찾기가 힘들뿐더러 험하기까지 하다는 얘기이다. 나중에 이곳을 찾아 올 사람들에게 해줄 얘기는 단 한 마디, 그저 계곡의 아래 방향을 향해 무작정 치고 나가라는 얘기뿐이다.

 

 

 

보이지 않는 길에서 잡목과의 싸움이 끝나면 드디어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처음으로 임도를 만난 지 15분 만이다. 이어서 공장건물 옆을 지나면 월운리 진평마을 버스종점(지도에 진평교라고 표기된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우린 잘 못 내려온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버스종점에 월운리라는 낯선 지명(地名)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강장에 개운리라는 지명을 적어놓고 방향표시를 해놓았다는 점이다. 아침에 후동리로 들어가는 길에 지나갔던 마을이 개운리였기 때문이다.

 

 

 

을 잘못 들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왼편에 오음산이 너무 또렷하기 때문이다. 만일 후동리도 내려갔더라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풍경이다.

 

 

개운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터덜터덜 걷는 일행들이 모두 패잔병을 연상시킨다. 다들 지쳤다는 증거일 것이다. 거기다 길을 잘못 들었으니 어찌 힘이 나겠는가. 하여튼 도로를 따라 7~8분쯤 걷다가 오른편의 채소밭 고랑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고갯마루를 지나니 전원주택 몇 채가 나온다. 후동리의 맨 위에 위치한 민가(民家)들로 보면 될 것이다.

 

 

마을에서 다시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땀봉산(거북산)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기를 반복해보지만 어떤 게 정상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일행들은 더 찾아보겠다고 계속해서 능선을 타지만 난 그만 두기로 한다. 별 의미 없는 봉우리 하나 더 올라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바닥에 떨어진 알밤을 꽤나 많이 주울 수가 있었다. 집사람의 주전부리용으로 말이다. 그나저나 땀봉산을 찾느라 20분 이상이나 헤맨 꼴이 되어버렸다.

 

 

산행날머리는 후동리 마을회관

산자락을 내려서면 냇가, 그리고 개울 건너 인삼밭을 지나면 후동리 버스종점으로 들어가는 군도(郡道)이다. 조금 전에 만났던 묘역(墓域)의 후손들이 성묘하러 가려고 벌초를 해놓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어서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따라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저만큼에 후동리 마을회관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이 5분 정도였으니 온전히 걷는데 소요된 시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 산행에는 두 개의 거북이산을 오르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난 두 곳 모두 들르지 못했다. 숫거북이라는 땀봉산(동막골 거북산)은 어딘 줄도 모르고 지나쳤고, 암거북이라는 구미산(구미마을 거북산)은 답사하는 것 자체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오늘 산행을 같이한 일행들 모두 거의 같은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미산을 답사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으나 이들 또한 엉뚱한 산을 올랐으니 말이다. 두 산의 정체는 산행 후에 만난 후동리 이장님의 조언(助言)으로 겨우 알 수 있었다. 하긴 하산 길에 만난 주민들조차도 땀봉산이나 거북산이라는 이름을 듣고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는 표정들을 지었으니 초행길인 우리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겠는가. 이로 미루어보아 두 산을 꼭 오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산행 전에 마을 이장님에게 먼저 조언부터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을 정보가 있다. 고려 말 현종 9(1018) 홍천현 시절에는 동면을 영귀면(靈龜面)으로 불렀단다. 그리고 1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비들의 시구(詩句)에는 영귀촌(靈龜村)이라는 기록이 자주 나왔단다. 이를 근거로 위의 영귀라는 지명을 이곳 거북산으로 보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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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9.30 14:08

    첫댓글 멋지게 꾸민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좋은 조망처에서 사진 모델로도 세워 주시고, 여하튼 동행하며 즐거웠습니다.

  • 작성자 15.09.30 10:26

    좋은 산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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