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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ty
truth
에고의 팽창
에고의 소멸
데이비드 호킨스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 축복을
06. 사회적 실재와 진실수준
의식수준을 측정하고
그 수준을 표현하는 일은
자칫 학문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사회에 심대하고 구체적이며 포괄적인 영향을 끼친다.
각 의식수준은
인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드러내며
이해력에 필요한 뇌 기능의 한계와 가능성까지도 보여준다.
의식수준은 또한 실재에 대한 유추적 세계관 곧, 추정상의 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의식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기대치와 요건,
그리고 표현방식을 가진
특유의 정치집단과 지성집단이 등장하며,
더 나아가 사회 지리적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 사회적 구성군은
서로 다른 소통방식과 도덕적 기준,
그리고 윤리적 전제들을 포함하며,
이런 요소들은 결국 인간관계와 사회적 역할을 유추할때 영향을 미친다.
주어진 선택사항 중에서
특정한 것을 선택하는 행위는
투사된 상징과 가치가 품은
미묘한 뉘앙스와 중요한 디테일을 반영하며,
그 자체로 집단의 암묵적 신호이자 문화적 식별요소가 된다.
다양한 의식수준은
각기 다른 특유의 이상과 가치의 상징을 갖고 있다.
이 복합적 양상은
상호작용하면서 정치화된 미디어를 통해
다시 사회로 반영된다.
그리고 이 정치화된 미디어에는
일단의 해석이 담긴
또 하나의 층위가 덧붙는다
.
편집의 영향은
인간의 지각과정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본질 혹은 증명가능한 진실은
점차 모호해지며 절망적일 정도로 어려워지거나
심하면 아예 분간할 수조차 없어진다.
오늘 날에도
스콥스 재판의 딜레마는
물질적 세속주의와 전통적 종교가 대립하고,
각 종교의 윤리와 도덕성이 부딪히면서 끈질기게 표출된다.
역설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둘다 믿음과 신뢰와 신념에 기초하며
막강한 문헌과 역사적 문서의 권위로 보호받는다.
하물며
간단한 분석에서 알수 있듯,
각 패러다임은
각기 다른 추정상의 실재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두개의 패러다임이 의식측정 방법을 제외하면 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없다.
세속적이라는 용어가
세속주의가 될때
진실을 판가름하는 임계점인 의식수준 200이하로 내려간다.
(~주의는 의식수준 180으로 측정된다).
이는
그 수준이 제한적이고
각각의 입장에 따른 관점임을 나타낸다.
실제로
종교적 관점과 세속적 관점사이에
본래부터 내재된 갈등은 없다.
다만 그 관점들이
이데올로기적인 "주의"로 변하여
감정적 배타성을 띠는 주장을 내비칠 때에
비로소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갈등은
관찰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관찰되는 대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진실(의식수준 505)에 대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관점은 과학법칙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또 세속적인 이성과 논리(의식수준 450)를 종교의 범위에 적용하고자 했던 클래런스 대로의 제한적 견해도 과학법칙으로 확증할 수 없다.
영적 실재의 의식수준은
비선형적 차원을 나타낸다.
비선형적 차원은
주로 맥락, 본질, 특정 범위와 연관되며,
반면 선형적 차원은
입증가능하고 사실에 근거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성경은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라
우화, 신화, 전설, 알레고리, 은유 등을 활용한다.
성경 속 이야기가
문자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는
기능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알레고리(Allegory)는 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으로, 주로 문학에서 사용된다. 때론 우의(寓意), 풍유(諷喩)로 불리기도 한다
의미는
비선형적 사고와 칸트수준의 이성을 담은
추상적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의미의 상징성은
선형적 영역과 호환될 수 없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더구나 문자 그대로의 용어로 표현될 수 없다.
성경의 이러한 원리는
'오로지 유머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지혜'와
금언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농담은
사실에 근거한 진술이 아니지만,
실재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모호성을 섞어 역설이나 과장을 활용한다.
유머는
우화와 마찬가지로
패러다임의 한계를 넘어가는 수단이다.
시, 소설, 동화,
그밖에 모든 형태의 예술도
이 원리를 이용한다.
그 메커니즘은
흔히 대조나 의도적 왜곡 중의 하나를 사용해
중요성, 함의, 의미를 강조한다.
추상적 의미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혼동하는 것이
일종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콥스 재판의 갈등을
그런 식으로 요약하자면
이해와 설명의 문자적 수준 대
추상적 수준이 호환될 수 없음이라고 말할수 있다.
진실은
모호해지거나 거부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고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담론안에 존재하는 갈등
인간의 에고는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서
동물(사람과 동물 : 현대 인간과 모든 원시 인류)의
본능적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류는
여전히 이기려는 욕망에 에고를 쏟아 붓고서
경쟁과 논쟁, 영역권 통제(해게모니)를 통해
지위를 얻고자 한다.
따라서
인류 고유의 이러한 사회적 양식은
기본적으로 논쟁을 유발하며,
이익과 미디어의 관심을 얻기 위한 체제에 맞춰져 있다.
그 사회적 양식의 부정적 단면은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내세워
억제되지 않은 표현의 극단까지
그 원칙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그 표현의 경계는
상대주의자들과
사회적 아나키스트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는 중이다.
상대주의자와 아나키스트는
규약이나 제약이 전혀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들이 꿈꾸는 사회에서는
모든 표현수단의 가치와 타당성이 동등하며,
심지어 공공연한 허위와 거짓조차
진실과 똑같은 가치와 신뢰도를 갖는다.
소위
포스트모던 세계의 왜곡된 유추와 선동적 이상화 작업은
최근 몇십년 동안에 나온
잘못된 사회적, 지성적,
철학적 이론때문에 발생했다.
이들은 죄다
기본적으로 상대주의(윤리적, 도덕적, 문화적 상대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으로
상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태생적 결함은
최근에 정리한
영향력있는 철학자들의 의식측정 수준을 통해서
증명된다.
문제가 있는 철학
~~ 주의 180 | 음모설 135 |
권위주의 180 | 이슬람의 파시즘 50 |
다문화주의 180 | 인간혐오(염세) 180 |
마르쿠제 비판이론 150 | 인식론적 상대주의 190 |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120 | 자유의지론 180 |
무신론 165 | 증오 70 |
무정부주의 100 | 쾌락주의 180 |
무책임 195 | 페미니스트 정치학 185 |
변증법적 유물론 195 | 평화주의(반전주의) 185 |
세속적 파시즘 80 | 학문적 좌파 180 |
신권적 파시즘 50 | 해체론 190 |
악마화 80 | 허무주의 120 |
우상파괴주의 175 | 흑인중심주의 180 |
우생학 105 |
철학이론
고어비달 180 | 도덕적 등가성 170 |
뤼스 이리가레 165 | 존 카푸토 185 |
리고베르타 멘추 180 | 줄리아 크리스테바 150 |
미셀 푸코 190 | 카를 마르크스 135 |
에드문트 후설 195 | 카를 포퍼 185 |
자크 데리다 170 | 칼 올슨 160 |
자크 라캉 180 | 프리츠 쿤 195 |
장 보드리야르 175 | 피터 싱어 195 |
장폴 샤르트르 200 | 하워드 진 200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185 | 허버트 마루쿠제 150 |
정치적 이론
궤변 180 | 사회적 정의 정책 190 |
극우 135-195 | 상대주의 185 |
극우 급진파 80 | 수사학 180 |
극좌 135-195 | 신권적 전체주의 50 |
극좌 급진파 80 | 외국인 혐오증 185 |
대중 사회적 165-210 | 인종차별주의 110 |
독설(혹평) 75 | 제설 혼합주의 195 |
명예훼손(중상모략) 75 | 포퓰리즘(대중연합주의) 200 |
무자비함 180 | 혁명파 100 |
반동 155 | 회의론 160 |
최근 미국내 언론의 자유가
의식수준 180인데 반해,
2차 대전 시기 언론의 자유가 255로 측정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앞에 언급한 낮은 측정 수준에서 알 수 있듯,
이들 대중화된 상대주의 철학은
죄다 심각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낳을 게 분명하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는 폴포트, 스탈린, 마오쩌뚱, 피델 카스트로, 그 외 여러 전체주의적 자유해방주의 정권이 증명해준다. 또한 그 영향은 최근 학계의 의식수준이 심각하게 하락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근래 학계에서는
"서양의 위대한 고전'으로 대표되는
고전철학이 있던 자리에
180수준으로 측정되는
잘못된 상대주의 철학서들이
대신 들어가 있다.
1955년 학계는
종합적으로 의식수준 440으로 측정되었지만,
2007년에는 180수준까지 떨어져
지적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이 중대한 비극에 대응하여,
델라웨어 주 월밍턴의
"인터칼리지 연구소"는
종합적으로 의식수준 440으로 측정되는
전통의 대학 목록을 발간했다.
전세계 문명의 갈등을 비롯해
사회적 갈등을 쉽게 특징지어 말하자면,
의식수준 200이하와 200이상 사이의 패러다임 충돌이다.
가령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우고 차베스(의식수준 90)는 2006년 9월, 대중과 만나는 자리에서 노엄 촘스키의 저서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공중에 대고 흔들었다. 심지어 그가 공공 텔레비전 방송국을 폐쇄하고 언론 표현의 자유를 막는 조치를 취했을 때에도, 미국의 정치활동가들(의식수준 170)은 그를 열렬히 감싸 안았다. 극단적인 할리우드 활동가들이 카스트로나 사담 후세인, 체 게바라 등 가혹한 독재자를 만나 껴안는 장면은 정기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한다. 일각에선 그들이 오사마 빈라덴에게 인사를 하고 입맞춤을 하러 몰려가지 않은 것이 단지 빈라덴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웹서터 사전을 찾아보면
헤게모니는
"지배적 영향력,
특히 한 국가가 나머지 다른 국가에 대해 갖는 지배적 영향력"을 뜻한다.
진화적 관점에서 헤게모니는
서로 다른 종사이는 물론
같은 종 내부(가령 동물 무리의 수컷 우두머리)에서 벌어지는
자연적 지배패턴이다.
이는
호모사피엔스와
인류의 여러기구, 국가,
문화 내부에 잠재된
태생적 양상이기도 하다.
또한
우세한 평가등급을 받으려고
미디어 경쟁이라는
헤게모니를 내세우고 반영하는
자본환경, 기업/금융/정치 실체들도
태생적으로 이 패턴을 지니고 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지배 헤게모니의 양상은 흥미로운 동물의 왕국 TV시리즈 '미어캣 영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디 이길만한 자격이 있는 최선의 인간이 승리하기를!"이라는 명제는 생존을 설명하는 생물학적/진화론적/사회적 법칙이다. 생존법칙은 모든 형태의 생명에게 타고난 속성으로 (몽골제국, 오스만 제국, 고트족, 훈족, 로마제국, 대영제국 등) 여러 제국의 지배권이 오고갔던 인류 역사에서 잘 나타난다. 인간혐오를 내세워 그런 지배권을 잘못된 것으로 악마화하기는 쉽다. 이런 입장은 상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상대주의에 의하면
'항상 다수는 소수의 한계와 불행을 일으킨 원흉'으로
비난받는다.
따라서
한 문화나 기업의 지배권은
사악한 것으로 규정되며
혹평과 독설의 표적이 된다.
가령 세계무대에서의 미국, 학계에서의 고전철학과 이성, 도덕성, 윤리, 종교, 유통업계에서의 월마트, 조직기관에서의 보이스카우트, 소위 데드 화이트맨으로 불리는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그 좋은 예다. 흥미롭게도 혁명을 거친 문화에서 탄생한 카스트로, 마오쩌둥, 히틀러, 기타 종신 대통령 등 소위 해방주의자들도 한 개인으로서는 똑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치료가 무질서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역설적으로
상대주의는
괴벨스의 교리같은
노골적이고도 총체적인 허위와 거짓을 비롯해
가장 극단적인 수단에 의지하여
그 문화적 지배권,
즉 헤게모니를 추구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약속이란
상대주의에 근거한
세속주의의 헤게모니가
마침내 윤리학, 도덕, 입증가능한 진실,
그리고
개인적 책임감의 억압에서
대중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다.
학계의 궤변가들은
이성과 논리의 억압에서
대중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하면서,
무신론적 무정부주의와
혼란이라는 이름의
포스트모더니즘 헤게모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어쩌면
유토피아적 이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과정을 통해 유튜브는
예전 성배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고,
미국은
나르시시즘적 쾌락주의(160)이라는 종교를 걸친 채,
지금까지 이슬람이 미국을 묘사해왔던 대로 "
거대한 사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2006년 깅그리치가 펴낸 미국의 신은 480으로 측정된다" 심지어 기업의 웹사이트조차 역겨운 음란물과 저속한 광고 선전의 표적이다).
이런 문명의 갈등은
미국내에서 보수적인
동맹방위기금(480)이나
미국시민권연합(460)과
대조를 보이는 진보적인 미국시민 자유연합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로저 볼드윈이 미국시민 자유연합을 창설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갈등은 그리 놀랍지 않다. 동맹방위기금은 기독교 목사 그룹이 나서서 만들었다. 로저 볼드윈은 스콥스 재단을 이끌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볼드윈의 동기는 자유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깡그리 파괴하고 미디어의 관심을 얻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심정적으로 공산주의에 동조한 인물이자 카를 마르크스 신봉자였다.
상대주의
교황 베네딕트는
'이슬람과 상대주의가 끼치는 해악때문에
서구 문명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여러차례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본적인 서구문명은
스스로 이 사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서구문명의 기본 구조와
그 버팀목들이 유해하고 만연된 철학적 교화때문에
이미 상당히 파괴되고 약화되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태도는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잘못된 전제는
주로 1960년대에 인기몰이를 하면서
정치적 열광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가장 열렬하게 지지한 사람들조차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인기와 열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가짜 인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기본전제를
검토하는 일조차 생략되었고,
마치 그런 전제가
어느정도의 기본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미국시민의 50%가
진실과 거짓,
혹은 지각과 본질을 분간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실질적으로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분간할 수없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실질적으로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취약성을 보여준다.
상대주의의 수사가
미디어와 유명 연예인의 선동으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절반의 인구때문이었다.
이 현상은
'특별한 대중적 망상과 군중의 광기'를 대변하며,
동시대 대중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상대주의가 서구문명에 끼친 영향은
계몽주의 시대에 뒤따라왔던 영향과
정확히 반대양상을 보인다.
계몽주의 시대는
암흑의 중세를 대체하면서
무지의 자리에 이성과 논리, 합리성, 진실, 도덕, 통합성에
기초한 교육을
대신 갖다 놓았다.
계몽시대를 이루는
지적 경향의 핵심은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부터
서양의 위대한 고전에 수록된
훌륭한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현자들이 내놓은 심오한 학식이었다.
고전 학문은
서양의 위대한 고전과 같이
의식수준 440에서 최고 499까지 측정되며,
이는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을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적 근간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상대주의는
의식수준 180에서 190으로
측정된다.
다음 도표를 보면 상대주의의 여러가지 표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낮게 측정되기도 한다.
상대주의 대 실제
실재/진실/본질 | 상대주의/외관/환상 | ||
절대주의 | 650 | 상대주의 | 125-190 |
태양에 따른 지구의 온도 | 455 | 불편한 진실 | 180 |
1955년 학계 | 440 | 2007년 미국학계 | 180 |
1955년 미국교수들 | 440 | 2007년 미국교수들 | 180 |
논리적 정합성 | 400-499 | 궤변론, 수사학 | 180-190 |
전통적 도덕성 | 499 | 쾌락주의 | 180 |
1955 헐리우드 | 265 | 2007년 헐리우드 | 180 |
1955년 헤이스 규약 | 430 | 선댄스 영화제 2007년 | 165 |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 450 | NAMBLA(북미남성-소년간 애정협회) | 140 |
고전철학 | 440-485 | 프랑크푸르트 학파 | 130-180 |
아리스토텔레스 | 498 | 마르쿠제 비판이론 | 150 |
소포클레스 | 498 | 상대주의 철학 | 130-190 |
황벽선사 | 960 | 무신론 | 190 |
거짓의 사람들(스캇펙) | 450 | 음모론, 편집증 | 90-110 |
모더니즘 | 400 | 포스트모더니즘 | 180 |
지적인 백치들(대니얼 플린) | 400 | 윤리적, 도덕적, 사회적 상대주의 | 180 |
미국사회 2007년 | 421 | 전세계 2007년 | 205 |
케이블 뉴스 | 410-440 | 허핑턴 포스트,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 140 |
인간의 전두엽피질 | 200 | 동물의 변연계/편도체 | 120 |
자유재량 | 375 | 욕설 및 비방, 신성모독 | 120 |
자유의 여신상 | 500 | 6인의 이맘 비행기 음모 | 180 |
추상적 사고 | 450 | 구체적 사고 | 190 |
의미 | 450 | 정의 | 200 |
높은 정신 | 275 | 낮은 정신 | 155 |
우호적인 | 255 | 적대적인 | 125 |
진리를 옹호하다 | 500 | 관용 | 190 |
카르마가 표출된 형태로서의 세상 | 575 | 불공정한 세상 | 200 |
카르마라는 기회로서의 세상 | 600 | 착취된 세상 | 180 |
미국에 영향을 끼친 기성종교 | 455 | 세속주의 | 190 |
반복에 의한 사회 파괴 | 510 | 돈이 평화를 조작한다 | 355 |
서슴없이 솔직히 말하다 | 490 |
1960년대
반체제 명분을 내세운 유명 연예인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상대주의는 빠르게 사회에 침투하였다.
그들은 밈과 슬로건을 통해
청년의 저항정신과 쾌락주의를
정치적 이슈로 만들고 미화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티모시 리어리'가 내건 모든 감각을 깨우고, 만인 만물과 호흡을 맞추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슬로건(의식수준 180)이다.
티모시 프랜시스 리어리(영어: Timothy Francis Leary, 1920년 10월 22일 ~ 1996년 5월 31일)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이며 예비역 미국 육군 하사 출신인데, 환각성 약물의 긍정적 잠재력을 지지한 대표적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반전통주의는
합리성, 윤리학, 도덕성, 개인적 책임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이로 인해 역사적 근원이자
도덕성과 법률의 근간으로 가능했던
종료를 반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1950-1960년대 공
산주의와 그 동조자들과 어울리던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추파를 받은
극좌파 가짜 지식인들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더구나 이시기에
미국의회의 메카시 청문회가
그 불길에 기름을 들이 부었다.
베트남 전쟁시기에 활동했던
사회 저항세력(의식수준 170)의 관점에서 보자면,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위대한 세대(의식수준 470-480)는
자신들이 누렸던 히피, 마약, 섹스, 록앤롤 축제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부류였다.
이데올로기적 혁명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결과이자
반응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상 그 혁명은
마르크스주의 기본 명제를
새롭고도 혁명적이면서 급진적으로 해석한 내용에
토대를 두었지만,
오히려
의도적으로
비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대주의적 좌파혁명이 내세우는
사실상의 철학적 전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사회 활동가들로부터 파생되었다.
이들 중에
하버트 마르쿠제가
주된 학문적 지도자이자 기수였다.
마르쿠제의 기본사상(의식수준 150)은
진리는 허위이며,
허위는 사실상 진리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부조리한 모순이 등장할 수 있고, 심지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수사학적 사고체계가 지닌 기본적 비합리성은 "진실대 거짓"의 일부 세부사항에 기술해 두었다. (12장 상대주의를 참고하라). 그 체계가 사회적으로 제시된 형태는 다음 도표에 기술된 양상을 통해 확실히 드러난다.
상대주의 대 실재
실재/진실/본질 | 상대주의/외관/환상 | ||
절대주의 | 650 | 상대주의 | 125-190 |
본질과 외관 구분 | 600 | 지각이 곧 실재다 | 190 |
데카르트(사유실체대 외부실체) | 490 | 마르크스(희생자/가해자) | 130 |
플라톤 | 485 | 프로타고라스 | 190 |
예수, 붓다, 크리슈나 | 1000 | 무신론 | 165 |
12사도 | 990 | 회의론 | 130-160 |
소크라테스 | 570 | 노엄촘스키 저작 | 135-185 |
서양의 위대한 고전 | 465 | 데드 화이트 맨 이론 | 130 |
과학 | 440-490 | 과학은 억압적이다 | 160 |
플로티누스 | 503 | 허버트 마르쿠제 | 130-150 |
1984 조지오웰 | 426 | 새로운 언어 | 180 |
프로이트 | 499 | 피해자학/비난 | 160-180 |
애국심, 나라사랑, 명예 | 520 | 미국증오 | 130 |
성조기, 맹세, 깃발 | 510 | 반역 | 80 |
정직한 이견, 반대 | 495 | 선동 | 105 |
균형 | 205 | 극단주의 | 140 |
기사도 | 465 | 명예살인 | 90 |
개인적 책임 | 475 | 나르시시즘 | 140 |
표현의 자유 1995년 | 255 | 표현의 자유 2007년 | 180 |
미국자선가들 | 455 | 유엔 | 180-190 |
살인에 대한 아미시 공동체 방식의 용서 | 540 | 비난 | 180 |
창발 | 600 | 유물론 | 180 |
의식측정 | 605 | 나르시시즘/견해 | 140 |
정직 | 475 | 옹호자 | 190 |
사회적 평등(미국헌법) | 550 | 양의 탈을 쓴 늑대 | 120 |
투명성 | 425 | 성 차별주의 | 180-190 |
진실 | 475 | 기만 | 160 |
미국법학 | 710 | 사회적 정의 | 180 |
미국 권리장전 | 485 | 샤리아(이슬람 율법) | 190 |
이인슈타인 | 499 | 아인슈타인 비평가들 | 190 |
하이젠베르크 불확실성의 원리 | 460 | 기계론적 환원주의 | 160 |
신약성경(묵시록 제외) | 880 | 세속주의 | 165 |
미국시민권 연합 | 460 | 역차별 | 180 |
적극적인 활동으로
꾸준히 뉴스에 등장하면서,
소리높여 자기를 주장하는
여러 극단적인 단체의 의식수준은 극히 낮게 측정된다.
이성, 진실, 논리의 시대가 무어지고
정반대의 시대가 되면서
선악은 물론 옳고 그른 것이 뒤바뀌었고,
그리하여
진리가 대체하는 것이 엘리트적이고,
우수하다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런 양상은
타당성과 본질보다
자기중심적 견해외 지각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에고의 자기도취적 핵심성향에게서
열광적 지지와 에너지를 얻고 있다.
이렇게
진실성이 추락하는 양상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불가피하게 몰락하는 상황으로
소크라테스가 이미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전세계 자선 구호사업의 재원이자
과학, 의학, 기술, 공학 등
여러부문에서 중대한 진보와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주된 원천으로
계속 자리를 유지해왔다.
마르크스주의가
종교(인민의 아편)는 물론
과학마저 '억압적"인 것으로 조롱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역설적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난봉꾼 철학자들과 작가들은
개인적으로 방종한 삶을 영위하면서
변태적 복합중독에 빠져
고통받거나 사망하였다.
이에
미국과학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을
계속 발전시켜왔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내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의식수준 180)을
사회적/정치적/철학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학계의 급격한 몰락이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이었다.
마르쿠제가 권고한 주입식 교리는 현재 사회적 정의(180)를 내세워 "래디컬 매스가 초등학생들을 교화하는 수단이 되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대니얼 플린은
"지적인 백치들 :
이데올로기는 똑똑한 사람들을 멍청한 생각에 빠뜨리는가? "
에서 그 현상을 탁월하게 기술한다.
이 책에서 플린은 학생들에게 마르쿠제의 잘못된 철학을 주입하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정작 지난 10년간 사회학 텍스트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참고문헌의 저자인 자신의 책은 전혀 읽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참으로 책 제목과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현실인 셈이다.
과거에
의식수준 440으로 측정되던 학계가
2007년에 180까지 극심하게 하락한 상황은
미국과 서구문명에는 재앙과 같다.
심지어 의식수준 440이었던
유명한 법과대학도 2007년에는 175로 하락했다.
이제 교육의 목적은
인종, 성별, 계급, 사회적 정의 등
정치적 교리를 통한
"감수성 훈련"으로 격하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규모가 작은 커뮤니티 대학이
유수의 명망있는 동부 대학교들보다
훨씬 더 높은수준(440)으로 측정되었다는 점이다.
위의 사실은 서구 문명의 가장 큰 위협이 상대주의(옹호자)와 이슬람 승리주의의 결합일 것이라고 관측했더 교황 베네딕트의 말을 확인시켜준다. 그런 면에서 9.11사태는 부정적 결과를 배제한 경고사격에 불과했다. (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따라서 상대주의는 자유의 적들이 옹호자라는 양의 탈을 쓰고 숨어든 트로이 목마에 해당한다. 이런 옹호자를 가리켜 레닌은 유용한 바보라고 불렀다. 프랑크 푸르트 학파는 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를 피하기 위해서, 마르크스 이름을 지움으로써 공산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 학파는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이라고 이름붙였으나 정치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른 명사 안에 숨어버리는 선택을 했다. 따라서 속임수를 쓰면서까지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본질(무신론에 근거한 변증법적 유물론, 의식수준 130)이 정치적 공격에서 살아남아 주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마르쿠제와 그 유행을 따라간 프랑스 철학자들은
거의 모든 삶의 양상을
정치적으로 이슈화했다.
그 결과 엄격한 고집이나
강한 집착이
교묘하게 올바른 혹은 엘리트적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우수한 존재라는 거창한 떠벌림은
당연히 에고의 핵심인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볼때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미디어의 윤색을 통해
나르시시즘에 근거한 삶을 살았던
유명한 연예인들은
앞서 마르크스주의가 이끌었던 것과 똑같이
마르쿠제의 전제가
지닌 자기본위에 강하게 매료되어
소위 새로운 대의명분의 지지자가 되었다.
혁명은
화려하고 눈부신 일이었고,
감정적으로 매혹될 만큼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새로운 명분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언론을 상대로 큰 발언권을 가진
유명한 연예인들을 매료시켰다.
어떤 형태든
반 시위나 행진은
군중을 매혹시키며,
그런 시위에서는
경찰을 향한 돌멩이 세례와
바리케이드를 넘나드는 기습공격이 빠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자발적" 시위를 연출하는 기술을 완벽히 습득했고,
베트남 전쟁시기와 그 전후로는 더 향상된 기술로 대응해 왔다.
통상 저항하는 대중선동가들은
돈 몇푼만 쥐어주면
미국이나 유럽 거의 어느곳에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세계 정상회담마다 열리는 시위가
좋은 사례다.
전통적 지혜와 지적 토대는
이제 케케묵은 구식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적인 사이비 학자의, 야심찬 좌파학계는
그들의 우수한 포스트 모던 지식을 보여주기 위해
재빨리 유행에 편승했다.
과거 명망있는 엘리트 대학교의 총장들조차
지금은 대체로 의식수준 190으로 측정되고,
커리큘럼의 진실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교수는
권위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외부에서는 그 집단을 권위있는 존재로 보게 된다.
그 다음에
주요 대학들은
관용, 사회적 정의, 다문화주의,
수용 등의 격언을 내걸고
유행에 따라
공공연한 정신병자(90-160)까지 초청하거나
9/11 음모론이나 홀로코스트는 절대 일어난 적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주제로 강연하는
소위 잘나가는 교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학계를 이어갈 젊은 세대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포스트 모던 교수집단의
복합적 영향을 통해 조직된다.
허나 이들은 모두
결정적인 의식수준인
200이하로 측정된다.
위에 언급한 사례는 모두
본질과 일반화된 지각(견해)를 구분하여
판별할 수 없는
지적 나르시시즘과 정신적 무능력을 잘 보여준다.
이 인지 장애에 걸린
부류를 가리켜
이데올로그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현재 미국과 유럽에 가해진
정치적 피해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또한 허위 개념과 가짜 교육 프로그램의
우선 보급을 통해서
온전한 평등과 정의의 질적수준을
전반적으로 훼손하고
파괴적 영향을 끼친 책임도 있다.
허위개념과 가짜 프로그램은
결국 순진한 시민들에게
사실상의 정신적 피해를 입힌다.
이를테면
88개 대학교 교수들은
죄없는 스포츠팀 선수들을 반대하는
비난성명(의식수준 180)에 연대하는 서명을 했다.
사실
그 선수들에 대한 고소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인종과 성별때문에
피해자로 추정된
고소인에 대한 감상적 동정심이 빚은 사건이었고,
결국 나중에 무고로 판명되었다.
DNA테스트를 통해
그 피의자들이 무죄라고 판명된 후에도,
교수집단은 자신들의 잘못된 비난을
철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해당 대학의 수장은
아주 뒤늦게야 사과했다.
이 사례는
미국학계의 교수집단이
의식수준 200이하로
하락해버린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커뮤니티 대학과 텍사스 A&M은 여전히 440으로 측정되지만, 아이비리그 대학 대부분은 불과 200수준으로 측정된다.
극좌 이데올로기가
대학구조에 적용될때
그 결과가 대학자체의 붕괴일 수 있다.
위클리 스탠더드 2007년 11월 12일자 기사 참고) 이 기사에서 과거에 전통을 자랑하던 안티오크 대학이 실제로 문을 닫은 일이 애절할 만큼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마르쿠제나 그와 비슷한 사이비 철학자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되는지는 단순히 그들의 핵심개념을 담은 몇가지 기본명제를 인용하기만 해도 아주 잘 드러난다. 이로써 학생들과 정치화된 대중은 신성한 명분 등을 부르짖으며 교화적으로 세뇌된다. 여기에 몇가지 기본 명제들을 인용해본다.
1. 자유는 전체주의다
2. 허구는 진실이다
3. 거짓말은 합법적이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다)
4. 주입식 교화가 교육의 목적이다
5. 관용은 불관용이다
6. 보수주의는 금지되고 공격받아야 한다
7. 모든 소수자들은 피해자다
8. 인간 삶의 목적은 성애화다
9. 자유의 적은 가족, 종교, 애국심, 일, 자본주의, 과학, 보수적 합리성, 도덕성 등이다
위에서 언급한 명제들을
순진한 학생들의 정신에 주입하면
그들의 현실검증 능력은 훼손되고
그들의 순진무구함은
말 그대로 타락과 부패를 만나
무참히 유린당하기 때문에
저런 가르침은 더욱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주범 레오폴드와 로엡은 "니체의 초인" 사상에 매료되어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을 변호했던 클래런스 대로 역시 니체의 신봉자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볼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크게 보면 이 살인사건 자체와 선고된 사형이 종신형으로 바뀐데에는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진 니체교육에 부분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의 사회복지 계열학과는 승인 인가를 받으려면 "모든 소수자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이다", "모든 백인은 인종차별주의자다" 등의 정치적 사상주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이 위에 언급한 내용을 통해 잘 드러난다. 따라서 그런 학교는 사실상 기저에 딸린 진짜 사실과 사회적 진화의 패턴을 식별하지 못한다. 이 내용은 호로비츠의 "인독트리네이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듯이,
그 기저에 깔린 근원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해왔던
태초의 증오다.
이 증오는
인류 역사내내
고전적으로 사탄의 에너지와
루시퍼의 에너지로 언급되는
에너지에서 유래했다.
이 에너지가
바로 악의 주된 특성이다.
이렇게 본다면
교황 베네딕트(575)가
서구 세계를 향해
상대주의를 경계하라고
누차 경고했던 이유가 명백해진다.
그동안 상대주의는
종교와 과장된 신앙심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숨어서
줄곧 테러리즘의 옹호자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상대주의적 교리의 또 다른 결과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전반에 섹슈얼리티 과잉현상이
만연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에게도
섹슈얼리티를 주입하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
심지어 교사와 학생사이에 섹스가 흔해질 정도로
온갖 형태의 다형도착 성애가 판을 치고 있다.
미국의 적들은
이러한 현상을 주시하고 포착한다.
그들은 이 현상을 타락으로 간주하고, 당연히 파괴시킬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은 수많은 대중적 폭력사태, 성적으로 도발하는 유명 연예인들, 학교총격사태, 정치적으로 뒷배를 받아 윤리나 청렴성이 변질되는 등 공공연히 미국의 적들에게 도덕적 우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인터넷은 상업 거래 사이트에서조차 저속한 성 상품화와 역겨운 외설이 흘러넘친다.
헙법적 교착상태
미국헌법(700)과 미국독립 선언서(705), 그리고 권리장전(485)이 프리메이슨의 주도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인식은 하고 있어야 한다. 프리메이슨은 이신론자와 일신론자들로서 종교 제일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정부가 종교를 강요(신권정치)하는 것에서 벗어날 자유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건설한 최초의 순례자들은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와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추구했다. 권리장전과 미국헌법에 대한 해석작업이 역사적으로 쇠퇴한 상황은 "맨인블랙"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해석이 지닌 약점은 한마디로 "종교를 세우다"라는 구절의 의미가 선명하지 않다는 문제로 요약된다. 분명 "신"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언급한 것을 두고 "종교를 세운 것"이라고 할수는 없다. 실제로 미국정부는 법적으로 종교를 세울 때 필요한 요건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세청은 종교승인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14가지 주요 범주로 나누어 아주 장황하게 기술한다. 단지 신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인정하거나 기념일 장식품을 올려두는 것이 "종교를 세우는" 충분조건이 된다면, 아마 미국인의 92%는 모두 면세 대상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요인 : 천지창조설 대 세속주의
이른바
스콥스 재판의 갈등은
지적 설계설대 다윈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차려입은 채
여전히 우리 옆에 존재한다.
지적설계설은
신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때
하나의 타협안으로서
상대적으로 무해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전제를 둔
세속주의에게는 하나의 위협으로 보인다.
세속주의 전제는
뒷문에 난틈을 통해
살그머니 신이 오갈수도 있다는
일종의 위험한 비탈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은 유추를 적용하자면, 과학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전제로서 과학의 세속주의가 역시나 뒷문을 통해 미끄러져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과학은 그 자체로 지적 설계연구와 그 세부내용에는 기술하는 전형이지만, 생물학적 진화에 내재된 타고난 지성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다윈의 이론은 데이비드 스토브의 "다윈식의 진화"에 나오는 유머를 통해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과학은
번식을 위해서 어떤 작업이 살아남는지,
그리고 어떤 작업이 실패하는지를 알아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식자체의 근본적 전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지성이 진화하는 공간인
에너지 장을 규명하는데도 실패했다.
자연의 진화는
임의성을 띠지만,
DNA구조 자체가
바로 지적 설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호기심/탐색을 동원한 무작위적 학습은
지성의 가장 기초수준이라고
가정할 수있다.
인간에게 유용한 데이터가
점진적으로 정리되어
선형적 생물학의 기층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과학은
내재적 질서를 식별하기 위해서 축
적된 데이터(지성)를 정리하여 배치한 것으로서
그 자체가 지적설계론의 산물이자 사례다.
어쩌면
눈먼 행운만이
과학적 발견에 관련된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발견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지성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이른바 인공지능 컴퓨터 시스템도
새로운 설계도를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계를 통해서 운영되며,
이 점은 그 연구과정의 본질적 요소다.
스콥스 갈등의 전파
인간 에고 자체의
기본성질에 관한 이전 연구에서도 나왔듯이,
에고 메커니즘의 본능적 근원은
생존욕구와 욕망의 충족이나 만족에 근거한다.
동물적 근원에서 나오는 본능적 충동은 여전히 전세계 인구 약 85%의 의식수준을 지배한다. 그 결과 사회구성원 대부분의 주된 동기는 확증가능한 진실을 식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진실을 획득하고 쟁취하는 것뿐이다. 2007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대중 미디어에 나오는 정치연설의 75%는 의식수준 200이하로 측정된다.
흔히
갈등해결은
논쟁의 어느쪽에서든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기득권과 미디어가 부풀려 놓은
논쟁의 자기 본위적 이익때문에
갈등해결 자체를 거부하곤 한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각자의 입장은 투명해지며
그 입장에 맞춰
둔감한 주장을 내세우곤 한다.
그런 주장때문에
양쪽은 상대의 견해를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홀로코스트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다. 미국이 9/11사태를 공작했다 등의 잘못된 관점이 대중의 관심과 미디어의 인정을 받는 것을 보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허위선전의 우승감은 단연 반전단체 "무브온 오알지"가 2007년 9월에 뉴욕타임즈에 게재한 이라크 주재 미군사령관 페이트리어 장군을 비판하는 전면광고를 들 수 있다. 그 메시지는 '장군은 우리를 배신했다'였다. 이 광고때문에 그 무렵 출발한 정치단체 무브온 오알지는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격이 되었으며, 뉴욕타임스는 확실히 좌파의 지지자가 되었다는 (그리고 선호하는 광고주에게 엄청난 할인을 해준다는)세간의 주장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또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점을 볼때,
인간 에고의 작동을 비관적으로 접근하자면
과연 애초 "설계의 무능한 결핍"이라고 부를만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기록된 역사의 93% 동안을
전쟁중인 상태로 지냈다.
그래서 흔히
조정이나 화해, 타협을 패배로 오독하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것에 저항하려고 한다.
악독한 독재자들도 처음에는 해방주의자로 묘사되었다가 나중에 가서는 지도자로 신격화되어 그 후로 자국민 학살을 자행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그런 독재자들을 미친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일은 인간의 역사 내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타협과 해결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에서 보장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표현의 자유 덕분에 공
공 교육 커리큘럼안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대체가능하고
둘다 타당성이 있어보이는 가설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들어,
종교적 식민지의 영향과 미국역사에서
그 의미와 위치를 알려주는 교육이 없다면
미국사회의 기반(가령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온 신교 순례자들 이야기 등)을
교육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교육을 무시하면
오히려 무지가 만연하는 결과만 생길뿐이다.
이 점은 오로지 단일 경전"쿠란" 암송으로만 민간 교육을 제한하는 이슬람 전체주의 신권정치에서 잘 드러난다. 그 결과 "시온 의정서"(의식수준 90)나 조작된 미키마우스 만화를 통한 증오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자유는,
나와 다른 관점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 가능한 여러 대안을
마음껏 제기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학내 저항운동에서 드러나듯 다른 관점을 억압하는 것이 오히려 최근 학계의 특성이 되고 있다. 이렇게 볼때 세속주의는 억압된 것이다. 이는 세속주의의 의식수준이 겨우 165로 측정되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전체주의 정권과 하계의 정치화된 이데올로기가 드러내는 형태에서 알 수 있듯, 억압은 역사적으로 볼때 분서갱유와 역사 수정주의로 증명된다.
자유와 통합성은
관용과 자제라는 날개를 달고
상호존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적/사회적 양극화
사회적 대화의 숨겨진 기층안에는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의
무의식적 젠더-원형 패러다임으로 작용하는
음양의 양극화가 존재한다.
능력중심주의는
성과를 낸만큼 보상을 받는
남성적 원리다.
예전부터
노력과 자기훈련, 덧붙여 성실한 노력과
실용적 응용이
사회적으로 보상을 받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곧 자본주의와 자유 민영기업, 그리고 개인적 책임감의 구조를 나타낸다(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의식수준 440) 따라서 보상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노력에 의해 얻어져야 한다. 이는 가부장제의 원형적 패턴이다.
이와반대로
여성적/모성 중심적 원리에 따르면
모든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모두 동등하게 취급된다.
따라서
모성적 원리는
성과와 관계없이
만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모든 사회적 요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함축하고 있다.
모성적 원리에서 욕구는
생존필수품을 제공받아야 하는
기본적 권리로 격상되고
개념화 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복지국가,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집단주의는
여성적/모성적 원형과 기능을
정치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유주의 민간기업 중심의 자본주의는
남성적 패턴을 상징한다.
남성적 관점에서 볼때
여성적 원리는
사회를 약화시키고
결국 의존성(복지국가), 자율성 상실,
추진력과 야심의 상실로 이어질 뿐이다.
남성적 관점은
집단주의 사회의 실패와
그 사회의 만연한 빈곤과
기아사태를 지적한다.
(마오쩌둥이 지배하던 중국은 3억명이 굶어죽었으며, 이는 오늘날 북한의 상황과 판밖이다).
하지만
엄격한 능력중심주의의 단점은
사회계층간의 경계적/사회적 불평등이다.
즉
다양한 집단이
도덕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어디까지 맡아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 두가지 원리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생산성이 높은 자본주의 경제는
미국시민 모두가
적어도 최저생활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부를 창출한다.
거대한 부를 창출한 기업은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은 정부가 전체 인구의 기본적인 생활과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엄청난 재원이 된다.
이렇게 볼때
실용적 해법은
남성적/가부장적 원리와
여성적/모성적 원리 양자를
적절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공정성과 합법성을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논의와 협상은 어떻게 정확한 도덕적 균형을 확인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를 상황에 맞게 다루고 해결한다.
각각의 원리는
상호 대조적이고
어느 한쪽이 우세한
윤리적/도덕적 기준과 원리를 갖고 있다.
남성적 패턴은
지배와 헤게모니를 우선시하는 성향때문에
비판받는다.
여성적 패턴은
방임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한 원리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는
이 두가지 원리가
각각 지배권을 얻기 위한
음양의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진실 대 거짓
의식연구로써 증명되고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인간의 정신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내재적으로 본질(진실)과 외관(지각이나 환상)을 분간할 수 없다.
따라서 속임수라는 것은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계략을 통해 대중을 호도하는 수단이다. 이런 계략은 단순히 가짜 표식이나 허위로 기술된 표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간의 진보적 태도는 사실상 억압적이다. 이를테면 진보주의는 제정로마의 몰락을 황제 칼리굴라가 아니라 마르쿠제의 가르침을 내세워 설명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400대 상위수준으로 측정되는 보수적 사회를 겨우 160에서 180으로 측정되는 진보주의와 자리바꿈하여 논증을 펼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의식수준 160에서 180은 무신론적 쾌락주의와 같은 수준이다. (미국의 주류는 기본적으로 300대로 측정된다. 이는 공정함, 선한의지, 정직과 같은 수준이다). 이와 유사하게 이슬람의 테러리즘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구호 뒤에 숨어있다. 사실상 그들은 7세기 이후로 계속 전쟁중이며, 심지어 지금은 전세계 곳곳에서 일으킨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찾아가 보라).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여) 삽을 삽이라고 부르는 것(의식수준 490)이 지금은 구식으로 취급받지만, 실재와 환상을 분간하고 진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일은 영적 통합성뿐 아니라 물리적 생존에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이미 여러차례 입증된 파괴의 기본패턴은 진실과 거짓(루시퍼적으로) 역전되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는 불길하게도 의식수준 120으로 측정된다). 연일 선전 광고되는 해방자는 전체주의와 나르시시즘에 빠진 악독한 독재자라는 특성을 몰래 감추고 국민을 노예로 만든다.
이와 유사하게 도덕, 윤리, 혹은 이성의 통제에서 해방되는 것도 무정부주의와 쾌락주의 노예화,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연예인, 방탕한 난봉꾼, 투견(50), 그리고 로마의 몰락에서 드러나듯이 감각적 쾌락을 향한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거쳐 결국 중독상태로 이어진다. 십계명을 던져 버리고, 제발로 7대 죄악에 빠져 버리면 모두를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에덴동산에 살던 뱀의 유혹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선과 악을
단순한 상표로 여기고
무시하는 것은 가장 파괴적인 일이다.
선악구별은
의식측정이라는
간단한 기술만으로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의식수준을 측정하면
본질과 진실을
외관과 분간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이
외부의 도움없이 이런 구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상대주의에게 유혹적인 허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딜레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딜레마 때문에
망상에 사로잡히는 상태가
오히려 우세한 규범이 되기도 한다.
이 타고난 한계 때문에 인간은
위대한 화신과 스승을 통한 구원으로서
영적 진실이 필요하다.
붓다, 그리스도, 크리슈나, 조로아스터,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 외에 진리수준과 함게 목록에 올렸던
많은 스승들이 있다.
새뮤얼 애덤스는 1779년 2월 12일에 제임스 웨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의회 해산총론은 전체 영국군보다 우리 "자유의 아들"을 더 확실하게 타도할 것이오. 국민에게 덕이 있으면 진압당하겠지만 일단 미덕을 잃으면 곧바로 그들의 자유를 외부나 내부의 침략자들에게 넘겨주고 말것이오"
상호균형
2004년 이후 인류전체의 의식수준은 207에서 204로 하락했다. 미국의 의식수준은 426에서 421로 떨어졌으며, 서구 문명은 현재 270수준에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는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행하고 소유하는가보다
무엇이 되는가?
하는 요인이 가장 심대하고 영향을 끼치는 것을 나타난다.
사람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은
그저 그들이 믿는 것, 시간에 따라 그들 모습이 된 것,
따라서 지금 현재의 모습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식수준은 지수로 나타낸 것이므로 아주 미미한 증가라도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진실과 영적 원리에 의해
그들 자신을 정렬시킴으로써 최대한 영적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해수면을 올리면 해상의 모든 배를 힘들이지 않고 들어올릴 수 있다.
기도, 숭배, 그리고 기도와 함께하는 사랑은
전 인류에게 보이지 않는 위대한 가치가 될 것이다
첫댓글 위에 언급한 모든 내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의식수준 180)을 사회적/정치적/철학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학계의 급격한 몰락이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때문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은 진실과 영적 원리에의해 그들 자신을 정렬시킴으로써 최대한 영적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해수면을 올리면 해상의 모든 배를 힘들이지 않고 들어올릴 수 있다. 기도, 숭배, 그리고 기도와 함께하는 사랑은 전 인류에게 보이지 않는 위대한 가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