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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원, 특히 남성 판사들이 강간죄에 관해 지나치게 중한 벌을 내린다. 여자가 정조(貞操)를 잃는 게 목숨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도에 따른 법 논리다. 엄격히 말하면 강간은 신체 일부에 대한 상해죄(傷害罪)에 해당될 뿐이다."
현직에 있는 한 여성 법조인의 말을 듣는 순간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순간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극단적 페미니즘'에 기반한 판결을 과연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의 진출이 늘면서 파격적 판결이 속출하겠구나 하는 예감이었다.
국회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던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로 사법부의 '기교 사법(技巧司法·미리 무죄·유죄를 정해놓고 법조문을 짜맞추는 것)'의 논란이 한창일 무렵,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이 나온 것은 '바람피우는 남편의 이메일을 열어 보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이었다.
여성들은 "바람피우는 현장을 잡는 게 사생활 침해냐", "무슨 법이 가정을 파괴하는 데 이용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판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타인의 이메일을 허락 없이 열어보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정이 있어 적용했을 뿐일 것이다.
물론 '법'과 '법률'은 다르다. 보통 사람에게야 '정의=법=법률'이지만, 법관은 국회가 제정한 실정법 조항에 따라 판결한다. 그래서 때로 국민 정서에는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 나온다. 불륜 남편과 이메일의 경우가 그랬고, 조두순을 솜방망이 처벌한 판결이 그러했다.
그리고 또 하나. 2년 전 광우병 시위만큼이나 한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1심 판결이 하나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판사의 판결이다. 정운천 전 장관 등은 촛불시위 직후 PD수첩의 보도가 허위였다며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언론 보도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법률 지식이 없는 탓에 판단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PD수첩' 스스로도 이미 사과방송까지 했고, 이미 상급심에서 정정보도 판결을 받았으며, 여전히 과학적으로도 '논란' 혹은 '허위'로 판명된 것을 '사실'이라고 적시한 부분은 놀랍다. 판결에 실망한 이들은 "그 무법천지의 원인을 제공한 방송을 누가 책임질 건가", "판사 개인 성향이 너무 반영됐다"고 분노하고, 반대쪽에선 "사법정의가 살아있다"고 응수한다.
그렇다면 이 판사가 법조문을 제대로 찾지 않고, 그저 세상에 돌 던질 생각으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판결이 앞으로도 없을 리 없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에 통과하는 이들의 스펙트럼은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사시 패스했다고 성형수술하는 이들이 나올 만큼, 이제 법관은 예전 법관들과는 다르다. 강한 개성의 세대들은 판결에서도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할 것이다.
이게 위험한 것은 어떤 법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기 때문이다. 유죄를 받으면 '판사 잘못 만난 죄'라 생각하면 그만인 세상이 된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는 것과 일관성 잃은 판결을 방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중대한 사건을 판사 혼자 판결하는 것을 포함, 사법부 스스로 독단이나 실수를 제어할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이제 국민들은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 대신 점집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무죄 판결해줄 판사를 만나게 해주는 부적(符籍)이라도 사기 위해서 말이다.
첫댓글 변호사대신 점 집을 찾는 불상사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