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설에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계적 현상이다. 어떤 문장이 인용에 좋을까. 중국인에게 국학대사(國學大師)로 추앙되는 지셴린(季羨林·1911~2009) 전 베이징대 부총장은 중국의 명문 148개 구절을 엄선했다. 그는 “이를 다 외우면 경계가 한 단계 올라간다. 문학 방면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양있는 중국인은 모두 암송하는 문장들이다. 한·중 양국은 연간 1000만 명이 왕래한다. 중국인을 만났을 때 읊조릴 수 있도록 독음과 함께 현대 중국어 발음을 덧붙인다.
31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 『예기(禮記)』
(옥불탁 부성기 인불학 부지도/위부쭤 부청치 런부쉐 부즈다오/yù bù zuó bùchéngqì rén bù xué bùzhīdào)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왜 배우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배움을 중시했다. 조선시대 왕은 신하들과 유학의 경서를 강론했다. 경연(經筵)의 전통이다. 중국은 지금도 지도부 집단학습을 현안에 대한 리더십의 컨센서스를 이루고 국가비전까지 모색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32 路漫漫其修遠兮 吾將上下而求索 굴원(屈原) ‘이소(離騷)’
(로만만기수원혜 오장상하이구색/루만만치슈위안시 우장상샤어츄쒀/lù mànmàn qí xiū yuǎn xī wú jiāngshàngxià ér qiúsuǒ)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나는 위아래로 탐구해 보겠노라.
-고대 문학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굴원의 대표적인 시구다. 중책을 맡게 됐을 때 쓰기 좋은 말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가 취임 초기 기자회견에서 인용했다.
33 尺有所短 寸有所長 초사(楚辭) ‘복거(卜居)’
(척유소단 촌유소장/츠유쒀돤 춘유쒀창/chǐ yǒu suǒ duǎn cùn yǒu suǒ cháng)
한 자도 짧을 때가 있고 한 치도 길 때가 있다.
-상황논리를 말한다. 물건은 쓰는 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쓸모가 있는 곳이 따로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초나라 노래다.
34 盡信書 不如無書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
(진신서 불여무서/진신수 부루우수/jìn xìn shū bùrú wú shū)
‘서경’을 맹신하는 것은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
-기존의 지식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상과 이론 기술 모두 비판적으로 체득해야 한다. 맹종은 위험하다. 전투적 이상주의자였던 맹자의 지론이다.
35 生於憂患 死於安樂 『맹자(孟子)』 고자하(告子下)
(생어우환 사어안락/성위유환 쓰위안러/shēng yú yōuhuàn sǐ yú ānlè)
걱정과 어려움이 나를 살게 하고, 안락함이 나를 죽음으로 이끈다.
-적당한 긴장은 발전의 동력이다. 맹자는 하늘이 큰 일을 맡기기 전에 시련으로 그를 시험한다고 주장했다.
36 得道多助 失道寡助 『맹자(孟子)』 공손추(公孫醜)
(득도다조 실도과조/더다오둬주 스다오과주/dédàoduōzhù shī dào guǎ zhù)
도에 맞으면 도우는 이가 많고 도에 어긋나면 도움을 얻기 힘들다.
-인맥관리의 비결이다. 중국 외교부가 일본의 과거사 미화를 비판할 때 인용하기도 했다.
37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민웨이구이 서지츠즈 쥔웨이칭/mín wéi guì shèjì cì zhī jūn wèi qīng)
백성이 가장 귀하고 종묘사직이 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근본은 국민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쉽게 잊는 바이기도 하다.
38 窮則獨善其身 達則兼濟天下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
(궁즉독선기신 달즉겸제천하/츙쩌두산치선 다쩌졘지톈샤/qióng zé dúshànqíshēn dá zé jiān jì tiānxià)
궁할 때는 자신을 돌보는 것이 최선이고, 얻었을 때 비로소 천하를 다스린다.
-환경이 불리하면 자기관리에 힘쓰고 벼슬을 얻어 대세에 올라탔을 때 뜻을 펼친다는 의미. 세를 읽어야 한다. 고집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다는 경고다.
* 오늘의 묵상 (221005)
월요일부터 우리는 제1독서에서 갈라티아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 서간의 서두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고정된 양식(1코린 1,4-9 참조)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꽤 조급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1,6).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갈라티아 지역에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한 이는 바오로였지만 그와 다른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 곧 할례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신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던 듯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직제자가 아닌 바오로의 사도직에 의문을 제기하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권위가 열두 사도에 미치지 못한다거나 또는 그들에게 종속된다고 여기며 바오로를 폄하한 것입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야말로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갈라 2,16 참조). 바오로는 이 복음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1,11)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2), 곧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자 먼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하여 변론합니다(1─2장 참조). 바로 어제와 오늘의 독서 말씀이지요.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회심 때 하느님께 직접 사도직을 받고 이를 한참 수행한 다음에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이는 자신의 사도직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느님께 직접 받은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도직의 정당성은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과도 바로 연결됩니다.
월등히 좋은 ‘새것’이 왔음에도 여전히 ‘옛것’에 미련을 두며 그 새로움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에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익숙한 것에만 머무르며 편히 살려는 신앙인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며 늘 새롭게 자신을 성화하는 신앙인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인천가톨릭대신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