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안녕하세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게 되었는데, 성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사셨기에 하늘나라에 승천의 길을 갈 수 있었겠는가?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성모님의 삶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비천함을 돌보셨습니다. 이 말이 제 마음에 많이 와 닿았고, 두 번째로 주님께서 큰일을 하셨습니다.이 두 번째 말도 그의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내가 비천함을 갖고 겸손함을 유지하렵니다. 하는 말씀으로 저는 생각해 보고 그 비천함에 그 겸손함을 주님께서는 내 손과 발, 내 몸을 통해서 당신께서 이루신 모든 일이옵니다. 내가 큰일을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서 큰일을 하셨다는 것을,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종일뿐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요약해서 설명드릴 수 있기에, 바로 우리도 바로 비천함을 잘 아시고, 겸손함을 유지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며,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광복절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임하시고 하루속히 조국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성모님께 다 같이 두 손 모아 간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성모 마리아는 우리 어머니들과 같이 깊은 한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신 한 가정의 평범한 어머니였습니다.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를 위해 당신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신 모든 어머니의 표상이자 귀감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로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시고 그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사셨기에 예수님의 어머니요 우리 인류의 어머니로서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흠숭하는 것은 아니겠고, 공경한다는 뜻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흠숭지례(欽崇之禮)에 해당되고, 우리 성모님과 많은 성인들은 바로 공경지례(恭敬之禮)에 해당된다 하는 측면에서 공경이라는 단어를 제가 사용했습니다.성모 마리아는 굳은 믿음과 겸손한 마음을 지니셨기에 예수님과 우리를 잉태하실 수 있는 어머니로 선택받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시고, 이 땅에 한이 많은 우리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굳게 믿고 구세주를 기다리셨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가 되려는 초대에 순종하실 수 있었습니다.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전능하신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겸손하게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성모 마리아의 깨끗한 마음이신,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외아들이 거처하신 성전이요, 우리가 새로이 태어날 모태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 승천 대축일의 메시지를 완성의 희망으로,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독서가 그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고 성모님의 축일을 지날 때마다, 어쩌면 성모님은 착하시고 거룩하시니 당연히 추앙 받아야 된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하면 우리는 대단히 감상적 신앙생활을 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고, 조목조목을 바로 비신자들이 우리에게 물을 때 거기에 대한 답을 정확히 전달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왜냐하면 우리 신자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성경만큼은 인정하니까, 성경의 뜻을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성모님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을 말씀드렸으면 좋겠습니다.요한묵시록에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오늘 1독서에서 첫 번째 여인은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분 곧 구약의 예언된 메시아, 그리고 예수님이시고, 크고 붉은 용은 악의 세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참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성탄절에도 그렇게 거룩한 날 그 영광스러운 날 바로 모두 박수 치는 것이 참 좋을 때, 시메온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바로 예수님을 가리켜 예수님을 앞으로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라는 표현을 쓰고, 성모님을 가리켜 예수, 성모님은 예리한 칼에 찔릴 것입니다. 꼭 그날 이 말을 해야 했는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지만 어쨌든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승천하신 이 마당에 너무나 좋고 영광스러운 이 날에, 굳이 붉은 용을 등장시켜서 악의 세력이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를 은총과 유혹은 항상 함께 다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왜냐면 태초에 에덴 동산에 주님께서는 성부 아버지께서 생명나무로만 만드셨으면 참 좋을 텐데, 거기에는 선악과 같이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은총과 유혹은 항상 공존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드리고 바로 성탄절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성모 승천 대축일은 바로 용의 등장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여러분에게 화살기도를 자꾸 봉헌하라고 말씀드리며 은총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라. 이렇게 기도를 드리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은총의 상태로 우리가 머무는 것을, 돌아온 탕자,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여러분에게 이미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요한묵시록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교회라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이 세상 안에서 악의 세력과 싸우고 있습니다.여인이 아들을 낳는 것, 곧 하느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낳는 것은 이 세상 안에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실현한 것입니다.우리가 하늘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복음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그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그래서 결국은 우리도 작은 성모 마리아가 될 수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우리는 분명 성모님처럼 아기 예수님을 탄생하는 데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아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오늘 독서는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 악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고, 마침내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나게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순례하고 있는 교회는 아직 그 완성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 있습니다.그러나 성모님은 묵시록의 묘사된 여인의 전형으로써 하늘에 불러 올림을 받으심으로 이미 목적지에 도달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도달하셨기에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십시오.
악이 우리를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고, 성모님처럼 우리도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완성의 희망이라는 단어를 여러분에게 제공해 드린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태중에 있는 아기 곧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어머니이자 어머니가 방문하자 기뻐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가족 관계로 서로 연결되고 탁월한 모성으로도 하느님에게서 복을 받은 여인입니다.두 여인의 운명과 두 아들의 운명도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경계선을 만나고 있습니다.엘리사벳은 옛 계약의 백성을 상징하지만, 마리아는 신약을 열어주고 새 계약의 백성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인류 전체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예루살렘으로 옮겨진 새 계약의 여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의 성령으로 인하여 태중에 잉태하여 모시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한 표현에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과 토마스 사도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믿음의 행복이 암시되어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이는 두 여인의 깊은 만남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마리아는 두 가지 행복, 곧 믿음의 행복과, 행복하십니다. 라는 말에 대한 행복을 맨 처음으로 느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를 따르는 첫 제자이며 신자, 교회의 첫 그리스도인인 마리아, 그녀가 복된 여인인 것은 무조건 ‘예’하고 하느님의 뜻을 믿고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개인의 전적인 동의가 구원의 세계와 새로움의 세계에 얽매인 것은 하느님께서 그녀를 통하여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셔서 완전한 전환이, 곧 마리아가 마니피캇에서 노래한 하늘나라의 변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의 구분 없이 하느님을 믿는 여인, 마리아는 신앙의 본보기로서 개인과 공동체의 삶 안에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우리를 오늘도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신적 모성을 받아들인 것은 하느님의 손에 순수하게 맡겨진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자유로운 행위로서 사람들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성모님의 말씀에서는 이 몸은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하면서 앞으로 순교의 길을 가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파의 순종과 오메가의 순교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바로 순종은 어린양이 되는 것이고, 순교는 속죄양이 되는 것이니, 어린 양은 내가 소유한 것이고, 속죄양은 너에게 소유당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는 분명 내 것을 아낌없이 형제에게 내주는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모님도 기꺼이 내주어서 오늘 승천의 영광을 얻었다면 우리 또한 그러한 삶에 깊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비천함을 결코 잊지 말아주시오. 주님께서 내 손과 팔, 내 몸을 통해서 당신께서 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그래서 무슨 일을 했다고 그래서 그것을 자꾸 드러낼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신 일이니, 그저 작은 존재로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사제의 길을 간다고 큰 것도 아니고, 수도자의 길도 결코 큰 것 아닙니다.주교나 교황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작은 존재로서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이라고 항상 의식 속에서 이것을 지우지 말 것이며, 또 무슨 일을 했다고 그래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큰일을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런 이 현명함을 결코 잊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