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1986년 1월 28일 7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기지에서
발사된 후 73초 만에 우주선은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면 공중에서 폭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선장 프
란시스 스코비를 포함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승무원 중에는 민간우주비행사 제1호인 고교 교사 크리스타
맥얼리피도 포함되어 있었다.
챌린저호에 탑승한 일곱명의 우주인들
일기 불순과 연료계통의 이상 등으로 4차례나 연기된 끝에 이날 발사된 챌린저 호는 미국의 25번째 우주
왕복선이었으며 챌린저호로서는 10번째의 우주비행이었다.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 설치된 대통령조사위원회는 6월 9일 오른쪽 고체연료로케트 이음새 부분의 결함으로
판명되었다. 즉 연료가 점화돼 추진기의 온도가 높아지면 오링도 함께 늘어나야 하지만 낮은 기온에 오링이
탄력을 잃고 타버리면서 가스가 새어 나와 연결 부위가 파손됐고 결국 챌린저호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한편 “날씨가 추우면 고무 O(오)링이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사전에 사고의 원인이 된 문제를 당시 부품
담당자들이 제기하고 발사 연기를 요청하였으나 NASA가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사실이 들어나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당초 1월22일 발사될 예정이었다가 다른 발사체와의 중복, 악천후 등으로 인해 거듭 연기된 챌린저호
의 다급한 일정도 NASA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챌린저호 임무 중 하나가 핼리혜성의 관측이었는데
며칠 후면 핼리혜성이 태양 뒤로 사라진다는 점, 그날 밤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에서 챌린저호에 관한
내용이 언급될 예정이었다는 점 등이 발사 일정을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미국은 1981년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비행을 시작으로 1986년 1월까지 5년 만에 컬럼비아호,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애틀랜티스호 등 4대의 우주왕복선을 차례로 완성하며 우주계획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런 붐을 타며 NASA는 1985년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주여행 사상 처음으로 민간인을 우주왕복선에 탑승시키기로 결정했다. 특히 교사를 선발해 우주에서 수업을
하자는 계획은 큰 관심을 모아, 1만1000명이 넘는 교사가 응모했고 2명이 민간 우주인으로 뽑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고교 교사 크리스타 맥얼리피 탑승하였고 이 날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미 우주왕복선 발사계획은 대폭 미루어 졌다가 사고 후 2년 9개월만인 1988년 9월 29일에 우주왕복선
비행이 재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