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됨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감옥에 간 것을 슬퍼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다고 기뻐한다. ‘원하노라’로 번역되는 ‘불로마이’는 현재 직설법 1인칭 동사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이 당한 일(13절, 에베소서 6:21, 골로새서 4:7)에 대해 오해하지 말고 바로 잘 알기를 바란다는 강한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한다. 즉 자신이 투옥된 일은 좌절이나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 전파에 전진이 되었다는 것이다.
13-14절 매임으로 담대히 전함
☞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수금되었을 때 복음은 더욱 전파되었다.(사도행전 28:16-31) 바울을 교대로 감시한 군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로마에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13절, 사도행전 28:30-31) ‘그리스도 안에서 … 나타났다’라는 표현은 바울이 ‘죄’때문이 아니라 ‘복음 전파’ 때문에 감금된 것을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아가 바울의 삶과 전도로 많은 사람이 감화받고 전도되었다는 뜻이다.
‘다수’로 번역된 ‘플레이오나스’는 비교급 복수 형용사로, 바울이 옥에 갇힌 사실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을 가리킨다. 바울이 자유의 몸으로 복음을 전할 때는 많은 성도가 전도에 소극적이었는데, 바울이 감옥에 매이자 많은 성도가 위기의식과 책임 의식을 갖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14절에 ‘신뢰함으로’라고 번역된 ‘페포이쏘타스’는 능동태 완료 분사로, 이전부터 주를 신뢰했던 성도들이 바울이 매인 후 더욱 주를 신뢰하게 된 것을 뜻한다. 바울이 ‘담대히(톨만) … 전하다(랄레인)’라는 현재 능동태 부정사들을 사용한 것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에도 복음 전파의 사명이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수행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5-17절 각양각색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함
☞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동안은 바울의 능력과 기세에 눌려 복음을 전하지 않다가, 이제는 마치 자신의 세상인 양 복음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또 이기적 욕망을 위해서다. 그들은 삯꾼 목자처럼 명예와 지위와 칭찬을 목적으로 불순하게 다툼으로 전도하여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했다. 그러나 다른 성도들은 진실로 순수한 동기와 착한 뜻으로 사명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다.(15b-16절) 그들은 바울이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임을 인정하고, 그의 권위와 역할을 존중하고 사랑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다.
18절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
☞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 했다. 왜냐하면 비록 어떤 이들이 불순한 동기로 전도했을지라도, 그들이 전한 복음은 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오직 복음만 전파된다면 기뻐하고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감추기 위해 겉치레로 복음을 전하든지, 순수한 동기에서 참으로 복음을 전하든지 그리스도만 전해진다면 기뻐하고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기뻐하다’(카이로)라는 현재 직설법 동사와 ‘기뻐하리라’(카레소마이)라는 미래 직설법 동사를 함께 사용함으로, 그의 기쁨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될 것임을 강조한다. 더욱이 두 동사 사이에 ‘또한’을 의미하는 등위접속사(알라+카이)를 이중으로 사용함으로 지속적인 기쁨을 더욱 강조한다. 복음 전파에 대한 바울의 열망과 집념, 더 나아가 사명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절 기도, 성령의 도우심
☞ 바울이 현재에도 기뻐하고 미래에도 계속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빌립보 성도들의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 덕분이다. ‘간구’로 번역된 ‘데에세오스’는 ‘결핍’, ‘부족’을 뜻하는 여성명사로, 옥중에 있는 바울의 부족과 결핍을 하나님이 채워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함을 뜻한다. 빌립보 성도들은 무엇보다 바울이 옥에서 풀려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뜻하는 구원은 로마 감옥에서의 해방뿐 아니라, 영원한 본향에 이르는 영생을 뜻한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간구와 성령께서 도와주심으로 구원에 이를 것을 확신했다.
20-21절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 사도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로 작정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오직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자기의 뜻과 계획은 없다. 오직 자신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인 것이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첫째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지’로 번역된 ‘아이스퀸쎄소마이’는 미래 수동태 디포넌트 1인칭 단수 동사로, 부정대명사 ‘우데니’와 합쳐 “미래에 일어나는 어떤 일에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기대와 소망을 표현한다. ‘존귀하게 되게’로 번역된 ‘메갈룬쎄세타이’ 역시 미래 수동태 3인칭 단수 동사로, 바울은 이 동사를 사용함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장차 영광을 받아 존귀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며 소망하고 있다. ‘담대하여’(파레시아)라는 여성명사는 당시 헬라 문학에서 정치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생각과 뜻을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의미다. 당시 헬라와 로마 시민들은 광장(아고라)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바울은 이 권리를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하여 누구 앞에서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