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2021.7.5(월)
■코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주차
장-야생초초원-진달래원-사계
원-야생화언덕-암석원-만병초
원-호랑이숲-알파인하우스
(고산식물원)/원점회귀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주실령
~축서사: 20.4KM 이동
○문수산: 축서사-주실령 갈림
길-문수지맥/무수산 갈림길-문
수지맥 방면 좌틀-헬기장-Bac
k-문수산(1,208M)-축서사
■구간거리/평균속도:별첨
■100대 명산 선정 기관: 산림
청, 한국의 산하, 월간 산, 블랙
야크 등 4개 기관
■후기: 오늘 새벽 5시30분에
광주를 출발하여 370여KM를
달려 다소 고속 주행과 수없이 많은 추월 등 곡예운전 끝에, 4시간여 만에 도래기재에 당도
했습니다. 오늘은 세팀으로 나
눠 도래기재-옥석산(옥돌봉)-문수산-축서사 A코스(약13KM
)와, 주실령-문수산-축서사 B
코스(약8KM) 및 축서사-문수
산-축서사 C코스(약4KM)로 나누어 타기로 한 바, 심공님을
도래기재에 내려 드리고 저는
득권형과 함께 주실령으로 향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국립백
두대간수목원에 들러 둘이서 3
KM 정도 수목원 경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하지만 엄청 넓은
규모와 구획별로 마련된 화원
등이 많이 있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야생화 천국을 상상했지
만 기대와는 달리 관리도 제대
로 안되어 있고, 시기가 안맞아
서 그런지 몰라도 야생화꽃도 볼 수 없었고, 온실도 4동이나 있었지만 재배되고 있는 꽃들
도 시원찮아서, 대단히 실망스
러웠습니다. 전국의 야생화 전
시 화원과 온실을 많이 다녀 봤
지만 그곳들과 비교해도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라는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수목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호랑이숲에
는 4마리의 시베리아 호랑이가
있다는데 어디에 숨어있는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수목
원 내에 위치한 두내약수터에
서 약수를 한바가지 마셨는데 쇳내가 상당했고, 물 색깔도 누
르스름한 빛을 띠었지만 워낙 유명한 약수라서,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8L통에 약수를 담은 후 수목원 관람을 마쳤습
니다. 집에 와서 수목원을 검색
해 보니, 월요일은 휴관인데다
입장료가 5,000원이던데 우린
방문자 센터를 경유해서 입장
해야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사
방이 폐쇄되지 않고 트였기에 그냥 개념없이 관람했는데 결
과적으로 5,000원씩을 세이브
한 꼴이 되었습니다.ㅎ
저는 주실령에 득권형을 내려 드리고, C 코스를 타기 위해 축
서사에 파킹 후 사찰 경내를 둘
러 보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축서사는 규모가 대단히 큰 유
명한 사찰이라는 명성에 걸맞
는 절이었습니다. 사찰을 끼고 좌측으로 올라 시계방향으로 문수산을 한바퀴 도는 코스를 택해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따
라서 오르는 등산로가 6.5KM
와 3.8KM 두군데가 있었지만, 저는 밤새 잠을 설쳐 피곤한데
다 왕복750여 KM와 8시간 이
상을 운전해야 하기에, 산행 종
료 후 귀광길에 졸음운전을 우
려하여 빠른 시간내에 하산하
여 A.B 코스 팀이 하산할 때 까
지 한숨 자려고, 그 중 짧은 3.8
KM 코스를 따라가기 하며 올
랐습니다. 그러나 주실령에서 오는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 까
지 거리가 겨우 1.2KM 밖에 안
되는 짧은 코스를, 표고차 500
여 M 이상을 올려야 하는 빡센 코스였습니다. 결국은 짧은 코
스를 타기로 한 결정이 심각한 판단 착오였습니다. 따라서 혼
자 오르는데다 어찌나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희미한데다, 밧
줄 등 안전 시설물과 이정목 등
이 전무하여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고, 많은 낙엽
이 쌓여 있는데다 붙잡고 오를 나무도 마땅치 않는 등 거의 네
발로 기어오르는 코스가 많아, 평균속도가 0.8KM를 기록할 정도로 힘이 들었고 땀을 많이 흘린 거친 코스였습니다. 따라
서 너무 힘든 코스를 오르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주실령에서 오는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서 A.B 코스팀과 합류하여 동
반 하산하는 미련한 코스 선택
이었습니다. 결국은 A.B 코스 팀이 하산 하는 시간 동안 한숨 자려던 꿈은 사라지고 말았습
니다. 그러나 하산 후 축서사 주차장에서 간단하게 얼음 막
걸리로 하산주를 대신하고, 축
서사 아래 계곡에서의 얼음물 같은 청경수로 알탕을 마치니,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고 더없
이 개운했습니다.
졸음방지약과 박카스D를 복용
하고 초고속 운전을 하며 귀광
하는 길은 졸음은 커녕 신이 났
고, 예상보다 40분 이상 빨리 광주에 도착하여 삼겹살과 소
주로 오늘 산행을 즐겁게 마무
리했습니다. 오늘도 원거리를 이동하며 과속과 수많은 추월
로 다소 위험스럽고 불편하셨
을텐데, 장거리 산행에 함께해 주신 심공ㆍ득권형께 다시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다행히 이번 산행시 봉화 지역은 흐리다고 예보되었으
나,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 예
보가 있어서 우중 산행을 걱정
했지만 한방울도 내리지 않더
니, 대구 위쪽인 군위를 통과할 때쯤 내리기 시작한 비가 광주
에 가까워질수록 억수같이 쏟
아져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차기 산행지: 선정 중
■산 소개:
○문수산(文殊山)은 월간산 선
정 100대 명산으로, 경북 봉화
군의 물야면 개단리, 봉성면 금
봉리, 춘양면 서벽리 경계에 위
치한 산이다(고도 : 1,208m).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
의 진산이다."라는 기록이 있
다. 『신증동국여지승람』(봉
화)에 "조선 세조 3년에 순흥 문수산(文殊山)의 물 동쪽 땅
을 떼어서 예속시켰다."라는 기록이 있다.『여지도서』(순
흥)에 "백병산에서 뻗어 나와 안동 학가산(鶴駕山)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라고 하였고, 『여지도서』(안동)에 "내성
현의 북쪽에 있다. 북쪽의 안동 태백산에서 뻗어 나와서 동쪽
으로 봉화 갈방산으로 뻗어 나
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순흥)에 "지금
은 순흥에 속한다."라는 간략
한 기사만 나와 있다. 이들 관
찬사료의 내용은 지명의 역사
가 오래되었음을 시사할 뿐 유
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조선지지
자료』에는 축서사(鷲栖寺)라
는 사찰이 기재되어 있다. 이 산중에는 673년(신라 문무왕 13)에 의상조사(義湘祖師, 625~702)가 창건한 축서사(鷲棲寺)가 있는데, 향토지에서는 "문수산 아래의 축서사에서 광
채가 비쳐 가보니 문수보살이 현신(現身)하였다."라는 축서
사 관련설이 언급되어 있다. 문
수산은 봉화의 진산으로 봉화 중심부의 터전을 만들고 있다. 문수산은 주실령으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백두대간의 능
선과 한 발짝 떨어져있지만, 태
백산과 소백산을 좌우로 세워
놓고 있는 탁월한 내공을 지닌 산이다. 주실령의 좌측으로 운
곡천, 우측으로는 내성천이 시
작되므로 분수령인 셈이다.
○문수산 축서사가 ‘독수리 둥
지’라는 의미에 걸맞게 문수산 높은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사
찰에 들어가면 봉화 물야면이 발아래 펼쳐진다. 673년 의상
이 창건한 절이다. 현재 축서사
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은 근래
에 중건한 건물이다. 특이한 것
은 남향으로 지은 보광전에 모
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동
향을 하고 있다. 동향의 불상은 아미타불인데 비로자나불이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
유일까? 혹자는 신라 전기의 신앙축이 동해를 바라보는 것
이라 한다. 석굴암도 동해를 바
라보는 동향이고, 문무대왕릉
도 동해에 있고, 봉황산부석사
의 아미타불도 동향이고, 태화
산마곡사 대광보전의 비로자
나불도 동향이다. 그래서 비로
자나불을 모셔야 하는 화엄사
찰에 아미타불을 동향으로 모
신 경우가 많다. 연화산옥천사
도 동향이고, 금정산범어사도 동향이며, 지리산화엄사 각황
전도 동향이다. 화엄사찰은 산
의 고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
다. 화엄사찰은 신라변방의 전
략적 요충지에 짓는 경우가 많
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으로 둘러싸인 사찰이 아니면 부석
사나 축서사 처럼앞이 트여 멀
리까지 보인다. 풍수적으로는 동서남북으로 사신사가 갖춘 풍수지형을 선호한다. 특히 전
방에 보이는 안산을 중요시하
는데, 고지에 위치한 사찰은 안
산이 없는 것이 흠이다. 그 흠
을 보완하기 위해 문루를 세웠
다. 축서사 대웅전 마당에는 5
층진신사리석탑이 화려한 모
습으로 웅장하게 서 있다. 화엄
사찰은 탑이 없거나 있어도 마
당에 세우지 않았다. 신라 때는 화엄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선
종 계열의 조계종 소속이라 탑
을 세운 건가. 기존에 있었던 진신사리탑이 허물어지고 부
분적으로 멸실되어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축서사는 지금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웅전 좌측 계곡에는 삼존석불을 모
시는 대작업이 진행중이다.
석조비로자나불과 목조 광배(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는 9세기 경, 통일신라 시
대 석조 불상으로 보물 제995
호로 지정되어 있고, 괘불탱
(鷲棲寺 掛佛幀)은 조선 영조 44년(1768)에 정일(定一)스님 등 10명이 참여하여 조성된 것
으로, 보물 제1379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