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그래도 괜찮은 하루
저-구경선(자전적 수필)-망막색소변성증-개그맨 이동우의 병과 같은 병(차차 눙이 안 보이게 되는 선천성 병)
출-위즈덤하우스(2015. 10월 14일-20쇄 발행
독정-2018년 10월 17일 수
· 김연아 선수의 소치 올림픽 마지막 무대를 텔레비전으로 보는데 투명 빙판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아직 볼 수 있어서‘ 보았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감하해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그리고 내 맘 속에 간직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 <더 코브>라는 다큐멘터리를 통애 돌고래의 아픔을 알고 충ㄲ을 받아 그 슬픔이 계속 남았다. 우리나라에도 돌고래와 헤엄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달려갔다. 돌고래는 초음파가 아주 강해서 사람의 몸속까지 느낄 수 있다. 어던 여자의 몸속에 암이 있다는 걸 돌고래가 처음 발견했다. 그래서 돌고래가 속이 새까만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 됐다. “어어!” 돌고래가 다가와 기울어지는 내 몸을 받쳐주었다. 내가 떠날 때까지 내 주위를 멤돌며 나를 챙겨주었다. 반짝반짝 별들 떨어지는 밤바다에서 돌고래에게 몸을 맡기는 기분이 들었ㄷ가. “소리도 빛도 없어도 온전히 감각으로 느껴보라고, 아직 포기하지 말라고.” 돌고래가 그랬다.
· 에니메잇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거칠었던 나를 유일하게 칭찬하셨던 류광우 국어 선생님께 가장 감사한 건 모든 사람이 절 못마땅하게 바라볼 때 제안의 장점을 발견해주시고 제 개성을 진심으로 존중해주신 점이에요. 학교를 그만두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면서 제 개성을 버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꿔 살려고 노력할 때 제게 말씀하셨죠. ‘너의 매력이 사라지는구나.’ 라고요. 그때 선생님이 제 개성을 마음 깊이 예쁘게 봐주셨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조금씩 나답게 돌아올 수 있었어요. 집에 오니 카톡이 와 있었다. “경선아 눈이 예전보다 맑고 예쁘더라. 그리고 너에게 배웠다. 어떤 만남이건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 지하철역에는 직장인, 두툼한 배낭을 메고, 무거운 책을 들고 있는 학생, 설레는 모습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여행객, 등산객. 큰 보따리를 들고 가는 할머디, 제각각 묘하게 걸음속도가 달랐다. 독같은 시나리오는 없다는 듯 같은 곳에서 함께 숨을 쉬는 이 시간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 살아 있구나.‘
· 가족 여행-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특별한 일이다. 강원도로 가족 여행가면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 팻말을 보았다. 그길을 따라 걷는 엄마와 동생의 뒷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해 “우리 가족을 지켜주세요. 그저 그것뿐이에요.”
· 마지막 읽은 책-<아이들만의 도시> 눈이 안 보이기 전에 다시 꼭 일고 싶은 책이다. 얼마나 간절했냐면 프로포즈로 그 책 하나만 받아도 무조건 응할 것 같았다.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 마침내 전집 중에 그 책 한 권만 쏙 빼서 팔겠단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 했더니 나보다 기뻐하며 책을 선물했다. 마침, 내 생일이었다. 좋은 한국영화가 정말 많지만 자막이 ㅇ벗어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들리지 않으니 자막이 rHV 필요했는데. 간혹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상연이라는 기회가 있었지만 정확히 시간이 맞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다시 어릴 대처럼 실컷 읽고 싶다. 아직 빛이 남아 있으니까. 아주 작은 빛이지만 그 빛이 사라지기 전에 종이와 글자의 감각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것도 전부 내게는 선물이었다.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 두꺼운 벽을 하나씩 매번 부딪쳐 허물고 그럴수록 마음에 반창고가 하나둘 늘어났다. ‘지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스킨 작가로 <다 귀찮아> 그림을 그려 통장에 찍힌 숫자.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 마법같았다. 허름한 신데렐라를 아름다운 공주로 바궈준 요정할머니처럼 작업실을 지원해준단다. 이건 그냥 작업실이 아니다. 기적의 작업실이다.
· 엄마 뭐라고 기도했어? 흠 우리 딸이 만들 줄도 모르는 미역국을 처음 긇여줬다고 앞으로도 미역국 끓일 수 있게 해달라고 눈을 지켜달라고 기도 했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1월에서 3월까지가 우기로 비가 고여 20~30센티미터 정도 얕은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하늘과 딸의 경계가 사라지고 멋진 풍경이 나온다. 건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오직 하늘과 땅만 있는 복잡하지도 않고 고요한 그곳, 바람도 기분 좋게 솔솔 불어오면 정말 완벽할 거다. 하늘 위에 눕는 그런 느낌. 아마 천국 같을 것. 우유니 소금사막에 꼭 가서 누워보고 싶다.
·사람의 또 다른 눈이 되어주는 사진, 다른 사람이 저를 얼마든지 담아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찍은 좋은 사진을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바라보고 느낀 걸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는 게 언제까지일지 모르니 사진을 찍는 게 왠디 더 간절해진다. 그때까지 내 눈으로 담아낼 수 있을 때까지 맛있는 음식, 예쁜 풍경, 아름다운 곳,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반려묘 코코, 각 주제를 나누고 사진을 많이 찍어서 앨범을 만들어 고이 간직하고 싶다.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내가 봤던 그 시선은 남겨두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내 시선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떤 날은 시계를 보고 싶지 않다. 자꾸만 남아 있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아. 그래도 이제 슬프지 ㅇ낳다. 아직도 내겐 희망이 있으니.
<아직 향기가 남아 있으니까-보이지 않는 유리 상자>
햇빛이 눈부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눈을 감았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 흔들리는 차, 내 몸을 가만히 맡기고 눈을 감았다. 바닷속에서 기차를 타고 달리는 것 같았다. 물속은 안압을 낮추는 데 좋으니까 아팠던 눈은 편안해질 것 같고 물속 감각을 느끼면 기분이 편해질 것만 같다. 살아있는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 사람들이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조차 모를 것 같아. 옆에 누군가 있다 정도만 알 뿐 그때의 분위기나 표정들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유리 상자. 내게 빛이 완전히 사라지면 그 상자에 혼자 갇혀있는 느낌일 것 같아. 청각장애인에게 가장 괴로운 건 소외감. 그래도 그럭기 때문에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분위기도 알 수 없고 신경 써야 할 일도 없고 심심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겁이 없어지고 자유로워질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것만 상상하고 아름다운 소리만 상상하고 싶다. 시각과 청각을 잃어도 아직 생생히 남아 있는 감각 촉각, 그 감각으로 무엇을 할 수있을까 생각해봈다. 손으로 흙을 만지는 거다. 작품을 훌륭하게 만들지 않아도 삐둘삐뚤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 때리는 것보다 살아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각장애인 화가들은 자기만의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어떤 화가는 물감의 온도를 느끼며 색을 고르고 다른 한 손으로 더듬어가며 그리기도 한다. 귀가 안 들리지만 짧은 순간 많은 부분을 스캔하는 능력이 있으니 눈이 안 보이며 ㄴ촉각과 후각이 굉장히 예민해질 것만 같다. 입술은 움직일 수 있고 먹으라고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 아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입술,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입술, 말은 엄청난다. 그래서 사람들과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촉각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상대방 손가락 위치를 점자로 읽듯이 그런 촉각 수화가 생기면 어셔증후군인 사람들에게 촉각 수화는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겠다. 소리를 일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는 맡을 수 있겠다.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다. 아직 많은 감각이 남아 있다. 그래서아직 느낄 수 있다. 달콤한 향, 상큼한 향, 새콤한 향, 상쾌한 향, 여러 향기에 취해 행복하게 사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그래서 나는 앞으로 계속 행복할 것이다 .계속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으니까)
십 년 후에 어셔증후군 환자를 위한 줄기세포 이식수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단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절데ㅐ 아무것도 포지하지 않을 거다. 그때까진 할 일미 너무 많거든.) 나는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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