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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우리 삶의 최고의 가치, 전도 말씀/ 마가복음1:35-39 요절/ 마가복음 1:38 | 2026. 2. 8 | |
| 개강 전 특강 |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사람이 의도적으로 가는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가신 장소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 시간 그곳에 함께 가서 예수님께서 중요한 가치로 두신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또한 2026 전국청년대학생 수양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전날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권세 있게 가르치셨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날이 저물어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든 병자과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사역은 끝났으니 내일 오시오’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사역은 늦은 밤이 돼서야 끝이 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드워킹하면 다음날은 충분히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한적한 곳’은 사실 사람들이 없는 ‘광야’를 말합니다. 아직 동트기 전이라 길은 어둡고 날씨는 쌀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방해 받지 않는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셨습니다. 전날 귀신들과의 영적전투가 많았지만 기도를 통해 새 스피릿으로 충만케 되셨습니다. 마음의 생각을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분명한 영적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시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으니 그저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바쁠수록 장소와 시간을 구별하여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하나 되어 복음역사를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를 소중히 여기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워라밸’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을 통해 제자는 기도하고 일하는 삶을 추구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기도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구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간과 장소와 몸을 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령충만을 덧입고 양들을 섬길 힘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을 지을 때 위성과 GPS가 실시간으로 교신하면서 몇 mm의 오차를 교정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를 통해 세밀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 5시 30분에 교회에서 드리는 새벽기도는 기도하기 좋은 한적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새벽기도에 못 나왔다고 포기하지 말고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강 시간에 캠퍼스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조금 일찍 출근하여 기도하거나 점심시간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직장과 학교에 갔을 때 집이 한적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 아직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신 예수님을 배워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능히 감당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전도하시러 가까운 마을로 가셨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여기서 ‘뒤를 따라갔다’라는 말은 마치 추격자처럼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열심히 찾아 다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새벽에 일어나실 때 깊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 깨보니 예수님이 사라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분리불안을 가진 아이들처럼 불안해 했습니다. 어제는 가버나움의 핫스타가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은 감동을 먹고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로 결단하기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시몬 베드로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아내는 환한 얼굴로 베드로에게 ‘여보, 그동안 고기는 안 잡고 예수님만 따라다닌다고 바가지 긁어서 미안해요. 가족은 제게 맡기고 열심히 주님을 따르세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생역전의 주인공 예수님이 사라진 것입니다. 문 밖에는 벌써 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어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마치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 이는 ‘어디 갔다 오십니까? 당신은 가버나움의 떠오르는 스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어디 가지 마시고 이 기대에 부응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여기 ‘가자’는 말은 ‘함께 가자’는 강력한 권유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라신, 벳세다, 디베랴 등 가버나움 가까이에 있는 다른 마을로 함께 가자고 권유하셨습니다. 거기서도 전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마을들 중 가장 큰 중심도시입니다. 사람들이 막 몰려오고 있으니 우선 여기에 집중하여 섬겨야 할 것 같습니다. 병자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의료선교팀을 세우고 귀신 들린자가 많으니 ‘데몬헌터스’팀을 만들어 영성집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도하러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여러 마을을 다니며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여기 전도는 ‘전령이 왕의 어명을 들고 광장에서 외치는 행위’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선포하신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해 믿고 구원 받게 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캠퍼스 현장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고 1:1 말씀공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도 고치고 귀신도 내어 쫓으셨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긴 것은 전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갈릴리 여러 마을에는 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백성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오기를 바라기보다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전도하셨습니다(39). 예수님은 사람의 요구를 따라 살지 않고 기도를 통해 분명한 영적 방향을 잡으시고 전도자요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로 사셨습니다.
전도인으로 사는 것은 힘이 들고 고난이 있는 삶입니다. 비난을 받고 배척을 각오해야 합니다. 수고한다고 열매가 바로 바로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도 많은 권능을 행하셨지만 회개치 않는 갈릴리 마을 백성들로 인해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 진저 벳세다야”(마11:21) 책망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한 사명을 따라 줄기차게 전도인의 삶을 사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을 향해 가실 때도 삭개오 한 영혼을 전도하시고 그의 집에 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것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시고 이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구원 받은 우리가 함께 이 사명에 동참하기 원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을 위해 가서 전도하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의 요구를 따라 살기보다 예수님처럼 전도인이요, 성경선생이요, 목자로 살기 원하십니다. 이는 수고와 고난이 따르지만 구원의 감격이 늘 살아있고 영적 생명력이 충만하며 하늘의 상급이 있는 삶입니다. 고인 물에 병균이 서식하여 썩고 생명이 살 수 없게 되듯이, 말씀을 받기만 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흐르는 물은 늘 싱싱하고 생명력이 넘치듯이, 말씀을 받고 전하기에 힘쓰면 전하는 자도 생명이 약동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목자님들이 내가 살기 위해서 전도하고 일대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복음 전도자 무디에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고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무디는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뛰쳐 나가 전도하십시오. 성경책을 놔두고 나가서 전도하고 무슨 일이든지 찾아서 봉사하고 전도하십시오. 그런 후에 돌아와서 성경을 읽으면 깨달아질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 읽기 때문에 깨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고자 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옵니다. ‘난 극I인데, 한번도 해 본적 없는데, 한지 꾀 오래 되었는데’하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분은 전도 하시는 목자님과 함께 다니며 전도하면 됩니다. 저도 처음에 두려움이 많았는데 필라델피아 이파울러스선교사님이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다니며 전도했습니다. 또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혼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도하십시오. 물론 거절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나 준비된 영혼이 반드시 있습니다. 20여년전 임엘리야목자님을 전도할 때 하루 2시간 이상 꼭 전도하고자 오후 4시에 김마가목자님과 캠퍼스에 나갔습니다. 그때 친구에게 속아 돈을 받으러 강대 정문으로 지나가던 엘리야목자님을 만나 춘천에서 열리는 ‘세계선교보고대회’ 초청장을 내밀었습니다. 생둥이 양인데 ‘세계선교보고대회’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된 양인 임경규형제님이 신기하게 선교보고대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말씀공부하고 목자가 되었습니다. 전도는 내 말과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봄학기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을 잘 배워 전도를 통해 일대일 양을 얻고 제자 세우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전국청년대학생 수양회는 전도의 열매를 보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수양회는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평창 한화리조트에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번 수양회는 학생 뿐 아니라 소외되기 쉬운 싱글학사들도 참석하도록 범위를 넓히고 총 1000명의 목표가 제시되었습니다. 수양회 직전까지 초청에 힘을 다할 때, 74개 센터에서 930여명이 등록하고 등록하지 않고 참석한 분들도 있어 1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춘천에서는 30명 참석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목자 8명과 양들과 2세들 합쳐 17명, 모두 25명이 참석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수양회 메시지는 총 6강의로 모두 요한복음 말씀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도록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말씀 자체가 잘 드러나고 그에 따른 체험이 있는 강사의 소감이 전해질 때 많은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9명의 귀한 인생소감을 있었는데 게임 중독과 두려움에 떨던 형제, 귀신의 세력에 눌려 무속인이 될 수도 있던 자매, 재벌 3세라는 형제에게 속아 자살하려던 자매, 어머니의 과보호로 몸무게가 130kg까지 나가고 아버지와 불화했던 형제등이 받은 구원의 은혜와 변화된 삶을 팩트에 기초해 잘 증거했습니다. 이들의 소감을 통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양회를 위해 92명의 소그룹 리더와 50명의 보조리더들이 사전교육과 기도로 준비하며 양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이 소그룹 GBS를 비롯해 모든 활동을 잘 리드하였습니다. 류지윤자매님은 수양회 참석 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3박 4일 있을 것을 생각하니 엄청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그룹 리더와 조원들로 인해 잘 적응하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는 분반리더가 맛있는 치킨과 커피를 섬겨주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또한 특송과 댄싱, 레크레이션, 스킷 드라마, 어노인팅 찬양팀 등으로 다채롭고 풍성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특히 예배전 찬양과 어노인팅 찬양팀 예배를 통해서 찬양이 젊은이 사역에 얼마나 중요한지 볼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양회에 목요일 저녁부터 참석하여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양회 내내 광주 센타 인생소감을 발표한 한 형제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6살 때 이혼하고 조부모님들에게 맡겨졌는데 어머니를 욕하는 할머니로 인해 이불속에서 울고 화가나 오빠가 좋다고 달라붙는 여동생을 욕하고 때렸습니다. 이에 매를 드시는 할머니에게 “나도 아파! 나도 아프단 말이야!” 하며 외쳤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위축된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UBF목자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네 손을 내밀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내밀었을 때 치유되고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저는 “나도 아파! 나도 아프단 말이야!”라는 외침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죄의 뱀의 물려 죽어가는 우리 인생들의 외침임을 마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유일한 치유와 구원의 길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뿐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림대에 올라가 전도하고자 할 때 배척하고 무시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고통하는 영혼의 소리를 듣고 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을 힘써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새학기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함으로 영적으로 충만해지고 전도에 힘써 하나님의 생명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