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중보 기도(골1:3-14)
갈등
1. 골로새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교회들에게(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들) 보낸 편지 1장 전반부를 읽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교회들은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들이 아닙니다. 7절, 에바브라가 개척하고 양육하여 세웠어요. 에바브라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고 가르칠 때 만났어요. 두란노 서원에서 3년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로 추정이 됩니다. 이때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100마일-400리 길 떨어진 고향 골로새에서 전도를 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육상 렐레이 경주를 하듯이요.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이런 릴레이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골로새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에빌골몬(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이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또는 가택연금-이달 초 로마 순례 때 들림)에서 편지를 보냈어요. 바울이 주후 64년에 순교하였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 주후 60-62년이었어요. 바울이 말년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지역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 소식을 들었고, 로마에서 2000km나 떨어진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2. 신약 성경의 서신서들은 일정한 편지 형식을 보여줍니다. 각 편지의 1장 전반부는 대체로 인사 및 감사를 전하며 부드러운 말로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서를 제외하고는요. 갈라디아에 다른 복음(이단)을 전하는 이들로 바울의 마음이 편치 않았고, 교회의 상황이 심각하여서. 갈라디아서와 같이 골로새서도 다른 편지들과 형식이 좀 다릅니다. 1-2절, 간단한 인사 후에 바로 골로새 교회를 위한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목회 기도는 에바브라에게 골로새 교회에 대해서 들은 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랫동안 쉬지 않았습니다.(9절)
골로새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중보 기도는 여섯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도록,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도록,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소서 등입니다. 중보 기도는 언제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기도가 나오는 위치에요.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며 다른 이야기들을 전개하다가, 너희 교회가 이러이러하니 내가 너희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면 자연스럽습니다. 바울은 다른 편지들에서와는 달리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서론에서부터 중보 기도-목회 기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사도 바울이 이렇게 목회 기도를 하지만, 3-8절에 보면 골로새 교회에 별다른 문제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4절,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는 것과 같아요. 5절, 골로새 교회는 이미 에바브라를 통해서 충분히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어요. 6절, 이렇게 복음을 들은 골로새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세상에 살면서 열매를 맺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7절,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인 에바브라 이야기를 합니다.
에바브라는 우리와 함께 종 된 자라고 소개했어요. 바울이 에바브라와 자신의 관계를 밝혔어요. 에바브라는 바울과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토의를 나누었던 동문(제자)이라는 말입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의 여러 동문(제자)들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나 신실한 사람이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골로새 교회가 참된 목회자를 만났다는 칭찬입니다. 에바브라는 성령 안에서 골로새 교회의 사랑을 바울에게 전하였어요. 3-8절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골로새 교회에 특별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데 바울은 왜 편지 처음부터 그들을 향한 중보 기도를 길게 하였을까요?
실마리
4. 골로새 교회의 상황을 알려면 2장과 3장을 읽어야 합니다. 2: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골로새 교회에 교묘한 말로 속이는 자들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바울이 몸은 비록 2,000km 멀리 로마에 있었지만, 심령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이 질서 있게 행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하기를 원했어요.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말씀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했습니다.
골로새 교회 교우들을 미혹하여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어요. 꾸며낸 겸손, 천사숭배,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지도 말라고 했어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우상숭배. 이런 것들에 빠지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이런 철학과 속임수를 대표한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한 번 구원받으면, 육체로 어떤 죄를 범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쳤어요.
5. 오늘날 구원파와 유사합니다. 이런 사상은 영혼은 깨끗하고 육신은 더럽다는 사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기독교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단들이에요. 사도 바울은 이런 사상과 가르침을 따르면,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했어요. 이런 사상이 매혹적일 수 있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이처럼 단호하게 교회가 선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도전과 상황 속에서 골로새 교회가 잘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바울이 에바브라에게 듣고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쓰며 무엇보다 먼저, 우선순위로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 이해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컨텍스트(문맥-배경-상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골로새 교회를 향한 첫 번째 중보 기도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9절)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성령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라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어요. 이것이 첫 번째 중보 기도인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에서도 첫 번째가 지혜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두 번째 중보 기도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상숭배와 샤머니즘-무당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행해지는 것들이에요. 이들에게서 도덕성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산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아직 변화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에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6. 사도 바울의 세 번째 중보 기도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도록. 그리스도인은 거짓이나 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최근에 한 여인이 오랜 재판 끝에,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 구속이 되었어요. 사기죄로요. 재판장이 형량을 선언하고 책망을 했지만, 이 여인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어요. 거짓 인생에 악이 가득한 여인입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어요. 이 여인은 샤머니즘-무당에 매여 평생을 살아왔어요. 그리스도인은 죄와 악에서 떠나 선한 일에 집중하고 섬깁니다. 그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어요. 교회 화단에, 채소들을 몇 가지 심었더니 봄-여름-가을-초겨울까지 열매를 주듯이요.
네 번째 중보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도록. 하나님을 알면, 철학이나 초등학문에 매이지 않아요. 어느 그리스도인이 이런 말을 남겼어요.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더욱 자세하게 보인다. 하나님을 알수록 나를 진정 알아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나도 제대로 몰라요. 정직하지도 못해요. 하나님을 알면, 나의 허물과 약함이 보이기 시작해요. 나의 허물과 약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됩니다.(치유와 회복)
7. 사도 바울의 다섯 번째 중보 기도는 기쁨으로 모든 것에 견디고 오래 참음에 이르도록. 세상에 참고 인내하는 것을 어떻게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11절,“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영광의 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해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인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도 그렇지만 인내도 똑같아요.
사도 바울의 여섯 번째 마지막 중보 기도는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도록.(12절) 시편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기도의 마지막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성도의 기업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해요. 이 땅에서도 누리고, 내세에서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내세에 얻는 것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죽어서 갈 나라만 기다리는 반쪽 신앙으로 전락해버려요. 우리는 내세에서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영-몸-마음-환경도)
복음 제시
8. 13-14절,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재 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아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복음이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었어요.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흑암-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라고 촉구했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흑암-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로 아직 옮기지 못한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연약한 모습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기대
9.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 주후 62년이고, 순교한 때가 64년인 시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이 다른 편지를 쓸 때보다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쓸 때 마음이 비장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을 더 알고 합당하게 살기를 원했어요. 그의 마음이 간곡히 표현된 것이 오늘 본문, 골로새 교회를 향한 중보 기도였습니다. 바울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쓸까요?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와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만나 대화해보면 그렇지 않아요. 주님 앞에 살아가는 자세나 삶의 내용도 그렇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사도 바울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이나 한국교회를 볼 때, 우리의 자세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부터 성도의 기업-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까지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바울의 여섯 가지 중보 기도를 생각하며 나 자신과 우리 교회,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