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비극에서 희극으로
책 <오이디푸스 왕>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을 받는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이다. 신탁의 가혹한 운명으로 그려지는 이 막장은 주인공 자신의 선의가 결국 자기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에서 비극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 막장의 내용을 잠깐 정리해 보겠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라던 중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어 끔찍한 자손을 낳게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이를 피해 자신의 고향 코린토스를 떠나 방황하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을 물리치고 그 대가로 때마침 과부가 된 테바이의 여왕과 결혼하여 테바이의 왕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얼마후 테바이에 전염병이 퍼지며 ‘이 전염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 왕을 죽인 범인을 잡아 추방하거나 살인하여 오염을 몰아내라’는 신탁이 내려왔다. 이에 곧바로 오이디푸스는 수사를 시작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진실을 밝힌다.
그 진실은 이러하다. 사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 되기 전 어느 삼거리에서 사람들을 죽인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테바이의 전 왕, 라이오스였다. 또 사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자랐던 곳, 코린토스의 왕자가 아니었고 테바이 왕가에서 버려진 아이였다. 버려진 오이디푸스를 가엾게 본 한 하인이 그를 죽이지 못하고 코린토스의 하인에게 전달하게 되고 그 끝에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모든 신탁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후,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그의 진짜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르며 비극이 끝이 난다.
<오이디푸스 왕>은 그의 비극을 시간 순서로 그려내는 것이 아닌 테바이의 왕으로 있을 때에서 부터 시작해 자신의 전 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수사하는 과정으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1. 라이오스를 죽인자는 누구인가? 2. 전 왕을 죽인 자가 나인가? 3.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과정을 거친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모든 퍼즐을 맞추려 한 걸까? 내가 오이디푸스라면 열심히 진실을 덮으려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이디푸스가 수사할 때 이미 진실을 깨우친 주변 사람들은 그를 그만두게 하려 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그럼에도 계속하여 나아간다. 그 결과, 처음에는 자신의 선의로 시작한 일이 결국 자기 파멸을 가져온다. 진실을 덮었다면 좀 덜 불행했을까? 사실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진실을 덮었다면 그 나름대로 인생이 끝날 때까지 불안 속에 살며 불행하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이 비극이 완전 비극만은 아니라고, 사실 희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선 인간이 운명을 깰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탁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진 않는다. 운명이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고 생각하여 무력해지고 절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오로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신의 개입이 아닌 그저 인간의 마음들이 얽히고 얽혀 이야기를 만든다. 이 스토리가 운명을 따라간다고 한들 그 때문에 그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덮으려했다면 자신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비극 속에 갇혀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알기를 택했고 여기서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닌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살하고 눈찌르는 강렬한 장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오디세우스가 앞으로에 삶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책 이야기 너머에는 시간이 흘러 희극을 맞이하는 오이디푸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모두 덮고 난 후, 나는 도대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막장 삼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생각하며 책이 말하는 한가지 교훈을 알아낸 것 같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 비극을 보며 그저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에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힘든 고난을 견뎌내고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오이디푸스에게서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굉장히 나약하지만 또 굉장히 강하다.
지금의 우리 또한 죽음이라는 신탁을 받고 살아간다. 이 때문에 우리의 삶이 비극일 수도 있지만 사실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이 빛나는 희극일 수 있다. 그러니 그 삶을, 그 과정을 아름답게 채워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