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본은 이미 1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의 정신적 좌표는 ‘메이지의 영광’에 있다. 그리고 오늘의 일본을 만든 선택, 러일전쟁. 제국주의 열강의 시장쟁탈전 속에서 일본은 어떻게 반식민지 상태에서 탈출하여 제국이 되었을까? 1. 포츠머스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시. 한국과 일본에게 ‘주권상실’과 ‘국민의 전쟁’으로 각인되어진 러일전쟁의 상반된 기억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2005년 8월 포츠머스에서는 100년 전의 한 사건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러일 양국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조약을 체결한다. 포츠머스 회담으로 일본은 드디어 제국주의의 대열에 합류하였지만 동시에 한국은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만다. 2. 시베리아 프로젝트를 저지하라. 일본의 한국지배는 메이지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정한론(征韓論)의 성과물이었다. 일본에게 있어 극동으로 뻗어오는 열강의 압력에 대한 최소의 방어선은 바로 ‘이익선(조선)’이었다. 그러나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야욕이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구체화되면서 일본열도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급기야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공식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중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황태자 니콜라이 2세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면서, 한국을 사이에 둔 러일간에 점차 긴장감이 고조됐다. 3. 백곰을 쓰러뜨리다. 마침내 일본은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서로 인정 하자는 ‘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1904년 2월 8일, 인천과 뤼순항에 일본의 기습공격이 감행되었다. 당시 어느 누구도 조그만 섬나라 일본이 대국 러시아와 전쟁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일본의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있었던 것이다. 4.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일본은 러시아에 승리하여 부와 권력을 얻었으며 열강의 하나가 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목표가 그대로 개인의 목표가 되었던 메이지 시대. 메이지의 최대 성공으로 꼽혔던 러일전쟁의 승리와 포츠머스 조약체결은 그러나 정작 국민들에 의해 부정당하고 만다. 전후보상이 국민들의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자 곳곳에서 격렬한 폭동이 일어났다. 1년여의 전쟁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남은 것은 가족의 빈자리와, 천문학적인 물가와 치솟을대로 치솟은 세금통지서였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로 자신감이 팽배한 일본의 지도자들에 의해 일본 국민들을 또다시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대외적 위상은 높였지만 정작 국민들은 만족시키지 못했던 러일전쟁. 과연 그것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