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대속 유대인들의 죄 사함은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동물희생을 드림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절차에서 중요한 요소는 성전, 대제사장 그리고 동물희생이었다. 나사렛파도 유대교의 분파였기 때문에 당연히 소속 성원들은 성전 의식을 치러야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전의식이 대속교리로 바뀌게 된 데에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교에서 나사렛파를 저주하고 축출하였으며, 성전에 출입을 금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축출에 더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이방인에게까지 미친다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숭배 절차가 크게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할례를 불필요하게 하였고 성전의식 대신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을 죄 사함의 절대적인 절차로 보게 된 것이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자신의 몸이 인간의 대속물로 바꾸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다. 자신은 다만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고 사람들에게 미래의 비젼을 제시하다 보니 어쩔수 없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운명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의 죽음이 결코 개죽음이 아니라,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물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희생을 매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모든 절차를 이루어버리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예수님 생애의 목적 자체라고 생각해왔다. 즉, 십자가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또한 십자가는 예수 자신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한 것이었다고 믿어왔다. 요한복음의 표현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요 3:16). 니케아 신조 역시 십자가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으로서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참 사람이 되시며,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죽으시고 묻히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자신도 생의 목적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까 하는 것이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그 대답은 “Yes”이다. 복음서들은 십자가를 그의 소명에 필수 적인 것으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예언의 성취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 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생애 마지막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세 차례에 걸쳐 수난을 예고하신 것으로 보도한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합니다”(막 8:31; 9:31; 10:33-34, 새번역). 여기서 “반드시”라는 말은 ‘필연성’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행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즉,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 미리 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뜻이다. 누가복음도 마찬가지다. 누가에 의하면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를 향해 함께 걸어가던 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눅 24:26, 새번역) 더 나아가 그것이 이미 성경에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눅 24:25.27). 예수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울의 서신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그가 물려받은 전승을 요약하여 이렇게 증언한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고전 15:3). 이런 말씀들에 비추어볼 때, 십자가를 예수 생애의 목적이었다고 이해해왔던 것 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셨는가? 아니면 이런 생각은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부활절 이후에 생각해 낸 것일까요? “예수께서 세상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다른 말로는 ‘대속’(代贖)적인 죽음이라고 한다. ‘대속’(代贖)이란 말은 원래 “남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거나 속죄 함”이란 뜻인데,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그 보혈 (寶血)의 공로로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이라는 뜻으로 사용해 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속죄론’(贖罪論)이다. 그런데 이 속죄론은 일종의 신학(神學)적 교리다. 크로산(Crossan)은 ‘역사’(history)와 ‘신앙’(faith), 그리고 ‘신학’(theology)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경우, 역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은 사도신경의 한 구절일 뿐만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유대의ㅜ역사가 요세푸스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쓴 문헌에도 등장한다. 또한 이것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아닌데, 예수의 첫 추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창작해 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수께서 유대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복음서들 안에 나오는 수난 이야기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것들은 역사적으로 훨씬 신빙성이 결여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마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막 14:36)라고 기도하셨다고 보도한다. 그런데 마가에 따르면 당시 이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약간 떨어진 곳으로 나아갔으며 제자들은 모두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막 14:35.37 참조). 다시 말해서, 마가의 이야기 자체에 따르면, 예수께서 무슨 기도를 하셨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예수께서는 체포되기 직전에 기도하셨을 것이고, 그 기도의 내용은 위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기도 내용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따라서 이 기도의 내용은 ‘상상’을 통해 창작되었다고 추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수난 이야기는 소위 “faction”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fact와 fiction의 합성어인 faction은 “사실에 기초했으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이야기”를뜻한다. 수난 이야기의 경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나머지는 상상력과 역사화된 예언(prophecy historicized)에 의해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 주류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주류 신학자들은 비록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는 해석을 모든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런 관점은 십중팔구 부활절 이후의 회고적인 해석(retrospective interpretation)이라고 본다. 이렇듯 주류 신학자들이 마가복음의 수난 예고들을 부활절 이후의 창작이라고 보는 이유는 수난 예고와 실제 수난 이야기가 세부적인 면에서까지 매우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음이 그 추종자들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으며 저들의 희망을 산산조각 낸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만일 예수께서 자신의 임박한 처형에 관해서 그토록 분명하게 말했다고 한다면 이런 충격은 이해하기 힘이 든다. 따라서 수난 이야기에 근거해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보았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 예수께서 갑자기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십중팔구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한다면 처형당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침례자 요한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예상했다는 것과 예수께서 십자가를 자기 삶의 목적 자체로 이해했다고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 그렇다면 ‘대속(代贖) 신앙’과 ‘속죄론(贖罪論)’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앞서 밝혔듯이 예수께서 유대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 형되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그 역사에서 ‘의미’(meaning)를 발견해 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대속 신앙’(redemption faith)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신학은 이를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이라는 ‘속죄 론’(atonement theology)으로 발전시켰다. 즉, ‘십자가 처형’은 역사(history)이고,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은 그 역사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이다. 이러한 해석의 바탕에는 죄를 처리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던 유대교의 제사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은 유대교라는 상황(context)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상황을 제거하고 나면 죽은 문자만 남습니다. 사도 바울은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후 3:6)고 말한 바 있는데, 만약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을 문자적(literal)으로만 믿는다면 우리 참된 신앙은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은 반드시 재해석되어야만 한다. 즉, 1세기 유대교 상황에서 무엇을 뜻했는지를 먼저 묻고, 그것을 지금의 변화된 상황 속에 어떻게 새롭게 적용할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은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찾아낸 ‘하나의’ 해석이었다는 것이다. ▷ 어떻게 ‘대속(代贖) 신앙’과 ‘속죄론(贖罪論)’이라는 해석의 탄생이 가능했는가?
앞에서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은 유대교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stumbling block)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foolishness)”(고전 1:23)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따라서 저들은 그 ‘수치스런’ 죽음을 ‘의미 있는’ 죽음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앙은 역사 안에서 의미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또는 위해서) 죽었다”는 ‘대속 신앙’(redemption faith)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신앙을 그들 자신의 종교적 전승(tradition)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히브리 성경(구약 성경)을 뒤져서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 가운데 하나는 레위기 16장에 있는 유대교의 속죄일(Day of Atonement, Yom Kippur) 제의에 관한 것이다. 7 또한 그(아론)는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회막 어귀에, 주 앞에 세워 놓고, 8 그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서 제비를 뽑아서, 주에게 바칠 염소와 아사셀에게 바칠 염소를 결정하여야 한다. 9 아론은 주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 제물로 바치고, 10아사셀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세워 두었다가, 속죄 제물을 삼아, 빈들에 있는 아사셀에게 보내야 한다. . . . 20b 다음에 아론은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서, 21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들로 내보내야 한다. 22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들로 내보낸다. 여기를 보면,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기 손을 숫염소 위에 얹고 백성의 죄를 그 앞 에서 고백함으로써 백성의 죄를 전가시킨다. 그런 다음 백성의 죄를 짊어진 이 숫염소를 광야로 내몰아 죽게 함으로써 상징적으로 백성의 죄를 씻어낸다. 사람들은 이 속죄 염소(scapegoat), 즉 백성들의 죄에 대한 죄 값으로 도시 밖으로 쫓겨나 살육된 염소의 모습에서 예수를 떠올렸다. 즉, 저들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데 필요로 했던 ‘희생 제물’이라고 이해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피의 희생 제사(blood sacrifice)를 드려왔던 저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상징이었다. 즉,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당시 유대교의 예전적 이미지의 틀 안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발견했고, 그 결과가 ‘대속 신앙’과 ‘속죄 신학’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첨가하고 싶은 질문은 “과연 이러한 희생의 신학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Q 복음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전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더구나 피의 희생 제사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피의 희생은 어떻게 비쳐질까? 만약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소나 양이나 염소에게 자신들의 죄를 전가하여 피의 희생 제물로 바치려 한다면, 그것은 동물학대라고 비난받을 뿐만 아니라 금방 불법으로 끌려 가게 될 것이다. 더구나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인간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켰다고 것은 비록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가 될지 모르나 비(非)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적 폭력, 스퐁(Spong)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신적인 아동 학대라는 잔인한 행위”(a cruel act of divine child abuse)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크로산(Crossan)은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하기 위해서 피의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식의 신학으로 내 신앙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십자가에 처형되었는가? 먼저 예수께서 ‘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사람들에게 위험하고 위협 적인 존재로 보여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이 선택됐다는 사실은 로마 제국의 개입을 입증한다. 십자가형은 유대인의 처형 방식이 아니라 로마인의 처형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처형은 흔히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정치적 반란자들과 계속해서 반항적인 노예들을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이 두 부류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기존 체제에 조직적으로 ‘도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십자가에 처형되셨을까요? 수세기 동안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했다”는 것이었다. 십자가가 로마식 처형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는 보도는 복음서 자체에 근거해 있다. 마가복음, 곧 최초의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법정에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신성모독”이라는 종교적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막 14:53-64). 이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졌고,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시키고 싶어했다(막 15:6-15). 마태는 마가를 베껴 쓰면서 빌라도 총독이 예수의 피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손 씻는 장면을 첨가했고, 나아가 유대인의 책임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 마가의 설명에 유대인 군중들의 외침을 첨가시켰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엄청난 유대인 수난의 근거가 됐던 그 무서운 외침은 이런 말로 되어 있다: “그 사람(예수)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마 27:25). [백성들 ‘전체’가 예수의 처형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이 말은 마태의 다듬질(elaboration)이다. 즉, 마태복음이 씌어질 당시 곧 주후 90년경, 유대인들과 유대계 기독교도들 사이에 있었던 고조된 긴장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다.] 요한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수의 원수들은 가장 흔하게 단지 “유대인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오랫동안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의 재판 전체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산헤드린(최고의회)에서의 야간 재판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신성모독’이라는 죄를 입증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고, 실제로 재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제자들이 그 재판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의 재판과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은 학자들이 보기에는 초대 기독교인들의 변증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기독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로마 제국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위협적인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여러분 자신이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치하에서 살았던 그리스도인이라고 상상해 보라. 운동의 핵심 인물인 예수께서 로마의 원수(怨讐)로 십자가에 처형되었기에 여러분도 정치적으로 위험한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고 비난받는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변호하겠는가? 또한 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세계에 예수 운동을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십자가 처형이 큰 걸림돌이었을 텐데, 선교를 위해 이를 어떻게 변호하겠는가? 여러분은 십자가 처형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었을 것이지만, “로마 총독은 그 처형을 원치 않았으며, 실제로 그는 예수가 무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자기 백성들과 그 지도자들의 주장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의 처형에 대한 책임 소재가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산헤드린”으로 알려진 유대인 공식 기구 앞에서 형식을 갖춘 재판이 열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유대인 대제사장과 그의 “어용 의회”에서 일어난 사사로운 청문회였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어용 의회는 로마가 지배하는 유대 지방 내의 문제를 다루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들은 결코 유대 민족을 대표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권력을 양도받은 소수의 막강한 엘리트 집단으로서, 유대 민족을 대표한다기보다 유대 민족의 압제에 대한 협력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 엘리트 집단은 예수를 위협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이유가 무엇이 었든, 적어도 “신성모독” 때문은 아니었다.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예수께서 사회적 예언자로서 당시의 지배 체제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단순히 영의 사람, 치병자, 지혜의 교사이기만 했다면 처형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사로잡힌 종교적인 사회적 예언자로서 추종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예수 당시의 세계에서는 이것만으로도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기에 충분하였는데, 전에 그의 스승 침례자 요한을 처형했던 것처럼, 당시의 당국자들은 체제 비판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지만 대중적 반란에 대해서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장 47-53절을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는 대중적인 반란이 일어날 기회를 주느니 예수를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볼 때 예수는 무해한 인물이 아니었다. 청문회 직전에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도발적인 행동을 취했다. 마가복음 11장 15-18절은 성전에서의 이 도발적 행동이 예수 체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종교적인 중심지였음은 물론이요,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였다. 간단히 말하면, 저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이 주도하고 있는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체제 전복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들은 옳았다. 그것은 예수께서 무장 반란을 선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회적·종교적 비전이 엘리트 집단도, 지배 계급도 없는 새로운 세계와 나라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자신을 ‘희생’시켜 죽은 것이 아니가 ‘순교자’로서 죽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편들었기 때문에 처형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는 이 세상의 왕국에 반대하였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입각한 대안적인 사회적 비전을 편들었기 때문에 처형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지배체제는 예수가 로마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예언하였기 때문에 살해한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치적 의미이다. 인용과 참고 출처: https://cafe.daum.net/a.o.w/kZLU/10?svc=cafeap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