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15 다시 낳아져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개인적으로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유대교인이 되면, 또는 기독교 교인이 되어서 교회생활을 잘하면 천국에 가게 된다. 라고 말씀하신 곳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교회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되거나, 천주교에 신부나 교황이 되면, 즉 직분을 가지면 천국에 들어 간다고 말씀하신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3:1-3절을 보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는 말씀에서 니고데모는 유대교인으로 살고 있던 중에 예수의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나, 성전을 정화하는 행적들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밤에 찾아와서는 놀라와 하면서 이런 일은 하나님이 보낸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말하자 예수님이 그에게 사람은 다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으로 천국 백성이 되려면, 그가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야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져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 질문하는 사람에 대하여도 살펴봐야 합니다.
이 사람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지금 기독교를 믿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당대에 유대 종교로 백성들을 이끌었던 시대에 오늘날의 국회 급에 해당이 되는 지도자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주님을 밤에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은 자기를 돌아봤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고는 자신의 신앙? 아니 자기 종교 생활에? 또는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서 그동안 자신들의 가지고 있던 믿음이나 신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여겨서가 아닐까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성경의 글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통해서 예수를 찾는 이러한 반응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여러 곳을 살펴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기도 하고 열심히 따르는 행동을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특히 요6장을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었을 때 사람들은 밤새도록 예수를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를 찾는 이유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육신의 문제(세상살이에 대한 문제들)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저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로 인하여 어떤 육신의 질병이나 먹음에 문제(떡에 관련 된 얻음)를 경험할 때, 그런 경험을 축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고 뭐가 뭐가 다 잘 될 것이라고.... 이를 목적하여 기독교 라고 하는 종교를 가지고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니 교회 목회 지도자가 예수는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라고 하면서 예수가 그런 분이시니 믿으라고 해서 사람들은 그 말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왔든지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만나야 하며 그 말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의 우리가 현재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따르며, 왜 하나님을 찾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 물질이나 먹을 것을 얻으려는 목적? 아니면 니고데모처럼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겠기에 입니까?
본문에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깨달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예수를 찾는 목적이 한가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현재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교회의 목사이거나, 장로 집사이던지, 혹은 부자든지, 가난하다든지, 새벽이든지, 낮이든지, 밤이든지, 주님을 찾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문제 때문이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그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 때문에 주님을 찾고 부르고 따라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따랐음에도 어떤 사람은 만나주시고 어떤 사람은 피하여 떠나가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따름(교회 다님)이 영적인 구원에 관함이 아닌 목적의 따름일 경우 그 어떤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진리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기독교인이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 나는 어떤 직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가 누구며, 밤에 왔던 사람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단도직입적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즉, 영적인 거듭남이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말씀은 네가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금 네가 니고데모이건, 유대인이건, 유대교의 국회의원이건,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나기 이전의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창세기 1-3장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지고 있지 않고, 사탄의 미혹하는 말을 들음으로 죄를 가지게 된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상태의 사람을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본문에서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된 사람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약속을(언약이라고도 말함) 하셨습니다.
약속이라는 것에는 오늘날로 표현을 하면 계약서를 쓴 것이고, 그 계약서에 양쪽이 싸인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고,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에 싸인을 하신 겁니다.
약속이란 지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과의 그 약속은 단순히 읽어보라고 하는 약속의 개념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오셔서 지금 니고데모에게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성취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성경을 기록하며, 선지자들을 보내기도 하시고, 미리 구원의 약속을 알려주신 대로 아들을 보내주시는 행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사람이 처음에 가진 죄의 문제를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에 죽는 행동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한 그대로 행하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오늘 영원한 생명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본문에 니고데모에게도 성경의 말씀을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반듯이 알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한 그 약속의 조항과 문항의 전체를 읽고 성령의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로 깨달아 전인격적으로 믿고, 그 약속에 자신이 동참한다는 싸인한, (예수의 하신 말씀을 마음에 소유한, (영접)을 한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람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하나님과의 약속에 대한 내용 전체를 보기도 전에 부분적인 조항만을 보고 싸인을 하게 되는데 이는 위험한 결정인 것입니다.
위험함이란 약속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해서 격게 되는 어려움입니다. 그러므로 다소 힘들 수 있지만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에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힘써서 알아야 합니다.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모여서는 하나님의 말씀(약속함의 내용)을 아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말씀을 듣는다. 먹는다.)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니고데모나 또 예수를 만난 여러 사람처럼 계약서에 싸인을 한자가 나중에 가서는 난 그런 내용이 있는지 잘 몰랐다든지, 나는 그런 말씀이 있는지 보지도 못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으로 기록해서 모든 만민에게 제공하시면서 너도 읽어보고 믿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거기에 싸인(예수의 하신 말씀을 마음에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찍이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와 믿는 목적이 오직 영혼 구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고, 성경이 그런 내용의 약속의 계약서라는 것을 알고 믿어져 그 약속에 자신의 것을 걸고 거기에 싸인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너를 낳았다, 또는 거듭났다. 중생했다, 새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 3장의 본문의 니고데모는 계약서에 전체를 읽어보지 않고 몇몇 조항 문항을 자기에게 성취시켜 달라고 싸인을 하려고 온 겁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거듭나야 한다.” 그 조항은 못 보았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부자 청년도 내가 어려서부터 믿었는데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주님을 찾아와서 물었을 때, 주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부터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지금 네가 현재 살고 있는 방향, 즉 유대 종교를 가지고 물질을 많이 모으는 일에 집착하고 그 목적으로 살고 있는 것에서 떠나, 붙들고 있는 것들에게서 떠나, 너를 영생케 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내가 알려 주는 대로 듣고 행하여야 한다고 알려주시자 (육신의 필요로 모아둔 전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버리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는 근심하면서 그 조항에는 싸인을 못하겠다, 그래서 돌아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독교 교인이든지 아니든지, 목사든지 집사든지, 평신도든지, 니고데모처럼, 부자처럼 살고 있다면, 우리도 거듭나야 할 대상입니다.
성경은 거듭나는 방법을 물과 성령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물과 성령으로라는 말은 예수님의 하신 말씀으로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행하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마음 안에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말씀으로 만나 그렇게 영접(가지는 행동)함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관심사가 영적인 생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깨달음의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의.식.주. 문제로 인해 육으로 살던 삶에서, 또는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의지하기 위해서 종교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모든 행하심을 마음 안에 깊이 생각을 하고 믿은(영접) 후, 그 말씀에 자신을 전전으로 믿고 맞기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그런 전 과정을 있게 하신 분이 성령이시기에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이라고 가르쳐주시면서, 그 약속을 믿게 한 전 과정에 의해서 영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것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 거듭난 영의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교회를 통해 거듭나려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까? 거듭난 사람입니까?
주님은 지금 이 본문을 통해서 내 말을 믿어 구원받은 자로 살려면 거듭나야, 바뀌어져야 한다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