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는 연봉 1천~1천5백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에서는 장기근속한 정직원 경비(청원 경찰 등)라면 연봉 7천~8천만 원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렇듯 노동의 양과 질은 거의 같지만 직장(소속)이나 연공(근속년수)에 따라 그 처우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는 현실은 한국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정교수와 시간강사와 일반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직원이 있는 이곳 대학에서도 볼 수 있는 부조리(?)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런 격차는 정당한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격차가 적정한가? 경비, 시간강사, 대학 행정직원의 직무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의 기준은 있는가? 다른 나라는 어떤가? 기업의 지불능력(수익성)이 허용하면 얼마든지 올려도 되는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동일 기업 혹은 공장 담벼락 안에서만 통용되는 원칙인가?
지금 한국 노조운동과 진보는 이 상식적인 물음 내지 부조리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어쩌면 고민조차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노동의 양과 질이 아니라, 소속에 따라 귀족이 되기도 하고 천민이 되기도 한다면, 사람들은 귀족이 되기 위해, 한마디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청년대학생들은 고시, 공시와 공기업, 대기업 입사 시험에 매달려 상당수는 고시 폐인이 되고, 대다수는 루저(loser)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공공기관, 공기업, 현대차, 은행 같은 직장의 비정규직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정규직 전환 투쟁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지금 벌어지는 교육경쟁의 상당 부분은 ‘노동생산성 향상(노동의 질 높이기)경쟁’이 아니라, 좋은 자리(직장) 차지하기 경쟁이다. 노동현장의 갈등의 상당 부분은 귀족 진입(전환) 투쟁이거나 귀족 자리 사수하기(정리해고 반대) 투쟁이다.
공장 담벼락 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주목하면, 정규직 전환 투쟁은 부당한 차별 철폐투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직무(노동의 질)의 사회적 가치나 노동시장 가격에 주목하면, 공장 안과 밖의 동일 직무간의 부당한 차별 유지 투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자동차나 은행이나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조치는 전환되는 당사자들로서는 큰 행운이분명하지만, 직무(노동의 질)간의 적정한 처우 격차를 유지하고, 산업차원의 동일노동•직무-동일임금을 실현해야 하는 고용노동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즉자적인 해법이 아닐 수 없다.
누리는 권리, 이익(지불능력)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의 실종
2013년 5월 27일 재벌닷컴이 주요 산업의 임금 수준을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자동차업(부품 제조업 포함)의 평균 연봉이 8천46만원(1인당 GDP의 3.1배)으로 가장 높았고, 정유업(7천883만원), 은행업(7천466만원, 시중은행 및 지주회사 포함), 증권업(7천389만원), 조선업(7천377만원), 가스제조업(7천272만원), 보험업(6천687만원) 철강업(6천671만원) 통신업(6천320만원), 항공업(6천183만원) 순이었다.
주요 업종 직원 평균 연봉 및 산업 특성(2012년 기준)
업종
직원수(명)
평균연봉(만원)
1인GDP(2,560만원)배수
산업특성 -필자
자동차
143,179
8,046
3.1
산업특성(글로벌 과점)
정유
8,409
7,883
3.1
산업특성+시설기준
은행
98,468
7,466
2.9
보호(진입) 규제-license
증권
30,308
7,389
2.9
보호(진입) 규제-license
조선
63,546
7,377
2.9
산업특성(글로벌 과점)
가스제조
6,165
7,272
2.8
산업특성+시설기준
보험
35,683
6,687
2.6
소비자 보호? License?
철강
47,127
6,671
2.6
산업특성(장치산업)
통신
47,157
6,320
2.5
산업특성+보호(진입) 규제
항공
27,969
6,183
2.4
산업특성?
※2012회계연도 기준. 증권·보험은 2011회계연도 기준.(자료:재벌닷컴)
그런데 이 산업의 특성이랄까 지불능력(수익)의 원천은 어떨까? 자동차, 조선산업은 엄청난 자본이 투여되는 글로벌 과점산업인데, 다행히도 성공한 글로벌 기업(슈퍼갑?)이 좁은 한국 땅에서 생산 활동을 한다. 정유업, 철강, 가스제조, 항공은 엄청난 설비/장비 투자가 요구되는 장치 산업으로 역시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은행, 증권, 보험, 통신, 항공업과 공공기관(금융공기업 포함)은 과당경쟁을 막아주는 규제(진입장벽)가 있다. 그런데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자동차산업도, 정유, 가스, 은행, 증권, 보험, 통신, 항공 산업도 상당히 치열한 경쟁 구도 하에 있다. 고용유연성도 적어도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무엇보다도 그 처우는 노동의 시장가격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공공기관은 어떨까? 공공기관 경영 지표를 공개하는 Alio.go.kr에 의하면 공기업 평균은 7,200 만원, 준정부기관 6,180 만원, 기타 공공기관이 5,980 만원이다. 그런데 금융공기업은 이 보다 훨씬 높다. 한국거래소 1억1,400만원, 한국예탁결제원 1억100만원, 한국투자 공사 9800만 원 등이다.
이 단체협약 중에는 ‘조직개편과 정원 조정 때 노조와 사전협의’ ‘조합원 의사에 반하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불가’ ‘1%의 초저금리로 주택자금 대출’ ‘대학 입학금 및 등록금 무상 지원(해외 대학일지라도)’ ‘단체협약을 한 노조를 유일한 교섭단체로 규정(제2 교섭단체 불인정)’ ‘정년퇴직 조합직원의 직계가족 우선 채용’ ‘노조 전임자 최우선 인사처우 보장’
‘어떤 명목과 이유로도 종전보다 임금 저하 불가’ ‘10년 이상 장기근무시 안식휴식년제 시행’ 등 상식에 반하거나, 심지어 노동법 등 법률에 반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지불능력은 민간 중소기업과 달리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얼마든지 지불능력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봉(납세자)을 빨든, 협력업체인 을과 병을 빨든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하는 민간 기업은 독과점이 아닌 이상 시장에 의해 어느 통제가 되기에 노사 자율협약에 의해 무엇을 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공공 기관이나 독과점 공기업 혹은 독과점 민간기업은 다르다. 근로조건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통제나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현대판 귀족이 될 수밖에 없다. 스위스는 민간기업이라 할지라도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격차를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법(1:12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2013년 11월 24일에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공무원의 경우는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위임금이나 민간중소기업 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삐가 풀린 민간대기업, 공기업의 평균을 기준으로, 93%니 90%니 85%니 하기에 민간대기업에 업혀간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4월 28일 안전행정부 발표(관보)에 따르면 공무원의 월평균 기준소득액은 435만원, 연 5,220만원(1인당 GDP의 2.04배)이다. 이는 초과근무수당 등을 모두 합한 연봉을 100만 명 안팎의 전체 공무원 숫자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2013년 1월 기준,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 평균 월급은 316만8,000원(연봉 3,800만원)이다. 종업원 수 300인 이상 기업의 직원 평균 연봉은 5,860만원(월 488만원ㆍ2013년 1월 기준)이다.
이렇듯 공무원의 경우 연봉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1인당GDP를 기준으로 선진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높다. 게다가 고용안정성과 연금 수준은 민간 기업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적으로 올해 은퇴하는 공무원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210만원이다. 지난 1년간 연금 수령 경험이 있는 고령층은 481만2천명인데, 연금수령자의 82.8%는 월평균 연금수령액이 50만원 미만이고, 150만 원 이상인 수령자는 7.2%에 불과하다.(경제활동인구조사청년층(만15~29세)부가조사, 2013.7.19 발표) 물론 이들 대부분은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퇴직자들 일 것이다. 공무원 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소득재분배 기능도 없다. 철저히 소득비례형이다. 또한 연금 수준은 직전 3년간의 평균 임금(불입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 한국은 봉건시대처럼 가난한 국민들이 가장 부유하고 안정된 공무원들의 풍족한 노후를 책임지고 있다. 공무원 연금 적자 분을 세금으로 메운 액수가 이명박 정부에서 8조원이고, 박근혜 정부 15조원, 그 다음 정부 31조5천억 원이 예정되어 있다.
독일, 스웨덴과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
한국의 고용임금 체계의 문제는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명백하다. 독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주요 직업직종별 GDP 대비임금 순위는 아래와 같다. 1위 컨설턴트(1.87배), 2위 은행업(1.85배), 4위 비행기조종사(1.76배), 6위 통신산업종사자(1.74배), 8위 자동차산업종사자(1.74배) 순이다. 독일의 1인당 GDP는 32,280유로고, 기본적으로 직무직능급 체계를 갖고 있다. 고임금 직종이라 하더라도 1인당GDP의 1.7~1.9배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은 공무원조차 2배를 넘고, 자동차, 정유, 은행, 증권은 3배 내외다.
최고 선망의 대상인 한국의 대기업, 금융산업, 공공부문 임직원의 상당수가 ‘아파트 경비’처럼 ‘노동의 질’이 결코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처우를 누린다는 것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스웨덴 역시 직무직능급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직업이 1인당 GDP의 1~2배 수준이고, 처우 수준은 회사의 지불능력이나 교섭력의 함수가 아니라 노동의 질(직무 성격)의 함수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의 직무와 비슷한 금속공과 조립공의 임금은 대략 30세 전후가 임금피크이고, 이 역시 1인당 GDP의 1.3~1.4배를 넘지 않는다.
신분 계급 사회에서 직장(소속) 계급 사회로!
한국의 임금 체계는 직무직능급, 즉 노동의 질과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기업•산업의 지불능력(수익성)과 종사자(노조 등)의 교섭력에 비례하며, 강한 연공급(호봉제) 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 수준 역시 우리의 생산력(1인당 GDP)에 비해 훨씬 높다. 고용 역시 국가나 강력한 노조가 보호하는 부문과 시장에 내 맡겨진 다수 불안정한 부문이 병존하며, 상호간 이동성이 극히 낮다. 격차가 커지면서, 이동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사회는 신분 계급 사회에서 직장(소속) 계급 사회로 변모하였다. 모든 영역에서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기업•산업의 수익성과 안정성은 독과점이나 보호(진입)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살인적인 좋은 소속(직장) 차지하기, 즉 관문 통과 경쟁을 유발하지만, 교육의 본령인 생애주기 전체에 걸친 노동생산성(실력) 향상 노력, 즉 평생학습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러우면 출세하라고.” 한국의 큰 격차(특권, 특혜와 가혹한 배제, 차별)는 오랫동안 자기계발과 좋은 학벌 쟁취(학력향상) 및 고학력화(높은 교육열)의 강력한 동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격차로 인한 패악이 월등히 크다.
단적으로 하는 일에 비해 너무나 높은 권리, 이익을 누리며, 유사시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자동차, 정유, 철강, 공기업 등의 생산직은 청년층 신규 채용 자체가 극히 드물다. 늘어나는 물량을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을 구축하는 설비・장비 투자로, 외주 하청으로 소화하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기회는 기존 종업원(노조원) 자녀에 대한 가산점제를 통해 대물림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대부분의 청년층은 이런 좋은 곳에 취업하지 못한다.
2013.7.19 발표 자료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인구는 951만2천명(15세 이상 인구 4,151만9천명의 22.9%임)인데, 취업자, 실업자를 포함한 경제활동인구는 425만3천명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중퇴자의 첫 일자리를 산업별로 보면, 저임금 산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40.5%),「도소매‧음식숙박업」(26.0%),「광업‧제조업」(17.6%) 순이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취업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신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해도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
한국의 비교우위 산업・기업의 경우, 대체로 ‘하는 일’(노동의 양, 질)에 비해, 고용임금 수준이 월등하기에 노동시간 단축을 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를 않는다. 이것은 같이 노동시간을 단축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미국공장의 차이가 한국의 일자리 문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현대자동차 2013년 3월부터 주-야 10/10시간제를 8/9시간제로 바꿨다. 그로 인해 새벽 1시10분부터 6시40분까지 심야노동이 없어졌다. 연간 노동시간은 4,178시간에서 3,699시간으로 479시간이 줄었다. 그런데 늘어나는 일자리는 없었다. 일자리를 늘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물론 임금 수준도 떨어지지 않았다.
현대자동차가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직원 평균 연봉은 2006년 5,700만원, 2007년 6,660만원, 금융위기로 잔업특근이 대폭 줄어든 2008년은 6,800만원, 2009년 7,500만원, 2010년 8,000만원, 2011년 8,900만원, 2012년 9400만원 이다. 이는 한국의 명목 국민소득의 3.5~4배 수준이다. 그나마 여기에는 “20년 이상 근속자 해외여행 지원과 자녀 3명까지 전액 지원하는 대학 학자금”은 빠져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자동차 조지아 공장은 울산공장처럼 주야 10/10 2교대제를 하다가, 앨라배마 공장은 2012년 9월부터 3교대제(8/8/8시간)로 근무 형태를 전환하였다. 조지아 공장은 2011년 6월 3교대제로 전환함. 3교대제 전환으로 앨라배마 공장은 877명, 조지아 공장은 823명의 신규 고용을 늘렸다. 생산량도 현대•기아차 합치면 60만대에서 72만대로 20% 늘어났다. 반면에 3교대제로 가면서 임금은 25% 감소하였다. 주 50시간(연64,200달러)에서 주37.5시간(연 48,800달러)로 24% 감소하였다. 2011년 미국 1인당 GDP가 48,147달러라는 것을 감안 하면 이들이 받는 임금은 미국의 1인당 GDP의 1배 수준이다. 이는 미국 15년 경력 교사들의 평균 연봉 수준이며, 미국 4년제 대학 교수 연봉(10만 달러 이하라는 것은 확실하다)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듯 한국 비교우위 산업의 임금 수준 및 체계(연공급과 단체협상)는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량 증가로 연결되기 어렵게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량 증가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단축한 노동시간만큼 ‘파트타임’ 노동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노조와 진보는 임시직, 일용직, 시간제를 비정규직으로 통칭하면서, 없어져야 할 어떤 것으로 규정하고, 채용은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이나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일 것이 있다면 고용임금 상의 부당한 차별 철폐와 고용임금의 유연성, 공평성(직무직능급과 연공서열 철폐), 연대성 등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슈퍼갑’이나 ‘갑’적 지위를 갖고 있는 공공부문은 완전히 엉뚱한 것(비정규직의 정규직화)으로 솔선수범(?) 하고 있다.
신의 직장, 인간의 직장, 천민의 직장, 짐승의 직장!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슈퍼갑이나 갑 부문에 포진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조합원수 50인 미만 노동조합은 51.3%(2,627개)를 차지하나 조합원수는 2.5%(43,317명)에 지나지 않고, 조합원 1,000인 이상인 노동조합 수는 3.9%(199개)에 불과하나, 조합원수는 전체의 71.5%(1,229,963명)를 차지한다. 물론 이는 조합원이 몇 만 명이 넘는 초기업 노조(금속노조, 금융노조, 전교조 등)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진짜 아픈 것은 부문별 조직률 차이다. 통계에 의하면 민간부문 조직률은 8.9%(조합원수 1,459천명), 교원부문은 조직률은 18.8%(조합원수 74천명), 공무원부문은 조직률은 59.0%(조합원수 187천명, 노조 수 100개)다. 공무원부문은 조직대상이 31만6천명이다.(2011년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자료)
한국 노조와 진보는 지불능력(수익성)과 교섭력이 허용하면 신의 직장을 만드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한다. 하는 일과 누리는 처우의 균형 개념도 가치생산생태계 개념도, 산업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연대성) 개념도, 직무직능급(공평성) 개념도 없거나 거부한다. 자신들의 높은 근로조건을 뒷받침하는 지불능력(수익 모델)의 본질도 직시하지 않고, 그저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철학을 견지하는 한, 양극화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없애면 없앴지 그 반대 일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슈퍼갑이나 갑 기업의 임직원들이 ‘하는 일(노동의 질)’에 비해 훨씬 많은 잉여를 가져오면, 본의 아니게 을-병 등을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갑' 기업의 자본과 노동이 창의와 열정을 발휘하여 생산성을 올려 그 성과를 나누는 좋은 방법도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은 자본의 몫을 가져오거나(노동 측 전략), 고용의 양을 줄이거나(자본측 전략), 노자가 합심하여 '을'의 고혈을 빠는 쪽으로 가기 십상이다. 노동 측 전략의 핵심인 자본의 몫을 가져오는 방법은 초과이윤이라면 몰라도, 적정 이윤까지 침해하려 하면, 국내 투자를 안 하거나, 노동 절약적 설비・장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거나,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더 가열차게 털거나 전후방 협력업체, 이른바 ‘을’을 더 가혹하게 빨 수밖에 없다. 갑과 을의 힘 차이도 크게 나고, 공정거래 감시 장치도 허술하고, 소비자 보호 장치도 부실한 한국에서는 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더욱이 한국은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10대 비교우위(수출) 품목-자동차,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휴대폰, LCD 등-이 수출의 60% 내외를 차지하는데서 보듯이, 산업구조상 갑과 을의 힘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다. 제도적 독과점을 누리는 공기업도 힘센 ‘갑’이다. 각종 규제, 처벌권을 쥔 공무원은 슈퍼갑 중의 슈퍼갑이다.
슈퍼갑이나 갑 기업의 노동이 '신의 직장'을 만드라, 미필적 고의로 '을'의 고혈을 빨면 '을'은 생존을 위해, 혹은 ‘인간의 직장’이라도 만들기 위해 병을 가혹하게 빤다. 병은 ‘천민의 직장’이라도 만들기 위해 '정'을 가혹하게 빤다. '정' 쯤 가면 이 곳은 ‘짐승의 직장’이 된다.
독과점 이익이나 과당경쟁을 막아주는 진입장벽이 주는 이익 위에 올라앉아 있는, '갑'의 조직노동(진보의 주력 부대)은 비루하게 생존하는 '병' '정'의 노동과 자본을 비난한다. 양극화 해소 운운하며 최저기준(최저임금 등)을 확 높여 비루한 존재들을 쓸어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비루한 존재들의 상당수가 노동시장 바깥으로 내 쫓긴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초 서울 도심(청계천 등) 판자촌을 철거하여 지금의 성남시(광주대단지)나 난곡, 봉천동 등지로 내다버린 위정자들의 발상과 오십보백보다.
요컨대 ‘갑’이 ‘을’에게, ‘을’은 ‘병’에게 모순을 전가하면, 가치생산사슬의 말단부에 있는 '병'과 '정'에서는 사람들을 격분하게 만드는 노동의 참상이 일어난다. 최저임금만 겨우 주거나, 근로기준법 위반 등 자본의 야만적인 작태가 횡행한다. 60세 정년연장법이 슈퍼갑이나 갑의 노동에게는 큰 혜택이지만, 비기득권인 청년과 비정규직을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이유이다. 너무 높은 이동성(고용유연성), 자영업 과잉, 프랜차이즈(24시간 편의점, 남양유업 등)문제, 실망 실업, 고시공시 열풍, 과도한 대학진학률의 뿌리다.
노조운동과 노동3권이 탱자가 되다.
원래 노동조합을 떠받히는 핵심 지주는 중세 길드의 '장인/기술자의 자조와 독점'의 정신과 마르크스가 설파한 '노동자 처지 균질화, 궁핍화' 이론과 '자본-노동관계 자체를 박살내려는 혁명투쟁 개량화 전략' 등 일 것이다. 노동공급자들의 독점권(단결권과 단체교섭권)과 업무방해권(단체행동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이유는 노동자는 약자고, 시장 경쟁의 압력에 의해 처지가 균질화(연대성의 대전제), 궁핍화하기에, 노동3권이 다수 노동자, 민중의 처지, 조건을 개선하여, 노동계급과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이런 기능을 하는가? 노조원은 약자가 맞는가?
설상가상은 민주노총 계열 노조 상급단체의 부동의 전통은 전국 혹은 업종별 투쟁 전선의 관점에서 단위 사업장 투쟁을 보는 경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해당 업종 투쟁의 선봉(기업)이 있고, 전체 전선 유지를 위해 버텨줘야 할 투쟁이 있다. 이런 위대한(?) 사명 내지 방파제/토치카 사명을 부여 받은 사업장은, 노조의 ‘오버’로 인해 종종 사생결단의 투쟁이 벌어지거나, 장렬한(?) 옥쇄투쟁이 벌어져서 노사 양측이 엄청난 피해를 입곤 한다.
개인/개별 보다는 전체/진영을 훨씬 강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 정통 좌파(당시 스탈린과 마오쩌뚱)의 전략적 사고가 한국전쟁을 낳았고,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안겨주었듯이, 장기 대형 노조 투쟁치고 전선적, 진영적 사고로부터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 받지 않은 곳이 별로 없었다. 1990년 전후한 현대중공업, 서울지하철, 2000년 전후한 대우자동차, 2009년의 쌍용차, 2011년의 한진중공업이 그랬고, 2012년 4월부터 지금까지 파업을 지속하고 있는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도 그 조짐이 역력하다.
단적으로 노사갈등의 핵심 쟁점인 ‘인원정리시 노사 합의’ 조항 존치(단협) 요구는 1990년대 중반 노사 분규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 ‘인사위원회 노사동수 구성’ 요구와 완전히 같다. 이는 세계적으로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정규직 고용 보호 조항(근로기준법 제24조)으로도 모자라서, 노조의 동의 없이는 인원 정리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최소한 수십 개월 치의 명퇴금을 주지 않고는 인원 정리를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과당경쟁(?)과 파산을 막는 여러가지 제도적 보호 장치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명퇴금에서 보여주듯이 돈=자산 자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금융산업(증권, 은행, 보험 등)은 일반 산업/노조와 격 내지 계급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근로조건도 월등하고, 노조의 요구 수준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남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이 공무원과 금융산업의 본질이라면, 이들의 지나치게 높은 권리, 이익은 돈을 맡긴 사람(고객)이나 이자 또는 세금을 내는 사람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노사 합의 조항’ 존치 투쟁을 결코 곱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슈퍼갑과 갑의 지나친 호강은 대체로 ‘을’과 ‘병’들의 희생의 산물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골든브릿지와 금융산업 노조의 높은 요구 수준을 보면, 왜 지난 대선 때 정리해고를 전제로 한 고용보험 강화 공약이 자취를 감추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실제로는 정리해고 요건 강화--이 진보의 핵심 고용노동 슬로건으로 됐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한국 노조의 대부분이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의 정신과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국에서 노조운동이 살려면, 또 서구처럼 정치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려면 ‘선망의 직장’ 혹은 ‘신의 직장’ 임직원들이 누리는 ‘부’와 ‘권리’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다시말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거쳐서 생긴 것인지? 아닌지? 지속가능한지=재생산 가능한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생산한 가치와 누리는 처우가 서로 조응하는 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도대체 뭐 하는 존재인지? 그 사명(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확신컨대 지난 30년 동안 “단결하면 힘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신념으로, 갑-을-병-정 가치 생태계 개념도, 미래 세대의 기회(일자리 나누기) 개념도, 우리의 생산력 수준 개념도 완전히 접어두고, 그저 지불능력과 교섭력이 허락하는 한 올리고, 따내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한, 오래지 않아 대가 끊기거나,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제 한국 노조운동과 진보운동은 말 머리를 돌려야 한다. 고용임금 사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고용임금 체계에서 원칙과 상식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 노조와 선진국 진보의 정신과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