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룽디룽 / 德田 이응철
과일향이 나는 아파트가 좋다.
여기저기 최첨단이란 선전으로 신축아파트들이 유혹하지만, 복숭화향이 나는 이곳이 한없이 좋다. 뽀얀 새벽 귀를 나발통처럼 열어놓고 각종 상상에 사로잡혀 약숫터처럼 인정을 퍼마시는 새벽이기에 요즘 더욱 좋다.
-누가 다녀간 것일까?
-생전 그런 일이 없던 내게 무엇을?
오백여명이 넘게 모여 사는 후평 아파트에 끼어든 것이 벌써 강산이 한번 변화하려든다. 잔뿌리가 내리고 점점 잎이 푸르러져 제법 나도 그늘을 만들어 일조를 하니 내가 봐도 대견할 뿐이다. 팔자소관으로 그림과 글을 예쁜 시화로 꾸미는 게 즐겁다. 아예 아파트관리소에서 설치대까지 제공해, 한껏 볼거리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게 일상인데, 한 달 전 검은 물체가 현관을 기웃거려 생전 처음 불안까지 했다.
옆 층엔 견딜 수 없어 이사 온지 일 년도 안 되어 그옇고 문을 박차고 다시 익스프레스를 불러 이삿짐을 거두어 가는 집도 얼마 전 발생했다. 윗층 독거노인이 만보기를 달고 새벽부터 온통 서성이기 때문이란다. 유행처럼 번진 층간 소음 사건이 우리 아파트에까지 몰려온 것이다. 처음엔 올라가 소음이 시끄럽다고 정중히 타협을 시도 했으나, 미수(米壽)의 할아버지 노욕은 막무가내로 들은 척 만 척이다. 강공책으로 법정싸움까지 비화할 직전에 이란격석(以卵擊石)임을 알고 결국 중이 절을 떠나 간 셈이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마녀사냥을 하며 연판장을 돌리던 일도 있다. 마녀사냥으로 택시 운전사를 내쫒으려던 열혈단신이 여론에 결국 부메랑이 되어 뭇매를 맞고 도망 가는 해프닝도 있다. 피아노 소리로 싸우는 윗동네도 있고, 악마구리 끓듯 반려 견 짖는 소리에 잠 못 이룬다고 고소한 할머니 또한 존재하는 아파트이다.
한 달 전 어느 날이었다.
처음으로 우리집 앞에 검은 물체가 있어 걸려 놀라웠다. 불안했다.
-???
조간신문을 맞으러 새벽 문을 열고 나가니 디룽디룽 매달린 검은 물체가 나를 놀라게 했다. 얼핏봐도 무게가 나가지 않고 가볍다. 누가 왜 이른 새벽에 걸어놓고 간 걸까? 궁금증이 나래를 편 새벽이었다.
조심스럽게 아내와 열어보았다. 갓 밭에서 채취한 싱싱한 상추, 쑥갓이 얼굴을 쏘옥 내밀며 반긴다. 아니 농삿군이? 찬물에 세수한 누나얼굴처럼 채소는 마냥 싱그러웠다. 일단 마음이 놓였다. 고마워 즐거운 비명을 지른 날이었다. 때 아닌 쌈으로 조반을 배불리 먹은 아침을 잊지 못한다. 며칠 후, 두 번째 세 번째 디룽디룽이 우리집 현관 문고리에 단골손님으로 그네를 타는 게 아닌가?
-누구일까? 몰래 카메라가 있었으면-.
더 희한한 것은 발 벗고 왠지 고마운 장본인을 찾아 나서고 싶진 않았다. 그 후 불규칙하게 누군가가 새벽이면 우리 현관을 다녀가는 게 일상으로 굳어질 무렵, 설레임이 그리움에서 행복으로 자리잡을 때였다.
뻔뻔하다고 아내에게 핀찬을 들은 어느 날, 새벽에 보초를 서기로 했다. 현관 밖 윗층 오르는 계단에서 아래를 훔쳐 본다. 아뿔싸! 심중에 친절한 여자 노인회장이리라 했던 선입견도 크게 빗나갔다. 기우였다.
아니 전혀 은인의 범주 후보에도 오르지 않던 억센 남정네가 디룽디룽 그네를 태우고 돌아서는 게 아닌가?
앞 동에서 늘 내가 아파트 모퉁이에 게시한 시화를 묵언으로 읽던 중장비 운전기사인 무언거사(無言居士)시다. 언젠가 아들 교회 뒤 철탑 부근을 텃밭으로 가꾼다고 귀띔 한 적이 있었다. 상추, 쑥갓 속에 애호박도 한 개 반기고, 어떤 때는 가시가 돋은 조선오이도 디룽디룽 그네를 타며 소리치는 게 아닌가!
두 달째 되던 어느 날, 나 역시 분연히 일어났다. 재래시장에서 노란 참외가 다섯 개에 오천원인데 꿀맛이었다. 그 날 나 역시 싼타가 되어 두봉지를 사서 한봉지를 앞동 209호에 몰래 디룽디룽했다. 마치 주인한테 들키면 안된다고 참외서리하던 유년기처럼 소리없이 계단을 내랴왔다. 비가 오는 날엔 커피에 함께 드시라고 호밀빵도 디룽디룽했고, 유난히 갈치가 풍년일 며칠 전에는 갈치 어장을 한다고 마음을 서리서리 담아 보내면 다음과 같이 메아리가 온다.
-회장님은 답려를 안하셔도 대접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시니까!
장미의 계절은 디룽디룽속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디룽디룽을 발견하고 고마움에 뚝뚝 흐르는 문자를 주고 받을 때 진정 행복하다. 까만 꽃씨처럼 가슴에 행복이 심어진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더하다. 농장도 없는 나의 경우 주로 공산품 농장을 가지고 있다고 능청맞게 신소리를 치며 문자를 보낸다. 좋은 이웃 덕분에 무공해 채소로 벌써 몇 달 째 장복(長服)하니 어느새 몸이 풍선처럼 가볍다.
요즘은 제법 타협까지 한다. 두 식구라 너무 많으면 시들어 죄송하다고-. 내일은 부친 기제사라 고향에 가 빈집이라고-, 그런 청원 때문인지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디룽디룽한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면 지금쯤 현관 밖에 서성일 산타 L씨가 뇌리를 온통 차지한다. 아니 은근히 기다리기까지 하니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행복의 전도사 디룽디룽이 있는 아파트가 좋다. 태양의 계절 칠월이 두렵지 않다.(끝)
<약력>
- 김유정문학공모 최우수(‘95)
-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96)입상
- 수필과 비평지 신인상(‘97)
- 강원수필문학상(‘14.11)
- 제 9회 백교문학상 수상
- 강원수필문학회장 역임, 현 강원수필문학고문
- 수필집-어머니의 빈손(2008) 바다는 강을 거부하지 않는다.
- (2011) 달을 낚고 구름밭을 갈다(수필화집)(2014)
- 감로개화송(甘露開花頌) 수필화집 발간(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