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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는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 있습니다. ‘루이스 토마스 상’입니다. 1993년 미국 록펠러대학이 제정한 이 상은 과학과 과학의 철학을 더 넓은 사회에 솜씨있게 전달한 저서의 저자에게 수여되는데, 선정위원회는 과학을 인문학과 연결한 아주 드문 사람들을 발굴하여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들에게 시인의 경지에 이른 과학자(Scientist as poet)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수여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15명의 수상자가 있으며, 그 중에 노벨상 수상자는 넷이라는군요.
작년 137억년 우주의 진화 강의의 미토콘드리아편 기억나십니까?
박문호 박사께서 거의 20여년전에 구입하신 누렇게 바랜 <세포라는 대우주> 책의 내용 중 백미에 해당하는 '생물체로서의 세포기관' 이라는 유명한 Chapter를 스캐닝해 오셔서, 파란 볼펜으로 밑줄쳐 놓으신 루이스 토마스의 명 문장들을 가슴 떨리게 읽어 내려가시던 모습을….
그 강의를 들으면서 실제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을 받았던 글입니다.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받은 이 책의 한글판은 십수년전에 이미 절판되어 구하고 싶
어도 구할 수가 없었는데, 다시 번역하여 출판이 추진되고 있다니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미토콘드리아에 관한 부분 발췌
지금까지 어떤 새로운 지식에 의해서도 우리들이 정말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경이와 경악은 있었지만 공포는 아직껏 없었다. 공포를 느끼기엔 아직 이를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바로 눈 앞에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세포기관에 관해 알려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어떤 위험을 느낄 수가 있다.
미토콘드리아 속에 있는 리보솜도 박테리아의 것을 닮아 있어서 동물의 리보솜과는 다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속에서 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고 세포의 복제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복제를 이룩한다. 그들은 난자로부터 신생아로 전해진다.
보편적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세포에게 ATP를 공급하기 때문에 또는 광합성 장치를 갖추지 않은 세포에게 탄수화물이나 산소를 마련해주기 때문에 붙들려서 노예가 된 생물체로 인정되고 있다.
계산할 수는 없지만 건조량으로 볼 때 미토콘드리아 양은 나의 몸의 나머지 양과 맞먹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인체에서 수분을 제외하면 미토콘드리아가 50%가까이 차지한다는 설명) 이렇게 보면 나는 호흡하는 박테리아의 대단히 커다란 움직이는 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박테리아(미토콘드리아)가 그들의 동료들을 즐겁게 하며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세포핵과 소기관과 뉴런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계를 운전하고 지금 이 순간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의 주체성에 대한 전면적인 의문이 생겨나며 또한 그 이상으로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의 문제가 있다...
種의 개량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만족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위엄을 갖추려 해도 허사이고 그러한 것은 지키려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다. 그들은 그곳에 있어서 나의 세포질 속을 돌아다니고 나 자신의 육체를 위해서 호흡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타인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서로 타인처럼 느끼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같은 생물체이고, 정확히 같은 생물체가 갈매기나 고래나 해변의 사구에 돋아난 풀이나 해초나 집게류 따위의 세포 속에 들어있는 것이고,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가면 나의 집 뒤뜰의 너도 밤나무의 잎사귀나 그 뒤편의 울타리 밑에 서식하는 스컹크 일족이나 창문에 앉은 파리의 세포 속에도 있는 것이다. 그들을 통해 나는 다른 것들과 연결돼 있다. 나는 도처에 언젠가 이사간 가까운 친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식을 집중시키면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들에 대해서 좀 더 알 수만 있다면 더욱 나아가서 그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들 몸의 동조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음악을 설명할 새로운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https://civil58.tistory.com/2638
The Lives of a Cell
Notes of a Biology Watcher
by Lewis Thomas
細布라는 大宇宙
한 生物學者의 觀察記錄
自己라고 하는 귀중한 개념 전체가 하나의 神話인 것이다.자기라고 하는 것은 놀랍고 오래된 자유의사를 가지며.自由企業的이며, 自律的이며, 獨立的이며, 격리된 自己라는 섬인 것이다.
우리들은 아직 이 신화를 밀어젖힐 만큼 강력한 과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 蓋然性과 可能性에 대하여
신체조직이 가지는 가장 확실한 성벽(性癖)은 안정과 평행을 향하는 것이다. 인간을 동요하기 쉽고 과오를 범하기 쉬운 기묘한 장치처럼 간주해서, 언제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감시와 수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곡해(曲解)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갖가지 정보수단을 통해서 가장 빈번하고 가장 감명 깊게 이야기되고 있는 주장인 것이다.
질병이란 건강 유지에 부주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부단한 주의를 게을리 했다는 이유만으로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질병, 특히 무서운 질병은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여서 그것을 예방할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껏 알려지지 않은 중대한 비밀이 있다. 그것은 대개의 병은 자연히 좋아진다는 것이다. 실지로 대개의 병은 아침까지는 전보다 나아져 있는 것이다.
- 진정한 健康
율동적인 소리는 다른 그 무엇의 要點만을 다시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다른 그 무엇이란 原始의 追憶,다시 말하면 原始의 混沌의 渦中에 있었던
非生命的이고 무질서한 물질들을 믿기 어려울 만큼
질서가 있는 생명의 舞踊으로 변형시킨 기록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음악
인간은 에너지를 전환시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추적하고 가감(加減)시키면서 폭발시켜 방출함으로써 삶을 영위하고 있다.인간이 가진 언어의 탁월성은 그것이 우리들이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지 않도록 예방해 주는 일인 것이다.
- 情報
단어(單語)는 그 자체가 경이(驚異)이다.
어느 단어도 그 용도에 맞도록 완전히 고안되어 있다.오래되고 강력한 단어일수록 막(膜)으로 둘러싸여 있다.하나의 낱말로 이루어진 詩처럼 몇 층이나 되는.다른 의미로 싸여 있는 것이다.
어떤 단어일지라도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없다.단어는 필요에 따라서 언어 속에 나타나게 된다.때에 따라서는 낯익은 단어가 갑작스레 낯선 것을 의미하도록 변형되는 경우도 있다.
신조어(新造語)는 대개가 전부터 있던 다른 단어로부터 만들어진다.언어의 창조는 옛 것을 남겨 놓는 보존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거의 낭비가 없다.
새로운 단어가 오래된 단어로부터 개화(開花)할 때는 그것과 판별하기 어려운 향기,즉 일종의 비밀처럼 원래의 의미가 남는 것이 통례이다.
- 각양각색의 단어
나는 지금까지 이 지구를 일종의 생물로 보려고 해왔다.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구는 너무 크고, 복잡하고, 너무나 많은 부분이 뚜렷한 관련성 없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나는 생각했다.만약 이 지구가 생물을 닮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닮았을까?그때, 만족할 만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지구는 하나의 세포와 꼭 닮은 것이다.
우리들은 세포핵(細胞核)속에 DNA를 간직하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언제인지는 몰라도.우리들의 원시세포가 몇 개의 원시 생물들이 이어져서 생긴 공생생물(共生生物)과 융합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게놈은 자연계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갖가지 사건들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어서, 모든 행동에 대한 지침을 부여하는 카탈로그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이 잘못 생각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몇가지 있다.우리들이 아는 한, 생물 상호간의 관계는 대개 기본적으로 협조적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공생관계(共生關係)에 있다
적과 마주쳤을 경우에도 생물사회에 있어서는 대개 무승부로 끝나버린다.한 쪽이 경고하는 신호를 발하면 상대방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한 종류의 생물이 다른 종류의 생물을 병들게 하는 일은, 양자가 오랜 친교(親交),길고 친밀한 共同生活을 보내고 난 뒤가 아니면 생기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는 잡다한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으나,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닮았다는 점이며 이 지구상에 고독한 생물은 없다.모든 생물은 어느 의미로는 서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남에게 의존하고 있다.그들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 밀집해서 생활하면서.상호 간에 먹이를 제공하고 환경을 지탱하고 있다.
공기 속의 산소는 식물 속에 살고 있는 葉綠體의 호기(呼氣)인 것이다.유전적으로 무관한 세포들을 섞어서 組織培養을 하면 종(種)이 차이를 무시한 채 융합하여 잡종세포군(雜種細布群)을 형성하는 것이 자연적 경향이다.염증과 면역이야말로 우리들 개개인을 별개의 사람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고안된 강력한 메카니즘인 것은 틀림없다.
- 초읽기에 대한 느낌
'非技術'이라고 불러야 옳을 큰 분야가 있다.
이것은 醫學이 질병의 자연적 경과 혹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이 능력이라는 척도로는 측정할 수 없는 사람을 돌보는 분야를 가리킨다.
그 다음에는 '半技術'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절한 일종의 기술이다.
이것은 어떤 질병의 진행에 대해서 별다른 손을 쓸 수 없을 때
無氣力化되는 영향을 보충할 목적으로 사후에 실시하는 여러가지 조치를 말한다.
이것은 질병에 대해서 보충하기 위한, 또는 죽음을 연장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수술, 방사선요법, 화학요법 따위 癌을 처치하는데 쓰이고 있는
대개의 일은 '半技術'에 해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수단은 이미 확립되어 존재하는 癌細胞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세포가 新生細布로 되는 메카니즘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액의 돈이 들고 병원설비를 끊임없이 확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이런 종류의 기술의 특징이다.
이렇게 疾病에 대한 메카니즘을 확실히 모르고 있는데도
의학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무수히 있어서 의사들이
불완전한 기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비로소 건강관리 시스템의 결함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 醫療器術
생물학에 있어서 무질서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면
막(膜)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생물은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정확히 필요한 양을 저장하고
분량을 조금씩 방출할 수가 있어야 한다.
세포는 이런 일을 하며, 세포 속에 있는 세포기관도 같은 일을 한다.
각각의 구조체는 태양에너지의 흐름 속에 몸을 내맡겨서
태양의 대사대리자(代射代理者)로부터 에너지를 가로채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형에 저항해서 불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엔트로피에 거슬러서 물질을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이렇게 하여서 비로소 막(膜)과 흥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기 중에 산소를 발산하는 것은 진화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는 반대로 진화는 산소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기(大氣)는 생명의 일부이며 생명의 소산이다.
여러 가지를 모두 생각해보면 이 하늘은 기적적인 위업이다.
그것은 일을 한다. 더구나 그만큼 일을 하도록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중에서 가장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 세계 최대의 膜
우리는 이 지구라는 시스템의 일원인 것이다.
지구는 느슨하게 결합된 하나의 구형(求刑)의 유기체이고,
각 활동부분의 연관은 모두 共生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들은 소유자도 운전자도 아니다.
고작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서 분화되어 움직이는
특수한 조직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세계에 있어서
인간은 아마도 전체의 존재를 위한 神經系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자연과 인간
세포라는 대우주 (한 생물학자의 관찰기록) 중에서
L. 토마스 著 강만식 譯
범양사출판부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