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활, 특히 캬바레, 뮤직홀, 사창가 등 대도시 밤 문화의 초상을 근접한 거리에서
포착한 그래픽 작업으로 유명한 화가 툴루즈-로트렉의 정식 이름은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로트렉-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1864-1901)다.
그는 12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백작의 작위를 가진 아버지와 서로 사촌 간이었던 어머니로부터 그는 귀족의 혈통과 재산,
예술적인 재능, 특이한 취향과 기질뿐 아니라 유전적인 결함도 물려받았다.
▲ 자화상 캐리커처Self-Portrait, Caricature) 1885, Pen and ink, 30.4 x 12.7 cm, 툴루즈-로트렉 박물관(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 Toulouse-Rautrec THE KISS
그는 가계의 빈번한 근친혼의 영향인 듯 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성장이 더뎠고 특히 뼈가 약했는데, 14살과 15살 때 넘어져서 좌우 허벅지 뼈가 차례로 부러진 뒤로는 키가 거의 자라지 않았다.
결국 152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하반신이 과도하게 짧은 난쟁이 형상으로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
뒤뚱거리며 걸어야 했다. 이런 장애로 그의 아버지처럼 승마와 사냥을 즐기는 전원 귀족의 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그에게, 어릴 때부터 교양의 일부이자 치료 과정의 소일거리였던 그림이 점차 다리와 목소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4두 마차를 모는 알퐁스 드 툴루즈-로트렉 백작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받은 것은 18세가 되던 1882년에 파리에서 아카데미 화가 레옹 보나(Lé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에콜 데 보자르화실에서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김. 이곳에 에드가 드가를 만났고,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은 화실에서 사귄 에밀 베르나르,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친구들과 세기말의 대도시 파리의 분위기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1884년에 그는 작업실을 몽마르트르(Montmartre)로 옮겼다. 몽마르트르는 본래 밭과 풍차가 많던 파리 외곽의 시골이었는데 싼 집세 때문에 1850년대부터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과 반사회적 인사들,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880년경에 이르면 카페와 댄스홀들도 들어서 이곳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뒤섞이고 새로운 예술이 실험되는 보헤미아니즘,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물랭 루즈에서]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23×140.5cm, 시카고 아트
구도나 드로잉에서는 에드가 드가나 오노레 도미에의 흔적도 보인다. 이 작품들에서 인물들이 중심에서 벗어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나, 대각선이 화면을 분할하는 것,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시점, 화면 모서리에 의해 인물이 절단되는 것과 같은 특징은 인상주의 시대부터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호쿠사이, 우타마로, 히로시게 등의우키요에와 사진의 영향이다.
1 [물랭 루즈, 라 굴뤼] 1891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193.5×119.5cm, 국립 도서관, 파리 2 [디방 자포네] 1893년경, 종이에 다색 석판화, 81×62cm, 브레멘 미술관 출처
그만의 독창적인 감각이 빛을 발한 분야는 석판화(lithography)로 제작한 포스터 작업이었다. 1891년에 물랭 루즈 가을 시즌 개막을 알리는 포스터 주문을 받아 만든 [물랭 루즈, 라 굴뤼 Moulin Rouge, La Goulue]는 이 분야의 첫 작업으로 그를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 포스터의 유행을 이끌던 쥘 세레(Jules Chéret) 등의 화면에는 로코코 회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 등장했는데, 툴루즈-로트렉은 이런 18세기적 포스터를 대담하고 직접적인 20세기적 그래픽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물랭 루즈, 라 굴뤼]에는 근경에는 단색조로 처리된 발랑탱의 모습이 보이고 이들 사이에 노란 가스등, 장소와 출연자를 알리는 글자가 배치되어 있다. 당대 문화의 일본 취향(Japonism)을 반영한 일본식 실내 장식으로 유명했던 카페-콩세르(café-concert) 디방 자포네의 광고 포스터인 [디방 자포네 Divan Japonais]에는 댄서 잔느 아브릴(Jane Avril)이 객석에 앉은 모습으로 전경에 부각되었고, 무대에는 검은 장갑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가수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의 모습이 보인다.
관객에게 인사하는 이베트 길베르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물랭 가의 응접실] 1894년 캔버스에 검은 분필과 유채, 111.5×132.5cm, 툴루즈-로트렉 미술관, 알비, 프랑스 이미지출처
매춘부 관련 주제는 19세기 문학과 미술에 단골로 등장했는데, 툴루즈-로트렉의 매춘부는 관람자의 병적인 호기심에 영합하는 도발적인 포르노그라피도 아니고, 아카데미적으로 이상화된 이국풍 누드와도 거리가 멀었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그의 매춘부는 환상이나 악몽 속에 있지 않고, 육신을 지치게 하는 피로도 느끼면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매춘부이다.
툴루즈-로트렉의 시선에서는 이런 도덕주의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가 그린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고 관람자가 슬픔이나 황폐함을 읽을 수도 있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을 그려낸 화가는 의사처럼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있는 화가의 어머니, 아델 드 툴루즈-로트렉 백작부인
경제적,정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로트렉의 어머니
▲ 세탁부(The Laundress) 1889, Oil on canvas, 93 x 75 cm,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 Toulouse-Rautrec 앙리 이미지
로트렉의 '세탁부'(1886-7)라는 작품은, <서울경제> 외신에 따르면, 200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가인 2,240만 달러(약 232억 원)에 낙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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