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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그동안 역사문제 연구소 이사장,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법인 산하 고문변호사로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활동가로 활동하면서 2006년, 만해상(일명 만해대상)과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저작권법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시민운동가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변호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2011년 9월 박원순은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안철수와 단일화를 이뤄낸 후 민주당과의 단일화에도 성공하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으로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학생운동 사건인 오둘둘 사건으로 인해 제적당한다. 그 뒤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다.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지검에서 1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다 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박노해 사건 등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 처장으로 재위하면서 국민생활최저선 운동(1994년), 사법 개혁 운동(1995년), 작은 권리 찾기 우동(1997년), 대기업 소액주주 운동(1998년), 예산감시 정보공개 운동(1999년), 부적절한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 반대 및 낙선운동(2000년) 등을 주도하며 크고 작은 파장을 불러오며 한국사회를 변화시켰다.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서울대학교 우 모 조교가 교수였던 신 모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6년간의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결국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우 조교의 변호는 박원순 변호사가 맡았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으로 재학중이었던 박종철은 1987년 전두환 공안당국에 붙잡혀 취조실로 끌려가게 된다.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철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물고문 등을 가하여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대한 성공회 서울교구,주임사제:이한우 바우로 신부)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박원순은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2]
부천서 성고문 사건(富川署性拷問事件)은 당시 부천경찰서(지금의 부천 소사경찰서)의 경장이던 문귀동(文貴童)이 조사과정에서 당시 22세이던 대학생 권인숙을 성적으로 추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공권력이 추악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권력에 굴복하여 불의를 용인한 사법부와 언론의 부도덕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또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 수단 보도 지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등,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 권인숙 씨의 변론은 박원순이 맡았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 기부운동을 했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를 설립 헌물건을 기증받아 수선하여 되파는 형태의 활동을 하였고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운동, 청년 벤처 운동, 소기업 지원 운동을 이어왔다.
2006년 그는 만해상,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하였다.[3]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박원순에게 2억원을 소송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2009년 6월 ‘위클리경향’ 인터뷰 도중 국정원의 불법사찰 가능성을 언급했다. 희망제작소와 하나은행이 손잡고 작은 기업에 낮은 이율로 자금을 지원하는 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었으나 국정원 개입으로 무산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국가는 “국정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다”며 박 상임이사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피고’ 박원순, ‘원고’ 대한민국의 이 소송에서 국민들은 “원고 ‘대한민국’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고소취하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온라인 청원이 시작되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도 이날 “국정원이 개인을 상대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변협 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비판할 자유가 헌법상 보장돼 있다”면서 “비판이 거짓이거나 악의라는 객관적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거액의 손배소를 제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4]
2010년 9월 15일 재판부는 박원순 상임이사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가는 기본권의 보장 의무를 지는 존재이지, 누리는 주체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국민의 비판에 소송으로 대응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김인겸 부장판사)는 15일 대한민국이 박 상임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국가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나 국가기관이 업무를 정당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여부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가는 당연히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만약 아무런 제한 없이 피해자로서 국가의 자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및 기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국가도 피해자로서 법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상임이사의 인터뷰에 대해선 “악의적이거나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정부가 국민에 대한 겁주기 소송에서 또 다시 패소했다”면서 “국가는 공공영역 참여를 봉쇄하는 각종 민·형사상 겁주기 소송들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5]
2010년 12월 8일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2011년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며 급식 관련 예산 285억 원을 전액 삭감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주일 뒤부터 당장 급식 지원이 끊기는 아이들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즉각적으로 '결식제로'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 당시 결식제로 운동을 선언하며 박원순 변호사는 “어떻게 밥 굶는 아이들의 급식비까지 깎아버린다는 말입니까”, “국가가 책임을 지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밥 굶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끼를 굶어 12월 중으로 4만원(한 끼당 5000원×8끼)을 내놓으려 한다”,“대한민국 정부가 버린 아이들 우리가 먹입시다”라고 말했다. 국민 100만명이 참여해 400억원을 모으면 결식아동 겨울방학 급식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식아동 0 캠페인’은 개시한 지 일주일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참해 1억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6][7]
모든 논란에 대해 박원순 변호사는 야권 단일화 경선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희망의 시민 여러분, 낡은 시대는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하고 그들이 지시하는 그들만의 리그는 다시 복귀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낡은 시대를 거울삼아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저는 단 한 마디의 네거티브도 없이 경선에 승리했습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까지 가세한 파상공세를 물리쳤습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라며 소감을 드러냈다.
첫댓글 박원순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지만 나경원보다는 훨씬 인정받을 만한 사람.
아니 시발 나경원보다는 훨씬 활발한 행동을 한거 맞는데 뭔 지랄이라는거냐 븅신들아? 나경원이 도대체 한게 모가 맀냐 육단리 븅신새키야
선거 때 되니깐 딴나라 알바새끼들이 슬슬 기어나오네
ㄴ
일단 참 부지런하게도 살았구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 사람 왜 학력 설대법대 졸이라고 한거냐? 설대안나온 것도 아니고 제적당한거면 설대 사회계열다니다 그렇게 됬다고 하면 될 것을-_-
설법이야기 나온건 박원순이 쓴 책 약력에 나온거고. 그것도 설법 졸이 아니라 설법 제적이라고 나와있는거임
그리고 진짜 나경원 뽑기 싫은데 토론이랑 공약보고 좀 실망했다. 좋게 봐주려고 해도 도저히.. 토론은 차라리 박영선이 나와서 했던게 나았을 듯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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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좀 탓 하지말고 네가 나서서 나경원이 해놓은 업적을 열거해봐. 나경원이 해놓은 것이 뭐가 있냐.
이 병신색기는 지 좆 꼴리는 방향이 남들하고 다르면 다 빨갱이 때문이라고 탓할놈인듯....
방위로 빠졌던 병역 문제랑 노조 설립 방해, 감시대상으로부터 돈받은 건이나 처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등은 쏙 빼놨네 ㅇㅇ 위키가 칭찬일색으로 도배된 홍보전단으로 전락했음 ㅇㅇ
다음기사 댓글들 수준봐라 ㅉㅉ 개나소나 별 논리도없고 그냥 나경원 존나까고 박원순 후빨 졸라하더라 병신들 ㅋ
나경원 후빨할 논리가 있냐?
고등학교 선배였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