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강정훈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김호 감독 부임 이후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주장의 책임감까지 더해져 더욱 무거워졌다. 또한 리그 초중반에 경험한 저조한 성적과 불미스러운 사건은 그의 어깨까지 쳐지게 했다. 강정훈에게 2007년은 유난히도 힘든 해이다.
9월 12일 저녁 7시 30분 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서 강정훈을 만났다. 편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의외였다. 행복해보였다. 어제의 과거는 추억 속 상자 속에 넣었고, 미래에 대한 꿈과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고된 고생길
어린 시절 강정훈은 매우 어려웠다. 항상 배가 고팠고, 언제나 혼자였다. 그래서 축구를 시작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외로움을 잊기 위해.
"어렸을 때 땅 끝 마을 해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할머니는 장사를 했기 때문에, 저를 보살필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항상 혼자였죠. 수업이 끝난 뒤, 집에 가면 저를 반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아침은 먹었지만, 점심과 저녁은 혼자 챙겨 먹어야 했죠.
축구는 배가 고파서 시작했어요. 축구부는 훈련 후 빵과 우유를 주는데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 때 감독, 코치 선생님은 제가 어렵다는 걸 아셨어요. 그래서 항상 절 챙겨주셨죠. 시골에서 귀한 닭을 먹을 때도, 친구들은 2명이서 한 마리 먹을 때, 저는 혼자 한 마리를 먹었어요. 그 은혜는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연락처를 몰라서 찾아 뵐 수가 없어요. 선생님 성함은 김대성입니다. 축구 선수 출신은 아니셨어요. 학교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축구부 감독을 하셨죠. 친구들 말에 의하면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어요. 정말 한 번 찾아뵙고 싶어요."
초등학교 시절 배고픔과 외로움이 강정훈을 힘들게 했다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허리가 강정훈을 힘들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양 중학교 코치님의 눈에 뛰었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갔죠. 영희 초등학교를 거쳐, 한양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하루에 4번씩 거의 매일했죠.
하지만 못 먹다보니 키가 자라지 않았어요. 남들은 170cm인데, 저는 154cm였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할 때 6개월을 쉬었어요. 그 때 무려 20cm가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어요. 키만 커졌고, 덩치는 자라지 않았거든요. 그 때부터 허리가 너무 아팠어요.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죠. 2개월 뛰고, 2개월 아프고의 반복이었어요."
어느 누구보다 힘들게 학창 시절을 보낸 강정훈.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두움의 터널은 좀처럼 뚫을 수가 없었다. 대학 시절은 허리 수술과 선택이, 프로 초년병 시절에는 포지션이 그를 괴롭혔다.
"대학교 때도 허리가 문제였어요. 결국 수술대에 올랐죠. 그래서 운동을 그만 두려고 했어요. 마침 음반 제작자가 음반을 내자고 했습니다. 가수를 하려고 했죠. 고민이 많았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축구였어요.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고, 훈련에만 매진했습니다. 이후 운이 좋게도 대전에 입단했고, 지금의 제 모습까지 오게 되었죠.
대전 입단 후 몇 년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대전에 오기 전까지 미드필더만 보았어요. 하지만 대전 입단 첫 해부터 공격수로 나섰죠. 공격수에 익숙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었죠. 그냥 열심히 뛰기만 했어요."
인생의 전환점. 최윤겸 감독과의 만남
대전은 2002년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단 1승을 기록하며, 최하위를 기록했기 때문. 선수들은 승리가 아닌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고, 패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은 팬들의 원성으로 가득 찼다.
대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의 첫 단추는 바로 새로운 코치진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최윤겸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하며, 대변화를 모색했다.
"그 때 J-리그 오이타 팀으로 이적하려고, 협상 중이었어요. 그 와중에 최윤겸 감독님이 오셨죠. 예상외로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이적을 포기했어요. 사실 더 힘들어질 줄 알았어요. 결과는 그와 반대였죠. 최감독님 스타일과 제 스타일이 맞았던 것 같아요. 원래 제가 베스트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을 통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갔죠.
최윤겸 감독님이 오신 이후 팀의 변화가 많았어요. 워낙 공부를 많이 하셨고, 카리스마가 대단했거든요. 감독님 한 마디, 한 마디는 정말 가슴에 와 닿았어요. 선수들 모두 고치려고 노력했고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즐거움입니다. 축구하는 거 자체가 즐거웠어요,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실력도 올라갔고, 팀 성적도 상승 곡선을 그렸죠."
2003년은 대전을 위한 해였다. 대전은 역대 홈 승률 1위를 차지하며,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 처음으로 4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특히 6월 18일 울산과의 경기에서 기록한 43,770명의 관중은 평일 경기 최다 관중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는 K-리그의 대기록이다.
"2002년에는 자신감이 없었고, 불안했어요. 비기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반면 2003년에는 진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선취골을 허용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어요. 오히려 역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죠. 정말 분위기가 최고였습니다,
울산과의 경기는 이겼어야 했는데... 아직도 아쉽네요. 월드컵 때도 그렇게 꽉 안 찼었는데요. 자리가 부족해서, 계단에 앉으신 분들도 많았거든요. 선수 입장에서 너무 뿌듯했어요."
언제나 흥이 난 대전은 2004년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컵대회에서 그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완벽한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선두 경쟁에서도 한 발짝 앞서 있었다. 대전은 최종전인 성남 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2004년 컵대회 마지막 경기가 성남과의 어웨이 경기였어요.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단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어요. 정말 비참했죠. '정말 안 도와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도 미웠고, 허무했어요. 선수, 코치진은 물론이고 팬들까지 정말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강정훈은 대전과 함께 전성기를 달렸다. 전성기에 위치한 선수를 다른 구단이 놓칠 리가 없었다. 여러 곳에서 강정훈을 원했다. 강정훈에게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사실 2년 전에 2~3곳에서 이적 제의가 왔어요. 계약 조건도 좋았죠. 하지만 대전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감독님도 좋은 곳에서 제의가 왔지만, 팬들을 위해 거절하셨거든요. 저도 팬과 감독님을 배신할 수 없었어요. 감독님을 통해 축구의 재미를 알았고, 행복했거든요. 그래서 대전에 남았어요. 구단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왼팔에 완장만 찼을 뿐.
올해 강정훈은 대전의 새로운 주장으로 부임했다. 그동안 부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하는 강정훈.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은 그의 완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부주장을 계속해서 해왔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왼쪽 팔에 완장을 찼을 뿐이죠. 경기에 나서는 11명선수 모두 똑같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리더가 되어야죠. 그래야 팀이 발전할 수 있어요.
우리 팀의 큰 강점은 바로 가족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어느 선수 하나 벗어나지 않고, 모두가 함께 가야 되요. 그래서 그 부분에 가장 많이 신경을 많이 썼죠. 그리고 주장은 감독, 코치님을 보좌해야 되요.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었어요. 그래서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개막전에서 수원과 대전이 만났다. 수원과 대전은 미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06년까지 4년 동안 수원이 대전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
이 날 경기에서 승자는 바로 수원이었다. 수원은 후반 41분에 터진 안효연의 짜릿한 결승골로 2대1의 승리를 거두었다. 지긋지긋했던 대전 징크스를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반면 대전은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좀처럼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대전이 연패를 한 적은 거의 없어요. 제 기억으로는 3연패를 3,4번 정도 밖에 안 한 것 같아요. 올해는 첫 경기부터 무너졌어요. 개막전이었던 수원과의 경기는 이길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놓쳤죠.
축구는 분위기가 중요해요. 지난해 전기리그에서 3위, 컵대회에서 4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분위기였죠. 수원 전 패배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떨어졌어요. 다음 상대(울산)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죠. 부담감이 컸어요. 결국 연패로 이어졌죠."
이 날 경기에서 강정훈은 주장 데뷔전을 치렀다. 마침 수원의 주장도 주장 데뷔전이었다. 그 상대가 바로 이관우였다. 강정훈과 이관우는 말이 필요 없는 사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이 둘의 인연은 의형제로 발전했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관우와 저는 아시다시피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죠. 서로가 부담을 느껴서 그런지 몰라도, 개막전을 일주일 앞둔 시점부터 연락을 자제했어요. 경기 전에 잠시 만나 다치지 말자고 말을 했죠. 특히 (이)관우는 불운했잖아요. 서로의 위치가 겹쳤지만, 서로가 서로를 피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요. 물론 골문 앞에서는 절대 양보가 없었죠. (이)관우가 태클을 당하면 저도 뜨끔해요.
(경기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관우 선수는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먼저 못하겠다고 말했는데요. 누가 먼저 연락을 했나요?) 당연히 (이)관우가 먼저 해야죠. 안 그러면 저한테 혼나죠. (웃음) 지난해 (이)관우가 우승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별을 달지 못했죠. 올해도 가능성 있잖아요. 올해 수원을 우승시키고, 멋지게 MVP를 탔으면 좋겠어요."
대전은 4월 15일 전북 전에서 2대0의 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강정훈은 주장 완장을 찬 뒤 처음으로 누리는 승리의 기쁨이었다.
"초반 3연패 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후에는 힘든 것 없었죠. 그래서 전북이 고마워요. 우리 팀은 전북에게 유난히 강했어요. 전북 전을 앞두고 자신감이 있었죠. 비록 올해 졌지만, 수원 전을 앞두고도 자신감이 높았어요, 미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죠. 더 열심히 뛰려고 노력도 했고요. 반면 성남과 울산만 만나면 왜 이렇게 약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대전의 전력은 약체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약하지 않다. 어느 팀과 싸워도 경기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주도권은 대전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승리를 많이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전은 약하다는 평가가 많아요. 하지만 대전은 쉽게 볼 수 있는 팀이 아니죠. 베스트를 따져보면 결코 약하지 않아요. 다만 주전과 후보 간의 실력 차가 조금 큰 것 같아요. 올해는 그것도 많이 줄었어요. 어느 선수가 들어가도 경기력의 차이는 크지 않았죠.
왜 한 골을 넣은 뒤 물러서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선수들은 지키기 위해 물러서는 건 아닙니다. 팬들이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로 골 싸움입니다. 골을 먼저 허용하는 팀은 골을 허용한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잖아요. 그래서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지난해 잘 버티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어요.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게도 잘 안 되더라고요."
대전, 항상 함께 하고픈 팀.
대전은 후반기 K-리그를 김호 감독과 함께 보내고 있다. 김호 감독 부임 이후 대전 축구는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활발해졌고, 골도 많아졌다. 그리고
'앙팡테리블' 고종수가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즌 중반 사건·사고가 많았잖아요. '왜 내가 주장을 시작한 해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최근 홈경기가 있는 날에 비가 많이 내렸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김호 감독님이 오신 뒤, 좋은 클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희망이죠. 감독님도 많이 신경 쓰시는 것 같고요. 물론 선수들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노력해서 명문 클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축구에 대한 (고)종수의 의욕은 대단해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죠. (고)종수가 팬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말 무서운 팀이 될 거예요. 용병들과 (고)종수의 힘이 합쳐진다면, 정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프로 10년 차 강정훈은 오직 대전에서만 뛰었다. 대전에 대한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크다. 그래서 개인적인 욕심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발전하는 대전의 모습만 그릴 뿐이다.
"대전에 있다는 그자체가 좋았어요. 10년 동안 많은 것을 얻었고, 그것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지금 대전에 있어서 행복합니다. 최근에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경기에 나서지 못해, 자신감도 떨어졌어요.
하지만 게임에 못 뛴다고 서운한 마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선수들 모두가 잘 해주잖아요.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기에 출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대전이 좋은 클럽으로 발전하는 거죠.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훗날 대전이 좋은 클럽으로 발전해서, 뿌듯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를 가장 많이 걱정해주시는 분들은 바로 팬입니다. 꼭 이겨내라고 응원을 해주세요. 정말 고마워요. 울컥한 적도 있죠. 팬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꼭 일어서고 싶습니다. 언젠가 대전을 떠나겠죠. 그 때 마지막으로 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저에게 주신 사랑에 보답해야죠.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대전은 정말 쉽게 못 떠날 것 같아요."
"대전에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큽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요. 그런데 현재 상황이 조금 유동적입니다. 이 자리에서 확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단 시즌이 끝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길게 뛰지는 않을 거예요. 한 1~2년 정도 더 뛰려고요. 이후에는 생각해둔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아니면 아이들을 가르치려고요. 아내는 사업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해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일단 도전해봐야죠. 부딪치기도 전에 두려워하면 안 되잖아요.
어렸을 때 너무 힘든 것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프로에서 1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힘들었던 시절을 추억하며,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장인, 장모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딸을 주었네."고 말씀하세요. 제가 고생을 한 것을 잘 아시거든요. 결혼할 때도 3000만원 밖에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긍정적인 생각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 왔어요.
와이프가 너무 고마워요. 운동선수 부인은 참 힘들잖아요. 항상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고요. 이 자리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K-리그 명예기자 김정현
진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대전선수중 한명...ㅜ
훈련할때 구경하면서 이름부르니까 웃으면서 인사해주시던 친절한선수 ㅜ
대전의 거성이 되어 주세요 ㅜ
첫댓글 최고다 강정훈 선수...ㅜ_ㅜ... 부디 대전의 레전드로 남아주길... 대전구단은 또다시 이상엽선수 같은 일은 만들지 말아라...
이창엽..? 장철우도 방출해버리고 ㅜ
공오균
아...기사 감동이네..대전의 팬으로서...대전 선수들은 왠지 가족같은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