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0일 수요일
퇴근시간 7시 10분!
직장 동료들이 간단하게 한잔하고 들어가자는 말을 냉정히 뿌리치고 잽싸게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까지는 하루일과를 마무리 하기 위한 필수품이 알콜이었지만 오늘부터는 그것이 없더라도 하루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오기로 퇴근길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한강으로 잇는 불광천 주로에 서서 준비운동 및 스트레칭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10km, 전반부 5km는 km당 5분 30초 페이스로 편안한 맘으로 달리고 나서 후반부 5km는 4분 전후 페이스로 숨이 목에 찰때까지 힘껏 달려보자는 계획으로 춘마를 위한 마무리 훈련에 돌입하였다.
전반부 5km는 아주 편하게 주로에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불광천변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들꽃과 월드컵경기장의 웅장함을 감상하면서 달림의 즐거움을 만끽함을 뒤로하고 후반부 5km 질주를 위한 시계의 스타트 버턴을 눌렀다.
한 1km 정도 갔을까? 목에 숨이 깔딱깔닥 넘어갈 정도로 뛰고서 시계를 보니 3분57초 랩타임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섭3는 아무나 하는것도 아니며, 쉽게 달성되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느껴보면서 섭3 주자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섭3를 위해서는 숨이 목에 깔딱깔딱 넘어가게 42.195km를 완주해야 하는데 고작 1km 뛰고 이렇게 힘들게 느낀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로써 운명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머지 후반부를 질주하였다.
5km 전력질주를 하고나니 무척 힘이 들고 갈증이 난나.
불광천 주로 시작점에 호프집이 눈앞에 아른아른한다. 그리고 유혹한다.
이내 옷을 갈아입고 아무생각없이 “여기 500 하나 주세요!”하고 주인에게 생맥주를 시켜니 이내 내 탁자앞에 맥주한잔이 잽싸게 날라 온다.
나도 군침을 흘리고 있었지만 맥주잔도 군침을 나보다 더많이 흘리고 있었다.
단숨에 완샷!
바로 이맛이다.
조금전 달림으로 인한 갈증과 힘겨움은 어디로 갔는지 시원한 느낌만 머릿속에 남아 이내 기분이 사라지기 이전에 “여기 500 한 잔 더”하는 목소리가 이미 입 밖으로 새어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맥주집 종업원은 말이 뜰어지기 무섭게 “네”하면서 이내 500 한잔을 가져 나왔다.
그리고 하는 말 “손님 안주는?” 하길래
종업원이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껏 이 맥주집에서 뛰고나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들러 맥주를 먹을때 안주를 시켜본 역사가 없는데 안주를 주문하라고 하니...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답변을 생각하는 사이 눈에 익은 종업원이 잽싸게 무우 깍두기를 내온다.
내가 씨~익 웃으니 조금전 종업원이 멋쩍은듯 돌아간다.
두잔째 시켜놓고 한모금을 마시니 이내 살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다.
‘오늘부터 술 안먹기로 결심한 첫날인데...’
‘우리 회원님들이 내가 춘마에서 섭3를 할거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맑아진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는 아름다운 속담이 뇌리를 스치네!
이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나니 두 번째 잔이야말로 마음과 정신을 정화시키는 정화수로 생각되니 지금껏 맥주맛 중에서 가장 깨끗한 느낌이었다.
한방울 남김없이 쭉 땡기면서 잔을 비우고 이번에는 “여기 1000 하나 주이소”
하니 이내 술 기운이 돌아 속된말도 오늘도 땡기는 기분이다.
혼자서 2000을 마시고 털래털래 집으로 걸어가 운동복을 세탁기에 던져 넣고 대충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출발의 종소리와 함께 하약냄새가 코를 찌른다.
수많은 인파들이 일시에 운동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과히 장관이다.
나는 출발구역이 B그룹이어서 이내 출발선을 통과하여 천천히 초반부를 달려나가는데 자꾸만 내 뒤에 달리던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나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울까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5km 거리표지를 지나갈 무렵 시계를 보니 랩타임이 30분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더 힘을 내어 달려 나갔지만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진다.
억울한 맘이 가슴에 저미어 오면서 이내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흘러 내리는 눈물을 머금고 천근과도 같은 다리를 들어 앞으로 나아가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나니.......
다리위에는 크다란 베게가 놓여있다.
첫댓글 써브-3 하지마이소! 달리기가 꿈속에서 조차 중압감으로 밀려온다면 말아야지요! 펀달,즐달하며 죽는날까지 가야지요! 그런데 한가지만은 해야할 일이 있지요 지금까지 노력한 훈련의 결과를 만드는 최선을 바랄뿐이라오! 내년에 내캉 먼길이나 같이 가자고요! 독기,독기,독기 힘힘힘!!!
숨이 헉헉 넘어가면 안되지요! 살아야 같이 달리지--- 같이 달려가자고요! 꿈은 반대라고 하던데?
꿈은 반대라는 옛말도 있잖여,찬기씨! 힘내라 힘!!! 자신감이,패기가 있어야지!!!
자신감이 너무 가득한 건 아닌지? 술마시고도 sub-3했다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최선은 다해야지... 딱 3일만 참자, 술을...
니 우째 사는 팔자가 내하고 또~~옥 같냐. 하이구 이놈의 마라톤 괞히 시작해가지고...
찬기야, 고마 Fun N Run해라,싫으면 Run N Fun 하던가~평생할 운동인디!!!!!!!!
고통의 결과 좌절이면 허송세월, 여하튼 고통으로으로 결과에 만족하면 아픈만큼 성숙. 찬기 힘!!! 술그만 묵고 바람하번 피 보지....(달림바람) 찬기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