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묵상할 때 문득 두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라는 시를 쓴 한 시인과 한 여인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노처녀 간호사였던 그 여인은 어떤 계기로 심신이 완전히 망가진 그 행려병자와 결혼했고, ‘귀천’이라는 찻집을 운영하며, 시 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이러한 이타적인 사랑에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화답했습니다.
둘째는 산을 너무나 사랑했던 한 형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젊었을 때부터 산이 좋아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온갖 산을 다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등반에 미쳐있을 때는 고층 빌딩 유리 청소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면, 2-3개월씩 걸리고 몇 억의 돈이 드는 등반을 하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 삶의 패턴이었답니다. 저는 등반에 그렇게 많은 비용과 시일이 소모되는 줄을 그분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오직 성경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본 적이 … 귀로도 들은 적이 …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들이다.”
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고전 2:9).
특정 사람이나 산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대강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 본문과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번처럼 큰맘 먹고 추구하기 전까지는 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 문제에 대해 제가 추구한 결과입니다.
1. 왜 사랑해야 하나?: 이 주제를 다룰 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가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변을 다음의 성경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그대는 온 마음과 온 혼과 온 생각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명령하셨고, 이것이 “가장 크고 으뜸가는 계명”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2:37-38). 심지어 바울은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단언했습니다(고전 16:22).
2. 사랑할 때 얻는 보상: 이번 추구로 주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상을 약속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1)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약 1:12), 2) 왕국의 상속자가 되며(2:15), 3)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알아주시고(고전 8:3), 4) 은혜가 함께 하고(엡 6:24), 5) 그분과 상호 거처가 되며(요 14:23), 6)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롬 8:29).
3. 사랑하는 외적인 표시들: 성경은 어떤 사람이 1) 주님의 양들을 목양하고(요 21:15-17), 2) 자기 형제를 사랑하며(요일 4:21), 3)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한다면(요 14:15), 그것이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외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 자체로 그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회 성공을 위해 목양에 열심을 내거나, 천연적인 방식으로 형제를 사랑하거나, 율법 준수의 연장으로 계명을 지키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이런 덫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예들을 여러 차례 목격한 적이 있었고, 저 자신도 이 면에서 많이 실패했습니다.
4. 사랑한다는 말의 내재적인 의미: 그렇다면 ‘저 정도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징표는 과연 없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주님을 앙망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 두 가지가 제 마음에 정리되었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의 갈망을 관심하고, 그 성취를 위해 동역함: 우리가 자주 실패하는 한 가지는 상대방의 의사는 묻지 않고, 그가 원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해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관련하여, 제가 알게 된 것은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 어떤 일(work)(사역, 봉사)을 하기보다 어떤 존재(being)가 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우리가 신랑에 어울리는 신부(아 6:13), 맏아들을 닮은 많은 형제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롬 8:29). 이것을 알았기에, 그 연장인 다음 항목에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쳤습니다.
2) 온 존재가 그분으로 적셔지고,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됨: 주님의 신부, 그분을 닮은 많은 형제들이 되려면, 주님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점점 확대되셔야만 합니다(엡 3:17).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말씀으로 주님을 먹고(요 6:57하), 그 영을 마셔서(고전 12:13). 그분을 누리고, 그 누린 은혜로 합당한 목양과 형제 사랑을 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영과 혼과 몸, 또 마음과 혼과 생각과 힘(막 12:30)-를 절대적으로 그분께 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의 온 존재가 그분으로 점유되고 그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실질적으로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이다”(고전 2:9, 각주 1).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의 온 존재가 주님 자신으로 적셔지게 하시고,
우리는 당신 안에서 잃어버린 바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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