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대호 시인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요. 오랫동안 시만 써온 그가 첫 시집을 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그는 남의 글을 흉내내지 않습니다. 견고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롭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뒤로 걷는 일은 어색한 일이라며 늘 바르게 살고 있는 김대호 시인이 시를 통해 일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 쓰는 남자, 김대호는 김천과 추풍령의 경계 즈음 ‘김천시 봉산면 봉산로 600’에서 <시남>이란 커피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나시려면 늘 조용하며, 차 맛을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그의 찻집으로 한번 가 보세요.
그의 첫 시집 발행을 축하하면서 시 몇 편을 소개합니다.
* (시인의 말) 나는 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문장을 수정했다 너는 나다 - 2020년 4월 김대호
* 당신의 저녁 / 김대호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예전에는 당신을 눈빛으로 알아봤는데 이젠 냄새로 당신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우는 일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항상 내 곁에 있는 당신 서로 생선뼈를 발라주며 밥을 먹었다 당신의 냄새가 좋아 우리는 욕심과 고요 사이를 아슬하게 지나고 있었다 할 일이 없을 땐 싸웠다 싸우고 나면 너무 많은 생선뼈가 쌓였다 나는 이제 울지 않는다 날마다 저녁은 올 것이고 그 저녁이 울음 자체이므로
* 마지막 / 김대호
내가 처음 말했던 마지막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게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는데 나는 아직도 마지막이 아니다 구식 세계에서 꿈꾸고 중독되고 토한다 헐거운 희망으로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는 희망으로 복제 가능한 희망으로 그런 희망을 가질 바에는 견고한 슬픔에 의지하는 생활을 해왔다 이게 마지막이야! 너무 많은 마지막이 시련 직전에 있었다 내 마지막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한 해가 갈 때마다 나는 마지막으로 시작하고 있다 꼬리를 문 뱀이 있다 시작과 마지막의 온도가 같은 출입문이 있다 나는 그 중앙에 있다
* 무거운 것은 왜 가벼운 것에 포함되는가 / 김대호
우리가 도착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것들은 의외로 소박하다 친절은 소박하고 기도는 더 소박하다 소박하고 쉬워서 누구도 그곳에 도착할 수 없는 것 화려하고 빛나는 것을 꿈꾸는 동안 흙을 갖고 놀았던 시절은 시간 밖으로 나가 버렸다 기억은 한 끗 차이로 빗나간 기회와 운명을 담보로 투기했던 광란 근처에서만 발기한다 그때는 차이랄 것도 없는 미세한 각도였는데 지금은 두 팔을 다 펼쳐도 내 아름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각도의 행방은 묘연하다 가난해도 소박해지지 않아서 가난을 신뢰하지 않는다 친절한 것은 일몰에 걸린 노을뿐 매일 기도한다 이곳에서 이곳의 풍습에 친절해질 수 있게 해 달라고 차가운 금속들을 만질 때 소박한 기분이 찾아오게 해 달라고 모든 것을 두 번씩 생각하지 않게 해 달라고
* 바지춤을 올리지도 못하고 / 김대호
뒤로 걸으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누군가 조언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뒤로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제대로 뒤로 걸어본 기억이 없다 왼손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지만 한 번도 그러질 않은 것같이 내게 뒤로 걷는 일은 어색한 일 할 수는 있지만 어색해서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고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난 아주 치우친 인간이구나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구나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까 내 안의 짐승은 오늘도 할 수 있지만 어색해서 꼭 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치열의 마찰열과 치욕의 어금니를 그냥 내려놓고 바르게 살고 있다 검은색의 주술을 풀기 위해 밤은 바지를 채 올리지도 못하고 올 것이다
* 원적 / 김대호
고향집은 폐허가 되어 누구도 거주하지 않지만 주소는 아직 말소되지 않았다 그 주소로 당선 소식을 기다리고 당신의 답신을 기다렸다 여러 번 주소를 옮겨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원적은 바람과 먼지의 소굴이 되었다 그 주소로 편지를 전해 주고 냉수 한 사발 얻어먹고 냉큼 일어서던 배달부는 늙었을까나 그 땐 배달부, 엿장수, 비렁뱅이 모두가 사람이었고 누구를 해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둘 사이에 찌꺼기가 낀다 정기검사를 통해 청소하지 않으면 녹이 슬거나 금이 간다 사람이 괴물이 되기도 한다 대화의 엔진이 멈추고 둘은 먼 길을 각자 반대쪽으로 가며 으르렁거린다.
그런 때 나는 바람과 먼지의 거주지가 된 내 원적과 그 주소지로 배달돼 오던 손편지들을 생각한다 사람 옆에 사람이 있었다 가난 했지만 누구도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살면서 시를 읽는 일이 점점 희박해집니다 몇 편의 시를 읽으며 머리 속이 복잡해 지는데 숨어있던 욕심 같기도 하고 같은 감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시로 풀어내는 시인에 대한 감탄과 시기가 뒤섞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생각지도 않게 영 다른 쪽을 퉁! 쳐 주시니 시인께도 정쌤께도 감사한 아침입니다.*,*
첫댓글 좋은소식입니다
김대호 시인이 시집을 내셨군요
꾸준히 한 길만 걷더니 좋은 시집을 냈습니다.
그의 시가 늘 어렵다고 했더랬는데 이번 시집을 읽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좋은 글이 많았어요.
살면서 시를 읽는 일이 점점 희박해집니다
몇 편의 시를 읽으며 머리 속이 복잡해 지는데
숨어있던 욕심 같기도 하고
같은 감정을 가졌다 하더라도 시로 풀어내는 시인에 대한 감탄과 시기가 뒤섞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생각지도 않게
영 다른 쪽을 퉁! 쳐 주시니 시인께도 정쌤께도 감사한 아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시인의 마음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많이 한답니다.
아!
시남카페 사장님께서
시집을 출간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시도 그림도
그사람의 세계들이라
이해하기 어려울때도
많더군요
김대호씨의 글을
아끼는 분들이 많은 것같더랍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좋은 시집이라고 칭찬을 많이 하더라구요.
쌤 감사 드립니다
부족한 시편들을 여러 편이나 소개까지 해 주시고 ㅎ ㅎ
쌤 덕분에 오늘부터 제 시집이 엄청 팔릴 것 같은데
걱정이네요 ㅋ ㅋ
하하,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시가 어렵다고 자주 말했는데
이번 시집을 읽어보니 확실하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시가 말랑말랑해진 것 같더라구요. 좋았어요.^^
아 자작님 시집인가보군요??
정선생님 말씀 마따나
말랑해진 싯귀 속에
생각을 털게하는
예리함이 있어
저는 어려웠어요
잘 읽고
제 생각도 툴툴 털어
다시꺼내 보렵니다^^
시도 자꾸 많이 읽어야만 쉬워지나 보더라구요.
자작님 시집출간 축하드립니다.
찻집에서 뵈었던 모습을 기억하며 시를 읽어봅니다.
우직하게 시 하나만 붙들고 산 남자지요.
방금 페북에서 봤습니다^^
하하, 구해 읽어 보세요.^^
축하드립니다. 김대호 시인님.
가까이 있어도 게으른 탓에 서로 시의 길을 가는 도반이지만
인사도 못드렸었군요.
일간에 차 한 잔 마시러 들르겠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그날 뵙지요.
다시금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두 분이 만나시면 무슨 얘기를 나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