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사람들은 SNS를 많이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나
경치 좋은 곳에 여행한 것 올립니다.
좋은 옷을 입은 것도 올립니다.
누군가는 자랑하는 것이고 이것을 보고 누군가는 부러워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물질적인 영역이고
자기 자랑과 헛된 영광입니다.
2.
종교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했는지
누가 봉사를 많이 하는지
누군가는 자랑하고 누군가는 부러워하거나 시기합니다.
이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영역입니다.
3.
그런데 다른 영역 안에 사신 분이 있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이 있었는데
그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자신이 근원이 아니고 아버지를 근원 삼으셨습니다.
그분 스스로 기적을 행하시지 않고 아버지로 시작하셨습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 후에 많은 사람들은
썩어질 양식을 주목했지만
예수님은 홀로 산에 아버지와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은밀한 곳에 계시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셨습니다.
4.
사람들은 자랑하고 헛된 영광을 구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합니다.
섞어 없어질 양식을 추구하며 삽니다.
눈에 모이는 영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은밀한 곳에 계시는 아버지와 교통하며 사셨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보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사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한 영역에 사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과 다른 영역에 사셨습니다.
그러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시험과 유혹에도
마음이 상하거나 실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핍박한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5.
우리가 거듭났을 때 신성한 생명을 영접했습니다.
이 생명은 감추어진 생명입니다.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신 예수님
이 분이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감추어진 생명을 날마다 접촉하고 누린다면
우리 또한 비밀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지만
우리는 그들이 모르는 비밀한 영역에서
은밀하게 보고 계시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즉 감추어진 땅 속에 뿌리내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비밀한 영역에 산다면
고난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우리는 마음 상하지 않고 실족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비밀한 뿌리의 생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추어진 생활을 하신 주님의 본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히스기야와 바울을 비교해서 볼 때 더욱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바빌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귀한 보물 등 심지어 무기고까지도 자랑하며 보여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셋째 하늘과 음부의 낙원까지 체험했지만, 14년 동안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는 무익하지만,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말한다는 그의 말은 우리로 무엇을 위해 말해야 하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기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대의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께...
우리는 나의 골방에 들어갈 뿐 아니라 들어간 후 문을 닫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럴때 그분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잠긴 동산, 덮인 우물, 봉해진 샘이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