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타고난 특수부 검사였습니다. 사람을 다룰 때 위압감을 주면서도 듣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지요. 초임 특수부 검사답지 않게 과감한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내일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결재하면 이튿날 새벽 압수수색에 들어가는 식이었으니까요. 특수부 검사로서 장점이 결국 그를 대통령의 길로 이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초임 특수부 검사 시절 선배인 이재원(64·사법연수원 14기) 전 법제처장의 회고다. 윤 대통령은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 1994년 늦깎이로 검찰에 입문했다. 대구·강릉을 돌던 그가 처음 특수수사에 뛰어든 건 1999년, 검사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발령받으면서다. 윤 검사는 김대중 정부 당시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수수 사건을 맡았다. 호남 출신 박 국장은 모든 경찰 정보를 주무르는 실세였다. 경찰 수사권 독립과 맞물려 시기도 민감했다. 당시 경찰청장은 “후임 정보국장을 임명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윤 검사는 사방에서 들어온 외압을 물리치고 박 치안감을 소환조사한 지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윤 검사가 얼마나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심문했는지, 박 치안감 스스로 구속영장 실질심사조차 포기할 정도였다. 결국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경찰 실세를 구속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특수통’ 검사 윤석열의 시작이었다.
지난 2019년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윤 총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을 미화하려고 에피소드를 소개한 게 아니다. 윤석열 정권을 이해하려면 검찰, 그중에서도 특수부(특별수사부) 검사들을 관통하는 독특한 정서와 문화를 꿰뚫어 봐야 한다. 그래야 ‘공정과 상식’이란 통치 철학 아래 정부 요직에 포진한 전·현직 특수부 검사를 중심으로 펼쳐질 국정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사정 정국을 이끄는 윤 대통령과 한동훈(27기) 법무부 장관, 이원석(27기) 검찰총장의 교집합이 특수부다. 세 사람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2003년), 국정농단 특검(2017년) 같은 대형 특수수사에서 함께 일하며 끈끈하게 얽힌 근무연(緣)으로 뭉쳐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발탁과 시련을 동시에 겪은 동병상련의 운명공동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대검찰청에서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치 검찰’ '검찰공화국' 논란이 있다. 하지만 특수부 검사가 우리 정치의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등장한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중앙일보 기획취재국이 특수부의 실체를 분석하고,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의 안팎을 추적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한동훈 사단’을 이을 미래 ‘OOO사단’의 단초도 찾아 나섰다.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라”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가장 성공적인 특수수사의 전형으로 꼽힌다. ‘국민 검사’로 불렸던 안대희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수사팀에 “권력의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수사할 때 변죽을 울리지 말고, 권력자의 간담을 서늘케 할 핵심을 겨누란 뜻으로 특수부 검사 사이에 격언처럼 전해오는 얘기다.
(※특수부는 현재 반부패수사부로 개편됐지만, 특별수사를 하는 기본 업무는 그대로이기에 특수부로 통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