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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신문배달, 가정교사를 하여 등록금은 물론 교통비 숙식비 용돈 등을 해결하였다. 군에 입대한 일부 친구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하여 월남 전선에 투입되었다. 가수 윤일로의 ‘월남의 달밤’을 들으면서..
청룡부대로 월남에 갔던 진세는 고엽제로 안타깝게 결혼도 못하고 외롭게 살다가 4년 전 불귀의 객이 되었으며 해병대 장교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안부도 그 영향으로 고생하고 있다. 선삼 식성 섭왕도 여건이 좋지 않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가에 헌신하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
70년대 중반, 우리 친구 동료들은 열사의 땅, 중동에 가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가족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을 하였다. 우리들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친구들은 금년에 칠순을 맞이하며 대부분 현업에서 퇴직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외롭게 생활하고 있다.
지나간 50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 것 같아 너무 서글프다.
그런데 그 표현 보다는 ‘뜻 깊고 가치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 ‘우리 세대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으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자부하여도 좋지 않을까?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에 파견한 사연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도록 한 것이 어디 우리 세대의 열정과 땀으로만 이루어 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우리들을 이끌어 주고 격려해준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그 지도자는 소위 민주주의 운동의 기수라고 하며 대통령 병(病)에 걸려있었던 정치가는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죽기 살기로 반대 하였으며 새 나라를 창조하는데 매번 반대를 하고 훼방만 하였다.
한 분은 그 잘난 민주주의를 잘해서 IMF라고 하는 반가운 손님(?)을 불러들여 찬사를 받는 훌륭한 업적을 올렸으며, 또 다른 한 분은 돈을 북한에 퍼주기에 바빴다. 덕분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켰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런데 그의 노력으로 이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하였는가?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를 빈곤에서 해방시켰으며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서도록 지도해준 위대한 분은 과연 누구일까? 그 분은 확실한 역사의식과 투철한 통치 철학이 있었으며 일순간의 인기나 여론에 현혹되지 않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하는 굳은 신념을 갖고 대한민국이라는 거함(巨艦)을 이끄시었다. 그분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초, 대학 후배인 황인남교수를 우연히 만나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박정희 대통령 파독(派獨) 50주년 기념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이 전시회는 황 교수의 친언니인 황인자 국회의원이 주관하였다. 전시된 각종 사진과 자료를 보니 어려웠던 시절이 새삼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에 돈이 없어서 국가건설을 할 수 없음을 실감하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할 것을 결심하였다. 1963년 10월 최초로 123명을 보낸데 이어 77년까지 7,936명을, 그리고 1966년 1월 128명의 간호사를 처음 파견한 후 10여 년간 11,057명을 보냈다.
처음 선발 시 500명 모집에 46,000명이 지원하여 아주 높은 경쟁률을 보였는데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던 사람으로 광산에서 근무한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라는 못살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는데. 국민 소득이 72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으니.
우리의 꿈은 미국이나 유럽의 코쟁이와 같이는 못살더라도 태국(22달러)이나 필리핀(170달러) 정도만 살아도 여한이 없었다.
‘울지 마오, 우리가 도와줄테요’
50년 前인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을 빌려 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어 함보른광산을 방문하여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머나먼 이국땅에 왔는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 이룩하지는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라고 연설을 하였다.
옆에 있던 육영수여사가 흐느끼어 장내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숙소에서 탄가루를 뒤집어 쓴 작업복 차림으로 대통령을 맞이한 광부들은 “각하, 손 한번 쥐게 해주세요”라고 하면서 흐느끼었고, 뤼브케 대통령한테는 “우리들은 무슨 일이나 다 하겠으니 우리나라를 도와주세요”라고 하면서 크게 울었다. 이에 감격한 뤼브케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는 박정희 대통령한테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울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 줄 테니”라고 위로해 주었다.
드디어 독일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수상의 주선으로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인 1억 5000만 마르크(약 4000만 달러)의 차관을 얻게 되었다. 그때 광부와 간호사의 월급은 각각 600마르크(160달러)와 440마르크(110달러)로 일반 회사원 봉급의 8배에 해당되었으며 월급의 70-90%를 국내에 송금하였는데 그 규모가 약 5000만 달러로 우리나라 GNP의 2%에 달하였다. 이는 수출액의 39.9%, 무역수입의 30.6% 정도의 엄청난 돈으로 이로써 우리나라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서독 광부, 그들은 누구인가? 지하 1500m 이상의 깊은 탄광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오로지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와 국가를 위하여 일하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전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간호사들은 연약한 몸으로 병원에서 가장 힘든 일을 몸이 부셔져라 일하였던 장한 대한의 여성이었다. 처음 광부로 독일에 파견된 분들은 나보다 4-5년 정도 선배로 우리나라의 산업을 부흥시킨 산업전사 1세대라고 말할 수 있고, 월남전쟁에서 전투를 하고 중동지역에서 땀을 흘린 우리 동년배들을 2세대라고 볼 수 있다.
종북좌파 여러분, 눈을 뜨고 보세요
그런데 북한의 실정은 어떠한가?
북한은 1967년 러시아와 ‘임업협정’을 맺어 매년 수만 명의 벌목공을 시베리아 지역에 파견하여 외화벌이에 급급하였다. 그들은 영하 30도가 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하는 마치 ‘21세기의 노예’와 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하브르스크 틴다 딥콘 등 여러 곳에 벌목작업장이 있는데 북동부의 아무르주 내에 있는 투타울(Tutaul)의 벌목장 입구에는 붉은 색으로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당의 의도대로 살며 일하자’라고 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벌목공의 고혈을 짜내었다.
그들의 월급은 보통 100-150달러이지만 소위 충성자금 당비 세금 숙식비 등의 명목으로 70% 이상을 착취해 간다. 또 보위부 요원들의 갈취가 끝없이 이어저서 실질적으로 손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극히 적은 액수이다.
많은 사고에 대한 대비책도 없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단순히 충성만을 강요당하고 각종 착취와 억압에 참지 못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탈출하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차디찬 러시아 벌판을 지금도 헤매고 있다.
벌목공이 뼈 빠지게 일하여 번 돈은 국민이나 국가 경제발전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김정은과 노동당의 경비로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 이와 같은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전사 1세대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월남전쟁과 중동에서 피땀 흘리면서 일한 2세대가 번 정성어린 돈을 기반으로 5개년 경제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도록 하였다. 청사에 빛날 위대한 역사(役事)를 이루었다.
긴 앞날을 내다본 그분의 혜안과 역사의식, 그리고 배 고픔에서 벗어나자고 몸부림치며 허리를 졸라매고 일하도록 독려하면서 나라를 이끈 의지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진다.
한편 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을 보니 힘들게 살아온 우리세대의 인생 여정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종북좌파 여러분! 제발 눈을 다시 떠 보고 반성 하십시오.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아들딸입니까 아니면 김정은의 가족입니까? 북한체제와 김정은이 그렇게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든지...
경제풍월 최정수 전 도쿄 한국대사관 참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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