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방문 때 들른 한 식당 입구에, 링컨의 사진과 함께 그가 한 말을 소개한 걸개가 있었습니다. 함께 간 일행이 제가 링컨을 닮았다며(아마도 턱이 긴 얼굴이) 그 옆에 서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사실 젊었을 때 아브라함 링컨을 몹시 닮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동길 박사의 <링컨의 일생>을 포함, 국내에 나온 링컨 관련 책자 열댓 권을 다 사서 읽었습니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캔터키 주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가난하여 공교육의 혜택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도 되고, 흑인 노예를 해방 하는 등 미국 사회에 공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의 이런 모습들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저에게 일종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브라함 링컨의 일생은 제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게 했고, 정한 목표를 이룰 때까지 꿋꿋하고 성실하게 매진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흠모하며 그를 닮고 싶어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그 당사자가 다른 이들에게 ‘나를 닮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최소한 한 번 이상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바울은 도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아침에 아래 본문을 읽을 때, 이 말씀이 평소와 달리 제게 꽤나 도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된 것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고전 11:1)
(Be imitators of me, as I also am of Christ.)
먼저 위 문장에 쓰인 동사는 명령형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꼭 그리 해야 한다는 강한 권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울의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그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를 본받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라는 확신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 대해 좀 더 확증을 얻고 싶어서 아래와 같은 관련 관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것같이 여러분도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 13:1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마 11:2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어, 달콤한 향기가 나는 예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행하십시오”(엡 5:2). “여러분은 이것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주셨습니다”(벧전 2:21).
이런 말씀의 요구에, 보통은 1) ‘사람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을 수 있겠나’ 하고 지레 포기하거나, 반대로 2) 스스로의 노력으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3)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예수님과 동일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을 부인하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고전 1:1, 빌 1:21). 이것을 알기에 저는 위 본문에서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한 것은 결코 그가 교만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할 자격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위 본문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고전 4:16, 빌 3:17, 살전 1:6, 살후 3:7, 9). 따라서 우리가 바울을 본받는다면 구체적으로 그의 어떤 면을 본받아야 할지를 놓고 관련 구절들을 묵상할 때, 최소한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제 안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1)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던 주님의 본을 따라, 바울은 그 ‘예수를 먹어’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았습니다. 즉 그는 모든 상황에서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살았습니다(요 6:57, 갈 2:20).
2) 바울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복음을 통해 많은 이들을 낳았고,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고전 10:33, 4:15).
3) 바울은 힘을 다해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분을 최고도로 얻고자 했습니다(빌 3:15).
4) 바울은 성도들의 짐이 되지 않도록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 사역을 했습니다. 즉 그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수고했고, 이 과정에서 교회 안의 무질서를 경계했습니다(살전 2:9, 살후 3:7).
5) 요즘 한국 교계 주류의 실행과 달리, 바울은 주님을 본받아 세상 제도나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요 6:15, 18:36). 예를 들어 그는 서두의 링컨과 달리, 그 당시의 노예 제도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노예라도 주님께 속한 자유인이요”, “자유인도 부름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노예”였기 때문입니다(고전 7:22). 또한 그가 ‘위에 있는 권위자들에게 복종하십시오’(be subject to the authorities)라고 말할 당시에 로마 황제는 그 유명한 네로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롬 13:1).
오 주님, 우리로 모든 방면에서 주님을 본받은 바울을 본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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