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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글은 스마트폰 📸 와이드(WID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성경 맥 잡자(23)*박진호 목사 바이오리듬의 휴일과 참 안식의 주일 “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 되니라. 2.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을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창2:2-3) ⚑{안식일을 기념하라.}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너희가 창조에 관여 하지 말고 그날을 창조주를 인정하여 그날을 쉬며 기뻐하라. 주일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엣 아담의 육체를 죽이셔서 새로운 창조를 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새로운 창조를 하신 날이다. 그것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니 우리가 구원에 관여하지 말고 그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며 쉼을 얻는 날이다. 정미한 성경 기록 하나님은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심으로써 창조 사역을 마쳤다. 다섯째 날까지 천체들과 지구의 자연환경과 동식물을 모두 만들었다. 인간 창조를 위한 예비과정이었다. 여섯째 날에 당신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만드신 후에 심히 좋게 여기셨다. 천하 만물이 당신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창조되었고 무엇보다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릴 인간을 만드심으로써 아주 흡족해 하셨다. 그리고 일곱째 날이 이르매 안식을 취하셨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완전히 휴식한 것은 아니다. 창조 사역을 마친 후에 이제는 그 피조물을 통치 운행하는 사역은 아무런 쉼 없이 이어가셨다. 그러나 따로 이 날을 안식일로 정한 것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있다. 창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베드로후서 3장8절 “8.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1년 365일은 30일 단위의 12달로 이뤄진다. 이런 달력을 만든 것은 해와 달의 자전과 공전 주기를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맞추어 관찰한 결과다. 창조과학회 같은 보수진영은 문자 그대로 24시간씩 6일 만에 창조를 마쳤고 제 7일을 안식일로 정했다고 주장한다. 능치 못하실 일이 없는 하나님인지라 그런 단 시간에도 얼마든지 만물을 만들 수 있고 또 오류가 전혀 없는 성경 기록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수십억 년의 장구한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순전히 시간적으로 따져 창조가 얼마나 걸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인간을 만드신 분이 그 생체주기(Biorhythm)를 일주일 단위로 정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은 6일간 일하고 7일째 하루는 쉬어야 올바른 정신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열흘, 보름, 한 달씩 일한 후에 하루 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 만성스트레스, 직업병, 직장안전사고, 만성허약체질, 정신병 등에 걸릴 것이다. 반대로 이삼일만 일하고 하루 쉰다면 전부 베짱이 같은 게으른 자, 아예 놀고먹으려는 자, 일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는 만년 열등생들로 변할 것이다. 비유컨대 자동차는 이전에는 3천마일, 최근에는 성능이 좋아져서 5천마일마다 엔진오일을 갈아주게끔 되어 있다. 자동차를 설계 제작할 때에 엔진과 오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알아서 정한 주기다. 만약 어기면 엔진에 무리가 생겨 빨리 마모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설계제작하신 분이 7일째 하루는 쉬어야만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고 정한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를 과학적 데이터와는 동떨어진 신학적 저술이라고만 간주해선 안 된다. 모든 것이 사실이며 그 안에 과학과 전혀 상충되지 않는 실제적 진리가 숨겨져 있다. 아니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이미 창조된 사물을 사후에 관찰하여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법칙을 찾아내는 작업이지 않는가? 바꿔 말해 과학 자체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다. 신앙은 과학과 모순 상충 되지 않으며 과학을 다 포괄하면서도 초월할 뿐이다. 자동차를 만든 인간이 자동차보다 지능이 모자랄 리는 없다. 동일한 지혜로 비행기,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계시해 놓은 책이며 그분 최초의 위대한 과업인 창조를 그 첫 장에 기록하고 있다. 성경도 과학을 초월하긴 해도 모순, 상충되지 않으며 오히려 과학보다 더 정확한 기록일 뿐이다. 하나님께는 오직 진리만 있고 거짓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맞은 첫날은 휴일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6일간 먼저 일을 하신 후에 마지막 7일 째에 휴식하셨다. 물론 창조라는 사역만 마친 것뿐이지만 어쨌든 쉬셨다. 그러나 첫째 인간 아담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땅에서 맞은 첫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창조된 날은 얼떨결에 하루를 보내었다고 가정하면 그 바로 다음날 하루를 충분히 휴식한 후에 6일간 노동을 한 것이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하나님이 직접 주관, 통치, 운행하신다. 인간은 그분의 일에 동역자, 청지기로 참여만 할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계획한 뜻은 인간으로 안식의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 정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노동은 그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로 타락하여 인간은 피조세계와 함께 그분의 벌을 받았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고 인간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노동이 안락과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단지 생존을 위한 목적으로 전락되었다. 차츰 일과 일의 결과로 얻게 되는 소유가 인생의 목적으로 변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물질 소유로 바뀌니까 서로 많이 차지하려다 죄를 더 많이 짓고 그 결과 인간 세상에 환난과 곤고(困苦)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래 인간에게 소망하고 계획하신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되었다. ➤“32. 그러나 그분께서 근심하게 하실지라도 자신의 많은 긍휼에 따라 불쌍히 여기시리니 33. 그분은 고의로 사람들의 자녀들을 근심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아니 하신다.”(애3:32-33) ➤“11. 너희를 향해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내가 아노라. 그것은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요, 재앙을 주려는 생각이 아니니 곧 기대하던 결말을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라. {창조주}가 말하노라.”(렘29:11) 그러나 하나님의 타락 이후의 인간을 향한 뜻도 징계를 하긴 해도 여전히 창조 당시처럼 평안을 주는 것이었다. 아담이 맞은 첫날이 안식일이었듯이 오늘날 신자도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의 일을 반성만 하는 마지막 날이 아니다. 새로 시작할 일주일을 차분히 계획하여 기도하며 새 믿음 안에서 새 소망을 키우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바울 사도는 이전에 행한 지난 일은 다 잊는다고 한다.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걸어가는데 궁극적으로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요, 현실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소명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부르셨기에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면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주일이 첫날인 것은 바울의 고백 같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가는 일을 새로 시작하는 일주일을 위해 준비하라는 뜻이다. 신자가 주일에 지난 잘못을 참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푯대를 향해 제대로 걸어가는지 방향을 잡는 것이다. 따라서 참회도 단순히 도덕적 잘못을 반성하는 수준이어선 안 된다. 정말 자신이 하나님이 부르신 코스대로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견주어보고 잘못 간다면 수정하는 것 이여야 한다. 무엇보다 새 일주일을 큰 기대와 설렘을 갖고 맞아야 한다. 주일을 첫날로 삼은 이유는 하나님이 지난 주간보다 더 큰 사랑과 권능으로 신자를 인도하시겠다는 뜻이다. 반드시 새로운 일과 새로운 복이 기다리고 있다. 새 주간은 지난 주간과 전혀 달라질 것이다. 신자도 지난주보다 새롭고도 더 큰 소망, 기대, 각오, 헌신, 순종으로 새 일주일을 맞아야 한다. 아담이 세상에서 처음 맞은 날이 안식일이었는데 그에게 펼쳐진 첫 일주일에 하나님의 복을 주시며 날마다 얼마나 신기하며 풍성했겠는가? 그처럼 신자에게도 새 한 주간의 너무나도 오묘하고 위대한 그분의 은혜의 막이 열리는 바로 전 날이 주일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늘날의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다. 구약성경만 믿기 때문에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안식하는 것이다. 제 7 안식교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구약성경을 더 강조하며 율법적 문자적으로 지키려 하니까 그 순서만 따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따지면 문자적으로도 일주일의 첫날이 안식일에 해당됨을 알지 못한 것이다. 복 받은 주일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진짜 중요한 뜻은 따로 있다. 이미 살펴본 일주일의 첫날에 대한 영적 의미는 어쨌든 그 순서에 기인된 것이었다. 그런 순서와 상관없이 안식일 자체의 순수한 의미가 있다. 신약의 주일은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창조를 하신 날이다. 그래서 여덟째 날을 첫날로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날이다. 그럼 주일을 성실히 지키고 또 교회에 가서 기도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다는 뜻인가? 기독교 신앙에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이 뜻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 신자 즉, 당시로선 아담에게 복을 준 것이 아니다. 일곱째 날 자체에 복을 주었고 또 그 내용도 그 날을 거룩하게 한 것뿐이다.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복을 준 대상이 셋 있었다. 그 대상들과 복을 받은 내용들에 어떤 공통점 내지 상이점이 있는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물들이었다. ➤“22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바다의 물들을 채우고 날짐승은 땅에서 번성하라, 하시니라.”(1:22) 생육, 번성, 충만해지는 복을 받았다. 그러나 스스로 생존 번식만 하면 되지 구태여 따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동물로선 생존하고 번식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자 복이었다. 둘째는 ➤“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28절) 생육, 번성, 충만해지는 것 외에 동물이 받지 못하는 복을 받았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을 정복하고 생물을 다스리는 청지기가 되는 복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가장 먼저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인간이 실행할 최초이자 최고의 덕목이요 임무다. 당연히 인간끼리 뿐만 아니라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순전히 인간의 현실적 풍요와 안락을 위해서, 그것도 자기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만, 지구를 정복해선 안 된다. 과거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최근의 자원 확보 경쟁, 무차별적 개발, 환경오염 등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우리 스스로 왜곡 파괴시킨 것이다. 필연적 결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재앙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그 피해의 정도가 급격히 심화될 것이다. 동물과 인간은 움직이는 생물이기에 당연히 번성해지는 복을 받았다. 인간은 또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고유의 소명을 받았다. 그런데 복 받은 세 번째 대상인 일곱째 날은 무생물이다. 일주일의 일곱째 날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니까 따로 번성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곰곰이 따져보면 앞의 두 복과 연관되는 점은 분명히 있다. 우선 전혀 활동하지 못하는 대상에 하나님이 복을 따로 주실 이유는 없다. 무생물은 생물이 번성할 수 있게 하는 여건과 수단일 따름으로 이미 다 주어진 상태다. 하나님으로선 이 땅에서 활동하면서 당신의 창조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대상에 한해 복을 주실 필요가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안식일도 흘러가는 시간으로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해, 달, 지구의 움직임에 의해서 생긴 것이 시간이다. 천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럴 리는 없지만,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시간은 실제로 단 일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가? 또 인간은 그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희로애락을 맛보고 생로병사를 겪지 않는가? 말하자면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달성하려고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니 한 번의 쉼도 없이 흘러가므로 그분의 일을 가장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은 위대한 창조의 시작이 있었기에 마지막 날의 엄위한 심판도 있을 것이다. 시간 안에서 그분의 거룩한 역사는 당신의 백성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움직이는 생물과 인간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에 복을 주신 뜻은, 한마디로 인간은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일을 시간 허비하지 않고 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창조에 부여한 세 가지 복중에 일부 내지 전부를 놓치게 된다. 동물과 시간은 정해진 법칙에서 어긋나는 법이 절대 없으니까 그분의 복을 잃을 염려도 아예 없다. 반면에 인간만 자유의지를 갖고 있기에 인간 자신의 복을 찾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동물과 안식일에 허락하신 복까지 손상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으로 영적으로 보지 않고 글자 주의가 되면 망하게 된다. 주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4장 44-48절에 “44.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45.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46.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같이 기록되었은즉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셋째 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며 47. 또 회개와 죄들의 사면이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리니 48. 너희는 이 일들의 증인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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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