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70788§ion=sc30§ion2=
‘선상 위의 오찬’은 르누아르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사이즈와 스타일에서 독보적이다. 인물의 묘사와 공간 배치도 역동적이고 흥미로운데, 밝은 색채와 붓터치, 강가의 빛을 담아내는 인상주의적 묘사가 압권이다. 등장인물도 모두 작가의 지인들이다.
강아지를 어르고 있는 여인은 알린 샤리고로 후에 르누아르와 결혼한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인상파 화가이자 후원자인 구스타프 카유보트, 바로 옆에 앉은 여성은 여배우인 안젤 레고, 그녀의 의자를 손으로 짚은 남성은 이탈리아 기자인 아드리안 마지올로다. 샤리고 뒤 난간에 손을 짚고 선 남성은 알퐁소 푸르네즈 주니어로 이 배의 주인 아들이고, 같이 난간에 기대 선 여성은 여동생인 루이즈 알퐁시네 푸르네즈다. 루이즈와 이야기 하고 있는 남자는 기병대 장교출신인 바론 라울 바비에르, 유리잔으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여인은 배우 앨런 안드레, 그녀를 등지고 신사모를 쓴 남자는 미술잡지 편집장이자 미술사학자인 찰스 에르푸시다.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흥미롭지만, 사실 누가 누구인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르누아르가 자신 지인들과 보낸 평범하고도 즐거웠던 오찬을 화폭으로 데려와 영원성을 부여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을 배경으로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기분좋게 술에 취했던 젊은 시간이 우리 앞에 끊임없이 펼쳐진다.
던컨 필립스도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봤다. 1923년 파리 화상인 폴 뒤랑뤼엘로부터 그림을 사들이자 마자 흥분해서 “마침내 전세계 최고의 그림 중 하나를 소유했다…. 이 그림은 어딜 가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의 평가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선상 위의 오찬’을 필두로 던컨 필립스는 유럽작가들의 수작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들라크루아의 파가니니, 마네의 트레이를 든 소년도 이때 수집했다. 엘 그리코, 쿠르베, 푸뷔 드 샤방의 작품도 컬렉션 리스트에 올랐다. 1925년에는 또 다른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과 만난다. 따뜻하고 독특한 색감,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구도가 인상적인 피에르 보나르의 화풍은 던컨 필립스를 무장해제 시켰다. 부부는 보나르의 작품을 무척 좋아해 1954년까지 총 17점을 컬렉션했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작가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컬렉션 하이라이트로는 마크 로스코가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었던 그의 작품을 던컨 필립스는 무척 아꼈다. 언제부터 매료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로스코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테오도로 스타모스는 자신이 던컨 필립스에게 로스코를 추천했다고 한다. 보나르의 색채와 로스코의 색채의 연관성을 이야기해 던컨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던컨은 로스코의 작품을 1956년부터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0년 미술관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로스코 룸’을 만든다. 작은 방이지만 사방을 회색으로 칠하고, 모든 벽에 로스코 작품을 걸어 마치 작품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한 점씩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한 자리에 걸고 감상하며 명상하듯 보라고 강조했는데, 필립스 컬렉션에서 가장 근접한 감상 환경을 만들어 낸 셈이다.
시간이 지나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컬렉션을 만든 컬렉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컬렉션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확고하다. 던컨 필립스도 예외는 아닌데, 특히 예일대에 다니면서 예술전문잡지를 만들만큼 미학에 빠져들었고, 동시에 글에 대한 욕심도 상당했기에 많은 에세이를 남겼다. 덕분에 후대인 우리들은 컬렉터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필립스 컬렉션은 인상파 이후 유럽 모더니즘 거장들의 수작이 많다. 또한 전후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회화도 수준 높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모더니즘을 미국에 가장 처음 소개했다는 것도 모두 던컨 필립스의 안목과 뚝심에서 출발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에선 인상파 이전의 고전주의 작품을 최고로 쳤다. 인상파 이후의 작품은 이런 전통을 흐리는 것으로 간주됐다.
이처럼 ‘단단한’ 컬렉션을 만든 던컨에게 최고의 조력자는 아내인 마조리 애커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1921년 결혼했다. 이후 평생을 작가로 활동했으며 남편에겐 동료이자 아트 어드바이저로 살았다. 던컨의 사망 이후엔 필립스 컬렉션의 관장을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역임했다.
마조리가 아니었다면 필립스 컬렉션은 다른 형태를 갖추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를 만나기 전 던컨은 미국 작가를 지원하는 데 의의를 뒀다. 뉴욕의 클럽하우스인 더 센츄리 어소시에이션에서 1920년 가을 개최한 전시에 43개 작품을 내놓으면서 “미국 미술의 풍부함은 다른 미국 토종 예술가들에게 자극을 주고 영감을 준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모더니즘 작가들을 혹평하기도 했다. 1913년 아모리쇼를 다녀오고 나서 던컨은 앙리마티스를 ‘불쾌한 사람’이라며 “어린아이와 미개한 야만인의 단순한 무지에 어울리지 않는 패턴, 조잡할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거짓이며 미친 듯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타락한 패턴을 창조한다”고 비난했다.
큐비즘에 대해서는 더 심했다.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그의 평이었다. 할아버지가 피츠버그에서 은행가이자 철광 산업으로 큰돈을 벌고, 아버지는 유리 사업으로 백만장자였던 ‘금수저’ 엘리트 소년의 세계는 아내를 만나면서 바뀌고 성장했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필립스 컬렉션이 던컨 컬렉션이 아니라 ‘부부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