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웃에 사는 지인이 테니스게임을 한번 하자고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이 없었으므로 그러겠다고 대답을 해 놓고
추리닝으로 옷을 갈아입고 라켓트를 들고 코트로 나갔다.
날씨가 꾸무리해서 제법 추웠다.
두 게임정도 하고 난 다음 정초니까 귀밝기 술이나 한잔 하러 갑시다고 했다.
오랫만에 만났으니 그냥 헤어지기도 조금 섭섭해서 그러겠다고 따라 나섰다.
시장 골목길에 그분 단골집이 있었다. 채 다섯시가 인됐으므로 초저녁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방바닥도 싸늘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전기장판 스윗치를 넣었으니 곧 따뜻해집니다면서 반가이 맞이했다.
돼지수육 한 접시와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둘이서 한잔 하려니 평소 같이 공을 치던 젊은친구가 마음에 걸려서
전화를 했더니 부리나케 좇아나왔다.
젊은 친구가 합세하니 분위기가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는 오자마자 폭탄주를 만들어 단숨에 벌컥 들이켰다.
내게도 폭탄주를 권했지만 오늘 오전에 강의가 4시간 있었으므로 사양했다.
한 때 폭탄주가 유행병처럼 돌았던 시절도 있었다.
폭탄주 제조방법도 가지가지였다. 회오리주며 도미노주 등등
폭탄주는 군사문화의 소산이다
군출신들이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여러가지면에서 능력이 딸리게 되자
회식자리에서 술로써 상대방을 제압해 보려는 숨은 의도가 내재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예전에 배를 탈 때 맥주눈 아무리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맥주잔에 맥주를 따른 다음
그 위에 위스키를 타서 마셨다. 그래야만 술 마신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네들란드 로텔담에서 미국가는 철재를 싣고 출항하다가 밤11시경 입항하는 배와
서로 파일러트가 탄 상태에서 정면 충돌을 했던 것이다.
상대선은 남미에서 바나나를 싣고 오는 배여서 우리배의 선수측에 시피런 바나나가 쏟아졌던 것이다.
우리배의 선수부분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 벨기에 안트워프 도크에서 수리 하는 데 한 달 가량 있었다.
선원들은 미리 가불을 해서 저녁때만 되면 시내 술집으로 나갔다.
술도 마시기도 하지만 술집에는 춤추는 장소가 마련돼 있어서 아무라도 춤을 출 수 있었다.
남여노소 춤추는 것이 하나의 놀이 같았다. 그러나 자기네들끼리는 아무나 잡고 춤을 추어도
동양인인 우리와는 춤을 추려고 하지 않았다. 인종차별이었다.
"매담! 원 댄스 프리즈!" 해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춤추러 가서 한번 거절당했다고 해서 주눅들어서는 안된다.
그럴수록 안되면 그 옆에 앉은 여성에게 가서 손을 내밀며 "맴,원 대스 프리즈!"하고 너스레를 떨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맥주만 마셔서는 취기가 오를 때까지는 돈이 모자라니 할 수 없이 폭탄주를 스스로 만들어 마셔야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폭탄주의 원조가 된 셈이다.
그러다가 학교로 적을 옮긴 후로는 소주나 그 이상의 알콜을 들이키면 지장이 있어 일체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습관이 바뀌면 인품이 바귀고 결국에는 자신의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술 버릇 하나지만 연륜이 쌓이게 되면 운명이 달라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첫댓글 내일 연산동서 얼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