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은 시각 사위가 어둡고 고요한데,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동남쪽 산등성이 위로 제법 밝고 큰 샛별 하나가 나타난다. 잠시 선 자리에서 깜빡깜빡하며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남쪽 하늘을 천천히 가로질러 아파트 뒤 서쪽 하늘로 유유히 사라진다. 얼핏 UFO인가 했다. 밤만 되면 떠오른다. 특정한 계절도 시각도 없다. 한 이 분여가 못 돼 또 다른 샛별이 나타나 서쪽으로 넘어간다. 밤새 수없이 반복한다.
낮에 가만히 보니 유에프오는 아니고, 등불 든 큰고니들이다. 예서 멀지 않은 영종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저들은 대체로 우리나라의 동쪽에 있는 일본 미국 등지에서 수만 리 창천을 쉬지 않고 날아온 것이다. 서쪽이나 남쪽에서 오는 것도 저들 못지않게 많단다. 세계를 덮친 역병으로 한동안 뜸했는데, 요즘엔 도로 늘어 영종도 하늘이 심히 북적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반가운 소식이다.
보도를 들으면, 인천공항의 여객처리 능력과 서비스 수준이 세계 선두권에 있다고 한다. 세계 유수의 공항 경쟁에서 최우수 평가를 몇 년째 연속으로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이 또한 반가운 얘기다. 지은 지 불과 이십여 년 된 인천국제공항공사나 대한민국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어디 이뿐이랴. 어느덧 우리나라는 경제는 물론, 문화 예술 스포츠 수준조차도 세계 상위권에 올라있다. 최근엔 육해공 방위산업조차 세계의 이목을 끈다.
아시아 대륙의 동북 변방에 토끼의 뭉툭한 꼬리처럼 붙어있는 작은 나라가 동녘 하늘의 샛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세계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견한 일이다. 타고르의 시 ‘동방의 횃불’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불량스러운 눈을 치켜뜬 망나니들을 북쪽에 두고 있고, 그들 손에 들린 흉기가 예사롭지 않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국제법도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들이다. 윽박지른다고 말을 들을 자도 아니다. 같이 죽자고 덤비는 자는 무서운 법이다. 적당히 어르고 달랠 필요도 있다.
70년대 초까지도 김포공항이 유일한 국제공항이었고, 제주 부산 등 몇 곳에 공군비행장을 빈 지방공항도 있긴 있었지만, 그저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으니, 참 가난한 대한민국이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몇 대의 제트기와 앵앵거리던 프로펠러 비행기 십몇 대가 다였다. 내가 아내와 함께 타고 간 제주행 비행기도 앵앵이였다.
오늘날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외에도 군소 항공사 몇 개가 더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항공기는 400대가 넘는단다. 이들이 세계 각국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국제 직행노선만도 200개가 훌쩍 넘는다. 인천공항의 네 개의 활주로에 이착륙하는 세계 각국의 항공기는 하루에도 천대를 넘는다니 활주로는 한가할 틈이 없단다. 출입국자는 연간 1억 명에 이른단다. 규모의 경제가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지만, 어느 정도는 갖춰야 비교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과연 전 세계의 수천 개 국제공항 중 선진 공항의 반열에 오른 지 이미 오래다. 삼십여 년 전 이 공항건설 정책을 입안할 때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육성한다고 하더니, 과연 그리되었나 보다. 오십여 년 만의 상전벽해다.
대한민국의 관문이던 김포가도와 양화대교는 일반도로가 되었다. 두 개의 고속도로와 공항철도는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용하지만 막힘이 없다. 그 옛날 반세기 전 김포가도를 달려 서울로 들어올 때, 가로등이 반 넘어 꺼져있던, 아프리카 후진국의 어느 도시처럼 절망적이고 후진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그때의 초라한 모습은 여전히 머리에 똬리를 틀고 있으니 가슴이 쓰리다. 새삼 조국의 번영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두어 해 전 친구들과 함께 찾았던 인천공항은 참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공부하러 가는 딸을 배웅하러 이십여 년 전에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더욱 커졌다. 폭증하는 이용객 수요에 맞춰 제2청사를 또 지었다고 한다. 수출입화물용 제3청사는 따로 있단다. 이런 화려한 국제공항을 부산에도, 대구에도 짓자 하니 논란도 많다.
그 옛날 유럽 선진국의 으리으리한 현대식 공항을 감탄과 부러움으로 바라보던 촌스런 내 모습이 거대한 유리벽 너머에 아련히 비친다. 그땐 우리도 이렇게 화려하게 살 수 있을까 꿈속을 헤매기도 했는데, 어느덧 그 꿈을 이루고 말았나 보다. 인천공항은 무수히 날아오는 큰고니들이 내려앉아 날개를 접고 편히 쉴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거대한 습지가 되었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국민들의 근면정신을 일깨우던 군사정부의 외침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요즘 이 노래가 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종종 들린다고 한다. 해외에서의 의료봉사나 구호활동 등 비정부단체의 활동도 활발하다. 과학기술의 전수사업 또한 활발하다. 내 친구 한 사람도 공무원 정년퇴직 후, 한국국제협력단(KOIKA)를 통한 해외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우리나라 기상위성이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한 기상예측시스템을 구축하여 주고 이용기술을 전수하는 일을 십여 년째 해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긍지를 높이는 일이다. 이젠 분명 우리가 저개발국가의 정신적 물질적 지도국이 되었나 보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지난날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의당 우리도 기쁘게 베풀어야 하리라. 기쁘게 줄 수 있음은 행복이다.
첫댓글 애국심이 가득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 바람에 노인이 되어도 걱정이 없어 졌습니다`^^
일깨워 주셨어 너무 감사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한민국의 관문으로 거듭난 인천국제공항...!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반증이지요.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현실이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더욱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되리라 위심치 않습니다.
글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가슴 뿌듯하게 느낍니다.
좋은 글을 따라 웅비의 여행에 동참합니다.
파이팅~!^^*~
귀한 댓글 고맙습니다. 권선생님.
집에서나 농장에 있을 때 남쪽하늘을 분주히 오가는 큰고니 같은 여객기를 무수히 봅니다. 빈티가 가득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오늘의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요.
타고르가 진즉 알아본 것이지 결코 과장은 아니었죠.. <동방의 등불> ^^
60년대와 70년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만큼 잘 살고 있지요.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일이 오리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였지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공항을 찾을 일은 거의 없지만, 인천공항을 찾아가는 수많은 비행기를 자주 목격하다 보니 옛생각이 아련합니다. 조국도 저도 참 가난했었죠. 그런 우리가 이젠 분명 '동방의 등불', '샛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부모 활동력의 능력과 지혜와 슬기로운 생활로 경제력을 갖춘 부모의 덕으로 혜택을 자식들이 누리 듯
훌륭한 지도자 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저 부유함이 있었던 것 처럼 현재는 풍요로움 속에서도 빈곤을 느껴며 살게되고 증폭된 현실의 갈등이 안타깝습니다
풍요는 후손에게 물려주었지만, 내핍과 근면정신은 물려주지 못한 탓이 아닐는지요. 여하튼 공항에 가득한 비행기를 보며 조국의 발전상을 피부로 느낍니다.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