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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수직관계와 수평관계를 직조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벌거벗고 낙원에서 살지 못하고 옷을 입었을 때부터 관계의 복잡성은 그들을 얽어매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얽어맨 인연의 매듭을 보고들은 대로 말하려한다
1. 컴 화면에는 채팅을 하는 사람들의 아이디가 떠다닌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음성을 하고있는 모양이다. 마이크를 사용하면 화면 한쪽에서는 보이스의 파고가 흔들린다. 한참을 한사람이 열변을 토하는 모양이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아이디가 낯설다. 새로 접속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주로 음악 방송국으로 채널을 맞춘다.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다가 가끔 음성 챗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내컴의 볼륨을 죽여 놓았으므로 소리를 들을수가 없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다. 그저 이곳에서는 눈팅족이다. 나는 이곳에 대화를 하러 들어온 것이 아니다 . 내가 잘 알고 있는 아이디 하나를 찾고 있는 것 이다.
2.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몇 달이나 접속하였던 사이트의 주소를 잊었다. 몇 달을 접속하지 않은새에 머릿속은 오프라인의 번잡스런 정보로 가득차서 예전의 사이트로 접근하는 법을 잊었다.
익숙했던 사이트로 접속을 못하자 나는 빌딩숲속에서 길을 잃은 미아처럼 두리번 거렸다. 화면은 낯설었고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커서만 노려 본다 . 잘 꾸며진 인공적 공원을 버려둔 아니 도시의 인공공원에서 버림 받은듯한 황량한 공간이 인터넷에 존재한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하지만 인터넷은 가상세계지만 사람이 만든, 사람이 감정의 설정값을 매겨놓은 장소기 때문에 사람의 흔적을 알게 되고 그것의 부재는 황량함으로 이어지고 시간은 멍청하게 정지되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의 행간을 추수르기 위해 드나드는 장소였으므로 이곳에 오면 나의 일상과 숨결이 그대로 배여난다. 누군가가 나를 컴에 빠진 폐인이라고 지청구를 할지라도 말이다.
기쁠때나 슬픔의 순간순간 이곳에 나를 기록하곤 하였다.
나를 친구들이 배신했을 때도 , 그들의 놀림감으로 여겨 모욕을 느꼈을때도 또 내가 열등감으로 치를 떨면서 괴로울 때도 진솔한 마음을 이곳에 심곤 하였었다.
이곳은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 속 궁전에 나오는 가련한 이발사의 대숲이요,땅속에 구멍을 뚫고 임금님 귀의 비밀을 토해내는 유일한 탈출구다.
3. 현수가 온라인에 열린 공간을 개설하고 공포천사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대문을 걸어두고 한동안 음악 방송을 하였다는 것은 친구들에게는 생뚱맞은 짓거리였다. 그는 음악을 즐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컴에 대하여 서도 별로 아는것도 없던 친구였으니까. 그 친구의 일과는 단순하였다. 직장에서 퇴근길에 만화책을 열권씩 빌려다가 읽었고 잠을 잤고 출근하고 비교적 시간관념이 투철해서 직장에서 지각을 하는법도 없었고 일을 하면서도 다른 동료들에게 작업량이 뒤처지는 법도 없었다. 그는 잘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는 명랑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우울한 기색도 없었다. 그의 존재감은 그렇게 큰편이 아니었다 .
4.나는 컴에 접속하여 두개의 아이디를 띄운다. 하나는 메인으로 사용하는 아이디고 하나는 나만이 아는 아이디다.
나는 나만이 아는 아이디 에게 날마다 편지를 쓴다. 나에게 쓰는 편지지만 나는 3인칭으로 쓴다. 그러므로 편지를 받는 나는 낯설고 미지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를 관찰당하는 기분으로 글을 읽는다. 나는 매일매일 편지를 보낸다. 하루에 한통도 보내고 3통도 보낸다. 컴에 접속하면 편지부터 쓴다. 알고있는시를 베끼기도 하고 날씨를 적기도 하고 그날의 뉴스를 적기도 한다. 나는 무엇이든 활자로 만들어서 글을 쓴다.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상상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내가 보내는 글을 그가 읽는지 수신확인을 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그가 보내는 글을 꺼내서 읽는다 .그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그가 보내는 편지를 100일만에 열어본다. 그러므로 나는 늘 한 계절 뒤처진 편지를 읽게된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읽는데에 100일이 걸린다. 편지속에 존재하는 100일전의 나는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현재진행형의 나는 우울하다.
5.
현수는 음악방을 열어놓고 곧장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음악방을 운영하는 방식은 대문에 “ 공포천사 잠수하다” 라는 방제에 걸맞게 음악 신청곡을을 받아 주는일은 없었다. 그는 주로 컴에서 게임을 하느라고 밤늦도록 있었는데 게임을 하면서 음악을 듣기위하여 파일에 음악을 다운받는 형식으로 몇 시간씩 음악을 제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음악방은 늘 방문객이 적어 썰렁하였다. 간혹 사람들이 들어와서 인사를 나누어도 대답이 없었으므로 방문객은 곧 다른 음악방으로 가버렸다. 그는 그 시간에 게임 중이거나 잠을 자는 중이었으므로 방문객들의 인사를 무시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음악방을 열어 놓은것은 오프라인의 직장동료중 유일한 동갑내기인 석진이의 간헐적적인 방문 때문이었다. 석진이도 음악을 좋아하였지만 주로 고스톱을 치는 편이었다. 그러므로 석진이는 가끔씩만 음악을 들었다. 그는 비사교적이었으므로 컴에서 음악을 통하여 누군가 하고 가까워 진다는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석진이가 방문하지 않으면 음악방을 잠구고 컴의 전원을 내린 다음 밤2시쯤에는 잠을 자는 편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6.
석진은 컴에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였다. 고스톱을 하다가 알게 된 여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여인의 아이디는 사계절이었고 실제로 만나보니 사계절이란 아이디를 쓰는 사람답게 평범하고 온화했다. 삼십대 초반의 여자가 주는 톡톡 튀는 싱그러운 맛은 없었다. 나이보다 5년쯤은 더살은 듯한 편안함이 있었으므로 석진은 그여인이 자신하고 동갑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었다. 그들은 주로 컴에서 대화를 하는 편이었므로 석진은 사계절이라는 여인을 대할때면 연상누이를 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연상녀가 주는 편안한 이해심은 석진이 퇴근후에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비밀스런 즐거움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한번 만났다는 것으로 그들은 얼굴을 모르면서 고스톱을 두는 신비감은 떨어졌지만 그 시간대에 공포천사가 운영하는 공간으로 이동하여 음악을 들으면서 대화창에 대화를 올렸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일상의 뻔한 것들 이었으므로 게임을 즐기는 음악방의 주인장은 개의치 않았다. 설령 그들의 대화를 주인장이 본다고 하여도 석진하고 공포천사는 이미 오프라인의 지인이었으므로 말수적은 공포천사에게는 대화의 구실로 작용하여 좋아하였다.
7. 석진하고 사계절이 공포천사의 방에서 둥지를 틀고 지루한 음악에 몸을 비틀면서 음악을 듣고 있을때 “우리님 조폭”이라는 무시무시한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우리님 조폭은 대화창에 인사말도 올리지 않았다. 조용히 음악만 듣고 있는것인지 잠수중인지 알수 없었다. 석진하고 사계절이 두시간 동안 노닥거리면서 대화를 주고받는데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조폭님 안녕하세요? "
"우리님 안녕?"
"안녕하삼? "
"안냐염? "
"안냐세요? "
"안냥? "
"헬로 ㅋㅋ?"
"안냐연?"
" 할룽?"
"하이여?"
“우리님 조폭”은 묵묵히 있다가 잘 듣고 간다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석진과 사계절은 봄도 오고하였으니 공포천사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놀러갈 계획을 세우다가 컴에서 나왔다. 공포천사는 그들이 사라진 후에야 스크롤을 올려서 내용을 확인하고 혼자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8.나는 메일을 쓰고 나서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서 음악방을 접속 하였다. 내가 새롭게 만든 아이디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거부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아이디다 . 나는 의도적으로 아이디를 무섭게 만들었다 조용하게 음악만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는 것도 귀찮았고 음악을 신청하는 것도 귀찮았다. 불면의 밤에 음악이 좋은 방에 접속하여 음악만 들으면 그만인 장소를 알고 싶었다. 음악방제를 훑어보다가 “공포천사잠수하다 라는 방제를 보았다 .그 방은 잠수방인 듯 하다. 나는 그 방에서 몇 시간을 머물면서 음악을 들었다. 다른방과는 달리 사람도 2명뿐이고 들락거리는 아이디들도 없었으며 음악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음악도 내가 선호하는 계통이었다. 나는 당분간 이곳으로 들어와 음악을 들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은 별반 없다. 나는 밤이 무서운것이다. 불면의 밤은 너무도 많은 생각더미를 실어 놓는 것 이므로 나는 생각을 잠재울 수만 있으면 족한 것이리라.
9.석진하고 사계절은 놀이공원에 가기로 하였지만 그는 놀이공원에 가는것 보다는 게임에 빠져 있었으므로그날도 음악방을 열어놓고 게임중 이었다. 날씨는 드럽게 화창하였다. 석진하고 사계절이 오손도손 뭔가가 이루어질 기미가 보였으므로 부럽기도 하고 회의적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컴에서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교적 성격인 석진은 컴이 아니더라도 친구들이 많았다. 석진은 사계절의 편안함에빠졌다고 하지만 남자들 속셈은 뻔한 것 이다. 곧 석진의 음흉함이 들어 날것이다. 오늘 하루는 공포천사란 닉에서 벗어나 멋진 음악방을 만들어 멘트도 하면서 기타를 치면서 방을 꾸리고 싶다. 하지만 “공포천사잠수하다”의 방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썰렁하다. 오늘은 우리님조폭도 오지 않았다. 우리님 조폭은 언제나 밤8시에 들어왔다. 그리고 밤12시에 나갔다가 밤2시쯤 다시 접속하곤 하였다. 밤2시에 그가 컴을 끄려고 하면 우리님 조폭의 아이디가 걸려 있었다. 그는 잠을 자야 했으므로 컴을 끄지 않은채로 음악을 걸어두고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침 7시반이면 어김없이 눈을뜬다 . 컴은 저혼자서 떠들고 있었다.밤사이에 음악파일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았을 거였다.
10. 석진이 놀이공원에 다녀온후로 사계절은 공포천사의 방에 접속하지 않았다. 사계절은 놀이공원에서 석진과 석진친구 사계절 친구하고 넷이서 놀러갔었는데 석진이가 사계절 보다 사계절의 친구에게 더 호감을 보인 모양이었다. 사계절 친구는 음악방에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석진은 별다른 실속을 못차리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진 듯 하였다 . 석진은 음악방의 대화창에 투덜거리면서 그날의 일들을 말하였다. 석진이 투덜거리고나서 고스톱이나 칠련다하고 잠수한후에 봄이라는 아이디가 들어왔다.봄이는 석진에게 인사를 하였는데 석진은 잠수중이었다. 봄이는 한참을 음악방에 머물다 사라졌다.
11.다음날 같은 시간에 봄이 하고 사계절이 동시에 접속하였다. 석진은 오지 않았다. 사계절하고 봄이는 서로 아는 사이인 듯 하였다. 대화창의 글들을 볼때 놀이공원에서 석진이 호감을 내색한 사람의 아이디가 봄이 인듯하였다. 봄이는 사계절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오해가 풀렸는지 주인장님 음악 신청 받아 주세요 ?하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게임을 하지 않고 있는중 이었지만 대화창만 바라볼 뿐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는 독수리타법이었으므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 인사말을 치려면 이미 앞에 써놓은 말이 이미 화면위로 올라가서 생뚱맞기 일쑤였다.
12. 방제를 바꾸었다. “공포천사 잠수하다”는 “공포천사와 함께하는 음악방”으로 리모델링을 하였다. 화면옆에 커튼이있었는데 그 커튼앞에 화분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 화분은 석진이 형이 화원을 하는데 지난 일요일에 화원일을 도와주고 얻어온 호접난이었다. 화분이 놓이자 화면은 한결 밝고 생기가 돌았다. 음악도 예전보다 밝은 것을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가끔씩은 공포천사 잠수하다로 방제를 바꾸었다. 게임은 중독성이 있었으므로 음악방의 대화창에 신경을 쓸 여가가 없었다.
13. 일주일만에 “우리님 조폭”이 다시 왔다. 석진과 사계절 그리고 공포천사가 동시에 인사말을 올렸다.
석 진 : 안녕하세요?
사계절 : 어서오세요
공포천사 : 하이루^^
조폭은 마지못하여 인사를 한다는 듯이 “꾸벅!” 이렇게 써 놓고는 어떤 대화도 거부한 채로 잠수해 버렸다.
석진과 사계절은 우리님조폭에 대하여 기분나쁘다는 식의 대화를 올렸고 공포천사는 무반응이었다.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든 우리님 조폭은 꿈쩍하지 않았다. 공포천사가 2시에 컴을 끄려고 하자 우리님조폭은 “감사합니다 ” 달랑 한줄만 남기고 가버렸다. 그는 이상하게도 우리님 조폭에 대하여 괘씸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대개의 경우 인사성이 아주 없거나 방의 성격하고 맞지 않는사람이 들어오면 그대로 강퇴를시키는게 공포천사의 음악방 운영 방식이었다. 방의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아무때나 들어와서 음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거나 화분옆 커튼을 열고 방장님 얼굴 좀 캠으로보여 주세요 하는 사람들이었다.
14. 우리님 조폭이 오후7시가 되자 접속하였다. 보통은 8시에 음악방으로 오는데.... 오늘따라 퇴근하여 음악방을 열자마자 우리님조폭은 공포천사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하였다. 그역시 우리님조폭의 인사에 응대를 한다. 석진이나 사계절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공포천사는 음악만 걸어두고 게임을 하려다가 우리님조폭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역시 말주변이 없었으므로 겨우 한다는 말이 “음악들고 싶은 것 있으면 신청해주세요” 달랑 한줄을 대화창에 적어놓았다. 그러자 우리님조폭은 “이방음악은 언제들어도 좋아요 신경 안쓰셔도 되요 ”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공포천사는 더 이상 할말을 잃었다. 음악신청을 하지 않겠다는데 무슨밀을 붙여 볼수 있겠는가? 석진이나 사계절이 와주었으면 하고 자신은 잠수를 해버렸다.
15
비가 추적거리면서 오는 삼월의 어느날이었다. 석진과 사계절은 영화구경을갔으므로 음악방은 조용하였다.밤10시쯤에 우리님조폭이 간단한 메모와 함께 음악을 신청하였다.
자신의 숨은 흔적을 들여다 보게하는
처절하고도 따스한 눈물.
당신이 떠나고 맞는 첫 봄비 입니다
일년전 오늘 친구가 저를 떠났습니다.
음악신청 하나 올립니다.
최진희 "천상재회"
공포천사는 우리님조폭이 청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나서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음악방을 열었지만 마이크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요중심으로 음악을 틀고 있었고 가끔씩 잘 알려진 클래식음악을 틀곤하였다. 타자가 느리니 마이크를 잡고 대화하는게 편했다. 우리님조폭은 대화창에 글로 적기 시작했다. 우리님조폭은 삼십오세고 공포천사하고는 세살차이였다. 사는곳은 경기도라고만 밝혔다. 가요도 좋아하지만 가끔씩 클래식을 틀어주시면 좋겠다라고 말을했다. 듣고싶은 음악을 물으니 주페의 시인과농부를 꼽았다. 그날은 그것으로 대화가 끝이었다. 그는 시인과 농부 서곡을 다운받기 시작하였다.
16.
고요하다 .
온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밤중에는 음악을 듣는게 너무 좋다
같은 음악이래도 밤과 낮이 감흥이 다르다
자야할 시간이다
방안에 습기가 많아 텁텁한 느낌이다
벌써 봄이라고 습기가 달라 진다
호흡이 한겨울처럼 깔끔한 공기를 못느낀다
나는 음악방에 접속을 해놓고 시인과 농부를 들으면서 느낌을 타자로 친다. 화면에는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가감없이 올려 보낸다. 화면을 타고 글씨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흡사 소지종이를 태우며 가슴에 소원을 담아 빌며 손을 하늘로 향하면 소지종이가 타버리고 남은 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천상으로 날아가는 나비떼 같은 느낌이 든다. 천상에 이르는 나비떼들은 어딘가로 몰려갈 것이다. 나는 컴이라는 천상으로 나의 마음을 실어 나르는 것이다. 공포천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않는다. 그가 게임중이면 “공포천사잠수하다” 라는 방제를 걸었고 그가 음악신청을 받는날이면 “공포천사와 함께하는 음악방 ”이라는 방제를 걸었다. 방제를 보고 나는 화면에 내가 쓰고 싶은글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17.현수는 직장에서 음악 상식이 많은 동료 정우하고 밥을 먹는다. 밤마다 찾아오는 묘령의 여인이 신청하는 곡들은 생소한 것이 많았다. 직장동료에게 음악을 물으니 흔쾌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디에서 음악을 찾아 주었다. 클래식음악은 연주가별로 음악을 분류하여 가지고 있었다. 음악파일을 구하는것도 매일매일의 새로운 일과였다. 게임에 빠져있던 시간들중 일부를 음악을 구하는데 소모하기 시작한것도 그즈음이다. 정우도 음악방에 접속하기 시작하였다. 정우가 음악에 대한이야기를 자주 화면에 올려주는탓인지 우리님조폭은 정우하고 가끔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눈치였다. 현수가 음악을 틀어주면 정우는 주로 음악에 얽힌 에피소드나 해설을 화면에 타자로 중계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우리님조폭은 음악을 들은 자신만의 느낌을 화면에 올려주었다. 어떤때는 같은 음악을 연주가별로 5번이나 들려주었는데도 연주가별로 느낌을 적어서 화면에 적어 놓았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인지는 잘모르지만 음악적 귀는 뚫린 사람 같았다. 우리님조폭은 자신의 개인사는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정우가 집요하게 우리님조폭에 대하여 물었지만 음악이야기만하고 밤2시면 어김없이 컴에서 나가는것이다.
18.
현수가 우리님조폭에게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진지하게 물었을때 우리님조폭은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음악을 들을때 얼굴을 보면 음악적 상상력이 사라진다는게 그이유였다. 우리님조폭 자신도 사진을 공개하거나 캠으로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것이다. 하지만 장난이 가득한 정우는 어느날을 기하여 우리님조폭이 깜짝 놀라도록 둘이 한꺼번에 얼굴을 공개하자는 것이다. 물론 현수도 그 의견에 합의를 하였다. 요즘은 석진하고 사계절은 오프라인에서 시간을 보내는일이 많았으므로 음악방은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빈 자리를 정우가 메꾸고 있었는데 정우는 석진과는 다르게 우리님조폭에게 말을 잘 시켰고 우리님조폭도 정우에게는 곧잘 응대를 해주었다. 정우는 음악방에서는 청산가자 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였다. 우리님 조폭도 가끔“ 청산가자님 우리 청산갈까요? ”하고 농담을 던지곤 하였다. 현수가보기에 둘은 그런대로 언어적 호흡이 잘맞는 듯 하였다. 하지만 정우의 말은 그녀는 어느정도 친해졌어도 마음을 여는법은 없더라고 투덜거렸다.
19.
정우가 토요일에 고향에 다녀올일이 생겨서 토요일은 우리님조폭하고 공포천사하고 둘만 음악방을 지켰다. 우리님조폭이 그날따라 자신이 지은듯한 시형식의 독백을 화면에 올리기 시작하였는데 공포천사는 그시어들을 그냥 화면에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공포천사는 배경 음악을 잔잔하게 깔고 우리님조폭이 적은 글들을 낭송하였다. 우리님조폭은 글을 올리지않고 듣고만 있었다. 미세한 떨림이 있는것처럼 갑자기 음악방이 조용해졌다. 음악이 끝나고 낭송도 끝나고 화면에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다른음악이 연이어 이어지기 전 몇초의 침묵은 어색하였다. 우리님조폭이 어색함을 의식함인지 청사가자님은 언제오나요? 하고 글을 올렸다. 청산가자님이 없으면 현수하고는 어떤 대화도 겉도는 모양이었다.
20 . 현수는 음악방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저수지가 그립기 시작하였다. 음악방을 운영하기전에는 주말이면 저수지에서 배스낚시를 하고 시간을 보냈었다 . 배스낚시 동우회에도 나갔었는데 몇 달동안은 오직 음악방에만 있었던 것 같다.청산가자가 일요일 밤에 음악방으로 왔으므로 음악방은 다시 활기가 돌았다. 현수는 마이크에 대고 청산가자님 우리 다음주는 음악방은 뽀샤뿌리고 배스낚시나 갈까요? 하고 묻는다. 청산가자야 당연이 오케였고 우리님 조폭은 못들은것인지 잠수중인지 의사 표현이 없었다.
21. 우리님조폭에게서 짤막한 메모가 왔다. 자신이 급한일이 생겨서 한동안은 음악방에 오지못하는데 이방을 지켜줄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한은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이방은 찾아올 것이다 .그곳에 다녀오고나서 얼굴도 공개하고 전번도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고 배스낚시도 할것이다. 그런내용 이었다. 뭔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녀 주변에 뭔일이 생긴 것은 확실하였다.
아직 그들은 그녀에게 깜짝쇼를 통하여 얼굴공개를 하는 이벤트가 남아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녀를 기다리면서 음악방을 열어둘 의사는 충분하게 있었다. 음악방은 현수와 정우가 번갈아 열면 못할 것도 없지않은가.
22.
그녀가 한동안 접속을 못하고 있던 동안에 현수하고 정우는 배스낚시를 세 번인가 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수는 중국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중국말도 시원찮은 현수는 방방 뛰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현수가 중국으로 가고 한동안 정우혼자 음악방을 지켰다 .중국에서 접속은 할 수가 있었지만 현수는 업무가 과중하여 시간적 짬이 없었다. 한번인가 어렵게 현수가 음악방에 접속하여 음악은 듣지 않고 정우하고 대화만 주고 받다가 나가 버렸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음악방을 지키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후에 두달인가 정우가 음악방을 열었다가 음악방을 폐쇄하였다.
23.
내가 우리님조폭이라는 아이디를 끌고 음악방을 찾았지만 음악방은 사라졌다 .그동안 나는 서울에 예약 되어있었던 병원에서 장기치료를 받았다. 징글징글한 병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것은 탄광을 캐는 막장에서의 고달픔과 버금하는 어둠속의 공포와 인내심의 연장이었다. 음악방 식구들에게 병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병의 차도가 보이고 있었으므로 병의 끝을 보고 건강하게 그들을 만나는게 나로서는 중요한 과제였다. 그 음악방은 나에겐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이 아니 , 상상이나 준비가 없이 그를 보낸후에 나는 건강을 놓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하였다. 음악을 통하여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었으므로 음악방에서 보낸 5개월은 나에게는 나하고 그하고를 연결해주는 천상의 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24. 나는 그들하고 비슷한 아이디를 사용하는 음악방이면 시간이날 때마다 꾸준하게 접속을 시도하였다. 우리님조폭이라는 닉 때문에 야유도 받았고 남자로 오인하여 여성으로부터 후하게 관심도 받았다. 어느날 음악방 에 청산가자라는 방제가 걸렸다. 가을빛이 쇠잔해지던날 이었다. 청산가자라는 진행자 아이디에 이끌려 무심코 들어갔다. 그날도 나는100일전에 나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난 후였다.나는 매일매일 100일전의 편지를 읽었다. 100일전에 나는 그들을 찾고 싶어 애쓰고 있는 글을 적어서 나에게 보냈다. 그 음악방은 진행자가 얼굴을 공개하고 유쾌하게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진행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진행자는 천상에서 내가 보낸 음악을 듣고 있었던 그의 동생이었다. 그는 청산가자라는 닉을사용 하였는데 우리님조폭이라는 나의 아이디를 보자 시낭송을 하다말고 급한 듯이 음악을 껐다. 방금들어오신 우리님 조폭님 환영합니다. 제 옆자리에 편하게 앉아 음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멘트를 하고는 호텔 캘리포니아를 틀어주었다. 바로 쪽지가 왔다.
“우리님조폭님 혹시? 공포천사 음악방에 계시던분 맞나요?”
“맞는데요! ”
“그럼 혹시? 연기형을 아나요?”
“연기요?”
“ 박연기라고....”
“아는데요 그분 혹시 k연구소에 다니는 분 아닌가요?”
“예전에 다녔었죠. 그렇죠.저는 그사람 동생인데요.”
“ 알고 있어요. 아까 화면에서 캠으로 얼굴 보았을때 알았어요. 그럼 청산가자님은 정우가 본명이었군요 저는 컴에서 사용하는 이름인줄 알았어요. 그때 공포천사라는 닉을 사용한사람은 누구죠?”
“아....공포천사는 현수에요. 강현수 ”
“네에? 강현수라고요? ”
“네! 그때 형하고 배스낚시를 하던 강현수요.”
그날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들의 음악방을 들어간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포천사 음악방에서요 우리님조폭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한번 여쭈어볼까?하고 망설였어요. 조폭아이디는 우리형이 사용하던거였잖아요 그리고 음악을 선곡할때도 보면 형이 주로 듣던 음악만 선곡하셔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말을 걸게 되더라구요.“
25. 나는 정우를 만나서 낚시터에 갔다 .배스낚시는 하지않았다 . 저수지에서 물결이 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하고 꼭 닮은 동생이 있다는게 위안이 되었다. 천상에서 그도 웃을 것이다. 나는 정우하고 나란히 저수지에 거울처럼 비치는 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잔 물결이 산을 흔들었지만 홍엽으로 물이든 산은 물속에서도, 하늘아래에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 .
끝
첫댓글 사이버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쓴 글이네요. 현대감각이 깃든 공감가는 작품들이 많아요. 과감한 소재선택이 언젠간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얼렁 많은 작품 쏟아내십시오.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