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미술관 - 빌바오(스페인)
* 웹갤러리 : http://www.guggenheim-bilbao.es/idioma.htm
조상 잘 만나야만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을 파는 유럽 문화 도시들과 정 반대편에 빌바오 시가 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자치주 해안도시 빌바오. 몰락의 길을 가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97년 10월 유치한 이후, 마법의 도시처럼 탈바꿈했다. 최근 나온 할리우드 영화 「007」에 빌바오 미술관 앞이 등장할 정도로 명소가 됐다.
금속제의 꽃 '구겐하임미술관'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찾아간 구겐하임 빌바오. 테라스형 저택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나오자 마자, 그 유명한 미술관 건물이 시선을 고정시킨다.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70) 설계로 지어져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 건물」이라는 극찬을 얻었다는 그 작품이다. 이게 도대체 건물일까, 초대형 현대 조각일까. 7280여평 대지에 1억5천만달러(약 1500억원)를 들여 지은 이 미술관은 「상자 모양」이라는 건물의 고정관념부터 뒤흔든다. 별명은 「메탈 플라워」 (금속제 꽃). 꽃잎처럼 마음대로 이리구불 저리구불 하늘을 향해 춤추는 구조는 세상 어느 건축과도 닮지 않았다. 물고기 비늘처럼 표면에 붙어있는 수십만개 티타늄 판들이 은은한 빛을 내뿜는다. 이 미술관은 마을 분위기를 휘어잡던 중세의 대성당처럼, 음산한 잿빛도시 빌바오를 밝히는 20세기의 사원이다. 그래서 구겐하임은 소장품보다 미술관 건물자체가 더 화제가 되는 이상한 미술관이다.
지난 50여년간 뚜렷한 족적을 남긴 현대미술 전시장
9시 개장 전부터 입구엔 장사진이 쳐진다. 줄선 사람들 대화는 유럽 언어 전시장이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등 외국어가 스페인어보다 훨씬 많이 들린다. 입구를 들어서면 로비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50 가 뻥 뚫려있다. 천장 유리로부터 햇빛이 그대로 들어와 바닥에 깔린다. 19개 전시실은 대개 지난 50여년간 뚜렷한 족적을 남긴 현대 미술들의 전시장이다. 추상미술 본산이라는 구겐하임 답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관을 비롯 칸딘스키 파이닝거 등 현대 작가 중심으로 꾸민 전시 내용은 사실 이해하기 녹록치 않다. 그러나 『미술관 성패란 대중에게 얼마나 강한 호소력을 갖느냐에 있다』는 토마스 크렌스 구겐하임 재단 관장이 이끄는 미술관 답게 곳곳에서 그런 배려를 하고 있었다. 1층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부터가 그렇다. 「두 바퀴의 예술」이란 주제아래 오토바이 역사 130년의 명품들을 실물 전시하고 있었다. 세계최고 현대미술관에서 오토바이 전시라니--. 그러나 단지 오토바이의 실용적-기능적 디자인만을 보여주는게 아니었다. 목제바퀴를 장착한 1868년 프랑스 피에르 미쇼작 최초 오토바이로부터 할리 데이빗슨, BMW 오토바이 등 진귀한 명품 62대를 대하는 남녀노소 관객들은 그 디자인 변천에 스며있는 20세기 문화적 경제적 발전 양상을 돌아본다.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빌바오
빌바오 토박이들에게 오늘의 모습은 한없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본래 빌바오는 15세기 이래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과 조선소가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였다. 게다가 80년대 빌바오 철강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10여년 고통도 받아왔다. 91년 바스크정부는 몰락의 늪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하고 1억달러 (1000억원)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했다. 조선산업이 빠져나간 빈 자리를 구겐하임 미술관과 공연장등 문화시설이 채워나갔다. 콘테이너 하치장으로 쓰이던 네르비온 강가의 땅이 문화의 요람이 되었다. 98년 바스크 분리주의자 그룹의 테러 중단 선언도 빌바오 거듭나기에 견인차가 됐다.
구겐하임 빌바오에 한해 관람객이 45만명쯤 오리라는 예상은 가볍게 깨졌다. 미술관측 자료에 따르면 개관후 1년간 136만명이 방문했다. 99년 추산 관람객은 82만5000명. 이런 손님들이 먹고 자고 물건사며 쓴 돈이 310억 페세타. 구겐하임과 관련된 소비들이 바스크 지역경제에 1년간 1억6천만달러(1600억원)의 기여를 했다. 방문객들은 외국인이 27%이고 이중엔 프랑스인이 가장 많아 방문객중 10%다. 그밖의 나라중엔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일본 순서로 미술관을 찾는다. 이제 많은 유럽 여행사들은 런던 파리 로마를 연결하는 중간기착지로 빌바오를 포함시킨다.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도시를 새로 발전시킬 꿈에 차있다.
세계적 체인을 갖는 호텔 하나 없었던 인구 100만의 도시가 이제 새단장을 시작했다. 쉐라톤 빌바오 호텔이 구겐하임 옆에 이제 막 공사를 시작했다. 99년 9월엔 1700석짜리 공연장인 「컨벤션과 음악 궁전」이 생겼다. 이런 모든 계획은 97년 시작돼 2000년 끝나는 「빌바오 리아 2000」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2000년까지 「구겐하임 미술관」을 구심점 삼아 네르비온 강가를 대규모 문화단지로 꾸미는 계획이다. 빌바오 컨벤션 센터 마르타 아스토르키 씨는 『97년 한해 18만3000명이던 방문객이 98년 21만6000명으로 늘어났다. 프랭크 게리의 미술관은 진정한 변화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문화란 이렇게 한 도시의 운명을 신데렐라 처럼 바꿔놓기도 한다. 뉴욕 타임스가 말했듯 『문화는 이제 더이상 권력의 장식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권력인 시대』이다.
<빌바오(스페인)=조선일보 김명환기자 / 사진=조선일보 사진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