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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쾌걸 춘향> 남태령 옛길로 나를 이끌다.
날씨가 화창하다. 서둘러 배낭을 꾸리고 일용할 양식을 챙긴다. 김밥대신 꿀떡, 막걸리 한 병에 안주는 로스 팜. 그리고 책 한권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의 주체적 인물들’ 서울대 옆 관악산 입구엔 명절날 버스터미널을 방불케 한다. 와~ 대단하다. 흐르는 인파 그 속에 나도 함께 휩쓸린다. 어디로 갈까? 지난번 삼성산 삼막사, 이번엔 관악산 연주대로 산기슭엔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혹시나하고 봄의 전령을 찾아본다. 연초록 잎새? 노란 산수유 꽃? 버들강아지? 아직 이른가보다. 연주대까지 700M 지점. 얼음위에 덮힌 눈으로 미끄럽다. 아이젠을 장착. 깔닥고개 올라서니 바람이 아직은 차다. 아늑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맛있는 점심, 그런데 막걸리 생각은 없다. 대신 커피 한 잔 뽑아먹고 서둘러 과천쪽으로 하산. 남태령 옛길을 걸어서 넘을 심산이다. 과천향교 이미지 사진 한 컷. 찰칵!
<과천 향교>
남태령 옛길은 과천 관문사거리 지하차도 즉 서울방향 입구 옆 원주 추어탕집에서 시작되어 국군수송사령부 이정표가 위치한 곳까지가 남아있다.
<남태령 옛길 안내도> 위에 곧고 넓게 뻗은 길이 현재의 남태령길이고 아래로 꼬불꼬불한 길이 남태령 옛길인데 반정도는 아스팔트 2차선으로 포장되어 있고 반은 아직도 잘 단장되어진 비포장 도로이다.
오늘 남태령 옛길을 걸어 넘으면서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를 제수받아 남원으로 행차하는 대목을 생각해 본다. 몽룡이 춘향이를 살리기 위해 한양 도성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는 행적인데 여기에 남태령을 지나 과천 찬우물을 지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몽룡이란 놈 괘씸한 대목이 하나 있는데 춘향이 옥중살이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님은 물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제 졸개들과 더불어 암행어사 할 일 다하면서 아무날 아무시에 남원읍으로 대령하라고 하는 대목이다. 아니 그런가?
“음! 기특한 인재로다. 허다한 높은 벼슬 다 버리고 암행어사를 구하다니 그게 바로 숨김없는 충정이란 것이로고.” 그러면서 즉석에서 수의(繡衣)와 마패와 유척(鍮尺)을 내려주시었으니, 수의는 수놓은 옷으로서 어사가 입는 옷이고 마패는 역마(驛馬)를 징발하는 동패(銅牌)로서 이것은 어사의 인장도 되고 신분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유척은 여러 가지 행정의 일을 감사하는데 쓰는 놋쇠로 만든 자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하직하고 다음날로 서울을 떠나는데, 매사가 급하고 바쁘다. 남대문 밖을 썩 나선 이 도령은 일행을 거느리고서 청파역에서 말을 잡아타고, 역시 지금의 청파동에 있는 칠패 팔패, 용산에 있는 배다리, 이태원의 부근이던 밥전거리를 지나고, 지금의 흑석동에 있는 동작나루를 이내 건너고 남태령을 넘어서 과천에서 점심을 하고, 밧막 역마를 갈아타고 냉천(冷泉:과천과 인덕원 사이에 있는 찬우물) 고개 인덕원(仁德院) 갈미술막 군포장(軍浦場), 사그내[沙그乃] 지지대(遲遲臺)를 넘고 미륵당을 지나 영화(榮華) 역마 갈아타고서 수원 북문에 다다르니 남문 밖에서 밤을 쉬고, 대황교 비껴놓고서 떡전거리를 지나고 진개울 넘고, 오메진[烏山津]을 지나 진위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희대원 넘어 칠원을 지나 가양(佳養)에서 역마를 갈아타고 내려가다가, 소사 술막에서 밤을 쉰 다음 상류천·하류천·새술막·천안읍에서 점심하고, 삼거리·도리터를 지난 뒤에 금제역에서 말을 갈아타고, 신구(新舊)의 덕평을 얼른 지나 원터에서 밤을 지내고, 팔풍전, 활원, 모로원, 공주 금강을 건너 금영에서 점심하고 소개문·어미널터·경천에서 밤을 쉬고, 노성 읍내를 얼른 지나 평창역에서 말을 갈아타고, 풋개·사다리·은진읍을 지나 간치당이·황화정·지애미 고개를 지나 여산읍에서 자고, 이튿날 날이 밝은 뒤에는 역마를 다 물리고 나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각자 행동을 개시하도록 명령한다. “너희들은 듣거라.” “예에.”
하고 일행 서리·중방·역리·역졸들이 통테같이 빙 둘러선다. “전라도의 초읍(初邑)이 바로 이 여산이다. 지금으로부터 각자가 맡은 일을 해야 하는데, 국사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다가는 추호의 용서가 없을 터이니 그리 알아라. 알겠느냐?” “예에이이!” 추상같이 호령하여 서리를 불러 분부하되,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금산·무주·용담·진안·장수·운봉·구례로 여덟 읍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 읍으로 대령하고, 중방과 역졸 너희들은 우도로 용안·함열·임파·옥구·김제·만경·고부·부안·흥덕·고창·장성·영광·무장·무안·함평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 읍으로 대령하고, 종사를 불러 익산·금구·태인·정읍·옥과·광주·나주·창평·담양·동복·화순·강진·영암·장흥·보성·흥양·낙안·순천·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 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분발(分撥:요긴한 사항을 먼저 베껴 펴는 일)하신 후 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자없는 헌 파립에 버레줄을 총총히 매어 초사(艸紗:질이 나쁜 비단으로 만든 갓끈)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실 띠를 가슴에 둘러메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초(扇貂:부채에 늘어뜨린 장식품)를 달아 햇빛을 가리고 내려올 때<이하 생략>
남태령 옛길에는 잘 지어진 고급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어디서고 옛날 주막거리 선술집의 향취는 찾아볼 길이 없고 한양이 무서워서 과천에서 하룻 밤을 묵고 과천서 부터 긴다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말았다.
<남태령 옛길> 옛길 일부가 아직은 비포장 도로로 남아있는데 지금도 윗쪽의 자동차 도로와는 달리 호젓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산 기슭에 접해 있는 비포장 도로가 좀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 속에 아지랭이 아롱거리고 뻐꾹이 소리 들려올 때 다시한번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남태령 새길과 옛길의 분기점> 남태령 정상에서 과천쪽으로 100M쯤 내려가면 3층의 과천루 정자가 나오는데 그 곳에 현재 남태령 길과 좌측으로 옛길의 분기점이 나온다.
<과천루(果川樓)>
<과천루(果川樓) 현판>
<남태령 옛길 이정표>
남태령 옛길 南泰嶺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산 119-1번지 남태령 옛 길은 한양에서 삼남(三南)(충청·전라·경상도)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보길 이었다. 즉 이곳을 지나 수원·안성을 거쳐 남쪽으로 갔으며, 반대로 과천에서 이 고개를 넘어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을 거쳐 노들나루(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이르렀다. 원래 이 고개는 [여우고개(狐峴 *호현)]로 불리었는데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능원으로 행차할 때 이 고개에서 쉬면서 고개 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임금께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태령(남행 할 때 첫 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라 아뢴 이후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 경계의 해태상과 서초구에서 세운 남태령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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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급하기도 하셔. 산수유 매화필때 우리가족도 좋은 구경좀 시켜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