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코로나19 때문에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고 필연적으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과도 마스크라는 가면을 쓰고 투명한 가림막을 치고 깊은 교감을 나누지 못하고 지낸지가 3년을 넘어갑니다 제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많지않은 세상을 살아온 제가 봐도 3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란 생각이 듬니다 그 오랜 시간을 견디고 참아 오시느라 수고 많이들 하셨습니다 새로맞는 봄에는 복사꽃 살구꽃이 만발하는 그 화사함으로 행복감이 우르르 꼭 몰려 올꺼예요 지금쯤은 내고향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 안산 산55번지 일대에도 한창 봄이 오고 있겠내요 지난 겨울의 혹독한 한파에 움츠렸던 땅이 녹고 응달진 승지골 어름너태가 한창 녹아내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지않아 떨어지바위 지나 논에골 양지바른 언덕에는 아지랑이가 아롱지게 피어 오르고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골짜기에선 통통한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겠지요 또 얼마 있으면 낮은매기 고개에도 진달래가 필테고 그길 따라서 홋닢이랑 파란 싹들이 듣아나면 원추리랑 달래랑 냉이 캐러오던 아낙네들 대신 울긋불긋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넘어 오겠지요 웃말 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삐뚜룩 길에는 봄 나물이 참 많아는데요 내친구 정화가 살던 작은 안가지골에 분홍색 복사꽃이 지고 파릇한 싹과함께 산벚과 개살구꽃이 필무렵이면 재넘어 미숙이네 가는길 뻘건산에는 마사토 차돌맹이 지갈위에 쏙독새가 맨바닥에 알을 낳아놓고 밤새도록 울며 품었지요 낮에는 뻐꾸기가 백번도 넘게 고개를 넘나들며 뻐꾹~ 뻐꾹~ 뻑뻐꾹~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요 6.25 직후나 그 이전까지 세상에 잠깐 나왔다 빛오래 보지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많이 묻혀다는 애층골에는 날이 궂거나 안개가 짖게 드리우면 아기에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해서 무서워 했었지요 삼천궁녀가 빠저죽었다는 얘기소는 밤이면 설겆이 하는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나고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낮에도 혼자서는 갈생각도 못했었지요 그아래 넙적 바위아래는 가재가 참 많이도 살았었지요 운동장에서 오른쪽 도실 골자기에는 동학혁명의 선봉장 천도교 2세교주 최시형신사님묘소가 있고 그 아래로 두릅이랑 다래가 많았지요 약재로 쓰려고 외지에서 와서 줄기를 채취해 갈 만큼 으름넝쿨도 많았지요 운동장끝자락에서 왼쪽으로가면 절 고개 가는길이 있고 앞으로 조금 더가면 커다란 웅덩이 물을 한번에 다 마셨다 뱉었다 할만큼 큰뱀이 산다는 물구랭이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조그만 골짜기 마다 집들이 하나씩 들어 있고 오래된 감나무랑 돌배나무가 많은 집이 있었지요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치성드리던 터에는 하얕고 두툼한 한지가 잘 개어 있고 실타래가 있었지요 그것을 가저다가 우리 작은형은 방패연을 만들어 산등에서 동네에서 가장 높게 가장멀리 날리기도 했었지요 그때 집옆에 작은 능선이 있었는데 가족들은 그곳을 그냥 산등이라 불렀습니다 큰걸음으로 스무빌짝좀 넘게가면 산등이고 그곳에서는 동네가 다는 아니여도 거의다보였지요 나무없는 붉은산 이었는데 어느날 고구마밭이 되고 고추밭이 되었었 는데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들어찾습니다 작은골짜기 하나 더 돌아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 있었지요 암수 커다란 은행나무가 마주보고 서있고 지금처럼 흔하지않던 시절 인데 노랗게 많이도 익었습니다 그위에 다랭이 논에서는 이렇게 경침앞둔 봄날에는 개구리가 깨고륵 깨고륵하고 요란하게 울어댔지요 덩달아서 도롱룡도 기어다니며 조용히 알을 낳지요 나무보다는 억새풀이 많이자라던 민무터에서는 최고봉 천덕봉이 한뼘만 오르면될듯 가까웠습니다 천덕봉에 오르면 여주.이천.광주 삼개군이 한눈에 들어오고 원적산 원적봉이 한다름에 달려갈듯 가까웠습니다 해발 630m대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능선에는 바람이 세게불어 나무들이 키는작고 옆으로 퍼저 있었지요 오랬만에 고향땅을 마음속에 그려 보내요 휴일아침에 3시간정도의 생각을 그곳을 추억하고 공유하는 분들께 전달해봅니다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