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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린이도서연구회 장흥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진희
196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1987년에서 1992년 안양에서 지역미술운동을 했으며, 이 시기에 불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들 만희에게 보여 줄 그림책을 찾다가 직접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중국 북경에서 산수화, 공필화를 공부했고, 2005년과 2006년에 다시 불화를 공부했습니다. 현재 그림책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며, 옛 그림의 미감을 그림책 속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출간한 책으로는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씹지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씹어』, 『생각만해도 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 『혼자서도 신나 벌레는 정말 신났어』,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가 있습니다. 권윤덕 작가 인터뷰, 2008년 7월 31일 <만희네 집> <일과 도구>의 글·그림 작가 권윤덕과 함께 한 그림책 이야기 ① <만희네 집> <일과 도구>의 글·그림 작가 권윤덕과 함께 한 그림책 이야기 ② <만희네 집> <일과 도구>의 글·그림 작가 권윤덕과 함께 한 그림책 이야기 ③ |
권윤덕 선생님 저서 ㆍ씹지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0-04-01 ㆍ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l 글·그림 권윤덕 / 창비(창작과비평사) l 2005-11-15 ㆍ생각만해도 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1-01-01 ㆍ혼자서도 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2-06-20 ㆍ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3-03-10 ㆍ생각만해도 깜짝벌레는 정말 잘 놀라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4-03-19 ㆍ시리동동 거미동동 l 글·그림 권윤덕 / 권윤덕 / 창비(창작과비평사) l 2003-07-23 ㆍ씹지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 l 글·그림 권윤덕 / 재미마주 l 2004-04-09 |
1992,3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안양에서 미술운동을 하다가 운동을 정리하면서 딱히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시사만화나 회화 쪽을 생각했었는데... 당시에 그림책 분야는 예술로 생각도 못하고 그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초방>을 통해 정승각 씨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된 거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옛이야기에 삽화를 첨가해 넣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것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죠. 정감 있는 동양화 화풍의 하야시 아키코 그림책을 아들 만희가 많이 좋아했어요. 아이가 심부름 가는 장면, 그리고 아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갔을 때, 멀리서 풍경을 잡은 장면에 피아노치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었죠. 그걸 만희가 발견해내는 걸 보고 아이와 엄마가 보는 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당시는 번역 그림책도 많지 않았고,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도 몇 분 없었어요. 고민하던 끝에 시작했어요.
글을 받아서 작업할 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둔 글을 아직 못 만났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글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이미 글로 해버려서 그림이 들어갈 여지가 적은 거지요. 그림책 글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할 경우, 글맛은 글 작가의 글에 못 미칠지라도, 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적절하게 조절하며 풀어갈 수 있어요. 글과 그림을 서로 맞춰 가다 보면 표현의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처음의 글 원고가 그림이 완성돼 가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일과 도구>의 경우도 처음 글은 지금 책에 실린 글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그림을 채색까지 다 끝내고서 글을 다시 다듬은 거지요.
모두 애착이 가지요.(웃음) <만희네 집>은 첫 작품이라 많이 애착이 갑니다. 지금은 <일과 도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난 터라 거기에 애착이 많이 가네요. 돌이켜 보면 <만희네 집>,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일과 도구>는 정보책의 성격이 많은 편이라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책들은 감정을 끌어내기는 좋은데, 현실을 기반으로 깊이 고민한 이 책들보다는 매력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작업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작업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10여 년쯤 지나서 다시 이런 책으로 돌아온 거죠. 힘은 들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작업이었어요.
좋은 쪽으로 하나, 마음에 걸리는 쪽으로 하나가 있어요. 좋은 걸로는 <만희네 집>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집 도면이에요. 작업하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많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통해 가족의 생활을 표현하다 보니 남녀의 성 역할을 고정시켜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어요. 아파트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전통적인 가옥 구조에서는 남성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지요. 아빠가 개밥 주는 장면으로도 해봤는데 너무 어색했어요.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집 도면 페이지에서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할아버지와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그려서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책감이라고 느꼈던 것인데,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에 아빠, 엄마, 딸, 아들이 내복을 입고 방안에서 노는 장면이 나와요. 그릴 당시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는데, 몇 년 지나서 나중에 가족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면서 엄마와 딸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 현실은 편모나 편부, 그 밖의 다양한 가족들이 있는데, 혹시 아이들이 이걸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작품에 이른바 ‘전형적인’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았어요. <시리동동 거미동동>에서는 엄마와 딸만 나오죠. <일과 도구>에서는 아이가 가족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설정했어요.
미술운동하면서 그린 그림이 굵은 선 중심의 걸개그림이었는데, 미술운동이 끝나고 나니 무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했었나 싶었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선을 끌어당겨 내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처음에는 전통 가옥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아이들 교육용으로 생각하고 아파트 구조와 전통 가옥 구조를 비교하면서 옛날 것이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삶의 공간이란 것이 각각 자기 시대 환경의 산물인 거고, 따라서 그렇게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스케치하면서 아파트 부분을 아예 빼버렸어요. 그 대신 지금 실재하는 가옥을 통해, 아직도 전통이 얼마나 쓸모 있게 잘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마침 어머님이 아프셔서 수원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어요. 광에는 놋그릇, 뒤주 같은 살림 도구들이 들어가 있고, 부엌의 장식장에는 신식 커피 잔이 나와 있었죠.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정서를 엿보면서, 놋숟가락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막 벗어놓은 신발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법 아닌가요? 말로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는 것보다 사물들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만희네 집>은 그렇게,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책이에요. 미술운동 할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던 거죠.
거의 5년 정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내 황금기를 거기에 쏟아 부었던 셈이죠. 미술운동을 정리할 때의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많은 분들이 그랬듯이, 영광보다는 상처를 안고 운동을 정리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주변의 작은 것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더 소중하게 보듬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림책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작가, 권윤덕작가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데, 아이들과 소통하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그림책에 몇 가지 숨겨 놓는 장치들이 있어요. 이쯤에서 아이들이 발견하면 좋아하겠다 싶은 걸 곳곳에 숨겨두는 거지요. 그걸 발견하는 아이들은 희열을 느끼고, 이를 통해 작가와 깊이 대화하는 셈이지요. <만희네 집> 마지막 장면 바로 앞 장을 보면 방문 하나가 닫혀 있어요. 그 방만 소개가 안 돼서 의도적으로 문을 닫은 거였는데, 이것을 저도 잊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왜 이 방문만 닫아 놨냐고 물으시는데...(웃음) 저도 덕분에 10여 년 만에 잃어버린 방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일과 도구>에는 페이지마다 시계를 숨겨 놓았어요. 또 고양이가 숨어 있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어쩌면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하나하나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평화를 테마로 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데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한, 중, 일 삼국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함께 그림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하기로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인데, 너무 어렵습니다.(웃음) 그림책 글 원고를 아무리 써 봐도 할머니의 증언을 뛰어넘을 수 없더라고요. 증언 자체가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그림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1940년대의 역사적, 지리적 상황, 일본군과 위안소의 실상, 할머니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 이러한 것들의 고증도 쉽지가 않고... 과장 없이 있었던 그대로 드러내고 싶은데, 그래야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그게 제대로 될지 아직 막막한 상태입니다. 취재부터 열심히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그림책을 계속 그리실 계획이신지?<일과 도구>와 지금 하는 작업이 긴 호흡을 필요로 한 작업들이라 숨이 차서 좀 쉬운 걸로 하고 싶습니다. 스스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해 보려고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사회 문제에 관심이 갑니다. 사회 문제가 따로 있다기보다, 우리들이, 그리고 아이들이 본래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림책이 주제의 측면에서 사회 문제와 잘 결합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 문제 같은 것도 다뤄보고 싶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주제를 잘하고 나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외의 여성 문제, 폭력 문제, 분단 문제도 다뤄보고 싶고요. 다른 작가들이 잘 안 다루는 분야라서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내 능력이 미치는 정도 안에서나마 그렇게 노력해보고, 그 결과로 평가받고 기억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엄마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엄마들이 그림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알아주었으면 해요. 엄마들에게 재미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게 될 테니까요. 영화감독을 찾아서 영화를 골라 보듯이, 그림책 작가를 찾아서 그림책을 골라 보는 정도가 되면 더없이 좋겠죠. <일과 도구>를 본 어느 편집자가 전화로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사회와 노동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아직 많은 게 부족한 우리 그림책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이지만, 제게는 턱없이 분에 넘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림책 작업에서 작가 정신의 중요성을, 그것을 촉구하는 말로서 공감하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출판사가 애써야 할 일이지만, 엄마 독자들께서도 시야를 새롭게 가져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선, 그림책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혼동하고, 그림책의 그림과 동화책의 삽화를 혼동하는 경우가 아직 많아요. 기회 있을 때마다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요.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그림책일까요?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아이들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그림책이 제일 좋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진실성이 떨어질테니... 그림도 자기의 느낌에서 솔직하게 출발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본 듯한 그림이 계속 반복되지요. 그저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그림이 되기 일쑤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림책, 그런 게 좋은 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봐요. 사실 저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콤플렉스로 10년을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노란 우산>의 류재수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해주시면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게 뭐냐? 기법이 세련된 그림이 잘 그린 거냐? 그건 볼거리가 있다는 거지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와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용기를 주셨어요. <일과 도구>를 작업할 때도 ‘빨리 끝낼 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끝내야 할 책’이라고 격려해 주셨고요. 잘 그린다는 게 도대체 뭔가? 잘 그린 그림으로 만든 책이 곧 좋은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저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권윤덕에게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요?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작가가 하얀 백지를 앞에 놓고 앉으면 머릿속에 무궁무진한 생각들이 만들어지죠. 그걸 담아내는 것이 작품 활동이고, 그 과정에서 힘든 일, 괴로운 일도 많이 겪어요. 작가로서의 삶이란 게 그것 밖에 따로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제게 그림책은 제 삶을 만들고 또 남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도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
[출처] <만희네 집> <일과 도구>의 글·그림 작가 권윤덕과 함께 한 그림책 이야기
어렸을 때 많이 좋아했어요. 특히 도서관에서 <만희네 집>을 보면 아주 기뻐했습니다. 다 커버린 지금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처럼 조금 추상적으로 그린 그림이 좋답니다. 이억배 씨의 책 <솔이의 추석이야기>에 나오는 솔이도 그 책을 많이 좋아했었지요.
카센터 도구들, 특히 어릴 때 미장원에서 본 고데기, 파마할 때 쓰는 미장원 도구들, 바느질 도구들을 볼 때마다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원 없이 그려보고 싶었나 봐요.(웃음)
그림책의 내용에 따라 그림풍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성이 강한 그림책은 사실에 기반을 두게 되지요. <일과 도구>의 경우에는 직업들 사이의 편차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실 속의 직업들은 실제 환경도 서로 많이 다르고, 사회적 편견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건 그것들을 지금 그대로 고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일터가 소중하고, 그런 만큼 모두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작업장을 꿈의 공간처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일하는 분들이 자기 일에 몰두할 때 모습을 보면 그 공간이 실제로 꿈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구두공장에서 구두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구두공장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중년이셨어요. 작업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지요. 그분들의 자녀가 아빠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어떤 생각들을 할까? 여전히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해줄까? ... 취재할 때 처음엔 많이 거부당했어요. 되도록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오리고 붙이고 못 박으며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들이 하나의 기계처럼 보였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바쁜 몸놀림에 쓸쓸함이 배어 있다고 할까요? ... 현실은 그래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남자 직공이 멋지게 기타 치는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구두공장 아저씨가 그러셨어요. 이런 일을 왜 취재하느냐고. 이렇게 대답했죠. 아이들이 백화점에 가면 진열대에 구두가 엄청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구두들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하나하나 땀 흘려가며 만들어 낸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그제야 그 아저씨가 경계심을 풀고, 오히려 고생한다고 위로까지 해 주시더라고요. 취재 가는 곳마다 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면서 책의 구도도 많이 바꾸었지요. 책의 마지막 장면은 본래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일터에서 어른들이 만든 물건들을 입고 들고 돌아가는 것으로 바꾸었지요. 지금 우리는 생산현장과 생활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물건을 사고 사용할 때마다 이 물건을 어디에서 누군가 정성들여 만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직업마다 네 쪽씩 구성되어 있는데 도구들을 보여주는 앞 장은 스케치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뒷장이 아주 어려웠어요. 할 수 없이 2차 취재를 다시 나갔어요. 거기서 해결점을 찾았지요. 옷 만드는 곳에 갔을 때인데, 재단실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가락을 눕히고 가위질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목공소에서, 목재의 직각을 확인하느라 긴 나무를 비스듬히 들어 올려 한쪽 눈을 감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목수 아저씨 모습도 그랬고요. 예전에 미술운동하면서 여공들과 그림 수업을 할 때, 그네들이 기계를 참 재미있게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앵글, 그런 것이 참 재밌었어요. 어떻게 해야 일하는 것, 노동의 가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고학년 동화라도 되면 모르지만, 이런 그림책에서는 일일이 말로 풀어낼 수도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의 시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현해 내는 일, 제가 많이 고민한 것이 그것이에요.
처음엔 방앗간이 포함돼 있었어요. 부암동 <동양방앗간>에 취재를 갔는데 거기 할머니가 아주 고우시고, 말투가 마치 신화 속의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방앗간을 그려야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방앗간 일이 농사와 요리와 겹치더라고요. 농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요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데.... 그래서 방앗간이 빠지게 되었죠. 카센터도 생각했었는데, 자동차를 고치는 일 이전에, 자동차라는 물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생각이 복잡했어요. 자동차가 이미 집집마다 필수품처럼 돼버리긴 했지만, 그것이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그리고 미래 산업 발전과 관련해서 예민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잖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카센터를 빼버렸습니다. 맨 앞의 동네 지도에, 넓은 길에 비해 자동차가 많지 않은데, 혹시 제 생각을 눈치 채셨어요?
아이들이 병원 가기 싫어하잖아요. 의사가 환자를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도 있고, 마침 간호사 선생님의 목걸이도 하트 모양이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장면에서 신체의 일부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박스 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취재 갔던 병원이 공단지역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었어요.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아빠가 얼굴이 파랗게 변한 아이를 안고 병원엘 뛰어들어 왔어요.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 해서 토하게 하니까 혈색이 차츰 돌아오는데... 아차 하는 순간에 아이를 살려내는 걸 보면서, 병원이라는 곳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이가 그 아이인데, 그 얘기 전체를 그림으로 다 그려낼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하트로 부분 부분을 잘라서 표현할 수 있었지요.
우리 집 고양이를 모델로 했습니다.(작가는 실제 ‘진주’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고양이가 앙큼한 데가 있고, 겁도 많고, 여기저기 너무 잘 숨어요. 개는 주인을 따르고 주인 비위 맞추기 바쁜데,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보다 한 수 위인 거 같아요. 개는 자기가 인간인 줄 착각하고, 고양이는 자기가 신인 줄 착각한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고양이가 좋아요. 사람이 고양이를 닮아야 한다고 하면 아주 우스운 얘기가 돼버리지만, 저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똘똘한 주체로 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고양이하고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고양이를 세워 놓으면, 사람과 닮은 듯한 면도 있어요. 신발을 신키고 팔과 손을 움직이도록 해도 어색하지 않고.
비단 그림은 발색이 자연스러워요. 앞뒤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흐린 색을 앞뒤로 엷게 더해 가면서 색을 곱게 낼 수 있습니다. 한지에서는 물감이 뒤로 빠지기 때문에 선명한 색을 내기가 힘들거든요. 뒤에서 칠하면 강한 색도 거칠지 않고 곱게 드러납니다. 선명한 빨간색을 나타내려면 앞뒤로 빨간색을 거듭 칠해서 섬유 공간을 촘촘히 채우는 거지요. 그러다가 잘못 칠하면 비누칠을 해서 칫솔로 지워내기도 합니다.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앞뒤 각각 두 번씩 아교를 칠하고 작업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채색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 물감 접시를 놓고,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다시 칠하고 나서 붓을 빨고... 그러면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니까 나중엔 팔이 안 움직이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어깨 신경에 염증에 생겼다고 쉬어야 한다고 하데요. 그림책 일도 중노동에 속하는 직업이에요.(웃음) <일과 도구>의 검은 색은 검은색 물감을 단번에 칠한 게 아니라 빨강, 초록, 파란색을 엷게 뒷면에 발라서 만들어 낸 겁니다. 초록은 노랑과 파랑이 섞인 색이니까 결국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이 됩니다. 여기에 먹색을 섞으면 4도 인쇄와 원리가 통하는 거죠. 불화를 그릴 때 이 원리에 따라 그렸어요. 붓을 물감에 찍을 때마다 물감의 농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매번 그 농도를 조절해 가며 덧칠을 해서 깊이 있고 풍부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냅니다. 중국집 장면 속 프라이팬의 검은 색 같은 것은 검은색을 단번에 칠해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이렇게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끌 수가 없죠.
첫댓글 아시죠, 오는 18일 목요일오후 2시 남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만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