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고딩 친구가 울릉도로 전근이 났다
친구들이 송별회 해 준다고 점심먹자고 해서 내려 갔는데
옥동에 있는 칡 냉면집에 모여서 삼겹살에 소주한잔하고
냉면으로 입가심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울릉도 한번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 물어 봤더니 관사도 있고 하니
가면 저예산으로 다녀 올수 있을것 같다.
계원이 한 10여명 되는데 날짜 잡아 통보하고
갈수 있는 사람만 모아서 가기로 했다.
요사이 울릉도는 사시사철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얼마전 마눌친구가 놀러 갔다가 날짜 안맞아 3박 4일이
7박8일로 늘어져 버린 경우도 있으니 날씨 정보도 중요하다.
오랬만에 봤으니 금방 헤어지기 아쉬워
배도 꺼줄겸 드라이빙 한바퀴 돌기로 했다.
내고향 서후면은 유명한 봉정사가 있는곳인데
봉정사는 최고(最古) 목조건물로 유명하다
경관도 수려하여 안동사람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들르는 유명한 사적지 이다.
초등학교때 소풍갔던 김태사도 둘러보고
봉정사 입구에서는 순두부 한사라 시켜 먹고
아직 배도 안꺼졌는데
오는 길에 또 섭섭하다고
안동유명 먹거리 찜닭골목에 들러
마늘찜닭도 시켜먹고
더 이상 허락을 안할 때 쯤 되어
단양으로 끼집어 올라 왔다.
친구와 술은 오래 될수록 좋다더니
역시 오랜 친구들은 만나도 뒷맛이 좋다.
아니 뒷맛이 개운하다
음식이 화끈하게 맛있는 음식도 있고,
달착지근하게 짝 달라붙어 맛있는 음식도 있고..
그러나 이렇게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은
실상 몸에는 그리 좋지 않듯이
사람도 화끈하게 좋거나, 착착 앵기는 사람보다
그냥 개운하게 뒷맛이 좋은 람이 맛있는 사람이다.
친구도 그래
그냥 항상 그렇게 개운한 맛을 내는 친구가 좋은 친구인겨!!
너무 절친은 유리잔 같아 깨질까 두려워
항상 조심 스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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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사의 유래
신라 말엽 당시 신라는 국운이 쇠약하여 곳곳에서 도적떼가 성했고, 특히 옛 백제 땅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옛 고구려 땅에서는 고려가 일어나 날로 세력이 강성하였다.
927년(경애왕 4년) 포악한 견훤은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경주까지 쳐들어와서 왕을 자살케 하고 왕비를 능욕하며 재물을 함부로 빼앗아 그 피해가 막심하였으나 힘이 약한 신라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태조 왕건은 군사 5천명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으나 오히려 대구 부근의 공산 동수싸움에서 대패하여 신숭겸, 김락 등 많은 장수와 군사를 잃은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갔다.
고려 태조 12년 견훤은 승승장구한 여세를 몰아 의성, 풍산 등의 여러 고을을 빼앗고 안동을 공격하여 왔다. 10년전 공산싸움에서 해한 이후 군사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던 고려 태조도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안동에서 고려와 후백제의 두 군사는 생사를 건 대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이듬해 1월 예안에 주둔하고 있던 고려군은 안동 북쪽의 병산(안동시 와룡면 소재)에 진을 치고 후백제군은 맞은 편의 석산(안동시 와룡면 소재)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지금까지 승리를 거듭한 견훤의 군대는 병력도 많고 사기도 충천하였으나 고려 태조의 군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대상(大相) 홍유 같은 이도 전쟁이 불리하면 후퇴할 길을 먼저 닦아야 한다고 태조에게 진언할 정도였다.
당시의 고창(안동의 옛이름) 성주이던 김선평(金宣平)과 권행(權幸), 장길(張吉) 세 분은 일신의 안전만을 위한다면 마땅히 견훤에게 항복하는 것이 옳겠으나 돌아가신 경애왕의 원수를 갚을 좋은 기회로 알고, 또 포악무도한 견훤으로부터 이 고장을 수호하기 위하여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이에 고려 태조는 크나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이 고장 지리에 밝은 세 분 태사는 강대하고 사나운 견훤의 군사와 정면 대결을 하여서는 승리하기 어려움을 알고 고을민을 이끌고 고려 군대와 힘을 합하여 저수봉(猪首峰:현 안동시 뒷산)으로부터 밤중에 견훤의 군을 뒤에서 습격하였다.
때를 맞추어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정면에서 진격하니 견훤은 견디지 못하고 8천명의 군사를 잃은 채 패주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고려의 병력은 날로 강성해지고 청송을 비롯한 안동 주위의 30여 고을과 동해 연안의 여러 고을 등을 합하여 100여 고을이 모두 고려에 귀순하였다.
고려 태조는 이 병산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세 분 태사의 공로를 높이 치하하여 선평은 대광(大匡), 행과 길은 대상(大相)을 삼고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또 태조는 원래 경주 김씨인 세분에게 선평은 金, 행은 權, 길은 張씨의 성을 내려 주고,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켜 삼태사의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1. 안동김씨 태장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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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6호이다. 안동김씨 태장재사는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이것은 안동지역의 재사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각 부분이 용도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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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권씨능동재사(安東權金陵洞齋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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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재사(齋舍). 중요민속자료 제183호.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인 권행(權幸)의 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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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후면 태장에 있는 김씨 재사.
초등학교 소풍갔던 곳인데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재사 잎구 양쪽에 소나무 군락지가 너무 아름답다. 실상 소나무 보다 아름다운 나무가 어디 있는가 싶다.
봉정사 입구. 입구 바로 앞 식당에서 순두부 한사라 했다.
안동시내 구시장에 있는 안동찜닭 골목길이다.
요사이는 마늘닭도 인기 메뉴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