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대간 34구간 산행기
암반과 싸우다 보니 신선이 되어 있었고
일시 : 2003년 7월 10일(목요일)
날씨 : 흐림
구간 : 34구간 (한계령 대청봉 마등령 미시령)
도상거리 및 시간 : 22.0km. 14시간 55분.
누계 도상거리 및 시간 : 673.7km. 307시간 26분
총 687.7 km중 673.7km완주 97.9%완주
차 례
1. 34구간 산행 지도
2. 34구간에 대한 소개
3. 34구간 주변의 인문 및 역사 소개
4. 34구간 산행기
5. 34구간 산행 소감
6. 34구간 참여 대원
7. 34구간 후기
한계령에서
산은 산의 한계를 넘지 못해
구름 자락에 감겨
높은 봉을 모두 잃었고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해
바위산 뚫을 수 가 없어
한계령을 만들었나
길은 기암 괴석 석벽의 사이사이로
우렁 창자같이 이리 꼬불 저리 꼬불
한계령 고개 고개
굽이 굽이 몇몇 굽인가
봉우리 봉위 쭈빗 쭈빗 솟은 바위들은
귀신의 모습인가 신선의 모습인가
홀현 홀몰 보일 듯 말 듯
빼어난 절경 눈을 훌리고
산불이 난 듯 왼 산을 덮은 구름은
이 산 저 산 이봉 저봉이 모두 제것인 듯
끌어안고 감싸며 보여줄 듯 말 듯
1.34구간 지도
2.34구간에 대한 소개
34구간은 국립공원 설악산 구간이다. 그런 만큼 기암 괴석과 이름난곳이 많다 면적 354.6km2.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1972년 10월 13일, 1977년 10월 4일, 1978년 10월 4일 3회에 걸쳐 구역이 변경되었다. 주봉인 대청봉(大靑峰:1,708m)은 태백산맥 중의 한 연봉(連峰)으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설악산은 유곡(幽谷) ·계류(溪流) ·신록 ·단풍이 천하의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대체로 화강암류로 구성되어 있으나 곳에 따라 흑운모화강암 ·화강반암 ·화강편마암 ·홍색화강암 등도 분포하며 부분적으로 섬록암, 반암(斑岩)이 노출되기도 한다. 서쪽의 인제군 쪽을 내설악, 동쪽의 속초시와 고성군 ·양양군 쪽을 외설악이라고 하며, 이를 다시 북내설악 ·남내설악, 북외설악 ·남외설악으로 구분한다.
북내설악은 인제천(麟蹄川)으로 유입하는 북천(北川)과 백담천(百潭川) 유역의 계곡으로 이루어지는데, 내설악에서 가장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진 백담천 계곡을 따라 오르면 백담사에 이른다. 그 상류에 가야동(伽倻洞)계곡 ·수렴동(水簾洞)계곡 등이 있고, 영시암(永矢庵) ·만경대를 지나 가야동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능선 너머에 설악동(雪嶽洞)으로 넘어가는 마등령(馬等嶺:1,327m) 고개가 있고, 수렴동 계곡을 따라 오르면 와룡폭포(臥龍瀑布) ·쌍폭(雙瀑) 등이 있으며, 더 높이 오르면 봉정암(鳳頂庵)에 닿는다. 봉정암은 해발고도 1,224m 지점으로, 한국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소청봉(1666m)를 지나 대청봉사이의 안부에는 1995년 개장한 산장이 단장되어 있다. 대청봉에 오르면 일대의 모든 산군(山群)이 굽어보이며, 여기서 바라보는 동해일출(日出)이 유명하다.
남내설악은 옥녀탕(玉女湯) 부근에서 한계령(寒溪嶺:1,004m)에 이르기까지의 계곡 일대를 가리킨다. 귀때기청봉(1577 m) ·안산(鞍山:1,430m) ·대승령(大勝嶺:1,210m) ·가리봉(加里峰:1,518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장수대의 북쪽 계곡에 있는 대승폭포(大勝瀑布)는 내설악 제일의 경승지로, 높이가 급단(急湍)을 합하여 88 m에 이르는 한국 최고(最高)의 높이를 자랑한다. 그 밖에도 용대리(龍垈里) 남쪽 계곡에 경승지로 알려진 십이선녀탕(十二仙女湯)과 옥탕폭포(玉湯瀑布) ·용탕폭포(龍湯瀑布) 등이 있다. 북외설악은 북내설악의 동쪽 일대를 가리킨다.
외설악의 관광 중심지는 설악동인데, 물치(物淄)를 거쳐 들어가는 길과 속초에서 척산온천(尺山溫泉)을 지나 목우재 고개를 넘는 길이 있다. 물치로 흐르는 천불동(千佛洞) 계곡은 대청봉을 수원으로 북류하는 물길인데 와선대(臥仙臺) ·비선대(飛仙臺) ·금강굴(金剛窟) ·문수담(文殊潭)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포(陽瀑布) ·음폭포(陰瀑布) ·천당폭포(天堂瀑布) 등 설악산의 핵심을 이루는 절경이 펼쳐진다. 이 계곡을 올라 대청봉 북쪽 가까이의 안부(鞍部)를 지나면 봉정암에 이른다. 대청봉에서 미승령에 이르는 능선을 공룡능선이라 하는데 동서수계(水界)의 분수령으로 암벽미의 압권을 이룬다. 토왕성(土旺城) 계곡 연변에는 설악동에서 바로 남쪽에 솟은 석가봉(釋迦峰) ·문수봉 ·보현봉(普賢峰) ·취적봉(翠滴峰) ·노적봉(露積峰) ·문필봉(文筆峰) 등의 높은 산이 이어지고, 육담폭포(六潭瀑布) ·비룡폭포(飛龍瀑布) ·선녀봉(仙女峰) ·토왕성폭포 ·화채봉(華彩峰) 등의 명소가 있다. 이 중에서도 육담폭포는 6개의 못[沼, 潭]이 이어져 있으며, 그 옆에 길이 42 m의 줄다리가 있다. 울산바위계곡은 신흥사(神興寺)를 기점으로 하여 북쪽에 솟은 울산바위로 오르는 계곡인데 내원암(內院庵) ·계조암(繼祖庵) 등이 있다. 설악동에서 남쪽으로 높은 암벽이 보이는데 이것은 로프웨이(索道:1,100m)가 걸려 있는 권금성(權金城:660m)이다. 남외설악은 설악산국립공원의 남단을 이루며, 대청봉과 점봉산(點鳳山) 사이를 흐르는 오색천(五色川)은 주전골 계곡과 오색약수 ·오색온천이 있다. 계령 일대는 인제~양양 간 국도가 심한 굴곡을 이루고, 입산도벌(入山盜伐)을 금하였다는 금표암(禁標岩) 등이 있다.설악산 일대는 1965년 11월 천연기념물 171호로서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73년 12월 다시 공원보호구역으로 고시되었으며, 1982년 8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하여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설정되었다. 설악산에는 설악조팝나무를 비롯하여 눈잣나무 ·지빵나무 ·눈향나무 등 94과 392속 939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열목어(熱目魚) ·크낙새 ·까막딱다구리 등 포유류 동물 25종을 비롯하여 조류 90종, 파충류 11종, 양서류 9종, 곤충류 360종 등이 서식하고 있다.
이번구간도 미시령 저항령구간이 자연 휴식년제라 남진을 하게 된다. 원래는 한계령에서 시작하여야 하나 휴식년제라 미시령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우측으로는 인제군 북면이 대간을 경계선으로 자리잡고 있고 좌측에는 고성군 토성면이 황철봉 너덜지대 전 1098봉에서 속초시와 경계선이 되고 속초시는 다시 대청봉까지 이어지고 대청봉에서 양양군 강현면과 서면이 갈라진다.
3.34구간 주변의 인문 및 역사 소개
인제군 북면
면적 349.14km2. 인구 9,019(1999). 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쪽으로 서화면(瑞和面), 서쪽으로 양구군 동면(東面), 남쪽으로 인제읍, 동쪽으로 고성군 간성읍과 토성면(土城面) ·속초시 및 양양군 서면(西面)과 접한다. 8 ·15광복 후 북한에 속해 있다가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따른 행정이양으로 수복된 곳이다. 동쪽은 설악산(雪岳山)국립공원의 주봉인 대청봉(1,708m)과 내설악 대부분이 차지하며 장수대(將帥臺) ·대승폭포(大勝瀑布) ·옥녀탕(玉女湯) 등이 내설악의 절경을 이룬다. 주요농산물은 쌀 ·옥수수 ·감자 등이며, 특산물로는 한약재 ·산나물 ·토종꿀 등이 있다. 면소재지인 원통(元通)은 교통의 요지이며, 북쪽으로는 진부령 ·미시령이, 동쪽으로는 한계령이 면의 경계를 이룬다.
【문화재】 월학리(月鶴里) 선사유적,한계산성(寒溪山城:지방기념물 17), 장수대, 한계사지(寒溪寺址), 봉정암 석가사리탑(鳳頂庵釋迦舍利塔:지방유형문화재 31), 백담사(百潭寺) 등이 있다. 〈한계산성〉 신라 경순왕(敬順王) 때의 성지로 전해지며 자연석으로 축조된 성지 73.6m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지정(至正) 18년(고려 공민왕 7)’이란 연호(年號)가 박힌 기와조각이 발견되었고, 또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성벽의 길이가 6,278자, 높이 4자로 적혀 있어 매우 규모가 컸던 성으로 추측된다. 〈봉정암 석가사리탑〉 백담사에 딸린 봉정암은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세웠다고 전해지며,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사리를 얻어다가 644년 5층석탑을 세우고 이 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탑의 기단부(基壇部)는 갑석(甲石) 이하가 파묻혀 잘 보이지 않으나 복련(覆蓮) 받침 위에 1층 옥신이 섰으며, 2층 이상의 옥신은 높이가 비슷하면서 폭이 4/5 정도씩 줄어들고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수법으로 보아 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속초시
속초시는 본래 동예(東濊)의 땅으로 고구려 때 수성군(佺城郡), 신라 때에는 수성군(守城郡)에 속하였다. 고려 이래 양양군에 속하였다가 1895년 간성군(杆城郡)에, 1996년 8월 다시 양양군에 이속되고, 1908년 청대산을 중심으로 북쪽을 소천면(所川面), 남쪽을 도문면(道門面)으로 분할하였다. 1912년 도문면과 소천면을 병합하여 도천면(道川面)이 되면서 면사무소를 대포리에 두었다. 1937년 속초리에 면사무소를 이전하면서 속초면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하고 8 ·15광복 후 북한 치하에 있다가 1951년 1월 8일 국군의 진주로 군정이 실시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으로 전기 2개리를 고성군으로 환원시키고, 1963년 1월 1일 속초시로 승격하였다. 1965년 개항질서법의 적용항구로 지정되면서 도시계획이 확정 고시되었다. 1973년 7월 고성군 토성면(土城面) 사진(沙津)·장천(章川) 2개리가 편입되었다. 현재 13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청 소재지는 중앙동(中央洞)이다. 13개동은 영랑동(永郞洞)·동명동(東明洞)·중앙동·금호동(琴湖洞)·청학동(靑鶴洞)·교동(校洞)·노학동(蘆鶴洞)·조양동(朝陽洞)·청호동(靑湖洞)·대포동(大浦洞) ·도문동(道門洞)·설악동·장사동(章沙洞)이다.면적 104.95㎢, 인구 8만 6,923명(1999)이다. 북쪽으로 고성군 토성면(土城面), 서쪽으로 인제군 북면(北面), 남쪽으로 양양군 강현면(降峴面) 등과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시의 서쪽 설악산(雪嶽山) 부근의 태백산맥(太白山脈)에서 갈라진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주봉산(朱鳳山)·청대산(靑垈山) 등 연봉을 이루고, 대포동(大浦洞)의 외옹치리(外瓮峙里) 해안까지 임박해 있다. 하천으로는 설악산에서 발원한 쌍천(雙川)이 양양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하류에 약간의 평야를 형성하고, 미시령(彌矢嶺)에서 발원하여 대소 지류를 합류한 소야천(所野川)은 유로는 짧으나 유역에 기름진 소야평야를 발달시키면서 시의 중앙을 가로질러 청초호(靑草湖)로 흘러든다. 시가지 북쪽과 중부 해안에는 석호(潟湖)인 영랑호(永郞湖)와 청초호가 있고, 청초호 바깥쪽의 사취(砂嘴)에는 방파제 시설이 되어 있어 청초호는 좋은 항만 구실을 하며, 특히 풍랑 때 어선의 대피정박지로 이용된다.동해에 면하기 때문에 해양성기후가 나타나며, 겨울에는 태백산맥이 한랭한 북서계절풍을 막아 바람의지[風下]에 있게 되고, 푄 현상도 있어 같은 위도의 황해안에 비하면 5℃ 정도 기온이 높다. 여름에도 간혹 하늬바람이 태백산맥을 타고 넘어 불어내리는 일이 있는데, 역시 푄 현상으로 심한 고온을 나타낸다. 강수량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여름에 적고, 가을·겨울에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연평균기온 12.3도, 1월 평균기온 -2.2도, 8월 평균기온 24.3도, 연평균 강수량 1,132mm이다.
양양군 강현면
면적 52.75km2. 인구 4,790(1999). 22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속초시, 서쪽으로 인제군 북면(北面), 남쪽으로 양양읍에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본래 양양의 지역으로 한말까지 강선면(降仙面)과 사현면(沙峴面)으로 나누어진 것을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전기 2개면과 도문면(道門面) 도문리 일부를 합하여 강현면이 되었다. 8 ·15광복 후 북한에 속해 있다가 1954년 수복되었다.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물치천(沕淄川) 유역 장산리(長山里)에서 정암리(釘岩里)에 이르는 구간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주요농산물은 쌀 ·보리 ·채소류 ·과일(특히 사과 ·감) ·감자 등이며, 축산도 성하다. 수산업은 2t 미만의 소형어선으로 물치리를 중심으로 영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부는 설악산국립공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동해안에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를 비롯하여 설악 ·낙산 해수욕장이 있다.
【문화재】 진전사지(陳田寺址), 진전사지 부도(浮屠:보물 439) ·3층석탑(국보 122), 낙산사지(洛山寺址), 낙산사동종(보물 479), 낙산사7층석탑(보물 499), 낙산사 원장(垣墻:지방유형문화재 34) ·홍예문(虹霓門:지방유형문화재 33) ·의상대(義湘臺) ·원통보전(圓通寶殿) ·사리탑(舍利塔) ·7층석탑(보물 341) ·홍련암(紅蓮庵) 등 약 20점의 문화재가 있다.
〈낙산사원장〉 원통보전을 방형(方形)으로 둘러싸고 있는 담장. 조선 전기 세조 때 축조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뒤쪽의 길이 5.8m, 좌측 21m, 우측 8m가 원래의 형(形)이며 나머지는 근래에 다시 쌓은 것이다.
〈낙산사홍예문〉 1466년(세조 12)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하여 사찰을 중수하고 홍예문을 세웠다고 전한다. 홍예는 당시 강원도의 고을 수(數)에 맞추어 26개의 홍예석을 써서 조성하였다고 하며, 홍예 위에 있는 누각은 1962년에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낙산사의상대〉 1926년 의상조사(義湘祖師)를 기리어 낙산사 입구의 동해 해변에 육각정(六角亭)을 세우고 의상대라 명명하였다. 1936년에 쓰러진 것을 1937년 다시 중수하였다. 현판은 조선 후기 서예가 김돈희(金敦熙)의 글씨이다. 〈낙산사원통보전〉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조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그 후 여러 번 중수한 기록이 있다. 6 ·25전쟁 때 전소된 것을 당시 1군단장과 양양군민이 협력하여 1953년 준공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에 다포(多包)집이다.
4.34구간 산행기
장마철 기간이라 기상대 예보도 하루 걸려 달라진다. 이러한 날씨에는 산행하기가 무척이나 예측하기가 어렵다.이러한 날씨의 변덕 속에도 대간을 하라고 허락하듯 남쪽지방만 비가 온다는 예보이다. 이번 산행은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15시간 내외가 걸리는 산행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백운 아트홀로 나가니 몇분의 비회원이 나와서 기다린다. 이번 산행은 설악산 구간이라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는데 산에 가보지도 않은 분도 설악산이라는 말만 듣고 산행에 참석한다고 하여 이번 구간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니까 스스로 신청을 반납하였다. 출발시간이 되었는데 연성주 대원이 회식으로 인하여 20여분 늦게 출발한다.
백운 아트홀 출발 : 21시 21분
오늘 산행 인원 37명, 2명이 예약을 하고 불참하였다. 약간의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버스는 미시령을 향해 출발한다. 옥곡 인터 체인지에 진입후 남해 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달린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대원 모두에게 귀마개를 하나씩 돌리고 나니 나의 것은 없다. 김총무 인사말과 정대장의 산행에 대한 안내말이 있고 난 후에는 모두들 잠을 청한다. 오늘 산행은 최고령자가 고희 가까이 되시는 중마동에 거주하시는 영감님도 참여하셨다. 청춘은 연령이 아니라 정신 연령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젊은 2,30대의 사람도 그 사람의 정신연령이 5,60십대라면 이미 늙은 사람과 다를바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버스는 안동 휴게소에 도착하여 정차한다. 잠시 소피를 보고 하늘을 보니 보슬비가 보슬 보슬 내린다. 설악산 구간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를 듣고 가니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마음이 놓인다. 잠시 정차한 버스는 휴게소를 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후 홍천을 향해 달린다. 잠시 잠에 취해 있다 보니 홍천 인터체인지를 나와 화양강 휴게소로 들어선다. 잠시 화양강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인제로 가는 국도 46호에 들어서서 달리다 보니 4차선 도로 공사로 인하여 길은 엉망이다. 인제 가까이 가니 다시 길은 4차선으로 곱게 단장되어 있다. 이곳부터는 전방이라는 것을 말해 주듯 곳곳에 검문소가 있고 부대들이 많이 눈에 띈다. 원통을 거쳐 백담사 가는 삼거리를 거쳐 미시령을 향해 가까이 가니 안개로 인하여 운전을 하기 힘듬을 김기사 호소 한다.
미시령 도착 : 04시 15분
하초가 촉촉히 젖은 설악이
출렁거리는 동해에 머문
눈길을 거두지 못하다가
격정에 자맥질하는 여자를
안아줄 수 없는 것이 부끄러워
짙은 안개로 얼굴을 가리는
모양을 미시령 위에서 본다
미시령에 도착하니 안개로 인하여 분간이 힘들다. 잠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정대장 들머리를 찾고 다닌다. 내가 보기에는 정 반대 방향에서 들머리를 찾기에 이곳은 아니라고 말하고 남측 방향을 알려주니 그 방향으로 가서 찾아 출발한다.
미시령 출발 : 04시 26분
이번 구간도 미시령에서 마등령 구간이 자연 휴식년제라 법망을 피하기 위하여 남진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한계령에서 출발하여야 하나 국립공원 관리 공단 직원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미시령부터 남진을 하게 되었다. 미시령 남진 방향 들머리는 인제쪽에 있으며, 약간의 공터로 들어서니까 출입 통제소가 설치 되었고 철조망이 쳐져 있다. 출입 통제소 앞을 지나 철조망 끝으로 들어서니까 그동안 휴식년제라 길이 희미하고 앞사람과 떨어지면 길을 잃기 쉽상이다. 이렇게 길을 따라 올라가니 약간 펑퍼짐한 곳이 나와 여기서 인원 점검하고 산하를 둘러보니 인제쪽의 운무는 대원들을 감탄사가 연발 나오게 한다. 이런 산행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자연의 마술이니 어찌 여기에 빠져들지 않으리까? 자연이 주는 마술을 흠쁙 감상하고 다시 출발하니 우거진 숲속 길로 한참을 올라서니 능선 길에 들어서서 산행이 계속된다. 능선의 길도 끝나고 다시 첫번째 오르막 너덜 지대가 기다린다. 너덜 지대에서 휴식을 취하며 옆을 보니 그 유명한 울산 바위가 자태를 드러 내놓고 뽐내고 있다. 연성주 대원 부인을 불러 울산 바위를 보라고 한다. 대원들 울산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기고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너덜 지대를 오르기가 한결 쉽다. 비가 오면 바위의 이끼로 인하여 미끄러워 내발로 가야 하나 오늘은 하늘이 주신 기회로 두발로 가도 될 것 같다.
너덜지대 휴식후 출발 : 05시 46분
휴식을 취하고 너덜지대를 대원들 잘도 올라간다. 너덜 지대 거의 다 올라가서 본인의 보이스 펜이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큰 돌사이로 떨어져 이제는 못찾겠구나 생각했는데 조팀장님께서 찾아주어 보이스펜을 호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고 혹시라도 잊을까 봐 신경을 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너덜 지대를 올라와 능선길에 올라서니 연성주 대원과 최규언 대원이 뒤에서 올라오고 있다.
1318봉 통과 : 06시 18분
1318봉이라는 것은 지도상에 있지 어떤 표지석은 없다.봉이 고만 고만 하여 어떤 것이 봉인지 분간이 안 가는데 본인의 고도계에 나타나 스쳐가는 봉이 1318봉으로 한다는 것을 참고한다.
1318봉을 통과하니 뒤에서 고함 소리가 난다. 방향을 잘못 든것 같다. 앞에서 고함을 쳐 이곳이 방향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가는데 자꾸 고함 소리가 난다. 또다시 호루라기를 불어 방향을 알려주고 가는데 영 기분이 찜찜하다.
정대장 보고 무전을 치라고 하니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보니 황철봉이 나오고 오늘 아침 식사 여기서 하기로 한다.
황철봉 도착 : 06시 52분
황철봉 도착하여 두 대원이 오지 않아 김총무 및 여러 대원들이 휴대폰을 이용하여 통화를 시도해보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잠시 긴장이 쌓인다. 권여사 남편이 오지 않으니까 야호를 연달아 남편이 있는 쪽으로 외쳐 본다. 옆에서 야호를 듣는 대원들 권여사의 야호 소리가 너무나도 애처롭게 들린다. 집에서 소가 송아지가 없을 때 부르는 그 애틋한 소리이다. 아마도 이 애틋한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애틋한지 짐작이 안가리라.부부란 이런 것일까? 참으로 많은 백두대간의 산행속에서 연성주 대원의 부부애를 더욱 느끼고 더욱 다졌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그 부부애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황철봉 너덜 지대에서 각자 가지고온 도시락을 꺼내어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연성주 최규언 두대원이 그때서야 도착한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반대쪽으로 내려 갔다고 한다. 모대원이 연성주 대원 보고 출발할때부터 속을 썩이더니 계속 썩인다고 오늘 하산주를 사라고 한다.황철봉은 정상에 특별한 정상석이 없으며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황철봉 출발 : 07시 35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늦게 오신 두분도 같이 출발한다. 저항령까지 내려가는 길도 너덜 지대라 조심 조심하며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내딪는다.
양동하,문창식 대원 대간 길과 약간 떨어진 길로 잘못 들어 대간길로 다시 들어선다. 이렇게 내려가다 보니 풀로 가득찬 저항령을 통과한다.
저항령 통과 : 07시 55분
저항령 통해 황철봉 가는 길
우툴두툴 돌들 참 많네
계곡물에 잠긴 길을
돌에게 묻고 나무에게 물어
마침내 올라 앉은 봉우리
노오란 돌채송화 작은 꽃송이
노랗게 절정의 바람은 흔들리네
엉겨붙은 바위들의 고요한 주검
검버섯 돋아나듯 세월만 살아
쉽사리 구원을 말하지 않네
절망조차 말하지 않네
하산길에 몇 번이나 넘어지며 보았네
철부능선 그늘 속
투구꽃들 모여 앉아
그 절정의 침묵을 지키는 걸
잠시도 투구를 벗지 않는 걸.
저항령에도 표지기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저항령은 인제군 백담사 계곡과 속초시 설악동을 이어 주는 길이다.인제쪽으로는 샘터가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내의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다.
저항령을 통과하여 다시 너덜 지대를 올라 1249봉에 도착한다.
1249봉 도착 : 08시 28분
1249봉 정상 바위에 올라서 보니 산하는 날씨가 흐린 탓으로 밝지는 못하며 저 멀리 계곡에는 곳곳에 운무로 가득하여 잠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리가 있으랴! 통과 기념 사진을 남기고 출발한다.
1249봉 출발 : 08시 27분
봉을 넘어 숲속 길로 들어 선다. 숲속길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바람이 솔솔 불어 주니 산행하기에는 제격이다.햇볕이 없어 오늘 같은 날은 그 어느때보다 가장 좋은 것 같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맑은날에 볼 수 있는 설악산은 볼 수 없으며 운무가 낀 설악산만 볼 수 있다. 이러한 숲속길을 가다보니 다시 너덜 지대가 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너덜 지대를 올라서니 1326봉이다.
1326봉 도착 : 09시 28분
땀을 흘리며 올라온 너덜 지대 잠시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힘을 보충한다.
중마동 거주하시는 오늘 최고령자 정병석 대원(가야산악회 회장)과 또 한분이 일어나서 선수를 치고 산행을 시작한다.(09시35분출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니 숲속의 능선 길이 펼쳐진다. 간간이 숲속의 나무사이로 보이는 설악의 풍경은 대원들의 눈길을 잡아주며 떠나가게 만든다.
이렇게 가다보니 마등령 이정표가 나온다. 젊은이 혼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대원들 그냥 지나친다. 젊은이가 후미 그룹인 우리보다 경치가 멋있다고 이곳 바위에 올라서서 감상을 하라고 한다.젊은이 말대로 올라서서 보니 공룡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자연의 진수라 할까 어떤 수식어를 갇다 놓을 수 없을 만큼 아름 답다. 잠시 여기서 디카에 동영상을 담고 출발하니 바로 밑에 마등령 이정표가 있다.
마등령 도착 : 10시 20분
새는 드디어
마등령 길
보일듯 안 보일 듯 구부러지고 감추어진
햇빛이나 놀며 쓸고 있는
맑은 땅에
마지막 자신을 내려놓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의 죽음
고요만이 풍요롭게 그를 덮고 장례한다
오르던 길 멈추고
문상객으로 혼자 서서 들여다 보다가
조심히 두 손으로 그를 든다
나뭇가지를 꼭 쥐었던 발이
바람을 차고 날던 날개가
오그리고 접힌 채로
너무 부드럽다
세상을 놓고 돌아온 그를
누가 이렇게 정화시켜서 가볍게 하였을까
고개를 드니 마등령 터 푸르른 하늘
여기서부터는
바라밍 그를 데리고 연꽃 쪽으로 가리라
마등령에는 돌탑위에 독수리 형상의 나무 목재를 올려 놓고 있으며 갖가지 이정표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마등령은 설악동 금강굴과 인제군 백담사 계곡 오세암으로 이어 주는 길이 나있으며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잠시 휴식과 산행 기념 사진을 남기고 출발한다
마등령 출발 : 10시 35분
이제 이곳부터는 공룡능선이 희운각 산장까지 펼쳐진다. 공룡능선을 따라 가려면 인내와 함께 바위를 오르고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암반 타는 기술도 약간은 필요하다.
나한봉 통과 : 10시 50분
산정에 올라와 노를 저었다.
금방이라도 엎질러 질듯 불붙은 바다,
구릉마다 만발한 해초,
새들은 금붕어떼로 헤엄쳤다.
여기선 너만 있고 나는 없다.
나무가지 끝에 수평선 펄럭이고
잎새마다 포도주 파도,
눈에서 마음이 먼저 뛰어나가 입을 댔다.
오를수록 깊이 잠기는 內海
암봉마다 나를 태운 잠수여객선,
나무들 속옷까지 벗었다.
지구가 취해 빨간 드레스를 들어올리고
참으로 한번 실수하는 하늘을 보았다.
처음으로 한번 山의 속마음을 읽었다.
펑퍼짐한 곳에 나한봉 이정표가 서있다. 아마도 좌측으로 서 있는 암봉의 형상이 나한상으로 되어 있어서 나한봉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 가 없다.
이곳을 통과하여 산행 속도는 더디다. 오르막과 또는 내리막길이 있는데 바위에 몸을 의하며 한사람 한사람 내려가다 보니 휴식과 진행의 연속이되어 산행속도가 더디다.
긴급구조 표말 03-04 통과 : 11시 57분
1275봉 통과 : 12시 00분
1275봉을 통과하니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대원들 잘도 내려간다. 이곳을 내려와 조금 산행하다가 펑퍼짐한 암반지대가 나와 여기서 점심식사지로 정한다.
점심 식사지 도착 : 12시 20분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어 먹으며 주위의 자연과 함께 하니 모대원이 산상의 카페라 말한다. 부부 한쌍이 이곳을 통해 지나간다. 마등령을 통해 비선대로 내려간다고 하며 잘가시라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자연속에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자연에 취해 먹는다는 것은 그 어느 맛에 비유하리오. 자연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다.
점심식사지 출발 : 12시 44분
짐심을 먹고 출발하여 계곡을 건너 오르막 길이 펼쳐진다. 능선 가까이에 암벽에는 권지연 추모비가 동판에 아로새겨져 암벽에 그 친우들이 추모비를 세워 두었다. 세삼 산행안전을 생각케 한다.
긴급 구조 03-06통과 : 13시 06분
추모 동판비를 보고 올라서니 긴급 구조 03-06 이정표가 서 있다. 능선에서 내려와 암반 지대를 거쳐 확 터진 령이 나온다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펼쳐지는 암반 바위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 암반 지대에 오르니 신선봉 이정표가 반겨 준다.
신선봉 이정표 도착 : 13시 40분
잠시 여기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어떻게 저런 길을 왔을까 할 정도로 길은 험하고 암봉들이 즐비하게 들어 서 있다. 그 사이 길로 온 것 같다. 앞에는 희운각 산장이 보이고 대청봉이 가로막고 있다.
신선봉 이정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념 사진을 남기고 출발한다.
신선봉 출발 : 13시 50분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피곤하면 아무것도 들어 오는 게 없으리라.지금까지 출발하여 걸어온 시간이 9시간을 넘어서 10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가야 한다. 대원들 모두 기진 맥진하여 있다.
희운각 산장까지는 내리막 길에다 능선길이라 그다지 어려운길이 아니다.
희운각 산장 도착 : 14시 12분
희운각 산장은 대청에서 공룡릉 쪽의 무너미고개 바로 전에 있는 대피소, 희운 최태묵 선생이 사재로 지었다 하여 그의 아호를 따 희운각이됨.
공룡릉으로
노을이 비껴가는 가을 날 해거름이면
턱수염 더부룩히
색바랜 배낭 젖은 땀방울에
무너미고개 올라설 것만 같은 산벗아!
희운각 모퉁이에서
어둠에 젖는 화채봉 마루로
잔별이 뜰 때까지
까치밭 돋우고서 나는 기다리련다
가난하던 젊은 날의 눈물처럼
천불동 고운 단풍 지고
가까운 날 건폭은 얼어붙어
설악이 온통 하얀눈으로 덮히면
그대와 함께 오르려던 겨울 침봉
내 서럽게 불러대던 노래 곳에
묵묵히 솟아 있겠지
"아득히 솟아 오른 저 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놓고 오르세"
지난날의 산행 수첩 낡은 여백 속에
아직껏 솟아있는 겨울 침봉을 위해
공룡릉으로
노을이 비껴가는 가을 날 해거름이면
희운각 모퉁이에서
나는 까치발 돋우고서 기다리련다
희운각 산장에 도착하여 아래 냇가에 가서 누구라 할 것 없이 세수하고 족탕을 한다.피곤함이 쑥 풀리는 것 같다. 휴식을 취하며 다람쥐들이 극성스럽게 왔다 갔다한다. 최영출 대원 쵸코렛을 손에 들고 내미니 쵸코렛만 물고 간다.냇가에서 내려오는 물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피로를 회복하고 출발한다. 다리를 건너 철계단을 향하여!
희운각 산장 출발 : 12시 26분
이제는 대청봉까지 눈 딱 감고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에는 무심의 세계라면 더욱 좋고 자기의 심성을 단련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 긴 오르막 길이다.
희운각에서 대청봉에 오르는 길은 고바위 길로 다리를 건너 철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자기 자신과 싸우며 오르다 보니 지친 대원들 휴식 타임이 많다 이렇게 지루하게 올라가다 보니 정대장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대원들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내어 대장을 제쳐두고 오른다.
긴급 구조 표말 통과 01-17 : 14시 48분
소청봉 통과 : 15시 35분
뉘의 옷소매 안에서
뉘의 속주머니 속에서
한 생 고이 살다
이렇게 고옵게도 떨어지는가
슬며시 입안에 넣고
지그시 깨물면
금세 터져
온 맘 가득 발그라니 물들일 너
더는 수줍을 속맘도
내일 기약할
한 톨 간절한 씨앗도
그 무엇도 없이
맘 다 닳아버린 너.
소청봉을 통과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고 용아 장성릉이 보이고 봉정암이 보인다. 오늘 산행이 너무 늦어 한가로이 보며 감상할 수 없고 잘 있는지만 확인하고 지나친다. 앞에 보이는 중청을 향해 걸음을 힘차게 옴긴다.
중청 대피소 도착 : 15시 48분
중청 대피소 벤치에 베낭을 벋어 놓고 큰 대자로 두러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청에 오르니 젊은 남녀 일행들이 오르고 있다.물어 모니 한양대생들이다. 대청봉에 올라 대학생들한테 촬영을 요구하여 백두대간 기념 촬영을하고 널븐 이마님이 가져온 정상주를 컵을 빌려 한잔씩 나누어 마시고 대청봉을 출발한다.대학생 일행은 오색으로 내려간다고 하기에 잘가라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중청 대피소 출발 : 16시 28분
중청 대피소를 출발하여 한계령을 향해 달린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초행길이다. 시간은 대략 3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워낙 지친 몸이라 시간은 예측하기 힘들다. 중청에서 끝청까지는 능선길로 되어 있고 약간의 오르 내림이 있는데 지친 몸이라 이런 구간도 힘이 들다.
끝청 통과 : 16시 56분
쉬가 가다를 반복하며 정신력으로 버티며 간다.
긴급 구조 09-09 표말 통과 : 17시 31분
한계령 2.3KM 이정표 통과 : 17시 41분
체력이 다 소진된 가운데 정신력마저 희미하다. 빨리 한계령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래서 걸음 걸이수를 세어 보기도 한다. 우리가 대략 보폭 하나가 60센티미터이니까 150보이면 대략 100미터 된다. 그래서 보폭수를 세어서 여기가지는 얼만큼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4.1KM이니까 한계령까지 소요시간을 한시간 반으로 잡으면 충분할 것 같다.
해발 1320봉 이정표 통과 : 18시 25분
이정표를 지나면 이제 오르막 길이 없겠지 하고 가면 다시 오르막이 나타나 대원들을 힘들게 한다. 철계단을 내려와 계곡이 있는 샘터를 지나 이제 마지막 남은 오르막길을 보니 이영화 대원 푹석 주저 앉고 만다. 이제 저 오르막만 오르면 없겠지 하며 마지막 발악을 하며 오른다. 마지막 오르막 능선을 오르니 이제 내리막 길이다. 거의 뛰다시피 내려 가니 권정순 대원도 뛰어서 내려가고 있다.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아품을 견디며 이렇게 험한 길을 뛰어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계령 도착 : 19시 22분
14시간 55분의 산행을 마감하고 설악산 일주를 했다는 자기 자신의 산행 역사를 쓰고 백두대간 34구간을 완주 했다.가지고 온 하산주를 한잔씩 하며 오늘 산행 고생을 한잔술로 나누며 산행을 마감한다.
한계령 출발 : 20시 12분
한계령을 출발하여 인제쪽으로 내려와서 인제 어느 휴게소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한다. 안동 휴게소에서 정차후 백운 아트홀에 도착했다.
백운 아트홀 도착 : 03시 05분
늦은 시간대에 도착하여 서로 고생 했다는 인사말로 나누며 헤어 진다.
5.34구간 후기
이번 구간은 두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한계령에서 희운각 산장까지를 1구간으로 잡고 희운각에서 미시령까지 나머지 구간으로 잡는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15시간여의 산행은 대원들을 파김치로 만들엇으며 퍼지기 일보 직정의 대원들도 있엇다. 사람이 피곤하면 아름다움 등을 감상할 여유와 정신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제일 처음에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하던 대원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감탄사는 찾아 볼 수 가 없다.오늘 산행은 암반과 싸움이었다. 이런 싸움끝에 가다보면 신선이 기다리고 있어 오늘의 주제를 “ 암반끝에 싸움은 신선이 되어 있었고로” 잡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