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은 실증과 물증을 증거하거나 그 결과물을 계량화 하기가 어려운 학문이므로 학자가 깨달음이란 수단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만약 그 학술에 논리적 합리성만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수긍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십이운성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아래와 같이 생각합니다.
"십이운성은 출발부터 잘못된 이론이다."
10간의 생왕묘절 이론이 잘못된 이론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천간 기운의 흐름과 지지 기운의 흐름이 상호 다르기 때문이다.
천간은 오행이 목화토금수의 순행으로 이어진 흐름이지만
지지는 오행이 목화토금수의 순행으로 상생하는 흐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이운성의 핵심 오류를 지적해 내려면 우선, 일 년이라는 개념부터 정확하게 알고 넘어가야 하겠다.
사실, 1년이란 기간은 ‘五行의 변천’으로 이루어진 기간이 아니라 ‘四象의 변천’으로 이루어진 기간이다.
1년은 4단계(四象)로 나누어 진 음양의 변천 과정이다.
1년이란 것은 봄 여름의 少陽 太陽과 가을 겨울의 少陰 太陰이라는 四象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지가 천간처럼 木火土金水의 순차적인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십천간을 십이지지에 대비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으니, 여기서 생긴 오류가 바로 십이운성 이론의 오류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천간은 木火土金水가 순차적으로 순환하는 과정인데 반해, 지지는 계절의 변화로서 ‘소양 -> 태양 -> 소음 -> 태음'의 [四象의 변화]를 이루는 과정이기 때문에 십간과 지지의 흐름을 상호 대비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지지의 사상의 순환 과정에서 토는 季月로서 각 계절의 중간 중간에 묻혀버리고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십간을 줄여서 오행으로 만들어도 이것을 지지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
지지에서 一氣가 始終하는 건 목화금수 뿐이며 토는 始終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만 토를 제외한 오직 4행만 지지에 대비할 수 있을 뿐이다.
2. 음과 양은 생멸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과 양은 한 개체 안에서 공존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양이 죽으면 음도 죽고, 양이 살면 음도 같이 사는 것이다. 양이 죽는데 음이 살아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따라서 음간 12운성은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3. 土의 십이운성은 존재 불능이다.
천간에서 토는 양과 음 사이에 존재하고, 지지에서 토는 생왕묘를 이루지 않는다.
토는 자(오)묘유에서 3차례나 없어졌다가 사생지에서 4번이나 다시 생기곤 한다.
목화금수처럼 始終이 연속적이지 아니하며 간헐적이다. 따라서 토는 십이운성의 파악 대상이 원천적으로 아니다.
수토공존(수토동궁)이니, 화토공존(화토동궁)이니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戊토가 언제 태어났는데, 戌에 와서 墓가 된단 말인가?
四行만 12운성에 대응시킬 수 있을 뿐이다. 始終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