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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다섯 개의 필름
삶을 돌아보니 남에게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이 많고 빛났던 순간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의사로서는 환자의 고충을 해결해 주었을 때가 그렇겠네요.
하나, 보름 된 변비를 해결하다
전라북도 무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곳입니다. 그런 무주에서도 가장 오지인 무풍면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였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어르신이 보름동안 식사를 못하고 힘이 없는데 영양주사를 놓아줄 수 있냐는 거예요. 주소를 물어보니 두메산골 중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 있는 집이라, 마침 그때 아버지의 승용차를 제가 갖고 있어서, 간호사와 함께 그걸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찾아 갔어요. 도착해 보니. 식사를 못하는 이유가 보름동안 대변을 못 봤기 때문이었어요. 원래 연세가 많으셔서 거의 누워 지내시는데 그래서 변비가 생긴 것 같았어요. 그 집 따님에게 신문지를 갖다 달라 해서 어르신의 엉덩이 밑에 깔고서 바지와 팬티를 벗겼죠. 오른손에 폴리글러브를 끼고 검지손가락을 항문에 넣으니, 동글동글한 밤톨 같은 변이 만져지는 거예요. 꺼내도 꺼내도 끝없이 나오는데, 제가 원래 뭔가 후벼내는걸 좋아하거든요. 심지어는 저의 코딱지나 귀지를 피가 날 때까지 열심히 파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저의 성향과, 의사로서의 의무감이 합쳐져서 씩씩하게 대변을 파내는데, 끝이 없는 것 같았어요. 어느새 신문지 위에 높다랗게 ‘똥탑’이 쌓였어요.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일을 마치려 할 때, 갑자기 폴리글러브를 하나만 꼈던 게 좀 꺼림칙해서, 살그머니 검지에 묻은 똥을 다른 손가락으로 밀어내면서 보니, 아뿔사, 검지손가락의 맨살이 보이는 거예요. 장갑에 구멍이 난겁니다. 급히 장갑을 벗고 손을 씻어야 했죠. 아주 추운 겨울이라 바깥에는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시골집이라 우물물에서 손을 씻어야 하는데, 똥 묻은 손을 치켜들고, 그 집 따님이 길어주는 차디찬 두레박 물을 세숫대야에 부어, 빨랫비누로 열심히 씻었어요. 제가 어릴 때도 엄동설한에 똥구덩이에 빠져 찬 두레박물에 목욕을 한 적이 있는데, 어찌 이리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요.(웃음) 어쨌든 간호사가 영양제를 놓아드리고, 다시 차를 타고 보건지소로 돌아왔어요. 보건지소에는 치과의사와 제가 둘이 숙식을 하고 있었죠. 저녁을 차려먹고 설거지도 끝내고, 치과의사와 같이 비스듬히 누워 오른손을 머리에 괴고 TV를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똥냄새가 나는 거예요. 무풍 보건지소의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푸세식’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오래된 냄새와는 다른, 뭔가 신선한 똥냄새가 나서, 도대체 어디서 나는가 싶었는데, 퍼뜩 낮에 대변을 파낸 일이 생각나서 제 손가락에 코를 대니, 바로 그곳에서 나는 냄새였어요. 또다시 비누와 수세미로 이번에는 따뜻한 물에 한참 씻었어요. 그래도 그 후 일주일 동안 손가락에서 똥냄새가 나더라고요.(웃음)
둘, 6시간의 소변 투쟁
소변 같은 경우는 더 급할 때도 있어요. 1990년 서울 아산병원 인턴시절에 있었던 일이에요. 신경외과에서 디스크 수술을 한 환자는 마취 때문에 소변을 못 보거든요. 그럴 때 ‘넬라톤’이라는 소변 줄을 꽂아줘야 해요. 폴리(foley)라는 호스를 꽂아 놓으면 편한데, 교수님들 가운데는 인턴에게 소변을 빼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제가 만난 환자 한 분은 인상도 좋고 채혈할 때 여러 번 바늘로 찔러도 이해를 잘해주는 분이셨어요. 디스크 수술을 두 시간 동안 했는데 소변을 못 본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신경이 척수를 통해 나오는데 소변을 보는 신경이 마비가 되었으니 그럴 때는 소변을 빼줘야 해요. 이 분은 뭐가 안 맞았는지 요도에 호스가 들어가질 않는 거예요. 해결이 빨리 안 돼서 환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소변은 계속 차올랐지요. ‘넬라톤’ 고무호스에 철사를 꽂아 힘을 줘서 넣었더니 그때부터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환자의 시원함을 저도 같이 느꼈어요. 1리터가 넘었으니 환자 분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방광이 터질지도 모를 위험한 순간이었죠. 소변 못 보는 환자는 어떨 때는 주사기로 빼주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 해결해 주는 게 의사의 보람이죠. 빛난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들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이런 순간들인 것 같아요.
셋, 자신이 자신을 과대표 후보로 추천하다
대학 1학년 때 과대표 선거에 나가서 당선된 적이 있습니다. 쟁쟁한 후보들이 많았어요. 동문들이 많은 경북, 경신, 능인, 대륜, 영진, 성광, 사대부고 등에서 후보가 나왔어요. 각자 모여서 선거 전략을 짜는 걸 보니 부러웠어요. 저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혼자 대구로 왔기 때문에 동문 친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과대표로 나가는 것은 꿈도 안 꾸고 있었는데, 선거 당일 20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각 동문들이 후보를 추천하는 것을 보니 오기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연설할 말을 급히 준비해서 혼자 번쩍 손을 들었어요. 부산에서 혼자 와서 아무도 저를 추천할 친구가 없으니, 내가 나 자신을 추천한다고 하면서 나가서 연설을 했더니,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청중들이 웃는 거예요. 말을 하는 도중 계속 웃고, 박수도 치고 하면서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습니다. 투표 결과는 놀랍게도 7명의 후보 중에 제가 반수 이상의 표를 얻어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언변이 없지만, 대학교 1학년 때는 철학책을 많이 읽어서 멋있는 문어체를 좀 알고 있었기에, 청중들이 저의 달변에 감명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학생들이 저의 눈썹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너무 웃겨서 그렇게 웃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눈썹 총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긴장을 하면 눈썹을 올리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 버릇을 고치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최근에야 좀 고쳐진 듯합니다. 자칫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뻔 했는데 그런 노력들이 제 삶을 보람 있게 해준 것이죠. 경쟁자들 사이에서 선택을 받으니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넷, 외국인들에게 어지럼, 이명 상담을 하다
외국에서 이메일로 상담을 해온 환자가 있었어요. 3년 전, 호주에서 외국인이 ‘전정재활운동’논문을 보고 상담을 해왔어요. 인터넷을 찾다가 요약본이다 보니 어지러움에 관해 도움을 받은 듯해요. 진료를 받으면 기록을 제게 보내주고 저는 답을 하고 서로 메일이 오갔어요. 이명에 대한 상담도 해오면 외국인들에게도 자세히 대답해주는 편입니다. 제 상담을 통하여 해결책을 찾아가는 환자들을 볼 때 보람이 있어요. 한국인으로 뿌듯함도 느끼고요. 국제학회 제안을 두 개 했는데, 둘 다 채택되어서 기뻤지요. 2016년에 서울에서 열린 ‘바라니 국제학술 대회’에서 발표를 했죠. 2년마다 개최됩니다. 어지러움을 연구하는 세계의 전문의들이 ‘간략형 전정재활치료’에 관한 저의 발표를 듣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술대회 참석 소감 (2016년)
두(頭)신경과 원장 한병인
지난 6월에 열린 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회에 참석하였다. 개업의사로서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이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고자 결심했다. 올해 초부터 의원 홈페이지에 학회 휴진 공고를 하고, 포스터라도 하나 내기 위해, 계명의대와 경북의대의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2개의 초록을 제출하였는데, 모두 구연으로 채택되어 연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 초록 제목은 Simplified vestibular rehabilitation therapy program for primary care clinics 와 Neuropsychiatric differences between dizziness and vertigo 로, 비교적 인기가 없는 주제들이지만, 필자가 수 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분야였다. 필자가 어지럼증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에 오희종 신경과 의원에서 부원장으로 근무한 경험과, 그 때 오원장님의 자료로 논문을 쓰면서 김지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것이 계기이다. 한편, 초록을 만드는 데는 경북의대의 박성파, 이호원, 고판우, 김성희 교수님, 그리고 계명의대의 이형, 김현아 교수님의 도움 덕분인데, 특히, 김현아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대한평형의학회 춘계학회가 서울아산병원에서 6월 5일 일요일 오전에 끝났다. 연이어 오후에 같은 장소에서 바라니 학회가 시작되었는데, 그중에서 필자는 vestibular rehabilitation course 에 참석하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전정재활 치료사들이 각자의 애로사항과 발전방향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미국 외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치료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정재활치료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6월 6일 월요일은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학회가 열렸다. 삼성역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고층빌딩과 화려한 거리가 주위에 있어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김지수 교수님께서 학술위원장을 맡으셔서 그런지, 행사준비나 진행이 아주 순조로워서, 주최 측에서 치밀하게 준비를 잘한 듯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라니학회 역사상 가장 많은 740여명이 등록하였다. 행사는 여러 개의 방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아침 일찍 큰 강의실에서 유명 연자들의 40분 강의로 시작되었다. 20분 내지 10분짜리의 수많은 강의들이 있었으므로 관심 있는 강의를 찾아 들으려면 바쁘게 돌아다녀야했다. 필자가 들은 강의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적은 Mal de Debarquement syndrome 과 우주여행과 관련된 평형문제에 대한 것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주선과 비행사는 러시아 소속이지만 발표자들은 러시아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마 학회 참석자 중에도 러시아인은 없는 것 같았다. 한편, 시드니의 Halmagy 선생님의 팀에서는 VEMP의 창시자답게 VEMP를 응용한 새로운 검사들을 선보였다. 또한 안경에 카메라를 탑재하여 피검자의 안진을 하루 종일 기록하는 장비도 선보였다. 런던의 Bronstein 선생님 팀에서는 어지럼증을 인지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원리는 피험자가 어지럼을 느낄 때 스위치를 누르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이것을 생각해냈다는 것이 놀라왔다. 필자는 영어로 발표연습을 하느라 학회기간 내내 편히 지내지 못했고, 2개 발표 모두 질문자가 1명씩뿐이었던 것으로 보아,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 학회에서 외국의 참가자들을 많이 만났다. 필자의 책『어지럼과 이명 그림으로 보다』 중국판을 출판하신 중국의 총리쿤 선생님과는 미리 만나기로 약속했으므로, 학회기간 내내 주로 이 분과 동행하였다. 필자의 중국판 책이 중국내 베스트셀러 2위로 뽑혔다면서 표창장의 복사본을 필자에게 주었다. 필자는 휴가차 외국여행갈 때 그곳의 의사들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그중에 이 학회에 오신 분들이 많았다. 2011년에 런던 여행 때 방문했던 London Imperial College의 시뭉갈(Simungal) 박사는 머리숱이 상당히 적어져서 금방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때 그는 전화로 “I will collect you.”라고 필자에게 말했었는데, 데리러 가겠다는 뜻인 줄 짐작은 했었지만, 필자에게는 마치 물건을 모은다는 느낌으로 와 닿았기에 잊혀 지지 않았다. 또한 2015년 가을에 다른 일로 대구에 와서 잠시 필자의 의원을 방문했던 피츠버그 대학병원의 Susan Whitney 박사는 큰 몸집에 대비되는 상냥한 미소 그대로였다. 한편, 2015년 여름에 필자가 시드니 대학을 방문했을 때, 1시간이나 자신의 007 본부 같은 연구실을 필자에게 보여줬던 MacDougall 박사는 새 여자 친구를 동반하고 학회에 참석하였다. 그때부터 만들던 aVOR ‘APP’을 이번 학회에 발표하였는데, 그 앱의 한글판 명령어 제작을 필자가 도왔다고, 필자의 이름을 제품에 넣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감격적인 만남은 10년 전에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Matera 를 방문했을 때, 3일간의 호텔비를 제공하고, 3일 동안 자신의 자동차로 부인과 함께 우리가족을 태우고 관광을 시켜 주신 Asprella 박사 내외와의 만남이었다. 10년 동안 Asprella 박사는 머리숱이 줄어들고 배가 나오고, 부인도 몸집이 불어서, 모두 중년을 졸업한 느낌을 풍겼다. Asprella 박사는 자신의 고향인 Matera에 다음 바라니학회를 유치하기 위해 로비 중이었다. Matera는 로마시대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돌 동굴들이 있고, 멜 깁슨이 만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촬영지라는 것 외에는 매력이 없어서인지 임원투표에서 스웨덴에 뺏기고 말았다.
학회 마지막 전 날의 저녁식사는 Gala dinner 파티였는데, 리틀엔젤스의 여러 가지 민속춤이 공연되었다. 각양각색의 한복과 부채, 장구, 북, 그리고 갖은 느낌의 음악과 리듬이 함께 어우러졌다. 과연 한국의 춤과 음악이 이렇게도 예쁘고 재미있었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훌륭했다. 학회 마지막 날은 오전에 프로그램이 끝났다. Asprella 박사의 출국 비행기가 자정에 출발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 동안 서울 관광을 시켜드리기로 했다. 하루 전에 우연히 타게 된 택시 기사와 20만원에 대절하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택시 기사의 권유대로 경복궁과 인사동을 구경하고 Asprella 박사의 부인인 Patrizia가 한복을 사고 싶다 하여 동대문 시장을 들렀다. Patrizia는 한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예쁘다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날은 가는 곳마다 한복 입은 여자들이 많았는데, 곳곳에 한복 대여점이 있어서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복을 대여해 입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Patrizia가 환호를 지르면서 열광한 것은 인사동 거리를 걸어가는 스님이었다. 성자와 같은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정말 놀랍고 신기한 모양이었던지 Mon Senior, 라고 하면서 열심히 스님의 사진을 찍었다. 한복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사지 못했으나, 인사동과 동대문시장에서 선물을 가득 사서 인천 공항으로 가서 저녁을 대접했다. 공항전철로 서울역으로 와서 KTX로 대구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며칠 후 Asprella 박사와 찍은 사진을 살펴보다가, Asprella 박사의 티셔츠가 1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같이 찍은 사진 것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10년이나 같은 티셔츠를 입다니 검소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메일로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보내니, It is funny and I really had a laugh seeing them, but I can assure it is not just the same t-shirt. (너무 재미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네요. 확실한 건, 지금의 T셔츠는 10년 전의 T 셔츠가 아니라는 겁니다)라는 답이 왔다.
이번 ‘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회’는 준비하신 분들의 노력과 참가자들의 열성으로 인해 필자가 참석했던 어떤 학회보다 훌륭하고 감동적인 행사였다.
다섯, 의사의 얼굴만 봐도 병이 나을 것 같은 느낌을 주다
제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은 환자가 “선생님 얼굴만 봐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하고 말할 때입니다. 좋은 의사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친절해도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용없지요. 손만 잡는다고 낫지는 않으니까요. 자신의 지식만 믿을 것이 아니라 다른 의사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그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아울러 환자 분들의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점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환자의 질병에 얽매여서도 안 되죠. 어떤 케이스는 환자에게는 공포인데 의사에게는 흥미로우니 이런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요. 또한 환자를 무조건 큰 병원에 보내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환자의 부담이나 입장을 고려해줘야 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 이야기를 해보면, 이십대 여자 한 분이 이명으로 왔어요. ‘박동성 이명’은 혈관과 관련이 있는데, 혈류가 증가하는 걸 보아 ‘빈혈’이나 ‘갑상선 항진증’을 의심해 볼 수 있었죠. 피검사 결과를 보니 빈혈이 심하고 백혈구가 증가해서 백혈병 가능성이 높았어요. 나중에 그 여자 환자 분이 어머니 이명도 살펴보러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오기도 했어요. 이명으로 백혈병을 조기 발견한 경우지요. 이명이 백혈병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놀랍죠. 요즘은 ‘제대혈 이식’을 통해 치료가 발전하고 있어요. 그 이후, 이명에 대해 좀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교만에 빠진 경우가 있었어요. 토요일 진료가 바쁘다보니 어떤 환자 분을 ‘통증으로 인한 경부성 이명’이라 진단했는데, 다음 날 귀가 안 들린다는 연락이 왔어요. 책임을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파티마병원 이비인후과에 있는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택시를 타고 급하게 병원에 도착하니 글쎄, 귀지 때문에 난청이 있었던 거예요.(웃음) 샤워 후 귀지가 물에 불면서 고막에 달라붙었던 것이지요. 귀지를 제거하니 당연히 난청도 사라졌어요. 십년감수한 사건이었죠. 이명이라며 온 환자 중에 귀지가 문제인 경우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