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에 서울에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전>이 개최됐다.
그가 활약하던 시대는 필름 카메라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50mm 렌즈와 35mm 렌즈, 그리고 90mm 렌즈까지 총 3개의 단렌즈로 대부분의 명작을 촬영했다.
단렌즈는 영화의 세계에서는 ‘프라임 렌즈’로 불린다.
라이카 M9이나 DSLR의 풀프레임이라면 화각 그대로의 촬영 효과를 즐길 수 있지만 사용하는 카메라가 APS-C 규격이라면 약 1.5배, 마이크로 포서드에서는 약 2배의 화각이 되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 내가 주로 사용하는 조합은 올림푸스 PEN 디지털에 라이카의 20mm 단렌즈다.
35mm 풀프레임 규격으로 환산하면 약 40mm의 화각을 가진다.
이 화각과 비슷한 효과의 50mm 렌즈를 브레송 선생은 자주 사용해온 것이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당시(전후부터 1960년대)에는 실제로 사용할만한 줌 렌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고정 초점 렌즈만이 유일하게 세상을 담아내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특히 표준화각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DSLR에 고배율 줌이 당연해져 버린 지금,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35mm나 50mm 렌즈를 장착하고 거리를 촬영하던 때의 촬영 감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예를 들자면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듯 하다.
아직 시신경이 젊었을 때의 신선한 감각이라고 할까.
당시에는 라이카에 50mm 렌즈만 가지고도 충분히 촬영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사용할 만한 줌 렌즈가 아직 없었다’는 사정도 있었겠지만, 우선 50mm 프라임 렌즈로 촬영할 때의 시선은 지금 생각해보면 줌 렌즈보다 ‘촬영의 의사(意思)’가 분명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줌렌즈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디카 사용자들도 경험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줌 렌즈를 이용하면 ‘무의식 중에 그림이나 구도’를 만들기 쉽다.
바꿔 말하면 줌링을 돌려서 줌 업·아웃해 자신이 좋아하는 구도를 구성할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편리한 기능이며 디지털 카메라 최대의 축복이지만, 이러한 편리함에서 조금 벗어나서 고정 초점 렌즈를 사용해보면 그곳에는 광대한 영상의 세계가 펼쳐지므로 새로운 경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짐작하건데 2011년은 진화를 거듭해 온 디지털 카메라가 마침내 ‘디카 제 3세대’에 돌입한 증거가 될 것이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정 초점 렌즈는 영화의 세계에서는 많이 사용된다.
오래전에 독일의 유명한 감독 '폴커 슈렌도르프'의 영화 제작을 곁에서 구경한 적이 있는데, 이 감독이 좋아하는 렌즈는 칼자이스의 슈퍼 프라임 렌즈라 불리는 것들로, 25, 35, 50, 85, 135mm의 다섯 가지 밝은 렌즈가 한 세트로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슈렌도르프 감독이 자주 사용한 것은 50mm 렌즈다.
일본의 오즈(야스지로) 감독은 더욱 철저히 50mm만 사용해서 촬영했다.
줌 렌즈로 촬영된 영화는 무언가 ‘제작 비용을 아낀 쿵푸 영화’ 같아서 지적인 느낌이 없다.
그러나 프라임 렌즈는 지적인 존재다.
영화나 사진 명작은 대부분 30~50mm 상당, 즉 대각선 각도가 64~46도 정도인 렌즈로 촬영되고 있다.
‘카메라 입문서’에는 이러한 각도의 시선이 인간의 시각에 가장 가깝다고 써있다.
물론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다.
'로버트 카파'의 걸작 사진에서도 주제가 되는 인물은 화면 중앙에 활기차게 찍혀있다.
하지만 더욱 매력적인 것은 배경에 있다.
즉, 영화의 엑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배경 주변에 행인이 ‘우연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 ‘화면의 여백에 찍힌 광경이나 인물’이 35~50mm 상당의 프라임 렌즈 묘사의 진면목이다.
줌 렌즈로 촬영하는 행위를 ‘사진을 바로 보낼 수 있는 전자 메일’에 비유한다면 프라임 렌즈는 ‘만년필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편함에 넣어 보내는’ 행위를 닮았다.
어딘가 쓸데 없이 손이 가는 부분은 있지만 이러한 부분이 정말 좋은 것이다.
프라임 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트리밍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오직 자신의 발로 걸어서 구도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프라임 렌즈가 보는 세계는 디카 이용자의 세계관을 뛰어넘는다.
내가 간망하고 있는 ‘프라임 렌즈 혁명’은 디지털 카메라의 빠른 진화의 결과, 카메라 이용자가 도달한 새로운 영상 표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단 며칠만이라도 애용하던 줌렌즈를 빼고 프라임 렌즈로 촬영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곳에는 반드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