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읽을 권리 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 2011년 8월 / 323쪽 / 16,000원 ▣ 저자 한윤정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공부했다. 1991년 경향신문 편집국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전국부를 거쳐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다시 쓰는 한반도 100년’, ‘책 읽는 대한민국’, ‘번역가의 책 읽기’ 등을 연재했고, 논문으로는「전지구화 시대의 한국영화에 나타난 트랜스내셔널리티 연구」등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소설과 영화를 좋아했다. 서사의 세계가 주는 풍부한 시야가 삶의 단조로움과 세속의 기준이 부여하는 좁은 시야로부터 한 개인의 정신을 자유롭고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그 반동 때문인지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역시 강했다. 두 가지 힘의 견인 속에서 작품에 나타난 현실의 양상을 찾아내거나 문화가 사회의 진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적 가치와 문화예술의 영역을 신문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화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 Short Summary 괴테와 같은 대문호의 소설이나 채플린과 같은 거장이 만든 영화가 ‘명작’(masterwork)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들의 작품은 시공을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관객)와 비평가로부터 명작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만인에게 명작이라 해도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비평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로부터 달갑지 않은 평판을 받은 작품이 유독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어떤 작품에서건 자기만의 보석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만의 명작’을 갖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숨어 있는 명작을 찾아내거나 이 작품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를 알려 주는, 이른바 ‘나의 명작독법’에 관한 지침서이다. 작품, 작가, 사회(배경), 독자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함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또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역사, 이념, 가치관, 작가의 삶 등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독자의 삶에 투영해 보도록 돕는다. 작품은 자신에게서 가치 있는 광물을 채굴하고자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풍부한 광맥과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반짝거리는 금, 영롱한 수정, 혹은 금강석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보석의 존재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한낱 사금파리 조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세상만사처럼 작품에서 어떤 것을 얼마만큼 얻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이 책이 말하는 ‘명작을 읽을 권리’란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읽기에는 정답이나 오답이 있을 수 없다. 단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르게, 특별하게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결은 독자의 삶과 공명할 때 비로소 큰 울림을 낸다. 바로 그때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 차례 들어가는 글_ 이야기는 삶이다 Chapter 1 명작, 또 다른 명작을 낳다 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_ 중국인 거리 / 고양이를 부탁해 지극히 평범했던 어느 해에 관한 추억_ from 1984 to 1Q84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여성들_ 댈러웨이 부인 / 디 아워스 용서를 구하는 두 가지 방법_ 서편제 / 밀양 본격소설의 시대가 지나가다_ 폭풍의 언덕 / 본격소설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세 번의 만남_ 인연 / 순애보 ‘청춘의 열병’이 만들어낸 장르_ 호밀밭의 파수꾼 / 개밥바라기별 집을 떠나야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을까_ 오즈의 마법사 / 업 Chapter 2 명작, 텍스트와 이미지로 태어나다 작품은 현실이다_ 소설 / 올리브나무 사이로 시가 내게로 왔다_ 일 포스티노 / 시 책의 마법에 걸리다_ 책 읽어주는 여자 / 더 리더 산사의 전설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다_ 부석사 / 생활의 발견 수도자와 소년의 아름다운 인연_ 오세암 / 마르셀리노의 기적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정념의 요리, 사랑의 요리_ 혀 / 바베트의 만찬 사랑의 끝에서 죽음을 만나다_ 성에 / 감각의 제국 지독한 수동적 저항으로 무장한 전사들_ 먼 그대 / 필경사 바틀비 / 채식주의자 Chapter 3 명작, 이념과 가치관에 고뇌하다 소멸하는 삶, 소멸하는 계급_ 워낭소리 /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저항적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_ 미국의 송어낚시 / 월든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_ 은어낚시통신 / 제49호 품목의 경매 가정파괴범에서 계급사회의 희생양으로_ ‘하녀’의 모진 운명 정치적 올바름을 향해 진화하다_ 디즈니의 아홉 공주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 방정식_ 결혼은, 미친 짓이다 / 아내가 결혼했다 나의 국적은 ‘자이니치’_ 박치기 / 우리학교 Chapter 4 명작, 시대와 역사를 건너다 서구 근대에 무릎 꿇은 아시아의 비애_ ‘아톰’과 20세기 시대의 욕망을 되비추는 거울_ 춘향의 영화史 혐오스런 이교도에서 금지된 사랑의 아이콘으로_ 드라큘라의 변신 어둡고 깊은 자본주의 골짜기에 관한 기억_ 강남형성史 40년 상처와 환멸, 희망의 문학_ 민주화 세대의 후일담 한국전쟁이 남긴 심오한 질문_ 순교자 / 광장 격동의 역사를 살아 온 고단한 삶의 주인공들_ 베이비 붐 세대의 영화 작품과 인물 찾아보기 명작을 읽을 권리 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 2011년 8월 / 323쪽 / 16,000원 Chapter 1 명작, 또 다른 명작을 낳다 지극히 평범했던 어느 해에 관한 추억_ from 1984 to 1Q84 소련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정치 우화인 『동물농장』으로 명성을 얻은 조지 오웰은 죽기 1년 전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작이 된 『1984』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곧 20세기의 대표작 반열에 올랐고, 수많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와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는 『1984』가 가진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차용했다. 백남준의 1984년작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오웰의 세계를 패러디한 것이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창조적 오마주인 소설 『1Q84』(2009년)를 내놓았다. 당신을 지켜보는 자의 시선: 『1984』의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지독하게 황폐하고도 정교한 배경 설정에서 나온다. 1984년의 가상국가 오세아니아는 영사(영국사회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와 그 하수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정부조직은 정작 하는 일과는 정반대의 명칭을 가진 진리부, 평화부, 애정부, 풍부부로 구성돼 있다. 지배자들은 허황된 수치로 경제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유라시아 및 동아시아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임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청사진은 현재에 맞춰 계속 변경되며,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된다. 주인공인 서른아홉의 남자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의 서기로서 역사 기록을 고쳐 쓰는 일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당의 현행 노선과 일치시키기 위해 과거의 신문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을 조작하는 게 그의 일로서, 벽에 달린 금속관을 통해 일거리를 전달받은 뒤 왜곡과 변경의 증거를 폐기한다. 극도의 빈곤과 규율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식욕과 성욕에서 나오는 조바심만이 당에 대한 충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빅 브라더와 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극도로 말살한다. 그런데 윈스턴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비판의식을 가질 뿐 아니라 줄리아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당이 진실과 과거를 독점하는 데 대해 회의를 느낀 윈스턴은 과거에 빅 브라더와 혁명 동지였다가 이념적 차이로 결별한 뒤 형제단이라는 반체제 저항조직을 움직이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조작된)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형제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오브라이언이 건네준 골드스타인의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읽다가 당에 적발된다. 당의 첩자였던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고문실로 보낸다. 20세기의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전일적인 미디어 네트워크의 감시가 이뤄지는 사회체제, 그리고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그 체제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이었다. 빅 브라더 일당은 자신들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피의자의 기억을 완전히 바꿔놓고 그가 새 인간으로서 살거나 혹은 죽도록 만든다. 체제 유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죽음과 희생의 신화마저 제거하는 것이다. 악을 처단하는 건 무조건 ‘절대선’인가, 아니면 더 강력한 ‘또 다른 악’인가: 『1984』에 대한 오마주는 세기가 바뀐 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하루키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신도의 사린가스 살포사건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1984년은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옴성산회’를 결성한 해이다. 소설 『1Q84』는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본질을 고발한다.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인 부모와 결별하고 혼자 살아간다. 스포츠마사지 강사로 일하는 그녀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노부인을 알게 된다. 가정폭력 때문에 외동딸을 잃은 노부인은 안전가옥을 운영하면서 아오마메에게 폭력 남성을 죽이는 킬러 임무를 맡긴다. 어느 날 노부인의 집에 ‘선구’라는 종교집단의 리더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가 들어오고, 노부인은 아오마메에게 리더를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아오마메의 초등학교 동창인 덴고는 후카에리란 소녀가 쓴 ‘공기번데기’란 소설을 윤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실체를 리틀 피플이란 존재가 숙주의 몸에 드나드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이 작품이 문학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덴고는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 소설은 광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종교집단의 속성을 다루는 동시에, 소울메이트인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를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1984년의 현실과 나란히 존재하는 이곳을 아오마메는 ‘1Q84’라고 명명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인 에비스노 선생의 입을 빌려 『1984』와 『1Q84』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를 등장시켰어. 그리고 빅 브라더라는 용어는 그 이후 일종의 사회적 아이콘이 되었네. 만일 지금 우리 사회에 빅 브라더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지. ‘조심해라. 저자는 빅 브라더다!’라고. 다시 말해 실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빅 브라더가 나설 자리는 없네. 그 대신 이 리틀 피플이라는 것이 등장했어.” 죽은 산양의 몸에서, 사이비종교의 교주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루키는 인간사회의 악의 근원이 오웰이 지적했던 바 독재자가 구축한 체제로부터 그 체제를 유지하는 평범하고 의식 없는 인간들로 이행됐음을 선포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도 빅 브라더가 구축한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그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급급한 지극히 평범하고 의식 없는 인간이라면, 이미 우리 안에도 악의 근원이 뿌리내려진 건 아닐까? 오웰의 지적대로라면, 하루키의 선포대로라면. Chapter 2 명작, 텍스트와 이미지로 태어나다 수도자와 소년의 아름다운 인연_ 오세암 / 마르셀리노의 기적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무소유’로 한 시대를 풍미한 법정 스님은 열반하면서 “내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스님의 제자들이 찾아낸 그 소년은 스님이 서울 봉은사에 머물 당시 종무소에 배달된 신문을 스님의 처소까지 가져다 드리고 어깨도 주무르면서 스님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금욕과 수도생활을 하는 종교인에게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마음을 지닌 아이들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인의 처소는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부족한 게 많은 곳인지도 모른다. 순백의 영혼이 천상의 부름을 받거나 타락한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는 작품 속 이야기의 끝은 늘 애틋하고 가슴 저린다. 하늘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 동화작가 정채봉이 쓴 동화 『오세암』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설악산 백담사의 부속 암자인 오세암에 얽힌 전설을 듣고 이를 동화로 고쳐 쓴 것이다. 스님은 눈발이 날리는 포구에서 거지 남매를 만났다. 이들이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된 스님은 부모 잃은 조카들이라고 하기로 하고 아이들을 절로 데려간다. 감이는 부엌일을 거들면서 그럭저럭 밥값을 하는 반면에 길손이는 장난이 심해 젊은 스님들의 미움을 받는다. 그러자 스님은 마등령 중턱의 관음암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길손이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스님으로부터 공부를 하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길손은 “바람도 보고 하늘 뒤란도 보고 싶다”면서 따라나선다. 암자에 도착한 길손은 심심한 나머지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문둥병 걸린 스님이 머물렀다는 방문을 연다. 거기에는 머리에 관을 쓰고 연꽃 잎 위에 선 관세음보살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엄마를 만나는 게 소원인 길손은 관세음보살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음식을 바치고 재롱도 떤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한겨울이 닥치기 전에 양식을 구하려고 장터에 가면서 길손에게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라”고 말한다. 돌아오던 길에 폭설을 만난 스님은 조난을 당하고 쌓인 눈 때문에 길이 막힌 나머지 50일이 지나서야 감이와 함께 암자에 도착한다. 길손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님은 법당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아이와 마주친다. 놀란 스님에게 길손은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 하면 젖을 주고 나랑 함께 놀아 주셨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뒷산 관음봉에서 내려온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은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이 아이는 부처님이 되었다”고 말한 뒤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다. 그리고 길손은 엄마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얼굴로 죽어 있었다. 『오세암』은 관음영험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서양에서도 비슷한 전설이 내려온다.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마르셀리노의 기적은 오세암의 전설과 놀라우리만큼 유사하다. 이 이야기는 스페인 영화 <마르셀리노의 기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이를 향한 신의 축복은 왜 슬플까: 어느 날, 수도원 앞에 갓난아이가 버려진다. 수사들은 성인 마르셀리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뒤 아이의 부모를 찾아보고 마을에서 맡아 키울 집도 물색하지만 형편이 닿지 않자 직접 키우게 된다. 마르셀리노는 5살 무렵까지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수도원 안에서 수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다. 그러다가 들에서 예쁜 아줌마를 만나고 그녀에게 마누엘이란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날 이후 마르셀리노는 마누엘을 친구로 삼아 대화를 나누고, 본적도 없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나간다. 수사들이 정성껏 보살피지만 아이의 외로움은 깊어간다.
더욱 외로워진 마르셀리노는 수사들이 절대 가지 말라던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에 못이 박힌 채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를 만난다. 마르셀리노는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곧 예수가 배가 고파 보인다고 생각한다. 꼬마는 수사들 몰래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가 예수께 드리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머리의 가시관을 벗겨낸다. 이런 그를 기특하게 여긴 예수는 ‘빵과 포도주의 마르셀리노’란 이름으로 축복을 내린다. 그러나 엄마를 향한 마르셀리노의 그리움을 커져만 간다. 어느 날 마르셀리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수사들은 다락방으로 가는 아이의 뒤를 밟았다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한다. 예수: 마르셀리노야, 가까이 오렴. 네가 착한 일을 했으니 선물을 주고 싶구나. 마르셀리노: 엄마가 보고 싶어요. 예수님의 엄마도요. 예수: 그러려면 깊은 잠을 자야 한단다. 마르셀리노: 지금은 잠이 안 와요. 예수: 내 품에 안기면 잠들 수 있단다. 마르셀리노: 좋아요. 예수는 아이를 너무 사랑해 일찌감치 천국으로 데려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손등에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가 손을 내밀어 마르셀리노가 건네는 빵을 받는 장면이나 아이를 안아준 뒤 십자가로 올라가는 장면은 신비롭기만 하다. 운명은 계절처럼 반복된다: 소년과 스님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로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있다. 이 작품은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고집멸도라는 불교의 근본 원리를 풀어낸다.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의 경계, ‘도’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가리키는 말로 세속의 괴로움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집약한 것이다. 스님과 둘이 사는 아이는 늘 심심하다. 배를 타고 절 바깥으로 나가는 스님을 따라서 나물을 캐러 간 아이는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허리에 돌을 매달아 놓는다. 아이의 장난을 지켜본 스님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었으면 너는 평생 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다”라고 꾸짖는다. 아이는 부리나케 달려가지만 동물들은 이미 죽었다. 소년이 된 그의 앞에 어느 날 소녀가 나타난다. 소녀의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을 앓는 소녀를 스님에게 맡기고 돌아간다. 소년과 소녀는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이 소녀를 쫓아내자 소년은 소녀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사랑은 어느새 시들고 청년이 된 소년은 간음한 아내를 죽이고 암자로 도피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것이다. 추적해 온 형사들에게 체포되기 전에 그는 스님의 지시에 따라 암자 바닥에 반야심경을 새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추운 겨울 형기를 마친 청년이 다시 암자로 돌아온다. 그는 노승의 시신을 거두어 다비장을 치르고 불당을 정리한다. 젊은 날의 죄를 씻어내려는 듯 그의 용맹정진은 끝이 없다. 어느 날 밤에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아이를 버리러 온다. 그 여자는 소년을 암자에 버린 어머니이자 그의 첫사랑 소녀, 간음했다가 그의 손에 죽은 아내이기도 하다. 밤새 고통으로 흐느끼다가 새벽에 길을 나서던 여자는 얼음이 꺼지면서 물에 빠져 죽는다. 어김없이 돌아온 봄날, 아이는 이제 암자의 주인이 된 스님이 어린 시절에 한 것과 똑같이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허리에 돌을 매다는 장난을 친다. 영화 속의 아이와 스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스님은 아이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며, 아이의 미래는 스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Chapter 3 명작, 이념과 가치관에 고뇌하다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_ 은어낚시통신 / 제49호 품목의 경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생물학적 본능: 윤대녕의 단편 『은어낚시통신』(1994)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경쾌한 흐름 속에 적지 않은 변화의 조짐을 담은 작품이다. 신선하면서 시적인 문체로 ‘은어낚시모임’이라는 소외된 자들의 비밀조직을 그린 이 소설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듯한 환상성, 모든 체제의 억압을 거슬러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선보여 놓은 평판을 받았다. 모천회귀의 본능을 가진 ‘은어’의 존재를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본능에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지고의 존재라고 생각해온 인본주의적 가치관은 ‘인간은 벌레다’라는 가치관으로 변화한다. 여기에는 생태주의, 포스트휴머니즘 같은 새로운 가치들이 들어 있다. 『은어낚시통신』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서른 살의 ‘나’는 삶에 지쳐 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예술사진으로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한 후 광고사진을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겨운 생각이 들던 차에 평소 안면이 있던 신문사 사람의 제안으로 전국의 낚시터를 안내하는 ‘길 따라 물 따라’라는 연재기사를 쓰면서 풍경사진으로 진로를 바꾸는 중이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아파트 우편함에서 발신자가 ‘은어낚시통신’이라고 찍한 편지를 발견한다. “지난 여름 귀하께서 신문에 게재하신 은어낚시 기사가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하여금 귀하를 우리 모임에 참석시키자는 제안을 하도록 했습니다. 귀하께서는 수년 전 한 여자와 만나고 또 헤어진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만일에 그 사람을 기억하시게 되고 더불어 만나고 싶으시다면 아래에 적힌 날짜와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암호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 익명의 지하집단입니다. 은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장紋章입니다.” 새벽에 잠을 깬 나는 오래 전 어느 날 커티스의 사진집을 선물했던 모델 청미를 떠올린다. 광고사진을 찍던 시절, 아직 날씨가 쌀쌀한 초봄에 제주도 성산포에 수영복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두 사람에게 “바다는 차라리 사막처럼 건조해 보였다.” 돈벌이로 광고사진을 찍던 나도 그렇거니와 청미는 억지미소를 지으면서 차가운 바닷물에 수없이 드나들었고 저녁이면 술시중까지 들었다. 늦은 밤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나와 청미는 삼척에서 포항까지의 바닷길과 은어낚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아무 뉘우침도 약속도 없이” 하나가 됐다. 서울에 온 뒤에도 형식적인 만남이 이어졌지만 청미는 나에게 “사막에서 사는 사람, 상처에 중독된 사람, 감정에 나약한 척하면서 사실은 무모하고 비정한 사람, 무서운 사람”이란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은어낚시모임’이 지정한 약속시간이 되자 나는 광화문의 카페 ‘텔레폰’으로 나간다. 그리고 같은 여자의 전화를 받고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서 그녀의 빨간색 스포츠카에 탄 뒤 서대문, 공덕동 로터리, 서강대 앞을 지나서 홍대앞 어두운 카페촌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기묘한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카스테레오에서는 제인 버킨의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가 흘러나오고, 모임 구성원이 모두 64년 7월생 동갑내기임을 알려준 그녀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회귀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또 무명배우, 잡지기자, 대학강사, 화가, 건축가, 수련의, 언더그라운드 가수, 시인 등으로 구성된 자신들의 모임에 대해 말해준다.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그곳에서 몇 년 만에 청미와 마주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란 중인 은어처럼 입을 벌리고 무섭게 몸을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살아온 서른 해를 가만가만 벗어 던지며 내가 원래 존재했던 장소로, 지느러미를 끌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설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상실한 1990년대 한국의 청춘들을 사로잡았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한다. 로큰롤, 술, 대마초, 섹스 그리고 평화는 존 레넌이 베트남전에 반대했던 1960년대 미국식이기도 하다. 언더그러운드 문화와 자연으로의 회귀에 대한 열망 역시 낯설지 않다. 작가는 이런 히피즘의 분위기를 양양의 남대천과 홍대앞 카페의 밤, 그리고 당시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각광받던 PC통신에 빗댄 ‘은어낚시통신’이라는 제목 아래 묶어냄으로써 당시 문화적 변화의 기류를 포착한다. 파멸로 이끄는 에너지를 막는 힘: 다소 난해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인 『제49호 품목의 경매』(1966)의 주인공은 에디파 무스라는 평범한 미국 중산층 주부다. 그녀는 피어스라는 옛날 애인의 유언장을 받고 자신이 몰랐던 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정신적 여행을 떠난다. 1960년대 진보주의 문화의 중심이었던 버클리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전역을 오가는 오디세이를 통해 그녀는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수백 년간 관통하면서 정부의 공식 우편제도와 별개의 지하 우편제도인 ‘트리스테로’를 운영해온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닫혀 있던 자아를 깨닫고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이론’ 같은 과학지식을 끌어들여 점점 동질화하는 세계에 저항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던 에디파는 피어스가 살았던 로스앤젤레스 근처 샌나르시소로 떠나기에 앞서 자신이 첨탑에 갇힌 라푼첼이고,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줄 피어스를 향해 금발의 긴 머리채를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샌나르시소에 도착한 에디파는 피어스의 변호사 메츠거와 함께 한 낯선 술집에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W.A.S.T.E.란 이름의 사설 우편제도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본 에디파는 그들의 문장紋章으로 사용되는 약음기가 달린 나팔을 발견한다. 이어 피어스가 개발 사업을 벌였던 팬고소 호수에 간 에디파와 메츠거는 호수에서 건져낸 다량의 사람 뼈를 목격한다. 그리고 또 이어 이들은 ‘전령사의 비극’이라는 잔혹한 시대극을 보러 가는데, 이 연극에는 경비병 한 소대가 살해돼 호수에 던져진 장면과 ‘트리스테로의 밀약을 맺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온다. 에디파는 이 트리스테로의 비밀이 자신을 첨탑에서 꺼내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추적을 해나간다.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에디파가 알아낸 사실은 이렇다. “트리스테로는 유럽에서 툰과 탁시스 우편제도와 대결했으며, 그 상징은 약음기가 달린 우편 나팔이다. 1853년 이전 미국에 등장했고, 검은 옷을 입은 무법자나 인디언으로 가장해서 포니 익스프레스, 웰스 파고 앤 컴퍼니 등의 공식 우편제도와 맞섰다. 지금은 ‘맥스웰의 수호정령’의 존재를 믿는 발명가들 사이의 정보 소통 수단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남아 있다.” 그렇다면 팬고소 호수에서 발견된 뼈는 트리스테로의 우편배달부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맥스웰의 수호정령’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이론에 예외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의 변형과정에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면 그 체계가 파멸되지만, 맥스웰의 수호정령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동질화(변형)를 막음으로써 파멸을 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회의 동질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에디파는 피어스의 유산을 추적하는 가운데 모든 단서들이 트리스테로의 비밀을 전승하는 데로 모아지며, W.A.S.T.E.의 의미가 ‘우리는 고요한 트리스테로 제국을 기다린다(We Await Silent Tristero's Empire)’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유산처리를 위해 피어스의 수집 우표를 경매에 붙이기로 한 날, 제49호 품목으로 지정된 위조우표를 사러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에디파의 정신세계에서 나타나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감과 허위의식, 유럽과 미국의 주류 역사에서 무시되고 소외된 이들의 존재, 대안적 세계를 꿈꾸는 저항성 등이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이다. Chapter 4 명작, 시대와 역사를 건너다 어둡고 깊은 자본주의 골짜기에 관한 기억_ 강남형성史 40년 서울 안의 서울로 불리는 ‘강남’은 1970년대 초반 처음 조성될 때부터 줄곧 관심과 비난, 모방과 부정의 대상이 돼 왔다. 강남은 엄청난 부의 집적을 바탕으로 세련된 상업주의와 도시문화를 선보이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강남의 표면, 그리고 화려한 외양의 이면에 숨겨진 억압적 구조와 인간적 슬픔은 강남을 다양한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1992년에 나온 문화연구서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는 강남의 중심부인 압구정동을 “자본주의적 야망과 탈자본주의적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딜레탕트 측면과 아방가르드 측면을 동시에 지닌 문화적 공간”으로 파악한다. 압구정동은 물질만능주의와 수비주의가 판을 치면서도 서구 대중문화를 우리 식으로 수용한 청년문화의 진보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또 체제로부터의 일탈과 해방을 꿈꾸는 한편, 그런 욕망을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방식과 외모, 계급, 성차 등을 중시하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표출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강남의 매력과 비애에 가정 먼저 눈을 돌려 대중의 관심을 끌어낸 이는 시인이자 나중에 영화감독이 된 유하였다. 그는 두 번째 시집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압구정동 특유의 소비문화와 거기에서 느끼는 자신의 페이소스를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로서 강남의 존재를 증명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사과맛 버찌맛 온갖 야리꾸리한 맛, 무쓰 스프레이 웰라폼 향기를 흩날리는 거리 웬디스의 소녀들, 부띠끄의 여인들, 까페 상류사회의 문을 나서는 구찌 핸드백을 든 다찌들 오예, 바람 불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저 흐벅진 허벅지들이여 시들지 않는 번뇌의 꽃들이여 하얀 다리들의 숲을 지나며 나는, 끝없이 이어진 내 번뇌의 구름다리를 출렁출렁 바라본다. “온갖 야리꾸리한 맛”이 섞인 압구정동에는 ‘구찌’ 핸드백을 든 ‘다찌’(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기생)들이 소비로 시름을 달래고, 인기 연예인들의 “황홀한 종아리”를 지닌 그곳 여인들을 보면서 시인은 부정관不淨觀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숨 막히는 기분을 느낀다. 강남은 그런 곳이다: 강남이 소설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문학사적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와 분단 극복 등 거대 담론에 경도한 리얼리즘 시대를 지나 개인의 내면과 체제로부터의 일탈을 구가한 1990년대 문학을 거쳐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천착이 이뤄진 시기이다. 그 선두에 선 작가가 정이현이다. 첫 번째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와 두 번째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2007)에서 정이현은 계산적이고 위악적인 면모, 되바라진 언사를 통해 자본주의라는 물신에 사로잡힌 강남 출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고무줄이 헐렁하게 늘어나고 누렇게 물이 빠진 면 팬티는 말하자면 나의 마지막 보루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반포의 27평형 주공아파트에 이사오면서 강남에 입성한 주인공이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야기이다. 22살인 ‘나’는 차가 없는 의대생 상우와 맹하지만 은색 투스카니를 몰고 다니는 민석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나의 꿈은 강남 언저리를 맴도는 엄마의 삶, 즉 “허울만 좋은 중소기업 임원의 아내로 백화점 세일 때 허접한 옷 골라 사 입고 문화센터 노래교실에 다니는 걸로 여유를 찾는” 짝퉁이 아니라 진짜 강남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미국 로스쿨에 다니는 ‘진지한’ 남자와 사귀게 된 것. 나는 마지막 보루인 처녀막을 무기로 10가지 매뉴얼에 따라 그와의 정사를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혈흔은 보이지 않고, 그 남자는 무감동하게 루이비통 백을 던져 준다. 『삼풍백화점』에서 작가 정이현은 강남이란 신기루의 허약한 토대에 눈을 돌린다. 이 작품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한다. ‘나’는 취업준비생이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약간 시달리기는 하지만 “비교적 온화한 중도우파의 부모, 슈퍼싱글 사이즈의 깨끗한 침대, 반투명한 초록색 모토롤라 호출기와 네 개의 핸드백”을 가진 중산층 여성이다. 삼풍백화점에 들렀던 나는 우연히 강북의 여고시절 동창인 R을 만난다.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는 R과 친해진 나는 R의 부탁으로 하루 동안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계산 실수로 “어떤 년이야”란 욕설을 들으면서 백화점 점원의 생활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 후 취직이 된 나는 R과 점점 멀어지는데 어느 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R이 행방불명된다. 이 사고에 대해 한 여성명사는 신문 칼럼에 “호화롭기로 소문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대한민국이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을 싣는다. 나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그 여자가 거기 한 번 와본 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라고 울부짖는다. 1995년 6월 29일,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강남몽』(2010)에서 ‘강남의 꿈’을 좇아 달려온 인물들을 통해 수십 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 가쁜 여정과 오점투성이의 근현대사를 그려낸다. 이 소설은 각 장마다 강남과 관련된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상 재학 중 우연찮게 모델 생활을 거쳐 화류계에 발을 들인 박선녀는 졸부의 첩이 되면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상승을 이루는데 부유한 상류층 생활을 누리던 중 백화점에 들렀다가 난데없이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한다. 소설은 또 박선녀의 옛사랑인 강남부동산 개발업자 심남수의 이야기로, 개발 틈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유흥업소 이권을 둘러싸고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인 양대 조폭 두목의 이야기로, 그리고 백화점 지하 아동복 매장의 직원으로 박선녀와 함께 무너진 백화점 건물더미에 깔렸다가 구출되는 점원 임정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마지막 생존자를 모델로 한 임정아는 집 한 칸 마련하려고 평생 사투를 벌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면서 강남이란 신기루를 떠받치는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미약한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끝내 살아남는 강인함을 선사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무너졌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강남이란 철옹성 역시 훨씬 공고해졌다. 2000년대의 강남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비강남 시민의 진입이 더 이상 불가능한 계급적 고착성을 지닌 곳이 되면서 기타 지역과 분리된 ‘그들만의 천국’이 됐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어둡다. 강남의 화려한 고층건물과 아파트숲 사이에 자리 잡은, 강남경제를 떠받치는 투명한 착취구조는 갈수록 깊고 어두운 골로 파여진 크레바스를 양산한다. 크레바스 사이에 갇힌 사람들은 바로 그 불빛 아래 그림자에서 소외감으로 몸부림친다. 현실에서든 문학에서든 영화에서든…… 강남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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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간과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재휘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