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코스 고려사항으로 100m폭을 오를 수 있느냐와 공룡능선상에 도착후 하산 경로로 아래와 같이 여러 경우를 생각했지만, 단풍철을 맞아 설악산에 많은 등산객이 몰려와서 공룡능선이 상당히 붐벼 2시에 비선대로 하산예정이던 팀이 6시 이후에야 하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100m폭 전 우측 지류로 등반하여 희야봉 안부를 통해 설악좌골로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잦은바위골은 공룡능선상의 신선봉과 1234봉, 1184봉, 천화대와 범봉릿지에서 흘러 내리는 여러 지계곡이 모여 이루어진 골짜기로 좌우로 설악산 풍경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멋드러진 천화대 릿지와 칠형제봉 릿지의 암봉으로 둘러쳐있는 협곡이다.
협곡 자체도 거칠지만, 천화대와 칠형제봉 양 암봉군이 만드는 지계곡이 부채살모양으로 퍼져흐르다 모이는 곳에 50m와 100m 폭이 자리잡고 있어 사람들의 등반을 여간 해선 허락하지 않는 계곡이다.
50m폭과 100m폭을 통과하면 천화대 릿지상의 희야봉 안부나 범봉 안부를 통해 설악좌골로 또는 계곡을 계속 타고 올라 공룡능선상의 1184봉이나 칠형제봉이 끝나는 1234봉으로 오를 수 있다.
공룡능선 신선봉에서 바라본 범봉과 희야봉이어지는 천화대 능선을 보면 그곳으로 오르는 잦은 바위골이 얼마나 거친 계곡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50m폭과 100m폭 등반의 난관으로 인해 잦은 바위골은 일반 등반보다는 천화대릿지나 석주길릿지를 마친 크라이머들이 하산로로 주로 이용한다. 또한 50m폭과 100m폭은 빙벽등반의 최적지로 빙벽등반교육을 마친 크라이머들이 국내 최고 빙벽인 '토왕폭'을 오르기전에 최종적으로 올라보는 빙벽등반의 요람으로 사랑받고 있다.
산행후기
미시령터널을 빠져나오자 마자 느껴지는 한기로 창이 뿌예져서 울산암 능선을 보기 어렵다.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고성 친구와 함류하여 설악동 버스에 오른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대포항을 지나니 차안에는 우리팀이외에는 단 한사람뿐이다.
지난 설악골 산행후 벌써 30일. 추석이 지나 음력 22일로 반달이 뜨련만 밤 하늘은 캄캄하다. 설악동 소공원엔 하산하는 등산객의 해드랜턴으로 인해 별이 흐르고 있는 듯 장관을 연출한다.
비선대 산장에 도착할때까지 이어지는 하산객들을 보노라니 희운각에서 출발하여 공룡능선을 거쳐 설악동에 2시에 하산예정이었던 팀이 6시 넘어서야 비선대로 하산할만큼 오늘 설악산에 등산객이 많았다는 동행한 산우의 말이 실감난다.
잦은바위골로 올라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하산하려 했던 계획을 희야봉이나 범봉안부에서 설악좌골로 하산하자고 긴급 수정한다.
비선대 산장도 만원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미 대부분 저녘식사를 마쳤는지 식당 조리대가 한가하다.
서둘러 늦은 저녘을 먹고 일찍 자리에 든다.
기상시간은 새벽 4시반. 그러나 밖의 소란스러움에 하나둘 일어나다 보니 4시에 전원 기상이다. 번잡스럽고 좁은 산장보다는 잦은바위골로 들어 아침을 먹기로 하고 서둘러 배낭을 꾸린다.
'중공군처럼 몰려든다'는 한 산우의 말처럼 이 이른 새벽에 정말 많은 등산객이 몰려 올라온다.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게 대오를 정비하고 비선교를 건넌다. 예상대로 등산인파는 금강굴로 오르는 마등령 갈림길에서 벌써 우와좌왕이다. 지난달 설악골 입구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는데 시간을 재어보니 19분이나 걸린다. 설악골입구를 지나 천불동계곡 500m을 무려 15분에 걸쳐 오르니 잦은바위골입구(잦은바위골(H:440m)/비선대1.0km/대청봉7.0km).
혹여 다른 등산객들이 따라오를까 조심스레 계곡으로 들어간다. 6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칠흑같은 어둠이다. 계곡 옆 평평한 곳을 찾아 자리를 펴고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여명과함께 잦은바위골의 이곳저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로 칠형제봉릿지와 천화대릿지로 말미암아 계곡은 상당히 좁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때문에 비가 내리게되면 계곡 상부의 지계곡에서 모아진 물이 100m폭, 50m폭을 거쳐 이 협곡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갈수기를 택한 산행이기에 물 걱정은 없지만 우기에는 산행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리라.
오지에서는 딛고 가는게 바로 '길'이다. 때때로 희미하게 길 흔적이 있지만, 왕래가 드물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나마 잦은 바위골 50m폭과 100m폭이 빙벽등반의 요람이기에 오르기 어렵거나 우회로가 없는 곳에 고정자일이 설치되어 있다.- 보통 나이론줄이 메어있는 다른 계곡과 다르게 낡았지만 등반자일이 매어있는게 다른 점이다.
처음 만나는 폭포다. 고정 로프를 이용 우측 사면으로 우회한다.
칠형제봉릿지와 천화대릿지가 맞닿을듯 계곡은 협곡이다. 협곡지역에서는 빠른 물쌀 탓인지 잔돌이 없고 집채같은 '바위'만 지천이다.
좌측 사면의 고정로프를 타고 오른다.
일명 쵸크스톤(chock stone : 침니나 크랙에 끼어있는 돌맹이-암벽용어)이다. 황소만한 바위가 어디선가 물쌀에 굴러오다 협곡 사이에 낑겨있다. 좌측 사면에 고정로프가 설치되어있다. 계곡에 '바위'가 '잦아' 붙여진 잦은바위골, 외설악의 지존인 '범봉'을 오를 목적으로 체계적으로 초등한 요델산악회를 기리기 위해 일명 '표범골'이라고도 불리운다.
요델산악회와 설악의 별 송준호.
근 30년전인 대학신입생 시절, 선인봉 요델버트레스라는 암벽길을 통해 6,70년대 암벽코스 개척기를 선도했던 '요델 산악회'를 알았다. 그리고 범봉과 천화대릿지, 그리고 칠형제봉릿지를 오르고 잦은바위골과 설악골을 통해 내리면서 송준호라는 거성의 전설을 수 없이 들었었다. 내 젊은 날에 올랐던 길을 세월이 지나 다시 오르고 있다는 감회보다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범봉을 찾아 올랐던 길을 따라 오르며 느꼈었던 그 가슴 두근거림이 그 시절 그대로 내게 느껴진다.
'인간은 기억하기 때문에 번뇌한다 '고 한다. 기억이 없으면 날마다 모든 것이 새로울텐데...
산을 찾지 않았던 그 공백이 이렇게 가슴떨림으로 내 젊은 날과 지금의 나를 연결되게해 준다.
'마술이 있으면 내 소원데로
우거진 숲을 방황케해주....
빛나는 천막 불들을 밝혀
내 돌아가면 나를 반겨주...'
잊혀졌던 산노래가 절로 나온다.
계곡은 잠시 암반지대를 지나 개활지 같지만 좌우로는 여전히 협곡이다. 계곡 앞으로 다시 암반지대가 이어지면서 계곡은 완벽한 U字가 된다. 바로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벽이 바로 칠형제봉 릿지. 이곳에서 잦은 바위골은 좌우로 갈리는데 우리가 오를 곳은 50m폭으로 이어지는 우골, 좌골은 칠형제봉 릿지로 오른다.
U자 협곡에서 주계곡이 우측으로 틀어지면서 칠형제봉에서 흘러내리는 잦은바위골 좌골
잦은 바위골 좌우골이 만나는 합수지점. 좌골의 상부는 아래 그림처럼 사태골로 칠형제봉 6봉,7봉 사이 안부로 오른다. 이 안부에서 직진하여 내려서는 계곡이 용소골, 우측으로 암릉과 부쉬지대를 뚫고 오르면 공룡능선상에 1234봉이다. 비선대에서 천불동계곡을 거치지 않고 공룡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또하나의 길이 아닌가 한다.
잦은바위골 좌골 상부(인용자료)
우측으로 틀어진 주계곡을 따라 와폭을 오르면 암반위에 직사각형 탕이 나온다. 좌측 사면을 돌아올라 비탈로 오르다 고정로프를 이용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고, 길게 느려져 있는 로프를 잡고 슬랩을 조심스레 오르면 바로 50m 폭포. 이곳에서 좌측으로 일명 바나나바위가 잦은바위골의 수문장인양 오르는 이들을 굽어보고 있다.
50m폭을 우측사면을 타고 올라 내려다 본 모습.
50m 폭 위에서 바라본 칠형제봉릿지 나이프릿지 구간
50폭을 지나 만난 작은 와폭. 좌측 사면으로 고정로프가 걸려있지만, 갈수기라 우측 짧은 슬랩을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이곳을 돌아오르면 바로 잦은바위골의 백미인 100m 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칠형제봉 릿지
잦은바위골의 좌측 벽을 이루며 공룡능선 1234봉까지 치오르는 암릉길로 등반 내내 잦은바위골 우벽을 이루는 천화대릿지와 50m폭, 100m폭을 조망할 수 있다.
칠형제봉릿지에서 바라본 50m, 100m폭포
100m폭포를 감상하며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30m를 내려와 우측 지계곡으로 들어간다. 오르려는 우측 지계곡은 건천인데 반해,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좌측 암벽지대에 지도에는 표시가 없는 또 다른 지계곡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산행후에 생각이지만 이 지류가 범봉전 안부로 오르는 지류인듯 하다.
우측 계곡은 전혀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곳곳에 줄을 내려야할 만큼 급경사이고 뚜렷한 계곡이다. 1시간여를 오르자 계곡 흔적은 점차 사라지고 어느덧 능선길로 변하며 희미하게 나마 길 흔적이 보인다. 급경사를 상당히 치고 올라왔기에 좌측으로 칠형제봉에서 공룡능선으로 오르는 암봉군이 아래로 내려보이고, 11시방향으로는 천화대릿지의 바위(실은 범봉주위 바위군)들이, 우측으로는 멀리 달마봉과 동해가 보인다 (이곳에서 위치를 확인하여 희야봉 안부의 방위각을 따서 진행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약간 좌측으로 틀어져 진행하고 말았다).
다시 20여분을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하니 아래에서 보았던 천화대릿지상의 바위(바로 위2번째 사진)의 연결상태가 더 뚜렷해지고 그 아래로 계곡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주변 상황으로 보아 희야봉 안부 가까이 이거나 아니면 천화대 릿지를 향해 오르는 능선일텐데 더 이상 오른다면 암능일 터이고, 그 암능을 오르기도 힘들겠지만 천화대 릿지상 어디라면 안부로 내려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다. 잠시 운행을 멈추고 진행방향을 확인한 결과 예상한 것과 같이 암능으로 이어진다. 능선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 확인하니 위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아래 뚜렷한 계곡까지는 암벽으로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 다시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서 오른다해도 시간이 족히 2-3시간은 걸릴거 같다.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오르던 능선길은 천화대능선을 향해 암능으로 이어져 더 이상 오르기가 힘들다. 능선길 좌측으로 뚜렷한 계곡이 범봉군에서 흘러내린다. Back해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능선에서 쉽게 계곡으로 내려설 곳까지 back했다 올라오기에는 족히 2-3시간은 걸릴 상당히 먼거리다. 이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서기 위해선 5-60m절벽을 내려서야하지만, 중간 중간 테라스와 확보할 나무가 있어 끊어서 내려간다면 갖고 있는 30m 자일로도 만으로 충불할 것같다.
결국 이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서기로 결정하고 소나무에 자일을 걸고 Face로 조심스래 하강(압자일렌)을 시도한다. 테라스에 내려와보니 face보다는 조금 내려오다 잡목사이로 빠지면 이 테라스까지 계단식으로 더 쉽게 내려 올 수 있다. 2nd까지 테라스에 내려선후 8m 보조자일로 2차 하강을 한다. 이렇게 3회에 걸쳐 내려서니 바로 계곡옆이다. 암봉 밑둥을 따라 길게 트레버스하여 계곡으로 도착한다.
어렵게 내려온 계곡은 위에서 보았을때 뚜렷했던 것과는 다르게 잡목이 무성하다. 그러나 꽤 상부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흐른다. 인원이 모두 앉을 자리를 골라 점심을 먹는다. 천화대 능선만 넘으면 곧 물을 만나겠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졸졸 흐르는 물을 나뭇잎을 이용해 수통에 채운다.
가파른 마른 계곡을 고도차가 100m넘게 20분정도 치고 오르니 능선이다. 좌로는 커다란 봉우리가 버티고 있지만 앞뒤와 우측은 시야가 확트였다. 천화대(범봉릿지 포함)릿지의 어디쯤이겠지만 아직은 알길이 없다. 서둘러 우측으로 시야가 더 양호한 곳을 찾아 지도를 읽는다. 바로 정면으로는 화채능선으로 화채봉과 칠성봉이 보이고 좌측으로 110도 방향으로 세존봉이 우뚝 솓아있다.
이곳이 어디쯤일까? ①
지도상에서 세 지점의 방위각을 그어보니,올라오며 확인한 바와 같이 목표하고 오른 희야봉보다는 범봉쪽으로 더 온 능선상이다. 바로앞으로 흐르는 암릉이 바로 천화대 릿지고 중간에 암봉이 희양봉이다.
잦은바위골로 오른 범봉릿지 능선상에서 바라본 세존봉
잦은바위골로 오른 범봉릿지 능선상에서 바라본 화채봉
잦은바위골로 오른 범봉릿지 능선상에서 바라본 화채능선 - 멀리 달마봉이 보인다
잦은바위골로 오른 범봉릿지 능선상에서 바라본 천화대 릿지 - 중간 봉우리가 희야봉.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가 조망된다.
100m폭포 우측 계곡에서 이곳까지 오른 경로와 설악좌골로 하산한 경로를 지도에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즉, ○ 지점이 위에 산행 사진을 찍은 지점(강능산악회에서 眞如휴게소라부르는 곳)이고 ★ 지점이 설악좌골중 석주골(좌좌골)로 하산하는 지점이다.
범봉群과 희야봉사이 안부로 내려서야 설악좌골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정보뿐인데... 조심스레 희야봉 앞부터 범봉릿지를 더듬어 흝으니 능선상 짤록한 작은 안부로 길이난 흔적이 있고 잦은 바위골에서 올라선 곳 바로 앞에서 그 능선을 따라 가다보나 설악골 방향으로 희미하게 길이난 흔적이 있다.
좌측으로는 설악골 상부에서 범봉을 향한 청하릿지가 우측으로는 석주길 암봉이 버티고 있는 계곡이기 굳이 능선상의 길 흔적까지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내려가다보면 길이 만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바로 하산한다.
하산길(석주골)은 우로는 석주길 암릉을 좌로는 설악골 상부에서 범봉으로 이어지는 청하릿지 암릉 사이로 급경사 길이다. 하산길 초입은 잔돌도 많았지만 이내 뚜렷해지고 캐런과 고정로프들이 하산길을 돕는다. 희야봉 안부에서 내려오는 길을 지났을텐데 아쉽게 확인하지는 못했다.
내려오는 동안 내내 이 길이 설악 좌골로 이어지는 곳이 궁금했는데 지계곡을 따라 내려오던 하산길은 계곡을 버리고 계곡 우측으로 내려오다 설악골 좌 우골 합류점 바로 아래 이쁜 沼에서 설악골 본류와 만난다.
하산길(석주골)이 설악골 본류와 만나는 지점의 沼
내려선 沼위가 설악골 좌우 합수점 아래 쌍폭
네다덧 시간만이지만 모처럼 물을 만나 등산화와 상의를 벗고 땀을 씻는다. 잠시 등로를 이탈했었지만 산신령님이 도우셨는지 어렵지 않게 이곳까지 온 것에 감사하다. 시간도 예상과 다르게 일찍 산행이 종료되었기에 예매한 버스 시간까지 충분하다.
이곳부터는 지난번 까치골을 산행시 올랐던 길이기에 계곡을 버리고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설악골 입구에 도착하니 지난번 산행시에는 어두워서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동판이 우리를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