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이상신호를 보내오다.
중국,대만의 대형프로젝트로 몸을 혹사하다보니 어느 날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중국인들과의 만남은 늘 관시(關係)을 중요시하는 풍습이
있다 보니 몇 번 만나면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朋友)가 된다. 그리고 서로
담배를 권하는 사회이다.
또, 저녁이면 연일 기름지고 풍성한 중국정식으로 만찬을 하고 독한 술로
서로의 관계(關係)를 확인하면서 간빠이를 하는 이런 등식은 몽이교수는
몸에 배어 있었다.
깊은 우정을 나누고자 마신 독한 술은 몽이교수에게도 서서히 간에 이상을
주고있었다. 특별히 건강하고 기골이 장대한 체질로 태어나서 왠만하면
거뜬하게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쁘디 바쁜 관계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마신 술,담배는 어느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간에 큰 상처를 주고있었다.
진 단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몸상태를 점검했을 때는 몸이교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진단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이 크게 남아있고, 대만의 큰 Project에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떄에 몽이교수는 절망이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크게 부정했다. 나는 충분히 이겨낸다 어떠한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극한 어려움도 잘 견디어왔는데 ? 왜 내게~~이런 일이
수 없이 되내어 보았다.
몸은 아팠지만,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 어느 때보다
요양이 필요했지만 , 대만에 카지노 철도사업 건설에 투자한 돈이 너무
큰 거금이라 몽이교수는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몸상태가 최악이었던 몽이교수 대만으로
몸상태는 최악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러
대만에 도착했다. 천수이벤 총통의 각별한 배려로 대만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 VIP들만 모시는 호스비탈(The hospital)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천총통은 의사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꼭 살려야 한다는
메시지(Message)을 보냈다.
아 ~~강명상!!
이제 결실을 앞두고 병원신세를 지나다니?? 그간 죽을 각오로 살아온
본인의 삶! 돌아볼 기회도 없이 달려온 세월 !!
지난해 그래도 고향사람들과 만남은 소중했고, 이제는 일분일초가 아까워
오는 것을느꼈다. 마지막 프로젝트를 눈앞에 앞두고 ? 아직은
아니다 (?) 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2003년 2월17일 타이뻬이에서 돌연사망 !!
그 날은 갑자기 구토가 나고 견딜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면서
입,코로 피가 꺼꾸로 솟아 올랐다. 숨이 가파르게 쉬고 있었다.
급하게 응급실로 옮겨 갔지만. 벌써 강교수는 운명하였다.
대만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대한항공으로 돌와와서
서울 강남삼성병원에 안치되었다.
그의 나이 향년 56세 !!
1947년에 태어 2003년 2월에 운명한것은
너무나 짧고 굵게 삶을 마감하고 큰 족적을 남긴 강교수님!!
강남삼성병원에서 만난 고인의 유족과 친지 고향사람들은
56세 너무도 젊은 나이에 어이없이 운명해버린 강교수앞에
비통하여 말이 없었다. 고향 선산이 있는 구미로 왔지만
고향의 친구들도 비보 앞에 할 말을 잊었다.
강교수의 죽음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큰 일이 일어났지만
세상은 언제 그랬냐? 처름 아무 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구미고향에서 아버님(강교수)이 돌아가셨을때.
신부동이 생긴이래 가장 많은 승용차가 왔었던 그 길을
그렇게 가셨다.
신늪 내 고향에 돌아가리라 -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찔레꽃이 고운 내 고향 신늪으로 ~
아이들이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론 국시남베기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깊은 밤 등잔 심지를 돋우며 돋우며 산수공부 한자공부 하던 날!!
뒷동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활나물 장구채 범부채를 뜯던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
신늪 내 고향에 돌아가리라 -
개암쌀을 까며 소년들은 장동 수리도랑에 놀던 금방망이 놓고 간 도째비 얘길 즐겼다.
대만의 타이페이 간자거리에 신늪 ! 그 마을이 문득 그리워 아라비아서 온 반마(斑馬)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 찔레꽃이 하이얗게 피고 능금이 빨갛게 익어가는 내고향!! 조과 수수 밭이 많았더 오관 그리고 무디미 ! 나뭇짐에 함박 꽃을 꺾어오던 총각들 !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물덤벙 능금밭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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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이 글이 마지막 회 라고. 신늪의 별이 떨어졌군.아 슬퍼다! 그리던 후배친구의 글 마져도...아 얘답고 슬퍼도다.~~~
아쉽고 비통한 마음입니다. 강명상교수님의 일대기는 끝났지만, 그분의 큰 업적은 길이 빛날것입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아! 한참 일할 나이에! 안타깝네요.
쫑구님! 첫회부터 40회까지 성의 껏 달아주는 댓글이 있었기에 지금껏 달려온듯 합니다. 너무나 아쉬운 것은 아직도 강교수님 할일이 많이 남아 있느데~~
방장님 몽이장군이 슬프고도 아쉽게 끝이 났네요. 글이며 사진 음악까지 사실의 세계에 젖도록 감동을 주었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일과 많은 자료 등 그간의 수고에 위로와 감사를 보냅니다.
누님! 건강하게 잘 지냈는지요? 원래 계획은 50회로 준비를 했는데 ~ 명상형님의 유년시절,청소년 , 학생.성인시절,중년시절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네이버,중앙일보,조선,동아일보등 많은 재료을 찾아보니 저또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방장님 수고만앗어요 긴세월 우리에게 몽이장군의 많은업적 알려주어서 고맙고 슬픈 몽이장군의 이야기를 한 여름밤에 꿈 처럼 느끼게 하네요 아 정말 몽이장군이 떠낫다는 생각을 하면 금방이라도 눈시울이 뜨겁군요 마지막 뜨나기 한달전 전화 통화로 곳 갈
거야 하던 목소리가 영원히 올수없는 길이될줄 몰랏네요 고생많이하셧어요
누님의 예감대로 가을 낙엽이 쓸쓸이 떨어지는 날 ! 몽이형님의 글을 접을 계획이었습니다만, //누님과는 명상형님과의 아스라한 추억이 남아 있어 더욱 애틋할듯 합니다. 근대화 시절에 살았던 사람치고 누구 한사람 격정없이 인생을 살았던 삶은 없을듯합니다만, 그래도 우리신늪에서 태어나 통큰 삶을 삶을 영위하며 한시대를 풍미했던 명상형님은 큰 인물이었습니다. 후반부에 항상 격려해주신 누님의 글에 크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