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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의 배반
역대하 16:1-10
아사 왕 삼십육 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아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취하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 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두어 성읍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파하여 그 공역을 그친지라
아사 왕이 온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수운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역대하 1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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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상황이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우가 100년을 참으면
사람이 된다고 하듯이,
사람도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어봐야
사람같은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겁니다.
마치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는
직업의 속성상
높은 사람이 요구하는대로
싫어도 해야했고,
좋으면 더 신이나서 하게 되었지만,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나서는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새사람으로 변할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이전에 자신을 있게한 일체의 관계는
허물어지는 것 이상으로
도리어 자신의 삶에 장애물이 되어 버립니다.
ㅡㅡㅡㅡㅡ
하나님을 잘믿다고하는 아사왕의 경우에도
유다나라가 편안하게 사는 것이
나라와 자기를 보존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왕과 상호방위조약의 손길을
불쑥 내밀고 맙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변질이요, 배신입니다.
이제껏 아사왕은
신앙교육을 잘받아 온것으로 보였는데
하나님께서 야생으로 떨구어 버리니까
자기의 한계가 바로 노출됩니다.
결국 아사왕은 하나님을 빌미로
이제껏 믿음흉내를 내어왔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보통의 나라라면
매우 합당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유대나라라면
먼저 사람의 사랑을 고려하기 보다는
이방이 얼마나 강대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들 위에서 군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아사 왕이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고
신앙으로 살았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 백 만의 군대가 쳐들어왔는데도
눈 깜짝 안하고
"하나님 저 약합니다
저들이 공격하는 것은
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오니
하나님이 친히 나서서
저 수많은 군대를 쳐부수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더니만
그들이 완전히 물러가고
승리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것이 역대하 14장부터
죽 나와 있거든요.
엄청난 고민거리가 밀려오고
공격해 왔지만,
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니까
다 이기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좋으니까
설마 이런 인간도
하나님을 배신하겠느냐 라는 생각이
들지않을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모르고
우리 자신을 모르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릅니다.
어떤때는 사람을 살리는 의인이었다가
어떤때는 사람을 위해하는 악인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10년 전 신앙 다르고
10년 후 신앙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릅니다.
아침에 웃는 얼굴하다가
저녁에 상기된 얼굴로 변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와 있는 사람 중에서
야, 이 사람은 틀림없다 보증수표다
이 사람은 하나님 이토록 사랑하니까
배반하지 않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집사, 어느 장로, 어느 목사 참 훌륭하더라.
는 평판이 난무합니다.
저는 그런 소리 안 믿습니다.
네, 절대로 안 믿어요.
그 사람이 혼자서
집에서 하는 짓이 뭔지
누가 압니까?
사실 저는 알아요. 왜냐?
모든 인간은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하는 짓은
자기 교만을 돋우는 일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오래된 장로가 교인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고
정치목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들을 부화뇌동을 일삼습니다.
이런 행동이 구원의 확신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전혀 모른채
자기자신을 죽지않고
타인들을 죽이는 무지한 발상일 뿐입니다.
구원이란 교회나와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속에 파고들면서
이루어질 뿐입니다.
용서받지 않으면
어떤 인간도 구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개과천선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끝까지, 죽을 때까지
주님의 용서하심을 거두어 가신다면
그 사람의 죄는 그대로 노출되고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확고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왜 인간으로는 않된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 믿지 말고
하나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죄인밖에 없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용서하러 왔다.
용서하는 권세는
교회 잘나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목사,장로,집사라고 해서
특별히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나한테만 있다"는 걸 알려 주시려고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것은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듯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다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다고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걸 보면 십자가 앞에서
"나 같은 인간은
예수님이 구태여 십자가 안 지셔도 되는데,
나는 십자가 질만큼 죄는 안 지었는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십자가 지시라고 하시네.
나 같은 사람은 말씀만 해도 다 알아듣고
착하게 살 수 있는데..."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 때
수많은 인간실험이 있었습니다.
극한 상황속에서
사람을 죽이다 보면
죽음을 즐기게 되고,
사울과 같은 사람으로 길들어 지게 법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그럴가요?
아니요.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살려니 그런겁니다.
본문에는
아사 왕이 이렇게 믿음의 배신자로 변신하고,
결국은 다시 전쟁이 있게됩니다.
ㅡㅡㅡㅡㅡㅡ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그전까지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만
전쟁이 없도록 해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징벌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아사 왕이 사람이니까 잘못될 수 있는데,
아사 왕이 무슨 범죄를 행했기에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느냐
그걸 우리가 확인해야 됩니다.
1절부터 보면,
북쪽나라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자기 힘을 과시하려고
남쪽의 아사 왕을 쳐들어옵니다.
쳐들어와서 유다 나라를 유린합니다.
유다 나라는 자꾸만 집니다.
나중에는 북쪽 나라 군사들이
많은 마을들을 점령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앙 좋던 아사 왕이
신앙이 없어지면서
걱정이 슬그머니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가만있자 북쪽나라 바아사왕이 쳐들어 왔으니까
내가 이 백성을 지켜야되고
내가 왕인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북쪽 왕 보다 더 강한 나라가 없을까?"생각하다가
다메섹 왕 벤하닷을 떠올립니다.
벤하닷의 큰 힘을 빌려서
북쪽 바아사 왕을 물리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초지경을 고합니다.
대왕의 나라가 우리 북쪽나라하고
약조를 맺었지요?
지금 우리는 북쪽나라로부터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하시면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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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솔로몬 왕 시절을 압니다.
어느 정도로 대단한 재산을 축적했는지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큰 성전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옛날 솔로몬 때, 다윗 때
다른 옆 나라를 점령을 해 가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얻어진
수많은 노획물과 전리품들이 창고에 가득한데
그것을 처치를 제대로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얻어진 재물을 다메섹에다
도로 바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조약을 맺고
다몌섹의 벤하닷이 나가서
형제 나라인 북쪽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나갑니다.
과연 그 이방나라가 은, 금 받고
북쪽나라 이스라엘을 쳐버립니다.
치니까 북쪽에서 쳐들어왔던 사람들이
혼쭐나서 도망쳐 가지고
자기 나라로 철수해서 가는 거예요.
가고 난 뒤에
이제 아사 왕은 휘파람을 불지요.
6절에 보니까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수운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고 합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도망치면서
놔두고 간 것들을 가지고
큰 건축사업을 벌렸습니다.
아마 아사 왕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역시 정치에 대해서는 내가 잘한다 말이야.
이렇게 큰 힘을 빌려가지고 쳐버리고
급히 도망가다 남겨둔 것을 가지고
다시 우리나라를 이렇게 재건하게 되었으니까
나는 얼마나 훌륭한 왕인가"
자, 여러분 방금 제가 이야기 한 것 가운데
여호와에 대한 관심사나
특별한 어떤 의미를 두던가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사 왕의 일 처리에
어떤 중요한 몫을 차지했던가요?
중요하게 생각되던가요.
아니면 방금 제가 지금 아사 왕의 행동 가운데서
그 어떤 여호와에 대한 도움이나 개입을 요청하던가요?
전혀 필요가 없었지요.
바로 이 성경말씀은
오늘날 우리보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고
직장 일에 열중하고
모든 행동에 나서면서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전혀 불필요한 그런 구조로 하루 하루를
지금 살아가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 놓고는 교회와서는
갑자기 "주여!" 하고 신앙 흉내내다가
교회 문 밖에만 나가면
"하나님 뭐 필요하노,
모든 일은 내 손에서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
나 얼마나 처리 잘 한다고"
이런 식으로 교만을 떨 수가 있는 겁니다.
자, 이제 아사 왕의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7절에 봅시다.
여기에 또 골치 아픈 선지자가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이런 자의 나타남이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말합니다.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9절에 보면 왕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망령되이 행했고
그래서 전쟁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어겼습니다.
당신 때문에 백성이 괴롭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괴롭고 회개하시오"
이렇게 나왔을 때
아사 왕이 어떤 태도를 가질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 선지자의 말에 전적 동의하고 회개했을까요?
10절에 보니 아사왕의 행동은
회개도 없었고, 분노하며 선견자를 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더나아가 아사라는 왕은
더 나아가서 백성들을 학대를 했어요.
11절12절에 가면
그는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맙니다.
우리가 한때 믿음의 왕으로 추앙하던 사람의 끝이
허망하기만 합니다.
병나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사의 시종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옆에 있는 의사한테 병 낫게 해 달라고 한
그 정신상태 때문에
끝도 역시 좋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성경을 보면서
아사 왕에 대해서
부러움과 감탄사를 난발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하고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믿음이 좋을 수가 있느냐,
같은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이렇게 철저하게 신봉하느냐,
야 이 사람의 신앙은
평생가도 안 달라 질거야,
평생가도 변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속으로 안심 푹 놓고
아사 왕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었을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런데 오늘 16장에 보니까
그 인간의 말로가
발병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아, 인간이 이렇게 끝나네요.
그래서 지난 날 한번 하나님 의지했다고 해서
그걸 1년을 울겨 먹을 겁니까,
2년을 울겨 먹을 겁니까.
5년 전에 기도원에서
은혜 받았다고 생각한 것 가지고
아직도 울겨 먹고 또 울겨 먹을 거예요?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미리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지금 정말 내 인생에 있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얼마나 꼭 필요한 분인가
스스로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도대체 아사 왕이
뭐가 잘못되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아사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금 은 보화을 가지고 나라를 지탱하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을 해서 얻게 되었던
금은보화를
하나님의 적군인 이방나라에
도로 갖다 줘 버립니다.
이게 뭐가 잘못된 걸까요?
여호수아 7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리고 성 함락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 성이 함락할 때에
나팔 불면서 일곱 바퀴 돌고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잖아요.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6장에서
"여리고 성에 들어가거든
여리고 성에서 얻은 것 몽땅 다
하나님께 가져오너라"
이렇게 지시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통 세상전쟁의 목적은
우리나라에 좋은 것이 없고
저쪽나라에 좋은 것이 있을 때
쳐들어가서 저쪽나라의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전쟁을 벌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노예가 없다 그러면
쳐들어가서 저쪽나라의 양민을 뺏어다가
우리들의 종으로 부려먹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 이 말이죠.
우리나라에 금이 없다 그러면
금 광산이 있는 저쪽나라에 쳐들어가서
금을 빼내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 이 말입니다.
오늘날 서구열강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방식과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도둑놈 심보죠
그런데 이 하나님이 계시는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오로지 온 천하에
여호와의 이름이 높아지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치릅니다.
누가 용사고, 누가 승리하느냐 하면,
오직 여호와 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만
구원해 주는 거예요.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나팔불고 돌았어요.
나팔불고 성 일곱 바퀴 돌고 나니까
무너졌다 이 말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네가 한 것이 없고
만약에 여리고 성을 너한테 접수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여기라는 뜻입니다.
아니, 요즘도 군악대가 나팔만 불면
모든 성이 다 저절로 무너집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약속의 땅 어느 한 고을도
너의 공로로 얻지 못하고,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선물로
다 너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은
우리에게 영생으로 공짜로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도 아무 힘없이
돌기만 하면 무너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대신 여리고 성에서 얻었던 금은보화는
몽땅 하나님께 바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시를 잘 지켰습니다.
지켰는데 어디를 가든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문제지요.
이 아간이라는 놈이
유다 지파인데 그만 외투, 모피가 탐이 나고
금이 탐이 나서 몰래 빼돌렸습니다.
그 많은 금은 중에서
좀 빼돌린들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여리고 성에 들어가서
물건 끄집어내어 온 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이번 전쟁 승리에 있어
자기도 조금 수고했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그럼 이 몫은 내 공로에 따른 몫이야 하면서
자기 정당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하나님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즉각 나타납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난 연 후에
아이 성이라는 조그만 마을을 공격하는데
분명히 여호수아 장군은
마땅히 승리할 줄 알았어요.
여리고 성도 무너졌는데
이것도 안 무너지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세상에 무려 36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물을때
너희가 내 물건 훔쳤다고 힐문합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물건을
하나님의 공로를 돌리기 위해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는데
자기공로로 여기면서 자기 사적으로 사유화시킨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가져간 사람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섭니다.
"내가 직접 고를게"해서
유다 지파 세워놓고 딱 집으니까
아간이 나오더란 말이죠.
여호수아 7장에 보니까
외투하고 은200세겔하고
금50세겔을 땅에다가 감추었습니다.
현장 검증해 보니까
외투와 은과 금 덩어리가 나왔거든요.
하나님은 지시했습니다.
외투와 은과 금 덩어리뿐 아니고
너희 집에 있는 것 모두 다 끄집어 내
돌로 쳐죽이고 땅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곳이 아골 골짜기예요.
하나님의 혼자하신 이 곤고를
인간이 빼앗아 저주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저주받아서
무수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리품을 나한테 가져 오라
이 말씀은 딴 말이 아니고
이스라엘 군대 너희 지체도
내가 전쟁해서 얻은 전리품이다
그러니까 네가 물건을 바치지 말고
네 몸과 마음도 세상에 있던 내가
예수님이 마귀와 전쟁을 해서 승리해 가지고
예수님이 전리품으로
여러분들을 하늘나라고 데려 온 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값으로 주신 것이 되고,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서,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 알아서 해야 될 건데,
그런데 본문에서 아사 왕은
자기 몸을 바친 몸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그 전리품을 뇌물로 줘 가지고
"하나님 미안합니다." 그렇게 하고는
하나님에 의해서 얻어진 그 공로를
자기 인간적인 방식으로
자기가 자기를 살리고
자기의 지혜와 아이디어로
자기를 지탱하려고 하나님이 뺏었던
그 나라에 도리어 뇌물로 갖다 바쳤습니다.
끝으로 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흥사들을 믿지 마십시오.
사기꾼들은 항상 부흥회 마지막날
재산을 교회에 바치라고 강요합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재산을 교회에 바치면
하나님 기뻐하십니까?
그것도 일종의 뇌물입니다.
하나님은 집에 있는 재산을 바치지 말고
네 몸을 우리 집에서,
직장에서 생활하는 몸 자체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부흥사들이나 교인들이
재산을 갖다 바치는 심보가 어떤 심보냐 하면
바로 불 신앙적인 심보예요.
뭐냐하면 하나님 이거 바치면
우리가정에 바친 만큼
배나 더 보충해 주겠지요.
이 심보가 지금 아사 왕이
이방나라에 돈 바치는 신앙이예요.
여러분, 신앙은 교회에 돈 갖다 바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몸이 교회에 있든, 집에 있든,
농장에 있든, 밭에 있든
네 몸은 하나님의 몸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며
하나님이 연장시켜주는 하나님의 수명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현장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몸이 되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큰 형님에게 아부하듯이
돈으로 매수하려고 들지 마세요.
매수 당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아침에 일어나 감사하고, 식사할 때도,
장 볼 때도, 목욕할 때도, 가구 들여놓을 때도,
또 교회에 필요한 것을 구입할 때 내놓는
그 돈도 역시 같은 하나님이 주신 돈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이 몸이 하나님 것으로
그렇게 살면 됩니다.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이 몸 자체가 이미 값 주고 산 몸이라고
우리한테 통고하고 있습니다.
